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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동기와 키스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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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치포인트]

대학교 때는 그냥 친하게 지내는 여자사람친구가 몇 명 있었다. 그 중 친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여자 동기가 있었는데 학교보다는 술자리에서 더 자주 봤었던 친구다. 주변 여자 동기와는 다르게 짧은 앞머리에 화장 끼가 하나도 없고 항상 청바지에 바람막이 또는 아무 티셔츠나 대충 입고 다는 여자보단 남자같은 친구였다. 키는 또 어찌나 큰 지 머리만 길지 않았다면 남자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고 왠만한 남자보다 술은 더 잘 먹어서 여자라기 보다는 남자 같았다.

그 친구의 절친은 우리 과에서 가장 예쁘다는, 아마 학년을 통틀어 퀸이었는데 항상 둘이 같이 다녀서 보디가드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그 학과 퀸인 친구와 좀 친하게 될 계기가 있었는데  학교 다닐 때 남자 선배나 남자친구가 가장 필요한 때가 바로 컴퓨터 고장 날 때 혹은 조별과제 할 때 필요한 경우가 제일 많지 않나? 그 당시 나는 우리 학과에서 컴퓨터를 잘하기로 두 손가락 안에 꼽혔었다. 아마 유일하게 엑셀이나 포토샵을 할 줄 알아서 오로지 그거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닌 것 같다. 학과 퀸 또한 컴퓨터 문제로 친하게 되면서 동시에 그 키 큰 친구의 컴도 같이 봐주면서 조금씩 안면을 트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학과 퀸의 결혼식 날, 졸업한 동기들을 만나고 결혼식보다는 거의 반 동문회가 되었을 때 그 키 큰 친구를 봤다. 옛날과는 달리 와인색 긴 머리에 진한 화장을 했으며 원피스를 입었는데 살이 빠지면서 확연하게 들어난 이목구비가 매력적이었다. 나를 포함해 모든 동기들이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건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굉장히 색기가 넘쳐 흐르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모든 남자 동기, 동문들이 그 친구에게 들이대는 것 같았다

쓸 때 없이 모임이 많아졌다. 전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두번째, 세번째에 참여했던 모임에서 그 친구와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이후 둘이 만나서 소소하게 술 한 잔 걸치게 되었고 점점 서로 스스럼 없이 대하면서 어느덧 내게 남자친구나 건강문제 등의 상담을 요구하는 사이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넌 진짜 친구 같아... 다른 애들은 나랑 한 번 자보려고 연락하는데 넌 무슨 말을 해도 진심 같아”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매력이 없나? 하는 것 같아서 짜증나고 기분 나빴지만 이상하게 그녀한테는 그런 느낌이 들 지 않았다. 조금 힘든 게 있다면 술을 너무 잘 먹어서 한 번 만나면 최소 3차다. 그래서 어느 날은 사케와 정종을 추천했는데 조금씩 맛을 들이더니 이제는 음악을 들으면서 사케를 먹는 게 그렇게 좋댄다.

그리고 문제의 그 날. 그녀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이었다.

"남친이랑 1주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바쁘다더니 갑자기 술은 무슨 술이야?"
 
"아… 헤어졌어"
 
"모야 이벤트고 머고 해준다며 드립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왠 이별? 싸운거야?"
 
"아니 진짜 헤어지고 온 거야. 그 새끼 집에서 쓰다 버린 콘돔이 3개나 나왔어. 요즘 바람피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별로 화가 나지 않더라고. 그냥 헤어지고 오는 길이야.”
    
"진짜 괜찮아? 좀 힘들지 않아?"
 
"괜찮아... 한 두 번도 아니고…"

이상했다.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는데 힘들지 않다니. 뭔가 꼬인 느낌이었다.

"야.. 너 학교 다닐 때 퀸 좋아했지?"

가라앉을 뻔한 분위기를 먼저 이 친구가 말을 걸어 좋게 넘어가는 듯 했다

"아니! 걔한테 차인 놈이 한 두 놈이어야 말이지. 걔네들하고 술 먹는 게 힘들었다."

"그래? 그럼 넌 학교 다닐 때 좋아한 사람 없냐?"

"글쎄... 그때 난 우리학교 애들 말고 딴 학교 애랑 사귀었는데, 거의 말 안하고 다녔지만..."

