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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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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살아가다 보면 참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지금 이 시점 기준으로 인생의 4분의 1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을 뿐이지만, 그 시절에 정말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히려 나머지 4분의 3의 기간 동안 에서는 딱히 독특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4분의 1의 시간에 많은 여자를 만났다. 물론 만났다 라고 하는 표현이 전부 사귀고 섹스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만났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친구 혹은 지인 같은 교류를 포함하며, 그냥 일회성의 커피 혹은 식사를 한 것도 포함해서다. 아마 그래서, 내가 굳이 끄집어내어 남에게 들려주려고 한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일본에서의 경험인 것 같다.
 
물론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글을 계속 올리는 이상 추가적으로 등장을 할 것이겠지만- 어찌 보면 유학일기의 주제가 그 것이니까- 대학교에서의 본격적인 이야기를 쓰기 전에, 어학원 시절에 겪었던 특이한 사람들에 대해 간략히 써보자 한다.
 
따라서 오늘의 주제는 어학원에서 만났던 사람들(부제 : AV여배우와의 인터뷰) 정도가 되겠다.
 
뭐 저리 써보니 엄청 거창해 보이지만 딱히 엄청난 경험은 아니다. 그냥 내 기준으로 봤을 때 특이하다면 특이했던 인간들과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은연중에 하는 모양이다.
 
앞서 말했지만, 어학원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여 일본어 공부를 하는 곳이다. 국적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나이, 직업, 성격, 삶의 가치관들이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인다. 내가 있었던 어학원은 굉장히 학생 수가 적었던 편이었지만, 나름 다양한 사람들을 겪고 또 관찰했다.
 
먼저 방송인 정재환씨

아마 이 사람을 아는 것은 30대 이상이 아닐까 싶은데, 예전에 아주 활발하게 방송을 했던, 꽤나 젠틀한 이미지로 다수의 방송의 MC를 보았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도 우리 어학원에 다녔었다. 물론 나보다 한참 전에 입학해서 나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꽤나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학원의 김선생이 매일 이 사람 앞에서 뭐라고 신나게 이빨을 털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내가 하림이와 갔었던 MT에는 참석하지 않았었지만, 어학원에서 종종 마주치기는 했었다. 어린 학생들은 대부분 그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부 그를 알아본 학생들은 괜히 가서 말을 한 번 걸어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굉장히 호감형의 잘생긴 얼굴이었고, 그와 나란히 오줌을 싸 본 어떤 녀석에 의하면 ‘야 고추가 실하더라’ 라고 했다. 훗. 연예인 자지가 뭐 대수라고……라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나는 호시탐탐 그가 화장실에 있는지 살피긴 했었다.
 
프로 금사빠

사실 일본이 아니더라도 어디에나 있는 부류였다. 우리 어학원처럼 학생 교체가 심한 곳에서는 더욱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애들인데, 말 그대로 뉴페이스를 볼 때마다, 혹은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 음료수 먹을래? 라고 한 그 이후부터 사랑에 빠진다 거나 하는, 한마디로 사랑에 대한 줏대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이런 타입의 남녀가 서로 사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서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끊임없이 바람 피울 생각만 하고 끊임없이 싸워서 면학 분위기를 시궁창으로 만들기도 했다. 어찌 보면 타지 생활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딱한 사람들 일 수도 있어서 처음에는 잘 해 줬는데, 이 타입의 여자애가 오빠 나 좋아해요? 그러면 안되요. 라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해서 그냥 관심을 끄고 살기로 마음먹은 타입. 실제로 이 사람들에게 생각 없는 호의를 베풀었다가 근거 없는 소문의 주인공을 해 본 적도 있다.
 
한량

굉장히 일본 생활을 즐기는 타입이다. 뭐 나쁘게 이야기하면 일본어 공부는 뒷전이고 놀 생각만 하는 사람들? 이라고 칭할 수 있다. 물론, 대학을 간다 거나 전문학교에 간다는 목표가 없거나, 혹은 목표가 있더라도 실력이 뒷받침 되면 즐기며 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이 한량 그룹과 꽤 친한 편이었고 이상하게 이 그룹에게 인기(?)가 많았다.

