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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두 개로 고통 잠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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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스완]
 
왼쪽 윗 사랑니가 아프기 시작한다. 날만큼 난 것 같은데 또 솟아오를 게 있나 보다. 죽을 것 같이 아프다 안 아팠다. 밤이 다가올 수록 통증의 주기가 짧아진다. 애 낳을 때 진통과 비슷한 주기다.

진통제도 소용이 없다. 안절부절 하다가 얼음을 갖다 대니, 좀 덜 아프다. 통증이 올 때 마다 얼음을 갖다 댔다. 살 것 같다. 살 것 같아서 이젠 좀 자야지... 하고 얼음 찜질을 멈췄다.

악~~~~~

갑자기 왼쪽 하관이 깨지는 듯 하다. 찜질로 사그라진 것 같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아, 신이시여. 아까 덜 아팠던 게 모아서 아프다.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없다. 아플 건 그때 그때 아파야 하나보다. 식은땀이 난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통증을 잊고 빨리 잠들고 싶다.

갑자기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류의 그리스 철학자의 일화였던 것 같다. 그가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고통을 대체 어떻게 견뎌낸 거죠?

그가 대답했다.

고통은 받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 입니다. 내가 고통 받지 않기로 마음 먹으면 되는 거죠. 저는 살이 짓이겨 지는 순간에도 더 먼 것을 생각했습니다. 삶을 생각하고 진실을 고민하는 순간만큼은 육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지. 나도 고통 받지 않기를 선택하자. 사랑니 따위는 잊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지적 활동을 하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게 무엇이더라. 독서? 음악감상? 명상? 아. 그 정도로는 도저히 이 강력한 통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성욕이라곤 1%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엉금엉금 기어가 바이브레이터를 꺼내 들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정욕의 노예, 섹스에 환장한 년이라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없다. 내 자신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자위가 죄인가. 게다가 이건 순전히 치유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눈을 감는다. 한 손은 부어 오른 턱을 받치고 한 손은 바이브레이터를 든다. 또 한번의 통증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도저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식은땀을 흘리며 스위치를 돌린다. 로맨틱하기 짝이 없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배우들이 촬영 중에 흥분해서 진짜 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다. 아주 오래 전 일본 포르노에서 본 온천씬을 기억해 낸다.

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물리적인 고통을 이겨낼 만큼의 정신력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나는 절대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없으리… 체념하고 스위치를 끈다.

윙 하는 소리가 끊기고 눈을 감는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갑자기 기발한 소재가 떠올랐다. 나는 침대에 묶여 누군가에게 고문을 당한다. 밀폐된 공간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유린당하고 있다. 기왕 이렇게 된거… 마조히스트 적인 상상은 쉽고 현실감이 느껴진다.

상상의 힘은 위대했다. 고통을 잊을 수 있을 뿐더러, 끝나자마자 스르르 잠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 치유력을 갖고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손가락 두 개 만으로도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위대한 인간들이다. 
팍시러브
대한여성오르가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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