"그랬구나... 어쩐지 넌 이상하게 스캔들 하나 없었어..."

솔직하게 말하면 복학하고 후배랑 사귀었는데 그 말은 안하면 좋을 것 같았다.
 
"여자들은 남자들 스캔들까지 신경 쓰나? 그럼 넌? 남자는 있긴 했냐?"

대답이 뻔할 것 같은데 일부러 물어봤다. 점점 진지해지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건넨 농담이었는데..
 
"어... 있었어... 아주 많이..."

엥? 의외의 대답에 놀랐다. 헌데 그 다음 말이 더 충격이었다

"내가 퀸하고 무척 친했잖아? 퀸한테 고백한 애들 중에 내가 좋아한 남자도 있었어, 선배였는데 그 선배랑 잤거든... 선배는 단순히 술먹고 잔거라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 선배가 퀸한테 고백 할 줄은 몰랐어. 기분 나쁘더라고.. 남자는... 그때만 해도 우리과 남자는 다 퀸을 좋아하는줄 알았지. 그 이후에도 퀸한테 고백한 몇 명 하고도 잤었어..."

그런 이야기가 있을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술자리에서는 시원한 성격에 터프했었으니까. 지금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너 많이 예뻐졌어. 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 꾸몄으면 네가 퀸이었을지도 몰라..."

"응 아마도 요즘은 그런 것 같아..."
     
단호박 같은 말에 그녀에게 퀸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방금 한 말이 맞다면 그녀는 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을테니까. 그녀가 이렇게 변한 것도 아마 그때의 상황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됐다.

"지금은 네가 왠만한 여자들 보다 훨씬 예뻐! 너 정도면 연하도 만나겠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궁서체였다.

"나 퀸 결혼식 이후로 애들 여러 번 만났어. 그 중에는 아직도 연락하는 애들도 있고 내가 일부러 피하는 애들도 있어"

"넌 동기들을 남자로 보지 않는 거냐?'

"글쎄... 수시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만나자고 밥 먹자고, 술 먹자고 영화 보자고... 뻔한 거 아니겠어? 나랑 어떻게 해보려고 그러는 건데 자꾸 하이에나처럼 들이대는 게 재밌기도 하고 머저리 같기도 하고 되게 병신같아.”

계속 낮은 어조로 말하는 투가 이상했다. 분명 무슨 할말이 있는데 지금 할까 말까 빙빙돌리는 느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연거푸 술을 먹는 그녀는 어딘가 망상과 고민의 사이에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선배한테 연락이 자주 와... 다시 만나면 어떻겠냐고... 이제는 나를 책임지고 싶다나.. 근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나쁜 새끼인 거 아는데 거절을 못하겠어. 그 새끼가 엄청 바람둥이라는 것도 아는데 그래도 내가 내 맘을 모르겠다"

마지못해 꺼내놓은 속마음에 살짝 눈물을 보이는 것 같았다. 눈물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울게 놔두는 것도 때론 답이니까. 아마 울고 나면 스스로 극복 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괜찮아?"

술을 한 잔 먹고 벌겋게 부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표정이 처음보다 나아졌다.

"야....."

"응?"

"내일 그 선배 만날거야. 만나서 이야기 할건데 너가 같이 가주면 안되겠니?"

".............."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부탁일까? 아님 함정일까? 그녀와 찐득한 우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분명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같은데... 나는 이 친구를 믿어도 될까? 나는 그 선배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될까?

"내일 그 선배 만나서 얘기 하려는데 네가 같이 가줘야 내가 괜찮을 것 같아... 선배 앞에서 날 좀 도와주면 좋겠어..."

쉽지 않다. 분명 욕설이 오갈 것이고 최악의 경우 그 남자와 멱살이라도 잡게 되지 않을까? 내가 이런 모험을 해야 하는 걸까? 만약에 그 선배랑 잘 마무리 되면... 난 보람찬 우정을 택한 것이고 그래도 그 선배랑 끊지 못한다면 나의 순결한 희생은 그저 하늘의 구름같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부탁이야 나 좀 도와줘..."

망설이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애절하게 손을 잡으며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 최종 시뮬레이션은 끝났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 확실해 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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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ㅣ착하게생긴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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