남들이 알바자리 알아볼 때 벚꽃 구경 명당을 알아보는 그들은, 한결 같이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다른 유학생들과는 다르게 일본사람들을 잘 사귀었다.  전편에서 썼던 하림이도 아주 약간은 이 한량 그룹에 속한다고 보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승철이라고 하는 남자 아이였다. 나보다 한 살 밖에 어리지 않은데 매일 살갑게 형님 형님 하면서 나를 잘 따랐다. 아침 인사가 언제 한 번 술 한잔 빨죠 형님? 이었고 헤어질 때 인사가 오늘 저녁에 생맥 콜? 뭐 이런 아이였다. 그는 나와 너무 다른 스타일의 아이였는데, 175정도의 키에 정말 깡 마른 몸의 소유자였다. 내가 마음 먹고 로우킥을 날리면 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슬림했다. 눈 꼬리가 살짝 쳐져서 늘 웃는 상이었고, 목소리도 차분한 편이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은 대부분 저마다 알바를 하는데, 보통 어학원 학생들은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일을 했다. 물론 우리의 승철이도 돈이 없을 때는 일을 해야만 했는데, 그가 했던 알바는 무려 호스트바 였다. 나중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지명율 1위를 몇 달 동안 달성해서 새끼 마담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그리고 승철이라고 하는 이 남자는 훗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유명한 키스방의 사장이 된다.
 
섹스광

사실 이 타입의 사람들을 욕할 마음은 없다. 섹스가 뭐가 잘못이라고. 다만 그들은 너무 무분별하게 하는 바람에 어학원 전체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내가 하림이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월반을 하기 전에 우리 반에 30대 중반의 한국 여자분이 들어왔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분이 따 잡순 20대 유학생만 다섯 명이었다. 그것도 그 다섯 명은 나중에 어학원 졸업 전에 갖은 대대적인 술자리에서 자신들이 같은 처지(?)임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물론 그 때는 이미 그 여자분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여자분이 나보고 이삿짐 옮기는 거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그 다섯명과 같이 건배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자의 경우도 있다. 나랑은 한 번도 대화를 안 해 본, 나보다 두 살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막 잘 생기진 않았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을 잘 했다. 일본어는 못해도 워낙 입을 잘 터니 공공연히 인기가 있지는 않았지만 작업한 여자는 무조건 자취방에 끌어 들였다. 물론 공부에만 전념했던 나는 자세한 내막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훗날 그 때 당시 어학원 동기들과 술을 마실 때 들은 이야기로는 그 남자 아이가 그 어학원 대부분의 여자에게 집적 대었으며, 같이 일본 연수를 온 자매를 동시에 건드려 자매가 서로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운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행각은 결국 올해 고등학교를 갖 졸업하고 온 여자아이가 임신을 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전편에서 언급했던 하림이에게도 접근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하림이한테 개 쌍욕을 쳐 먹고 내상을 입어 우리 반에는 얼씬도 안 했었다고 한다.
 
부자

뭐 말 그대로 부자. 부유하게 일본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언뜻 보면 3번의 한량 타입이 부자일 것이라고 연상을 하게 되는데, 사실 부자라고 해서 막 노는 것도 아니었고 한량이라고 해서 돈이 많지도 않았다. 어학원에서 느낀 부자는 뭐 그래봐야 고급차를 타고(그것도 유학생 주제에) 매일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 물론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으며 일본 원어민 개인 선생을 돈 주고 고용하는 정도? 이기는 했다.  그들은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회화 시간에 약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경우는 조금 있었다. 회화 시간에는 자기가 겪었던 일들이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하는 답변들은 보통 학생들의 답변과 조금 다른, 범상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무엇이었나요?’ 라는 질문에 보통은
 
“아, 친구들이랑 부산 갔었는데 재밌었어요.”
“호주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해외는 처음이라 떨렸습니다.”
 
정도의 대답을 하는 데, 부자 였던 어떤 유학생의 대답은
 
“흠……글쎄요.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습니다만, 별이 보고 싶어서 하와이에 있는 천문대로 급 여행을 간 게 생각나네요. 막상 가보니 마음에 들어 3주 정도나 있어 버렸죠. 후훗.”
 
……뭐 이런 식이었다.
 
