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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결혼한 여자 - 엘리자베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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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자베스 골든에이지]

섹스를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리치료가 병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섹스는 정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섹스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섹스를 한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처음 섹스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을 한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꼭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해도 섹스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긴장감이 지나쳐서 삽입 자체가 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다.
 


출처 : 위키백과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딸이다. 헨리 8세는 처음 캐서린과 결혼을 했지만 그녀의 시녀 앤 볼린에게 빠져서 본처와 이혼하고 시녀인 앤 볼린과 결혼을 하기 위해 영국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기까지 했다. 하지만 헨리 8세의 결정적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뇌 과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1000일이 지나자 앤 볼린이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운 여자 제이시 무어와 사랑에 빠져서 앤 볼린과 이혼하기 위해 간통죄로 참수형까지 시켰다. 그래서 앤 볼린을 ‘천일의 앤’이라고도 불린다. 엘리자베스 1세는 바로 헨리 8세와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헨리 8세는 일생동안 6번 결혼을 했다. 그 중에서 2명을 간통죄로 참수를 했다. 이런 아버지에게서 엘리자베스 1세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자신의 어머니가 간통죄로 교수형을 당했다는 것이 더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평생 섹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법률적으로나 의학적으로도 그녀는 분명히 처녀였다.

어쩌면 이런 사실로 보아 엘리자베스는 평생 남자는 가까이 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라고 상상할지 모른다. 분명히 “과인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을 했으니 오직 영국만을 위해 살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성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 오히려 성적으로 문란하게 되고 다른 것으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자베스 1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벤 존슨은 이렇게 폭로하고 있다.

"여왕의 처녀막이 너무 두꺼워 남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자신의 두꺼운 처녀막(질막)을 돌파할 수 있는지 많은 남성들을 통해 실험하는 것을 즐겼다. 프랑스의 한 외과 의사가 처녀막(질막) 절개수술을 권유했으나 여왕은 이를 거부했다."

사실 처녀막이라는 표현은 의학적인 무지에서 생겨난 말이고 정확한 말은 질막이며,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는 선천적인 질 협착, 또는 정신적인 이유로 골반 근육이 반사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질 경련 때문에 삽입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섹스를 한다고 생각을 하면 자신의 어머니 앤 볼린이 간통을 해서 교수형을 당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하체에 힘이 들어가서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질 경련vaginismus이라고 한다.

질 경련이란 성교와 관련되어 질이 감각 과민에 의한 '동통성 질 경련'으로 질 주변의 근육이 무의식적으로 경련성 수축을 일으키게 되는 병이다. 실제로 질 안으로 무엇이 들어오거나, 무엇인가 들어올 거라는 생각만 해도 반사적으로 질이 조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경우에는 섹스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삽입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성 관계를 보거나 스킨십을 하면 그것으로도 극치감을 느끼고 만족하게 된다. 질 분비물의 윤활 작용도 많고 때로는 중복 극치감도 잘 느끼지만 자지나 손가락, 탐폰 같은 그 무엇이 질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은 허용하지 않는다.

원인은 대개 정신적인 것이 크며 죄의식, 두려움, 분노가 문제된다. 그리고 성과 관련된 지식이 너무 없을 경우나 아니면 과거에 강간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성 문제로 고통을 경험했을 때 많이 나타난다. 아마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에는 자신의 어머니가 간통죄로 교수형을 당했다는 것 때문에 지나치게 금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고 권력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왕성한 성욕 때문에 오히려 매일 밤 남자를 끌어들였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구 때문에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성욕을 사치로 대신하기도 했다. 1845년 스톤 부인이 쓴 <패션의 역사>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1세가 죽기 3년 전에 즐겨 입은 옷은 로브(긴 원피스) 99벌, 각종 가운 260벌, 코트 125벌을 비롯해 15종 1,077벌이나 됐다고 한다. 그리고 "성격 역시 복잡해서 잔혹하고 경박하며 위선적이었다. 남성적이면서도 연약한 여성적 성격이 혼합된 다루기 힘든 상대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성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엘리자베스 1세를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심리적인 치료를 병행해서 섹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클리토리스를 이용해서 점점 커지는 쾌감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사람은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쁜 경험을 잊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하게 오르가슴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쾌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어서 섹스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지게 하면 삽입에 대한 불안감이나 긴장감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 다음에 질 확장기구나 손가락을 이용하여 점차적으로 질이 벌어질 수 있게 하면 자신의 질 안으로 이물질이 삽입된다는 불쾌감에서 서서히 극복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아버지의 바람기와 어머니의 간통죄로 교수형을 당했다는 상처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래서 매일 밤 남자들과 성 유희를 즐기고 과장된 화장과 의복에 사치를 보였지만 분명한 것은 내정을 안정시키고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발전하는 굳건한 토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성적 치료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진 상처를 성공의 원동력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보면 엘리자베스 1세는 위대한 여성이라 하겠다.
아더
부부관계연구소 이사장 / 펜트하우스 고문
탄트라 명상연구회 <仙한 사람> 회장
저서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우리 색다르게 해볼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http://blog.naver.com/ard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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