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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나의 남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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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Book Thief]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왠지... 혼자가 되서 그런가? 이것 저것 정리하고 싶고... 그렇다고 뭐 멀리 떠날것도 아닌데. 요즈음 회사일도 그렇고 해서 시간날때 마다 내 사랑(?)을 정리해 보고 싶네요. 그렇다고 어디 자랑삼아 떠들것도 아니니...
 

첫 번째 이야기

학창시절 그때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나이트에 갔었다. 그렇다고 날라리로 치부되긴 좀 그렇다.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떨고 밤거릴 쏘다닐 때면 영락없는 날라리의 표본이었지만, 한숨 푹자고 담날 학교에서는 오히려 범생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어느 물 좋다던 강남의 나이트 클럽. 어떤 사내가 블르스 음악과 동시에 내 손목을 낚아챘다. 몇 번 뿌리치려 해보았지만 마치 팔이 떨어질 것만 같았고 순간 약간의 두려움도... (아마 지급 같음 냅다 따귀라도 갈기거나 욕지거릴 해 줬을 텐데 ㅎㅎ)
 
어찌저찌 우린 합석을 하게 됐고 내 맘을 사로잡은 건 그 브루스남이 아닌 그의 친구. 그 앤 별 말이 없었고 부티가 나는 게 순진해 보였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우린 길가에 서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려 만난 적도 있고 하루 종일 걷기만 한적도...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있었고 어느 봄, 축제에서 첫키스의 어지러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결국 그날 우린 용기있게 일을 치뤘는데... 몸의 반은 행복했고 반은 불행했다는 표현이 맞을라나? 그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나의 가슴은 눈물나도록 행복했지만 나의 쳐녀는 울고 있었다. 우린 밤새도록 명랑을 시도 했었지만 울다 웃다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난 울면서 그를 내 안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엔 그도 몹시 아파했던 것 같은데, 그애 이후로 난 아파하는 남잘 본적이 없다. 남자도 처음엔 아픈가?
 
그 이후 우린 여름방학 내내 여행을 했다(여수,부산, 제주도 등). 난 그게 행복이라고 느꼈고 그 애와의 명랑땐 행복감에 가끔 울기도 했다. 명랑중 좋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던 내게 울음은 그 아픔과 행복을 모두 만족시키는 카타르시스 였던 것 같다.

나중엔 [노원]으로 피임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처음 관계에서 임신이 안된건 정말 기적이다. 이렇게 1년여를 보낸 그 애가 나의 첫 남자 였다.
 

두 번째 이야기

어느날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여기는 사랑 얘기를 적는 곳이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대학생활이 끝날때 쯤 난 나 보다 연하의 다른 남자를 알게 됐고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됐다. 3년만의 일이었다. 이 기간이 지금까지 내게 사랑이 없었던 가장 긴 기간이기도 했다.


영화 [Twilight]

그는 날 1년 여간 지켜보았다고 했다. 나도 얼굴은 알고 있었고 그 애와 내가 가까워건 그시절 유행하던 Study club에서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 부터다. 장난을 좋아하던 티없이 맑은 그의 눈을 좋아했고 아침저녁 날 마중하고 배웅했다.
 
봄에 그의 고백을 듣고도 근 1년을... 우린 뻘쭘했었다. 그는 나의 흑기사를 자청했고 난 선배로 시간을 보낼뿐이었지만 사실 난 그를 위해 취업대신 대학원을 진학했고 우린 비로소 사랑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핑계삼은 그와의 데이트는 어느새 [ㅇㅇ장]을 전전하며 서로를 탐닉하는데 열중하고 있었고 내겐 그 관계가 달콤한 또 다른 즐거움으로,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갈수록 날 불안하게 했다. 오히려 그는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 내가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면 그외의 모든 것은 그에게 배웠던 것 같다.
 