여하튼, 어쨌건 간에, 이렇게 다양한 부류들이 많은 어학원에서 나는 공부를 했고, 그 때는 하림이가 한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평소처럼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 채비를 하려는 데, 위 3번에서 언급한 승철이가 나를 붙잡았다.
 
“형님. 오늘 집에 가면 뭐 하세요?”
“나? 문법이랑 한자.”
“……아뇨. 무슨 공부 하실 거냐고 묻는 게 아니고요. 오늘 저녁에 스케쥴 있으세요?”
“응. 공부.”
“…형님 언젠간 더럽히고 말 거에요.”
 
그는 손가락 두개를 모아 담배를 피우러 가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마침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나는 그를 따라 담배 피우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늘만 공부 쉬고 술이나 한 잔 어떠세요?”
“야 근데 너는 맨날 술이 어떻게 들어가냐? 간이 스페어로 하나 더 있니?”
“적당히 매일 마시는 게 제 노하웁니다 형님.”
“고맙다. 영업 기밀 말해줘서.”
“아무튼 형님, 오늘 어떠세요? “
“어디서 마시려고?”
“저희 가게에서요.”

나는 담배를 피우며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너네 가게는 호빠잖아?”
“네.”
“나는 너 자지만지면서 놀기 싫은데.”
“아 형님 쫌! 그게 아니구요.”
 
그는 어이 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주 전쯤에 어떤 여자가 가게에 놀러 왔는데, 그녀는 일본의 AV배우 였다고 했다. 그녀는 승철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놀라워 하며, 자신이 한국 여행을 갔었던 기억이 매우 좋았었다고 했었다. 급기야 그녀는 다른 한국 사람들이랑도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고 했고, 승철이는 아무 생각없이 ‘다음에 오시면 어학원 친구들 좀 데려 올게요. ‘ 라며 입방정을 떤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온다고 예약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그 다른 어학원 친구들 이라는 게……나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
“당첨입니다 형님. 유어 웰컴. 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싫어 새끼야.”
“왜요?”
“공부해야지 임마. 유학생 시험이 얼마 안 남았어.”
 
유학생 시험이란, 내가 준비하던 외국인 버전 일본 수능이다. 그냥 단순히 일본어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취약한 수학과 세계사, 일본 지리, 세계 지리 등이 주 과목이었다. 물론 모든 문제는 일본어로 출제된다.
 
“형님. 단 하루인데 뭐 어떻습니까? 그리고 이만한 실전 공부가 어딨겠어요?”
“……뭐가 실전 공부라는 거여. 유학생 시험에 여자 가슴 사진 나오고 다음 가슴을 가진 AV배우는 누구인가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회화 말입니다 회화 형님. 대학교 볼 때 면접도 보잖아요. 미리 하는 면접 준비라고 보시면 되죠.”
 
아무리 생각해도 승철이는 대책없이 지른 손님과의 약속에 급하게 나를 섭외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보니 호기심도 들었다. 평소에 만나볼 수 없는 직업군(?)을 만나는 것이니까. 혹 하는 마음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놈인가봐.
 
“아 뭐……니네 가게 비싸지 않냐? 돈도 없구만.”
“형님이 왜 돈을 내요. 말 그대로 형님은 게스트 스피커인데.”
“아 뭐……몇 시에 하는 데?”

못 이기는 척 묻자 승철이는 씩 하고 웃었다.
 
“오늘 밤 10시. 저희 가게에로 오시면 되요.”
 
나는 못이긴 척, 승철이가 건낸 가게 약도가 있는 그의 명함을 받았다. 가게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The Eden’ 이었다.
 
“심심하면 그 배우 작품 좀 보고 예습하고 오시던지요. 저는 이미 예습했거든요.”
“됐거든. 이따 생각나면 갈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의 호기심은 결국 집에 와서도 인터넷에 승철이가 알려준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게 만들었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배우는 아닌 모양인지, 몇 개의 프로필과 그녀가 출현한 작품의 샘플 영상도 대충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꽤 큰 키에 볼륨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눈꼬리가 조금 올라간 고양이 상이었고, 떠돌아다니는 누드 사진을 보니 굉장히 콜라병 같은 몸매와 유연한 몸을 자랑했다. 거길 내가 왜 가냐며 툴툴 거리던 나는 집에 오자마자 옷 도 갈아입지 않고 그녀에 대해 공부(?)했으며, 결국 내 일본어를 시험해 볼 기회긴 하지……라며 얄팍한 합리화를 하면서 터벅터벅 승철이의 가게로 향했다.
 
