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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24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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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you've got mail]

일본의 대학 고유의 문화가 있는데, 그게 바로 ‘제미’라는 개념이다. 보통 원하는 학부에 입학해서, 2학년 때 쯤에는 제미를 선택해서 자신의 전공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경영학부를 예로 들자면, 1학년 2학년에는 경영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많은 과목들을 이수한다. 그리고 2학년 중반 이상을 넘어가면,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담당하는 교수를 선택하여 그 교수의 제미원으로 들어간다. 내가 경제학을 원한다면 경제학 담당 교수인 X교수 제미로 들어가는 것이고, 마켓팅을 원하면 마켓팅 담당 교수인 Y교수의 제미원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내 경우에는 국제 거래 및 무역 등을 원했지만, 아쉽게도 그 담당 교수의 경우에는 졸업하기가 엄청나게 어렵고 까다롭다는 소문이 있어, 귀차니즘의 상징인 사카모토 교수 제미에 들어갔다. 그 교수는 회계 담당 교수였고, 귀찮은 성격 때문에 왠만해서는 학생들을 잘 졸업 시키기로 유명했다. 
 
제미의 인원은 보통 7~15명 정도인데, 사카모토 제미는 나 같은 유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한국인은 나 한 명 뿐이라, 한국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의 질문 세례를 받기 일쑤였다. 그 중에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에시로 카나에 라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는 제미 소집 첫 날부터 쉬지 않고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들은 다 토익 점수가 높다는 데 사실이야?”
“한국 사람들은 데이트 할 때 어디를 주로 가?”
“한국 사람들은 정말 다 매운 걸 좋아해?”
“한국 남자들은 정말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다 자상해?”
 
이미 마리의 일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아무런 의욕도 없던 나는 이마를 싸맨 채로 ‘응’, ‘몰라’, ‘그럴 걸’, ‘글쎄.’ 등의 성의 없는 대답을 했지만, 그녀는 참 성격이 좋은 모양인지 포기하지 않고 나만 보면 말을 붙였다. 
 
이미 마리의 일로 멘탈이 박살이 나 있을 때 제미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지도 교수인 사카모토 교수는 나를 엄청 좋아했다. 내가 딱히 회계학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고 (1학년 때 B+인가 받았음), 교수 앞에서 알랑방구 떠는 성격도 아닌 데도,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말버릇 처럼 ‘한국애들은 참 열심히 한단 말이야. 일본애들이 본 받아야 돼.’ 라고 하며 나를 추켜세웠다. 그 와중에도 ‘저 사람이 마리의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고 미웠다. 심지어 그 교수는 훗날 내가 졸업 논문을 쓸 때, 내가 쓰는 논문 주제의 일본 내 최고 전문가를 감수로 붙여 주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리의 아버지의 반대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 학교 생활처럼 마리와 나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마리가……그만 뒀다고요?”
“네…사실 좀 갑작스럽게……”
 
그녀의 아버지를 스포츠센터 앞에서 만난 그 날 이후, 단 며칠 사이에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당연히 연락은 끊겼고, 며칠 후에 마리는 스포츠 센터를 그만두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로 모든 스탭이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당해 하는 나에게, 예전에 내가 그 센터에 다닐 때 나를 지도해 줬던 인스트럭터인 켄짱이 나를 위로했다. 
 
“다른 지점으로 옮긴 거면 제가 알려 줄 수 있는데……그냥 그만 둬 버렸어요.”
“괜찮아. 사정이 있겠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요?”
“아냐. 그런 건.”
“잠깐 저기 가서 이야기 좀 해요.”
 
켄짱은 한 쪽에 마련된 흡연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근육 만드는데 지장 있다고 담배도 안피우면서……그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요?”
 
나는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그냥 그녀의 집에서 반대한다는 정도만 말해 주었다. 켄짱은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놀라워했다. 
 
“에? 집에서 반대를 한다고요? 결혼한다고 했었어요?”
“아니. 그러니까 더 황당하지.”
“와아……”
 
같은 일본인인 그 에게도, 마리의 아버지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웃기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니까. 
 