처음 가본곳도 많았고, 처음먹은 음식도 많았으며 나의 옷입는 하나 하나에서 화장까지도 그는 그렇게 섬세하게 날 가르쳤고 내 모든 것을 갖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는 나의 처녀성을 의심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으며 나의 몸에 열중하는 그를 난 감사해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와의 명랑은 육체적으론 내겐 만족스럽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와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그를 가슴에 안고 잠들고 싶어 했으며 그렇게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난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고 우리는 약속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철없는 짓이었고 부담스러웠을 그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의 부모님과의 첫인사는 친척 집에 얹혀 살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격차에 놀라와 해야 했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그의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자존심의 상처로 남아야 했다. 그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고 어느새 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알고 싶진 않았지만 그는 지금 뉴욕 어느 대학의 교수란다. 그는 내 두번째 남자로 가슴에 남아있다.
 

세 번째 이야기

세번째 사랑은 생각해 보니 좀 복잡하다. 그래서 스스로 남성(男性)을 사랑했던 것으로 정의 해 본다. 마음 한켠 허전함의 이유이기도 하고 내 행동에 대한 변명의 명분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일도 사랑도...

이미 결혼이란 생각을 포기해버린 난 심적으로 자유로왔고 결혼 적령기의 주위 친구과 같은 스트레스도 없었다. 또 그 시절 직장과 학위를 동시에 진행했던 난 눈꼬뜰새 없이 바빴고, 경제적으로도 혼자 독립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미드 [LBW Movie]

친구들과 또는 그들의 남자 친구와 만나는 가끔의 술자리가 유일한 나의 즐거움이었고 한창 나이던 그 때 혼자사는 내 집은 가끔 친구들의 사랑의 장소가 되어 주기도 했다.
 
연이은 친구들의 소개팅으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 모두와 명랑을 하진 않았지만 남자들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내게 다가왔고 나도 그것을 싫어하진 않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 나를 미친듯이 명랑에 빠지게 했고 그 열정은 내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되버렸다. 오히려 결혼한 친구들에게 내가 명랑을 지도해 주었으니 말이다.
 
만남 그 자체를 좋아했고 명랑 자체를 사랑했다. 반복되는 이별이 허망하긴 했지만 내 일은 그 공간을 체워주기에 충분히 바삐 돌아갔고 난 추억을 뒤돌아 보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헤펐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난 순간순간 사랑했지만 단지 미래를 같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었다.

휴가 때마다 파트너와 함께 여행을 했다. 우리가 미래를 같이 하진 않겠지만 단 며칠이라도 부부로 살아보면 후회하진 않겠다는 제안으로 태국, 괌, 사이판,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폴, 멕시코, 브라질, 캐나다...

아이러니 한건 단 한번도 내 집은 나에게 사랑의 장소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 가장 소중한 젊음은 이렇게 미친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 내 나이가 궁금하시다구요? 낡아버린 386 컴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

최근 2~3년 나의 방황과 사고의 어지러움은 분명 아직도 내가 성숙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폐허화 되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일상의 많은 지표들은 미래를 예지한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한번도 미리 알아버린 적은 없었지만 뒤돌아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법칙중 하나이다.

대망의 2000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듯이 나 또한 많은 부분 흥분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연일 이어지는 바쁜 업무에 시간을 쪼개 나누는 사랑이 그러했고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일과 유희(遊戱) 와의 병행은 분명 지금의 어려움과 아픔을 예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벤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나의, 아니 우리들의 어릴적 우상이었으며 선생님이나 학생들 모두 그를 좋아하기 보단 어려워할 정도로 완벽했고 모든이의 기대도 한몸에 받았었다. 감히 질투 따위는 생각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그런 그는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잘 자라(?) 있었다.
 

영화 [철없는 그녀의 연애코치]

그런 그와 일주일에 한번씩 아침식사를 같이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약간의 기대감으로 참석한 모임은 점점 나를 기다리게 했고 그가 이혼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정신이 혼미해 짐을 느꼈다. 난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을 놓칠 수 없었다. 아니 놓치기 싫었다.
 
