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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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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그 사이에 많은 꽐라들이 우리 방을 다녀갔다. 문을 열고 자리가 없나 보다 하며 돌아서는 녀석부터 손을 마주 잡고 이불을 꼭 덮은 채 더운 공기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 둘을 지나서 아무렇게 자리를 펴고 누운 초급반 중국인 유학생까지. 누군가가 문을 열거나 움직이면 우리 엄지 손가락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냥 조용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풋풋한 남녀가 그렇게 몇 십분을 있다보니 이제는 정말 우리 단 둘만 이 방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땀이 송글송글 베어 나오기 시작한 그녀의 이마와 볼을 감싸 쥐고 있던 나는 얼굴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췄고 또 몇 십분이 지났을지도 모른 긴 키스를 이어 나갔다.
 
맥주 냄새와 치약 냄새가 아주 교묘히 섞인 그녀의 입술은,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상상했던 그 감촉과 맛이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만지지도, 그렇다고 해서 떨어지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혀를 밀어 넣었고, 하림이는 그것을 아이스크림처럼 위 아래 입술로 빨았다. 중간 중간 힘조절을 못해서 쪽 하고 소리가 나면 마치 그것이 천둥 소리인냥 우리는 숨을 죽이고 동작을 멈췄고, 주변에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다시 키스를 이어나가기를 반복했다.
 
결국 새벽은 찾아왔고, 우리는 그제서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불을 걷어 내었다. 정말 몇 시간만에 시원한 공기를 마주하며 땀에 젖은 두 손을 놓아야만 했다. 몸은 달궈질 대로 달궈져 있었지만 술이 깨면서 일어나기 시작한 아이들이 어슬렁 거리니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뒤척이는 척을 하며 돌아 누웠고, 갈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마치 어느 자극적인 야설의 내용처럼, 우리는 그 자리에서 숨 죽이고 섹스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침이 오자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우리는 해산했고, 늘 투닥거리며 헤어지던 우리는 잘 가 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밤은 유독 봄비가 많이 내렸다. MT를 다녀와서 피곤했던 몸이, 올라간 습도 때문에 더 푹 하고 쳐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챙겨 갔던 짐을 방 한 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 버리고, 여름 장마 보다 더 거세게 내린 빗물 때문에 창 밖에 붙어 흘러 내리는 벚꽃잎들을 바라보았다. 맥주를 마실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왠만 해서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가방 속에서 진동음을 울렸다.
 
“여보세요.”
“니 자나?”
 
그냥 무심한 듯이 묻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사실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누군지는 이미 전화를 받기 전에 확인을 했으니까.
 
“뭘 자. 이 시간에.”
 
나와 하림이가 그동안 통화를 했던 것은, 주로 먼저 어학원에 온 사람이 전화를 걸어 “야 올 때 커피 사와” “담배 사와” “편의점 만두 사와” 이 정도의 대화들이었다. 이런 밤 시간에 메일이 아닌 (스마트 폰 출시 전, 일본은 휴대폰 끼리의 문자 전송도 메일이라고 표현함) 전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뭐하는데?”
“걍……어제 생각.”
 
내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보통 대화를 하면 서로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우리에게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 지금 혼자 있는데 니 올래?”
“알바는?”
“비가 뭐 이리 오는데 알바고. 오기 싫음 마라.”
“학교 근처 세븐 일레븐 뒷 편에 있는 맨션 맞지?”
“어. 207호다. ”
 
나는 전화를 끊고 한달음에 밖으로 뛰쳐 나갔다. 흙냄새를 풍기며 쏟아 붓는 봄비를, 싸구려 비닐 우산으로 막으며 늘 택시들이 서 있는 우리 집 앞에 마트로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학생들은 비싸서 절대 타지 않는 일본 택시를 나는 그 때 처음 타봤다.
 
지금 기억으로는 택시로 약 사천엔(당시 약 사만원이 안되는 돈)이 나왔던 걸로 기억난다. 그런데 일본 택시의 극악 무도한 금액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나 인지를 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니 어디고?”
“다 왔어. 진짜 가도 되는 거야?”
“그럼 다시 갈래?”
 