물론 나름의 우여곡절도 있었다. 편한 복장의, 그것도 남자가, 게다가 덩치도 곰 만한 놈이 호스트바에 들어가려고 하니 입구에서부터 제지가 들어왔다. 물론 승철이가 뛰어나와 잘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는 수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젤 수상한 직업을 가진 주제에 참 웃기는 녀석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가는 호스트바는 나름 신기했다. 모두 다 룸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오픈된 자리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룸은 더 비싸다고 했다. 각 자리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고, 딱 봐도 일본 날라리 같은 남자애들이 자리마다 앉아서 신나게 이빨을 털고 있었다. 재밌는 것은 남자 호스트들이 막 조각같이 잘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 같이 말을 할 때마다 여자들이 빵빵 터진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들을 쓱 하고 둘러 보고는, 승철이가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와와! 왔다 왔어!”
 
그녀가 나를 처음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20분 전까지 영상에서만 뵙던 분을 눈 앞에서 보니 나도 뭔가 연예인을 본 것 처럼 얼떨떨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검정색 원피스 차림의, 생각보다 굉장히 수수한 차림의 그녀였다. 내가 쭈뼛거리자 승철이는 나를 어학원 친구이자 일본어를 가장 잘하는 한국인 이라며 추켜 세우듯 소개했고, 그녀는 먼저 자신의 이름과 나이, 직업에 대해 소개했다. (다 아는 것을 굳이……)
 
“음…한국 사람이구요. 일본에 온 지는 1년 조금 안 된 구요. 잘 부탁합니다.”
“와와! 신기해요! 키가 엄청 크네요!”
“아 네. 그 쪽도 크신 거 같은데요.”
“맞아요. 남자들은 키 큰 여자 별로 안 좋아하죠?”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컵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는 모양인지, 그녀의 일본어가 매우 잘 들렸다. 자신감이 붙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키 큰 여자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요.”
“정말인가요?”
“그럼요. 반대로 일본 여자들은 키 큰 남자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요?”
“보통 너무 큰 걸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키 큰 사람이 좋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어요.”
 
그녀는 생각보다 밝은 성격의 소유자 였다. 호스트의 특성상, 승철이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다. 다른 손님이 오면 그 테이블에도 얼굴을 비춰야 하고, 지명 손님이 많으면 계속 테이블을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그녀와 나 둘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그녀의 대화 혹은 질의 응답은 이러했다.
 
나 : 어떤 계기로 그 일을 하시게 된 거에요?
그녀 : 이 업계는 굉장히 의외로 스카우트 되는 경우들이 많아요. 기획자가 말을 걸어서 한 번 일해보지 않겠냐 라고 말을 하죠. 저는 사실 백화점에서 케스팅이 되었는데, 2주일 정도? 생각해 보다가 하게 되었어요.
나: 엄청 힘들 것 같은데, 힘들지는 않나요?
그녀 : 어떤 면으로? 수입적인 면으로? 아니면 일이?
나: 그냥 일적인 면에서?
그녀 : 아무래도 힘든 것도 있죠. 몸을 써야 하니까. 하지만 남자 배우들이 더 힘들어요.
나: 왜요? 완전 좋은 직업 아닌가요?
그녀 : (웃음) 여배우는 하루에 한 씬 혹은 두 씬 정도 찍는 게 대부분인데, 남자 배우는 인력풀이 없어서 하루에 다섯 번 내지는 열 번 이상 찍는 배우들이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만큼을 다 사정하지는 않아요.
나: 헉 왜요?
그녀: AV에서 중요한 것은 남자의 사정이 아니라 정확한 분량과 챕터가 넘어가는 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 도구를 써서 ‘사정한 것처럼’ 영상을 찍는 거죠. 한마디로, 남자 배우들은 사정도 못하고 끝내고, 다시 세워서 다른 씬 찍고, 거기서도 못 싸고 또 다시 세워서 찍고….
 