“언제부터 인지… 마리는 출근해서 일 하다가도 엄청 울고 그랬어요.”
“마리가?”
“네. 저번에는 진짜 엉엉 울어서……스탭들도 회원들도 와서 다 위로해 주고 막……”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마리는 밝고 명랑함의 상징과도 같은 여자아이다. 그리고 똑 부러지는 것도 있어서, 일과 자기 생활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 그런 그녀가 직장에서 엉엉 울었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담배 연기가 가슴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의 아버지와 만난 그 날이 후 마리는 본가로 당장 소환되어서, 밤에 몰래 그녀의 집에 찾아갈 수도 없었다. 며칠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집에 찾아 갔을 때는, 이미 그 집도 빈집이 되어 있었다. 정말로, 순식간에 내 여자친구가 행방불명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근처 부동산에 가서 그 집이 언제 이사했냐고 물었고, 친절한 부동산 아저씨는 여기 저기 전화를 넣어 보더니 내게 말했다. 
 
“이틀 전에 짐을 싹 가져갔다고 하네요. 원래 그 집 주인이 쓰던 집인데……세를 내놨어요.”
 
그제서야, 마리가 살던 그 멘션도 그녀의 아버지 소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아예 마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연결고리가 싹 다 끊어진 것만 같았다. 열심히 마리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고,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메일을 접속했다.
 
“마리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 거렸다. 마리는 잊지 않고, 사귀기 전 그녀가 호주로 갔을 때 내가 보냈던 메일을 기억해 내고 내게 메일을 보내 주었다. 그것도 무려 다섯통이나.
 
-오빠. 잘 지내? 너무 걱정되네…
나 아빠 집에 와 있어. 아예 외출도 못하고…
센터에는 아빠가 가서 나 그만둔다고 말했나 봐. 
휴대폰도 없고,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다 – 
 
-오빠. 오늘 아빠가 책을 잔뜩 사왔어. 
전에 얘기했지만 일본 고등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졸업장 딸 수 있는 특수 학교로 보낸다고 했어. 
오빠는 어떻게 지내? 궁금해. 보고 싶어
컴퓨터 하는 시간도 길게 쓸 수가 없어서…길게 메일 못써서 미안해.- 
 
그녀의 메일을 읽고 있으려니까, 머리가 꽉 조여지는 듯한 편두통이 밀려 오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히거나 싸운 적이 없는……정말 이상 적인 연애를 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리가 보낸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빠. 오늘 아빠가 늦게 오실 것 같아. 
잠깐이라도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얼굴 보고 싶어. 
주소는……- 
 
마지막 메일의 보낸 날짜는 오늘 아침이었고,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가 남긴 주소를 메모했다. 단 한 번 인사 드렸을 때 갔을 뿐이어서 길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희소식이었다. 
나는 답장으로 지금 당장 출발한다는 한 줄을 써서 보내고는 재빨리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내가 일본에 살면서 가장 빠르게 달린 날이 아마도 그 날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우리 집에서 그녀의 본가 까지는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평소라면 극악 무도한 일본의 벌금이 무서워서라도 규정 속도를 지켰을 텐데, 그때는 백만엔이 나오더라도 빨리 가는 게 중요했다. 나는 정말 이 차 저차를 추월하고 피해 가면서 엑셀을 밟았다. 차에 달린 순정 네비게이션이 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 경로를 재탐색 했다.  
 
예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일체의 전화 연락없이 각자 다른 곳에 있던 맴버들이 만나는 텔레파시 특집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마리를 많이 떠올렸는데, 그 날도 마리와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그녀의 집을 찾아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금 보이는 마리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벨을 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비상 깜박이를 켰다가, 또 들키면 어쩌지 싶어 껐다가, 차 문을 열고 나왔다가 들어왔다가, 정말 말 그대로 안절부절 못하며 그녀의 집 앞에 서 있었는데, 30분 후에 거짓말 처럼 마리가 대문을 열고 뛰어 나왔다. 
 
“오빠!!!!”
 
집에서 입는 편한 옷에 가디건만 걸친 그녀가, 거의 날아 오듯 내게 뛰어 들었다. 나는 정말 그녀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끌어 안았다. 
 
“오빠…오빠…”
 
그녀는 그렇게 나를 부르며 계속해서 울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데리고 뒷좌석에 탔다. 마리는 내 무릎에 올라타서 나를 끌어 안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와 줘서 고마워.”
“내가 온 지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집에 옥상이 있어. 계속 서서 기다렸어.”
“감기 들면 어쩌려고.”
“상관없어.”
 
말할 틈도 없다는 듯 우리는 입을 맞추고, 끌어 안고,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눈물을 양 손으로 닦아 주었다. 
 