의미 없는 말 싸움이었다. 나는 하림이 집의 현관문을 조심스레 노크했고 –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벨을 누르지는 못했다- 3시간 같은 3분이 지나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의 하림이가 나를 조심스레 맞았다.
 
작고 날씬한 체형과는 달리 볼이 약간 통통한, 그리고 묘하게 반짝거리는 입술을 가진 그녀는 하얗고 속눈썹이 무척 길었던 아이였다. 현관에 들어간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제 다 하지 못한 입맞춤을 마저 이어 나갔다.
 
집 안의 어디에도 불이 켜져 있는 곳은 없었지만, 큰 창문으로 조금의 모자람도 없이 달빛이 들어와서 우리의 몸을 파랗게 물들였다. 이제 사그라들어 간헐적으로 창 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을 여유도 없이 우리는 서로를 껴안으며 침대위로 뒤엉키듯 쓰러졌다.
 
그녀는 편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연두색에 무릎까지 오는 골지 원피스였는데, 막 편한 차림도 아닌, 그렇다고 외출복도 아닌 그런 원피스였다.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어깨선과 팔을, 나는 침대위에 그녀를 눕힌 채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젯밤처럼 우리를 덮고 있던 불편한 이불도, 속삭이는 주위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니, 우리는 더 기다린 것처럼 서로의 입술을 물고 마음껏 서로의 몸을 만졌다.
 
훗날 서로 술에 취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어느 순간 나를 가지고 싶었다고 했고, 나 역시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서로 ‘사이 좋은 어학원 친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었을 뿐.
 
내 손이 그녀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몰캉몰캉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팔에 있는 털들이 다 서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비틀었지만 내 혀를 뱀 처럼 얽고 놓아 주지 않았다. 숨이 막혀 입술이 떨어지면, 우리는 조금의 부끄러움 없이 서로의 눈에 비친 달빛을 응시했다. 그녀는 내 티셔츠 안에 손을 넣어 내 가슴 부분을 살살 매만지며 나에게 올라탔다. 잔뜩 부풀어 있는 바지 앞부분을, 그녀는 다리의 접히는 부분으로 교묘히 끼워 비비며 내 위로 올라탄 채로 키스를 했다. 입술과 입술, 혀와 혀의 감촉. 그녀는 내 입천장을 혀로 살살 간지럽혔고, 나는 참을 수 없어 손을 뻗어 내 위에 있는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하림이는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했다. 원피스의 얇은 천 조각 너머로 자연의 가슴 그대로의 감촉이 손 끝에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가슴이었고 그녀도 더 컸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렇게 예쁜 가슴은 본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녀는 아주 능숙하게,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내 몸을 달궈 나갔다. 그녀의 전화에 곧바로 뛰쳐 나갔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나는 아주 편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고, 하림이는 하얀 손으로 허리 밴드를 밑으로 잡아 당겼다. 내 바지와 티셔츠, 속옷은 그녀의 침대 밑으로 아무렇지 않게 던져졌고, 알몸인 내 위로, 원피스 하나만을 걸친 그녀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녀가 내 목덜미를 고양이 처럼 핥아주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맨 엉덩이를 만질 수 있었다. 작지만 볼록했고, 손만 대고 있어도 탄력이 느껴졌다. 하림이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 안았다. 평상시 그녀답지 않은 사랑스러운 몸짓에 나는 홀리 듯 그녀의 어깨끈을 잡아 내렸다. 창 밖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으로 보이는 그녀의 가슴 실루엣은, 이내 내 양 손에 가려진 채 뭉그러졌다.
 
