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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는 성을 즐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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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담 뺑덕>
 
여성들은 우리나라 남성이 외국에 비해 유별나게 성적으로 폐쇄적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가 보수적인 유교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유교가 금욕적이지는 않다. 성의 억압은 오히려 현재 성에 개방적인 서구 사회의 영향이라면 놀랄 것이다.
 
20세기 초, 서구의 문화가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입되면서 "정신을 중시하는 근대 교양주의"가 남녀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가 엄격하게 금욕적인 가치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근대 유럽의 금욕적(stoic)인 철학은 물질보다도 정신을 중시하여 정신적인 것의 추구가 인간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체를 물질적인 것으로 보고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금욕적인 도덕관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초기 침례교에서는 "모든 즐거움은 죄악"이고 "여성으로 태어난 것조차 죄"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다니엘 혼돈의 '주홍글씨'나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읽어보면 이들 국가가 얼마나 금욕적이고 순결의식이 강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순결'에 대한 집착은 오늘날에도 계속 되고 있다.
 
1993년 봄, TLW(True Love Waits)운동이 미국 내쉬빌의 한 침례교회에서 제창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흔히 '참사랑 운동'이라 하여 결혼하는 그날까지 '순결'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게 하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참된 사랑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 오늘 하나님과 나 자신, 나의 가족과 나의 친구들 그리고 언젠가 만날 나의 미래의 반려자와 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오니 결혼하는 그날까지 순결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결혼 전 육체적인 '순결'을 강조하면서도 결혼하고 나서 부부가 어떻게 육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말만 '참사랑'이지 금욕의 또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이들은 '순결'하기 위해서는 성에 노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순결'이고 섹스를 하면 '순결'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이 우리의 '정조(貞操)'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섹스 그 자체를 '순결'하게 보고 있다. "춘향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사랑을 주고 받는 그 행위가 얼마나 아름답고 순결한가!
 
우리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고 있다. 그것을 굳이 분리하여 어느 한쪽이 더 소중하고 어느 한쪽은 소중하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실제로도 정신적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육체 관계를 맺게 된다. 오히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섹스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사랑이 아름답다면 육체적인 사랑도 아름답다. 육체적인 사랑이 저속하다면 정신적인 사랑도 저속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섹스를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종족번식을 위한 행위로만 생각하다보니 금욕은 인간을 아름답게 만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의 섹스를 동물적인 행위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섹스도 고귀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적 품위를 지키겠다고 육체적인 사랑을 경멸한다면 결국 정신적인 것까지 경멸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도 종족 번식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해왔다. 섹스를 불결하다고 생각하다보니 선교사 체위라 하여 정상 체위만을 고집하고 단순히 성기 중심의 섹스만을 해왔던 것이다. 삽입위주의 섹스로는 사정은 쉽게 할지 몰라도 성적 쾌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당연히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갈등을 막기 위해 육체에서 얻어지는 성적 쾌감을 죄악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남자들이 이런 성적 불만을 감수하며 살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남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화류계 여자들을 찾았다. 어떻게 보면 부부간의 사랑은 금욕적으로 만들어 놓고 오히려 남자들만의 성적 만족을 위해 도덕적 타락을 부추겨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자들만이라도 섹스를 즐기며 살았을까? 서구 사회는 1950년대까지 오럴 섹스를 변태적인 행위로 취급했으니 당연히 변태적인 섹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성기 중심의 섹스로는 성적 만족을 얻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직접적인 섹스보다도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 환호하는 일에 더 열중했다. 오랫동안 기독교 금욕주의에 지배를 받아온 서구인들이 섹스를 제대로 알고 즐겼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서구의 금욕주의가 음양의 조화를 완전히 붕괴시키다보니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까지도 성적인 억압을 당하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가치관인지 깨닫게 되면서 젊은이들은 기존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히피(hippie)들이 등장 했고 성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리 섹스'란 말이 등장한 것도 바로 1960년대이다. 하지만 이들은 음양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서로 만족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여성 해방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바로 여성의 '권리 신장 운동'이 이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기 여성 운동 지도자 중의 하나인 베티 프리던은 1963년에 펴낸 "여성의 신비"라는 책에서 제한적이고 자아실현의 여지가 없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이 미국 여성들을 극도의 정신적 불만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4년 시민권 규약이 '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시킨 것'은 여성운동이 이룩한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여자들의 피나는 투쟁은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에 여성법을 만들게 했고 이 법이 압도적으로 여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되면 남자 쪽에서 위자료와 아이들의 양육비를 전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집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아내에게 주어야 했기 때문에 이혼 후 남자의 생활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이혼을 하면 아이들의 양육권은 대부분 아내가 맡게 된다. 그래서 매달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아내에게 지불하면서 주말이나 여름방학 때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영화 "크레이머vs 크레이머"를 보면 이혼 법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부성애를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 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여성법은 남자들로 하여금 결혼을 쉽게 생각할 수 없게 하였다. 결혼을 해도 혹시 이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와 함께 살고 싶은 욕망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동거라는 새로운 풍속이다. 또 여자들도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남자의 도움이 없이도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다보니 서둘러 결혼을 해서 구속당하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자와의 섹스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런 이해관계가 어울리면서 미국에서는 결혼보다 동거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성욕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동거이다. 상대방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관계이다. 남자의 성욕만을 위해 동거를 하는 어리석은 여자는 없다. 그러다보니 '순결'을 따지는 남자도 줄어들게 되어 성적으로 관대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순결'에 집착하는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남자들은 만족한 섹스를 하기 위해 전희를 강조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가사노동도 함께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관계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미국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적인 것만도 아니다.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또다시 '순결'교육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금욕적인 것이 도덕적 타락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했으면서도 각종 성병과 임신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금욕적인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각종 마약범죄와 성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도 성의 억압이 변질되어 성의 타락으로 나타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해야 성적 충동을 참을 수 있고 성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서구의 가치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이 경험했던 고통을 뒤따르고 있다. 우리 나라의 남자들이 외국 남자들에 비해 성적으로 폐쇄적이지 않았는데도 선진 문화라는 서구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도 여성법이 선진 외국 수준으로 바뀌게 된다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성적으로 관대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여자들 자신인 것이다.
아더
부부관계연구소 이사장 / 펜트하우스 고문
탄트라 명상연구회 <仙한 사람> 회장
저서 <이혼했으면 성공하라>, <우리 색다르게 해볼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http://blog.naver.com/ard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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