“우니까 못생겼어. 그만 울자.”
“거짓말 하지마. 귀여운 거 다 알아.”
“아버지는? 언제 오셔?”
“30분 안에 오실거야. 엄마가 아빠 몰래 알려줬어.”
“낮에는 아예 집에서 못 나와?”
“아빠가 가정교사들 줄줄이 붙여놨어. 내가 자리를 비우면 바로 아빠 귀에 들어갈거야.”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신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울고 있는 마리를 보니까 차마 그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빠. 차 시동 걸어.”
“응?”
“도망가자.”
“마리.”
“얼른! 빨리!”
 
마리는 정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
“응! 정말! 도망가자.”
 
내가 어이없어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다그치듯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더니, 뒷좌석에서 조수석으로 옮겨 타며 안전 벨트까지 메고 있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에 차를 출발 시켰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마리는 핸들을 잡고 있지 않는 내 왼팔을 끌어 안고 내게 기대듯 앉았다. 차는 몇 번의 신호에 걸리며 정차했다. 
 
“오빠.”
“응?”
“아빠가 오빠네 집은 모를 거야.”
“그래서?”
“나 당분간만 먹여 살려줘. 금방 직장 구할 수 있어.”
“마리……”
 
그녀는 여전히 내 팔을 끌어 안은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마리는 정말 진지하게 내게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다시 차를 돌렸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마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뭐해? 어디로 가?”
“그래도 이건 아니야.”
“뭐가?”
“마리. 이러면 나는 더 미움 받을 거야.”
“어차피 우리 아빠 고집은 못 꺾어. 그러니까 다시 차 돌려 얼른!”
“안돼. 이건 아니야. 부모님을 척지고 도망치는 것을 하기엔 너무 일러. 너 지금 스무살이야.”
“지금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
“마리. 진정해. 이렇게 극단적인 판단을 할 때가 아닌 거 같아.”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마리는 겨우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트리며 내 팔에 얼굴을 묻었다. 한 쪽 팔이 그녀의 눈물로 젖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리고 사실 그녀보다 더 내가 도망하고 싶었지만, 마리의 인생을 망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내게 해 주었던 말이 그 순간 귓가를 맴돌기도 했다. 
 
-우리 마리노 잘 부탁 합니다.- 
 
다시 집에 도착했을 때는, 그녀가 내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모두 소모되어 버린 뒤였다. 그녀의 어깨는 여전히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안으며 말했다. 
 
“마리.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올게. 메일로 대화하자. 단 1분 본다고 해도 또 올게.”
 
마리는 대답대신 내 입술을 빨 듯 키스를 하고는, 이내 씩씩하게 눈물을 닦고 내 차에서 내렸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내 차의 후미등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문 밖에 서있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우리의 시간은 그 날이후로 멈춰 버렸다. 이제 그녀에게서 PC메일이 오는 빈도도 점점 줄어 들어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런 것도 제재를 가하는 것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수업 시간에만 노트북을 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듯했다. 
 
나는 점점 무너져가는 내 멘탈을 다 잡으며, 겨우겨우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해 나갔지만, 거의 매일 자기 전에 방에서 술을 마셨다. 새로고침을 하도 눌러 대서 컴퓨터가 멈춰 버린 메일 화면을 보며, 나는 벽에 기댄 채로 잠에 드는 날도 있었다. 
 
나는 3학년 진학 전 봄방학에 돌입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아서, 한국행 티켓을 사고 마리에게 메일로 일주일 정도 한국에 다녀온다고 말했다. 물론, 그녀의 답장은 바로 받지 못했다. 
 
내가 한국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어차피 마음 고생을 할 거면 모국에서 하는게 낫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냥 혼자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아무런 생각 없이 술 마시고 놀고, 그런 것들이 해 보고 싶었다. 괜히 한국 음식도 먹고 싶었고, 가면 마리 생각도 덜 할 것만 같은 그런 합리화를 하며 나는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도착한 지 정확히 이틀 뒤에,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본 역사상 가장 최악으로 꼽히는 대지진이 센다이를 덮친다. 
 
-관측 이래 최악의 지진-
-사망자 속출-
-쓰나미 센다이 공항 덮쳐……-
 
연일 뉴스에서는, 내가 공부를 하던 그 도시가 물에 잠겨 떠내려가고, 건물이 부숴지며 붕괴되는 것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착각이 들며, 귀에서 삐-하는 이명이 들렸다. 뉴스에 보이는, 폐허 와도 같은 그 광경들은 내가 줄곧 유학생활을 하던 그 도시였다. 
 