난 그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의 일과 그의 개인적인 신상 모두... 난 어느새 그를 위해 살고 있었다. 나의 기대보다 약간 의기소침해진 그의 모습에서 그의 삶의 무게를 느낄수 있었고 그것이 날 아프게 했다. 난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내가 믿는 그의 총명함을 찾아 주고 싶었다.
 
우린 서로의 동의하에 동거를 합의했고 그를 위해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마치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의 마음으로... 행복했다. 행복해서 죽을것만 같았다. 난 그렇게 2년 가까이를 행복해 했다.
 
처음 다소나마 날 놀라게 했던 그의 술버릇도, 나를 잠못자게 만들었던 그의 잠꼬대도... 이젠 아무 것도 문제 없다라고 느낄 즈음, 난 그에게로부터 이별이란 소릴 들었고 싸워도 보고 달래도 보고 결국 혼인빙자간음으로 협박도 해 보았지만... 그는 지난 여름 결국 내 곁을 떠나 버렸다. 내가 부담스럽단다. 나랑 같이 있으면 자신이 초라해져 견딜수가 없단다. 날 사랑하지만 나로인해 자신이 바보가 된단다. 개새끼….
 
너무나 기가막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

그를 위해 고이 간직해둔 시계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울꺽 쏟아지는 눈물에 소리를 질러보지만, 이제는 텅빈 공간이 그렇게 넓어보일 수가 없다. 이젠 뭘 위해 살아야 하나. 몇 개월째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글을 읽고 쓰는 이유는 무얼까?

많은 글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호르몬이 분출함을 느낀다. 나역시 그 호르몬의 동질감과 함께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에로틱한 쏠림이 잠시나마 나의 상념을 머물게 한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닌가?
 
내가 동물로 태어나 타고난 수명을 다 할 때 까지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원초적인 것들... 초점을 그것에 맞출 필요도 있다고 느낀다.
나의 감성이 반드시 동물적 본능보다 상위할 이유는 없다. 감성과 본능, 그리고 이성이 부딪치지 않게 서로 자신의 할일을 하면 될 뿐 아닌가?

진실해야 한다.
더 솔직해 져야 한다.
 
내가 나의 솔직함에 부끄럽다거나 자존심의 감성을 이입하지 않을 때, 난 비로소 내가 자유로와 질 수 있슴을 깨닫고 있다.

강간...

나의 첫사랑은 강간이란 사고로 인해 접어야 했다. 그것도 알고 지낸 연인의 선배에게서... 난 내 스스로 모든걸 포기하고 떠났었다. 바보같이...
 
분명 나의 여린 이성(理性)은 부끄러운 자존심이 솔직해 지는걸 바라지 않았을 게다. 한번 닫아버린 나의 자존심은 더욱더 폐쇄적이 되어버렸고 나의 생활은 극(極)과 극(極)을 넘나 들었다. 생활과 사랑에 있어 이중적인 그런...
 
나의 삶과 사랑을 공유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이유이다.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애틋하게 가늘어진 내 눈속에 어느새 맺힌 눈물을 본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인걸... 이제 알아버린 진실에 새삼 가슴 뜨거워짐을 느끼지만, 역시 시간은 내편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열어젖힌 블라인드 너머로 파란하늘과 탄천 그리고 바쁜 자동차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노라니 머리는 좀 가벼워 졌다.
 
무슨말을 하고 있는건지 나도 모르겠다. 글을 읽고 있는 보답에 그냥 끄적여 보았다. 다음부터는 더 솔직히 표현할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여기에 오는 분들과 같이...
 

글쟁이ㅣ남로당 여성해방지구 '글렌'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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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해자유함 2017-02-08 22:22:09
경험. .그에 따른 고민은 항상 옳다. .., 비워져서 더견고해진 잔에 새 술을 가득 채우길. .
따뜻한햇살 2017-02-08 13:53:24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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