“하아……”
 
그녀는 내 귀에 속삭이듯 신음했다. 신음이라기 보다는, 조금 거친 호흡 같은 느낌이었다. 내 손에 의해 허리까지 내려간 그 원피스를, 하림이는 조금씩 몸을 비틀며 자신의 하반신 쪽으로 내려가게 만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는 처음 몸을 섞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단 한 번의 대화도 없이 눈빛으로 읽어가고 있었다. 달에 비친 은빛 나신과 대조되는 그녀의 갈색 머리칼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 간다라고 느낄 때 쯤에,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운 감촉이 내 아래를 감싸왔다. 그녀는 내 허벅지를 포옹하듯 끌어 안고, 잔뜩 성이 난 자지에 아낌없이 입을 맞췄다. 키스할 때 입으로만 느꼈던 그녀의 입술 감촉이 온전히 밑으로 느껴지니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호흡도 그녀의 것만큼 거칠어졌다. 이불 속에서 내 혀를 간지럽혔던 것처럼, 그녀는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부분을 입 안 가득 물고 머리를 부드럽게 움직였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마치 모래가 쏟아지듯 그녀의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졌다가를 반복했다.
 
우리 둘의 은빛 나신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달라 붙었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를 양 손으로 감싸쥐었고, 하림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다리 사이를 내 자지에 비볐다. 끈적한 액체의 느낌이 하반신을 따뜻하게 적시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눈을 뜨고 하림이의 전신에 눈을 맞췄다.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아도 그녀는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다만, 내 흥분이 멈춰지지 않도록, 그녀는 삽입을 하는 그 순간까지 내 몸을 만지고 빨았으며, 아주 서툴게 내 몸을 깨물기도 했다. 각도를 굳이 맞추지 않아도, 이제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두 몸은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아아……”
 
평소에 그녀가 이렇게 예쁘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녀는 더 이상 신음을 삼키지 않았고, 마음껏 자신이 즐기고 있음을 내 귀에 속삭이듯 표현했다.
 
하림의 작은 체구처럼, 그녀의 안도 매우 좁았다. 작은 흔들림에도 정말 꽉 차고 넘쳐서, 그녀는 쉽게 허리를 흔들지 못하고 주저 앉듯 내 위에 올라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독려하듯 엉덩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아 앞 뒤로 움직였다. 참고 있던 그녀의 신음이 터졌고, 나는 사과 같은 그녀의 가슴을 마음껏 매만졌다.
 
그녀는 정말 예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정말 저 체구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비율로 빚은 것처럼, 아무리 만져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윽고 하림이가 자진해서 내 가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에 조금은 묻혔지만, 신음 섞인 거칠어진 그녀의 호흡 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내 귓가에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그녀를 끌어 안았다. 내 의도를 알아챈 듯, 그녀 역시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녀는 다리를 펴서 내 허리를 끌어 안 듯 둘렀다. 삽입한 채로 서로 마주보고 앉으니, 그녀는 당연한 듯 내 입술을 찾아 입을 맞췄다. 그녀의 작은 엉덩이를 밑에서부터 받치고는, 들어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깃털 같은 가벼운 몸이 내 위에서 춤을 췄다. 그녀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입안 가득 내 목덜미를 물고 혀로 간지럽혔다.
 
“아앗!”
“아파?”
 
그녀의 집에 벨을 누르고 나서 아마 처음으로 한 대화일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나는 삽입한 그 상태에서 조심스레 그녀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체위를 바꾸는 그 찰나의 과정에도 빼기가 싫었다.
 
가냘픈 하림이의 몸 위에 올라탄 나는 조금 강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온 물이 이러저리 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내 어깨위에 올리고, 조금 더 깊숙히 내 것을 박아 넣었다. 신음하는 소리는 이제 노골적으로 커졌고, 침대보를 움켜쥔 그녀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내 어깨에 걸려있는 얇고 하얀 종아리를 혀로 핥으며,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허리를 흔들었다. 그녀의 입가에서 신음이 흘러나올 때마다, 레모네이드 같은 달짝지근한 향기가 났다.
 
“나……못참 겠다….오빠야…흑….”
 
그녀는 나에게 애원하듯이, 그리고 우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목에 팔을 둘러 나를 더 세게 끌어 안았고,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 울컥 하는 느낌이 나며 그녀의 깊숙한 곳에서 내 자지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잠깐 자지가 빠져 버렸을 때, 그 울컥했던 것이 다름아닌 그녀의 애액임을 알아 냈다. 그녀는 아낌없이 몸 안에 물을 쏟아 내었고, 그 때에 맞춰 내 몸에서 하얀 액체가 튕기듯 그녀의 몸에 흩뿌려졌다.
 