“마리……마리……”
 
나는 황망하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람이 심하게 충격을 받으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그 때 처음 실감했다. 내가 있었던 센다이는 물론이고 동북 지방 전체, 아니 일본 전체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가장 심한 사회적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나는 황급히 일본에 다시 돌아갈 준비를 했지만, 매우 당연하게도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되어 있었으며, 반대로 일본에 있던 유학생들이 하나 둘 씩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나면, 일본은 통신이 끊긴다. 테이블 위에 있던 밥솥이 떨어질 정도의 지진만 와도 아주 잠시동안 통신은 두절된다. 하물며 동북 지방 전체가 쑥대밭이 된 그 지진에 멀쩡히 전화가 될 리 없었다. 마리의 번호로 전화를 해도 당연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일하던 가게의 사장님도, 학교도, 내 담당 교수인 사카모토 교수도.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정말 미친놈처럼 멍하니 앉아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리가 설마……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루에 수만번은 했다. 몇 주가 지나서야 일본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이 재개되었는데, 당연하게도 마리가 쓰던 핸드폰으로는 연락이 되질 않았다. 먼저 식당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으세요?”
“괜찮겠냐. 간신히 숨만 붙어 있지.”
“가게는요?”
“아주 쑥대밭 됐지.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한국 가셨어?”
“괜찮으시면 다행이네요.”
“들어오지 마. 위험해. 일본은 끝난 것 같아.”
 
사장님은 늘 그렇듯 시크 하게 말했고, 담당교수인 사카모토 교수는 어느 정도 복구 될 때 까지 휴학처리를 해주겠노라고 했다. 일주일을 생각하고 온 나는, 졸지에 기약 없이 몇 개월 동안을 한국에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거의 매일 하루에 한 통씩 마리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 간다는 메일을 보냈을 당시에 잘 다녀오라고 한 그녀의 답장이 마지막 메일이었다. 
 
내가 일본에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연장되었다. 센다이가 아닌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을 하더라도, 센다이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만류가 너무 완고하여 갈 시도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하루에 한 통씩 마리에게 메일을 썼고, 그 생활은 무려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심적으로 점점 지쳐가던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의식적으로 메일 새로고침을 누르다가 그녀로부터의 답장을 발견했다. 
 
“어……?”
 
정말 눈을 다시 지켜 뜨고, 도착 시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그것을 클릭했다. 막 기쁜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나 통보 메일을 확인하는 것처럼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오빠. 미안해요. 답장이 너무 늦었지?
이미 나라는 사람 잊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빠 성격상 너무 걱정할 것 같아서 겨우겨우 메일을 써요. 
난 괜찮아. 지진 왔을 때 센다이에 있었지만,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어찌 저찌 잘 도망쳐서 지금은 엄마 아빠랑 도쿄에 있어. 
조금 급하게 이사왔지만……예전에 살던 곳이라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오빠가 보낸 메일이 100통이 훨씬 넘네…
고마워 기억하고 걱정해 줘서.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이 떨리는 것도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다행이다. 무사하구나. 나는 계속해서 메일을 읽어 내려갔다. 
 
오빠. 
나는 오빠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한국에 가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오빠. 이제 일본에 오지 말아요. 
여진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너무 위험하니까. 
그리고 이제 메일도 보내지 말아요. 
정말 많이 오랫동안 생각을 해 봤는데
더 이상 상처주는 건 정말 해서는 안될 일인 것 같아. 
이제는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우리 아빠가 줬던 상처도 조금은 용서하고…
그랬으면 좋겠어. 
 
오빠랑 있었던 시간은 단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추억이야.
그래서 고맙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마리로부터 -  
 
나는 정말 그 메일을 백 번 이상 읽었던 것 같다. 허탈하고 슬프고 허무하고, 한 편으로는 그녀가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 감사하고, 정말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나는 한동안 책상에 엎드려 아무런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나는 정말 수많은 고민을 했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말도 너무나 많았지만, 똑 부러지는 마리는 한 번 결정한 것을 다시 주워담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 그게 아니더라도 무슨 수로 그녀를 만나겠어?
 
