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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아티스트를 꿈꾸던 남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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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성심리상당소를 운영하는 여성 치료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는 허구일수도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영화 <픽업아티스트>
  
* 픽업 아티스트(영어:pickup artist, PUA)란 성교할 상대, 특히 여성을 찾고 그 상대의 관심을 끌고 유혹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2012년 대한민국 가정법원은 “여성을 만나는 일은 정당한 직업행위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위키백과-

성심리상담소를 개원하고 따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나가서 전단지라도 돌려볼까?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는 찰나, 저 멀리서 한눈에 봐도 강렬한 수컷 내음을 풍기며 한 남자가 등장했다. 드디어 개시인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 안녕하세요? 성심리상담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남자는 고개만 까딱하더니 책상 맞은편에 놓인 푹신한 안락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나이는 30대 중반이나 됐으려나... 검정색 반코트에 모직 머플러를 했고, 헤어스타일도 깔끔, 훤칠한 키에 인텔리 느낌도 났다. 그는 눈을 한 번 찡긋하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정말 미인이시네요.”
 
이렇게 멘트를 날리는 남자의 눈빛에 초점이 없다. 무지 잘생겨서 ‘혹’하고 넘어갔다가 ‘헉’하고 빠져나올 만큼...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 없는 그런 류의 멘트... 어디선가 뻐꾸기 꽤나 날려봤을법한 그런 멘트였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이곳이 어떤 성심리 상담소인지는 알고 오신 거죠? 저희는 성 기능 장애 심리 치료와 성이상 행동에 따른 우울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치료 기관입니다. 내담자분께서는 어느 부분이 걱정되서 오셨나요?”
 
“아, 저는 김주환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말입니다. 애인이 있어요. 정말 예쁘고, 물론 선생님보단 덜 예쁘지만요.”
 
“주환 씨는 애인을 많이 사랑하시나요?”
 
“네. 결혼할 건데요. 그런데 제가 자꾸 다른 여자들을 찾아요. 애인 몰래 거의 매일 클럽에서 새로운 여자를 물색하고 번호를 따냅니다. 그리고 그 여자와 모텔로 직행하고요.”
 
“애인에 대한 죄책감이 있으시겠군요.”
 
“처음엔 그랬는데... 이제 아주 습관이 돼서 죄책감도 무뎌졌어요. 그런데 저는 섹스보다 여자가 저에게 넘어오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말입니다.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는 게 지루해지니 이제는 성적으로는 얽혀서는 안되는 직장 상사라든지 거래처 사람이라든지 회사 법률 자문가 변호사라든지 사모님 고객이라든지 이런 사회적 관계에서도 제가 여자면 무조건 만나 버리는 바람에 일에도 지장을 주는 거에요. 여차하다가는 그 여자들과 사회적 관계까지도 유지하기가 힘들게 되는 거죠. 저는 꼬시고 넘어오면 그거면 되는데...저랑 자고 나면 여자들이 매달려요. 그래서 부담스러워 피하고 잠수를 타면 일에 손실이 생기니.”
 
“아, 고민이 많으셨겠군요. 애인에게 죄책감이 드는 건 차치하더라도 그러면 안되는 사회적 관계의 여성들과도 성관계를 갖는 바람에 자꾸 일에 차질이 생기시나보네요.”
 
“네... 괴로우면서도 그 버릇이 안 고쳐지네요. 성적인 관계가 되면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을 그런 류의 여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도전의식이 더 생긴다 말이죠. 클럽에서 만나는 여자들은 아무리 예쁜 여자도 저한테는 쉽게 다 넘어오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분인데 평생 남편밖에 모르고 살고 그런 사모님을 보면 꼭 제 꺼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타오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저항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몇 번 작업하면 결국은 넘어와요. 모텔에 따라오는 순간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그러나 관계를 하고 나면 다시 공허해져요.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다구요.”
 
그는 괴로운 듯 허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순간 그런 와중에 나에 대한 성적인 도전 의식으로 살짝 바뀌는 듯한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선생님은 결혼하셨나요? 저 같은 스타일 어떠신가요? 객관적으로 딱 남자로 보기에요.”
 
“아, 저는 물론 결혼했습니다. 김주환씨는 충분히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김주환 씨께서 만나셨던 여성분들도  뭔가 바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를 테면 클럽에서 만나신 여자는 선물이나, 금전적인 걸 얻기 위해 김주환씨에게 끌리지도 않으면서 응하는 것일수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은 생각 안해보셨는지요.”
 
순간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존심을 살짝 다친 듯했다.
 
“아닙니다. 여자들은 모두 저를 진심으로 대한다고 생각해요. 그녀들의 눈빛이나 행동이 말해주고 있어요. 저한테 목적을 갖고 관계에 응하는 여자는 못봤다구요!“
 
찡그리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이제 제대로 치료가 되겠구나 싶었다. 여성에 대한 자만심에 가득찬 그가 무너지고 있는 허를 틈타 나는 좀 더 그의 상처 받은 영혼을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훤칠한 외모,깔끔한 스타일,좋은 학벌,경제적 능력... 뭐 하나 뒤처짐이 없는 그는 결혼을 앞 둔 완벽한 싱글남이었고, 예쁘고 참한 애인을 두었음에도 불구, 끊임없이 새로운 여자에게 도전하고, 그 여자가 본인에게 넘어오는 과정을 매우 즐긴다.
 
큰 충격을 받거나 어떠한 경각심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그의 행동은 계속될 것이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될수록 인정받는 기쁨은 잠시고 공허해질 뿐이었다. 더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힘든 대상들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증세가 악화될 것이다. 결국은 사회적 질타와 원한, 법적 문제까지... 끔찍한 결과가 예상되었다.
 
당장 치료가 시급했다. 그를 위한 심리검사, 적성검사, 설문지를 몇 가지 숙제로 주었다. 일주일 뒤에 있을 2차 상담 일자를 잡고 그를 보내면서 참으로 씁쓸했다. 저 사람은 어떠한 심리적 니즈가 충족이 안되어 끊임없이 자아확인 작업을 하는 걸까.
 
그것도 본인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 그 방법을 섹스로 표출하다니... 남자의 성적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프로이트 이론을 빌자면 성적 리비도가 형성되는 시기에 이루어진 고착. 예를 들면 유아기때 고착된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또는 애정의 결핍으로 인해 바람둥이가 될 수도, 섹스중독자가 될 수도, 혹은 새디스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여자들에게 작업 거는 것으로 해소하는 경우는 많다. 이런 부류의 남자들은 그러면서 자아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러나 온 세상 지구 여인네를 다 꼬시고 다녀도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공허해 질 뿐.
 

픽업아티스트를 꿈꾸던 남자 2▶ http://goo.gl/QwjLHv
문지영 소장
섹스트러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국내최초 성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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