생각보다 극한 직업이라 생각했지만, 뭔가 업계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물론 어느정도 술이 들어가고 나서 수위 높은 질문을 한 것도 있었다. 아무리 그녀의 직업이 AV배우라고 해도, 개인 적인 궁금증을 막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었고, 아무래도 당시에는 한창 말을 배울 때라서 유창하게 질문을 하지도 못했다.
 
나: 그럼 궁금한 게…촬영 중에도 정말 좋아서 하는 건가요?
 
이 질문에 그녀는 대답 대신 씩 하고 웃으며 자신의 핸드백 속에 있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내 눈 앞에 들이댔다. 나는 뭐 하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녀 :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보이는 광경이에요. 흥분이 될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녀의 시선에서 보면, 자신의 위에서 헐떡이는 남자 배우의 얼굴 뒤로 카메라의 앵글과 조명기사의 반사판등이 보이는 것이다. 섹스할 때의 분위기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 나한테는 꼬무룩 직행 감이다.
 
나 : 음……그럼 같이 찍은 동료배우와 촬영이 끝나고 따로 만난 적이 있나요?
그녀: 프라이빗 섹스를 말하는 거죠?
나: 잘 모르겠지만 뭐 그런 거 같아요.
그녀: 단 한 번도 없어요. 촬영은 일일 뿐이고, 거기까지가 직장 동료와의 시간인거죠. 집에서 쉬어요.
나: 아. 그렇구나.
그녀: 섹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AV배우가 축복받은 직업 같겠지만, 사실 굉장히 저주받은 직업 이에요.
나: 어째서요?
그녀 : 섹스라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굉장히 기분 좋고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직업이라고 생각해봐요. 내가 좋아해서 섹스를 하는 게 아니라 시각적인 흥분을 원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로 섹스를 하는 거에요. 물론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지만, ‘섹스’가 노동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이 업계에서는 후에 불감증을 겪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요.
 
나는 숨도 못 쉬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는 재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입을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AV업계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녀도 내게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었고, 한국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중간중간에 막히는 것이 있을 때는 늘 가지고 다니던 전자사전으로 검색해 그녀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그녀는 한국인이랑 일본어로 대화하는 게 매우 신기하게 재밌는 경험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 그럼 은퇴를 하고 나면 무엇을 할 생각이에요?
그녀: 나는 다른 은퇴한 선배들과는 좀 다르게 살고 싶어요.
나: 다른 선배들은 어떻길래?
그녀: 사실 이 업계를 못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어요. 풍속 업소(유흥업소)에 취직하는 사람들도 있고, 몇몇은 모은 돈으로 가게를 내기도 하고. 저는 디저트 카페 같은 걸 해보고 싶네요. 아직은 너무 어려서 돈이 없지만.
나: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픈하면 연락 주세요. 가서 팔아 줄게요.
그녀: 정말이죠? 약속한 거에요.
 
그 외에도 그녀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어디가서 나 사실 AV배우랑 술 마신적 있어 라고 고백을 하면 하나 같이 “그래서 했냐? 잘 하디? “ 라고 질문을 하는 데 그녀와는 술만 마셨을 뿐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녀의 직업이 그렇다고 해서, 그리고 내가 그녀와 술을 마셨다고 해서 그녀가 아무나와 섹스를 하는 여자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는 나에게 여자 관계에 대해 물었다. 당시 나는 하림이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그녀는 매우 집중을 하며, 매우 몰입을 한 자세로 경청을 해 주었다. 물론 당시 내 일본어에 한계가 있어서 일차원 적인 표현 밖에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는 여자의 입장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당시 나보다 어린 아이였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을 대할 때, 그리고 섹스를 할 때 그녀가 해 주었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한다. 어찌보면 내 첫 번째 스승은 그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 : 자상한 편인가요?
나: 무뚝뚝한 것 같아요.
그녀 : 내가 보기엔 굉장히 자상한 사람 같아요. 다만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그럴 것 같아요.
나: 그런가요. 잘 모르겠는데……
그녀: 사람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마음만큼 자상해 지는 거에요. 자기는 못 느끼지만, 상대방은 분명히 느낄 거에요.
 
그녀가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이 나는 대목이었다. 얼핏 보면 별 것 없는 말이고, 그냥 한 귀로 흘릴 법한 내용의 말이었지만, 나는 훗날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그녀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하게 만든 한 여자분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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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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