하지만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어차피 다시 센다이로 돌아가 복학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복학을 하기 전에 꼭 한 번 그녀를 보려는 시도 정도는 하고 싶었다. 
 
물론, 그녀를 도쿄에서 찾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만나자고 보낸 내 메일에 그녀는 답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성격을 잘 아는 그녀니까, 아마 일부러 내 메일을 애써 무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도쿄에 도착하자 마자, 그녀가 있던 스포츠 센터의 모든 도쿄 지점을 뒤지고 다녔다. 마리가 다시 도쿄에서 일을 한다면, 자신이 다니던 곳의 도쿄 지점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쿄는 꽤 큰 편이었고, 그 센터는 총 여섯 개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갔을 때 일을 하던 스탭들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다. 대뜸 덩치 큰 외국인이 와 가지고 여기 스탭 중에 사이토 마리노 씨라고 계신가요? 라고 묻고 돌아다니니까. 하지만 그 여섯 개의 센터 모두 그녀의 이름을 가진 스탭은 없었다. 마지막 점포에서 내가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려고 할 때, 한 여성 스탭이 내게 말했다. 
 
“저 혹시……사람 찾으시는 거면……사이타마에 지점이 하나 더 있어요. 워낙 도쿄에서 가까워서 도쿄 지점들 중 하나로 취급하거든요.”
 
“사이타마 어디에 있는데요?”
 
“도코로자와 시 아시나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 마자, 다시 사이타마로 향했다. 정말 이번에도 없다면 그냥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몇 번의 전철을 갈아타고, 정말 알아보기 힘든 도쿄 전철 시스템속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한 센다이 촌놈은, 잔뜩 심신이 지친 채로 사이타마 지점에 도착했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입구에 놓여진 센터 홍보 전단지 강사진에 그녀의 사진과 이름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그 전단지 위 마리의 얼굴을 몇 번이나 어루만졌다. 정말 오열하듯이 울면서 그 사진을 봤던 것 같다. 센터에서 운동하고 나오던 사람들이 나를 힐끔 거리며 쳐다보았지만, 나는 정말 한참이나 그 전단지를 손에 쥐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 길로 센다이로 돌아왔다. 거기까지 가 놓고, 마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면서 나도 겨우 마음을 비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마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만 하고는, 복구 작업에 한창인 센다이로 돌아왔다. 물론 내 가방안에는 사이타마 지점의 전단지가 파일안에 곱게 들어 있었지만, 나는 예전처럼 힘들어 하지 않았다. 다시 복학을 하고, 유학생활 초기로 돌아가서 다시 그 때처럼 미친놈처럼 공부하고, 일을 하고, 조금씩 마리를 잊기 위해 애를 썼다. 사카모토 교수는 늘 그런 내 모습에 굉장히 흡족해 했고, 우리의 의리 넘치는 사장님은 가게가 완전 부숴졌다가 다시 재건하는 바람에 손님이 뚝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바로 써 주셨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쑥대밭이 된 동북 지방은 조금씩 조금씩 재건되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솔직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계획에 맞춰 차근차근 복구를 해 나가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 복구되는 현장을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으니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를 회상한다. 
나한테는 아프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아주 소중하기도 했던 추억들은 이미 막을 내렸지만, 지금도 정말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날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직 내 메일함에는 마리의 메일이 있다. 그리고 그 메일에는 내가 사이타마에서 내려오고 나고 몇 개월 뒤 마리가 내게 보낸 메일도 있다. 선뜻 답장을 해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는 그녀의 메일에 아직도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마리를 생각한다. 그녀를 제외하면 일본 생활에 대한 기억은 반쪽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리고 매우 확신한다. 그녀는 아마 너무나 잘 살고 있을 것이고, 분명 누군가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고 또 그만큼 받고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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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지수와의 이야기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읽어 주시는 분들도 많고 해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쓰게 되었네요. 이게 뭐라고 쓰다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재밌었습니다. 사실 유학생활의 극히 일부만 쓴 것이고, 너무 풀버젼으로 때리면 왠지 제 과거를 훤히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알아서 필터링해서 썼습니다..
 
물론 유학일기가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 할 분도 별로 없으시겠지만 혹시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면 아쉬운대로 토크 게시판 예림이님의 금욕일기를 애독해주세요.(나름 엄청 꿀잼임……10개월간 계속될 듯…)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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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s 2018-12-26 17:33:22
재밌게잘봤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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