“아아……”
 
많이 흥분을 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거의 그녀의 가슴 언저러 까지 내 흔적들이 튀어 있었다. 하림이의 파르르 떨리는 몸을 나는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사정을 마친 내 자지를 움켜쥐었고 맛사지 하듯 그것을 부드럽게 흔들어주었다.
 
“으…”
 
뒷 목이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전부 다 쏟아낸 줄 알았는데, 그녀의 손동작에 맞추어 계속해서 흔적들이 토해졌다. 이불 속에서 잡았던 하얀 손위로 내 몸의 끈적한 액체들이 흩뿌려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둘다 땀 범벅이었다. 글로 쓰기엔 짧지만, 우리는 문을 열고 대면한 시간부터 오랜 시간 동안 애무하고, 섹스했다. 진이 빠질 정도로 찐하고, 강렬한 섹스였다. 그녀의 몸에 있는 흔적들을 닦아주고 나서,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안았다. 나에 비해 너무나 작은 몸이라서, 마치 인형을 안은 것처럼 품 안에 들어왔다. 하림이는 땀에 젖은 내 뒷머리를 토닥이 듯 쓰다듬었다. 전날 호텔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우리는 그날 둘이 끌어 안고 깊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서로를 집어 삼킬 듯 얽힐 때까지, 우리는 잠이 드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조용히 다독이고 만졌다.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고 만나기 시작했다. 어학원이 끝나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꼭 손을 잡고, 담배를 피우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입을 맞췄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공부를 하고, 그녀는 학원이 끝나면 일을 하러 갔지만, 같이 있는 동안에는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으려고 애를 썼고, 10년 지기 친구처럼 투닥거리다가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아랫입술을 삼키듯 키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일 때 죽이 잘 맞았던 그녀와 나는 연인이 되고 나서부터 이렇게 맞지 않을 수 있나 할 정도로 잘 맞지 않는 연인이었다.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서로 다른 우리는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그녀와 함께 했던 6개월 동안 수없이 싸우고 내일부터 안 볼 것처럼 헤어지기도 했지만, 우린 결국 그 날 이불 속에서 느꼈던 무더운 공기와, 달빛 아래서 보았던 은빛 나신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갔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운답시고 옥상에 가서 10분 동안 서로를 만지며 키스하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그녀의 티셔츠를 올려 부드러운 그녀의 가슴을 빨기도 했으며, 바다향이 나는 그녀의 목에 맺힌 땀을 핥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귀기 전부터 예견된 ‘떨어져야 하는 커플’ 이었다. 나는 장기로 일본에 머물고,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하림이는 공항에서 나를 보며 퉁명스럽게 “딴 년 만나면 아주 죽이 삔다.” 라며, 마지막 인사도 없이 출국장으로 들어갔고, 여권을 직원에게 주는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던 그 뒷모습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붙어 있을 때는 오지게 싸우던 우리가, 장거리 연애가 되어 버리자 사귀기 전의 친구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만, 서로 노트북의 웹캠을 켜고 카메라에 입을 맞추거나, 옷을 벗고 채팅을 하며 만질 수 없는 화면속의 모습을 쓰다듬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그녀도 쉽게 서로를 만나러 가지 못한 채 애꿎은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 뿐이었고, 결국 어정쩡한 연애를 싫어하는 그녀는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때가 바로 일본에 온 지 1년이 되었을 때였고, 나는 그 동안의 공부를 보상받 듯 스물 후반의 나이에 일본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것을 모른다. 합격통지를 가장 먼저 알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우리는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온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나는 하도 많이 봐서 걸레가 되어버린 EJU(일본 유학생용 수능)교제들을 분리 수거함에 넣어 버렸다. 책의 곳곳에는 하림이가 장난처럼 쓴 낙서들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주었던 유일한 편지들과도 같은 그것들을 버리며, 유치하지만 진심으로 하림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일본에서의 늦깎이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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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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