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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빼놓은 사랑은 이미 거짓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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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루리스]
 
사람들은 사랑과 섹스를 구분해서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랑과 섹스는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는 아가페agape적인 절대적 사랑을 원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금욕적인 엄격한 생활을 명령하면서 사랑과 섹스를 구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신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설명하면서도 섹스는 동물의 교미처럼 삽입 섹스(coitus)로만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공복이나 갈증과 같은 동물적 욕구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사랑도 욕구고 섹스도 욕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감각적인 욕구와 갈망을 가진 열정적인 사랑을 뜻한다. 낭만적인 사랑을 뜻하는 현대 그리스어 ‘erotas’도 ‘eros’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결국 인간의 사랑은 그것이 낭만적이든 열정적이든 모두 성적인 사랑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랑과 섹스를 구분해서 말한다. 마치 사랑한다는 것과 섹스를 한다는 것이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사랑과 섹스를 동일시하면 사람들은 몹시 당혹스러워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섹스 없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삽입 섹스로만 축소해서 본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사랑이라면 가능할 수 있다. 또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섹스라면 사랑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 없이 섹스를 한다 해도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싹트게 마련이다. 섹스 없이 사랑하면서 지내는 사이라면 오랜 세월 속에서 어느 순간에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게 된다. 설령 오랫동안 섹스를 하더라도 서로가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면 사랑도 식게 된다. 섹스는 단순히 쾌락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감정적인 유대를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섹스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매개체이다. 섹스가 없으면 사랑도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숭고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섹스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섹스는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고 섹스를 잘 알면 문란한 사람으로 오해를 한다. 사람은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섹스는 저속한 것이라고 섹스에 관한 지식은 외면한다. 오히려 섹스에 관한 올바른 지식은 발전하지 못하고 핑계거리의 지식만 발전하고 있다. 결국 잘못된 지식은 감정적 유대를 쌓을 수 없는 섹스를 변명하는데 이용될 뿐이다.  
 
사람들은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사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적 즐거움이 없어도 마음 변하지 말고 사랑을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어기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섹스가 없어도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욕정에 눈 먼 사람 취급을 한다. 오직 부부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다. 섹스가 서로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한, 아무리 많은 사랑의 정의를 내린다 해도 사랑을 유지시키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몸이 멀어졌는데도 함께 사는 부부들은 정 때문에 산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섹스 없이 정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마음을 붙잡고 있어도 사랑이 달라지면 몸은 바로 반응한다. 아무리 거짓으로 ‘사랑한다.’고 말해도 몸은 이미 어색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섹스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알 수 있다. 
 
원래 사랑은 섹스를 갈구한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섹스는 사랑을 성숙시킨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성적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사랑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진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섹스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 있는 한, 사랑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더욱 성숙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 즐거움이 없는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이 행복의 다른 말인 이유는 참고 견디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실제로 설레고 들뜨고 가슴 벅찬 감동이 있기에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치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변화가 사랑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변화인지, 아니면 사랑에 실망을 느끼는 변화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사랑만 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바로 사랑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섹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섹스에 가슴 벅찬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섹스가 아니다. 섹스를 동물의 교미처럼 삽입 섹스로만 축소해 놓고 종족 번식을 위한 섹스를 하면 절대로 사랑을 성숙시킬 수 없다. 사랑을 성장시키는 섹스의 역할까지 외면하다 보니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지적 동물이기 때문에 섹스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인 사랑을 키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만큼 섹스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도 없고 섹스만큼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사랑이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섹스를 빼놓은 사랑은 이미 거짓된 사랑이고 사랑을 빼놓고 섹스를 말한다면 그 역시 거짓된 섹스에 불과한 것이다. 
아더
부부관계연구소 이사장 / 펜트하우스 고문
탄트라 명상연구회 <仙한 사람> 회장
저서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우리 색다르게 해볼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http://blog.naver.com/ard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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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보이 2014-11-26 21:36:36
순결을 지켜주고 있는 나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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