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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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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

그 날의 마쯔리 이후로, 마리와 나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녀가 불꽃놀이를 시작하기 전의 하천에서 나를 안아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녀와 사귀는 신호탄이 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난 마리에게 덕분에 마음 속에 있던 짐이 덜어졌다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일상은 똑같이 돌아왔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한국어 이론을 다시 정독해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남는 시간에는 운동을 했으며, 짬짬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일련의 행동들의 중간중간에는 마리와 메일을 주고 받거나, 괜히 일본어 발음을 물어본다는 핑계로 전화를 걸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마리를 깊게 좋아하게 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순간순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필기를 하는 도중에도 노트의 빈 공간에 그녀의 이름을 썼다가 괜히 지우거나 했다. 마지막에 날 안아 주었던 그 행동에 대해, 매일매일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 설레었다가 실망했다가를 반복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리는 충분히 예쁘고 매력적인 아이었지만, 사실 나는 조금 통통한, 그러니까 작고 육덕진 스타일이 이상형이었다. 그녀는 발레 전공자 – 요가 강사라는 커리어답게 굉장히 마른 스타일이었다. 물론 이상형만 골라서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빨리 빠진 이유는 나도 의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나는 매일 마리와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 까 고민을 했다. 다시 스포츠 센터에 등록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곳은 그녀의 일터였고, 근무 중에 그녀와 친한 척을 하는 것은 마리에게도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그냥 단순하게 우리 커피 한 잔 마실래? 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사실 그녀와 나의 스케쥴을 맞추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궁여지책으로, 내 동선을 그녀와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마리의 직장인 스포츠센터는 그녀의 집과 지하철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다만, 센터에서 지하철 역 까지 5분 정도 걸어야 했으며 다시 도착역에서 그녀의 집까지 10여분 정도 도보가 소요되었다. 그다지 가기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차로 가면 15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노선도가 동경만큼 조밀하지 않은 탓에 필요 없는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이었다.
 
내 경우에는 과외가 주 수입원이었고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보조 수입이었기 때문에, 과외 학생들과 구두로 시간을 맞출 수가 있었다. 나는 연락을 주고 받으며 파악한 마리의 근무 시프트에 맞춰 과외 시간을 조금 조정했다. 물론, 그녀가 끝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끝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경우에는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차에 앉아 노트북으로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열심히 물밑 작업(?)을 마친 나는, 마리에게 끝나는 시간이 얼추 맞으니 집에 차로 바래다 주겠다 라고 했고, 그녀는 성격상 처음에는 민폐라며 거절했지만, 가는 길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내 말에 웃으며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회상해보면, 화,수,목요일은 마리의 스포츠 센터가 끝나는 시간에 그녀의 직장 근처에 있는 편의점 주차장에서 만나 집까지 바래다 주었던 것 같다. 예전처럼 반복되는 우연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만날 수 밖에 없는 필연을 만들어야만 했다.
 
고작 15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리고 때로는 그 15분을 위해서 2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그녀와 만날 때마다 두근 거리는 기분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 날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것도 물어볼 걸! 이라면서 후회했다.
 
“힘들지 않아? 매일 데리러 오고.”
“아냐. 가는 길이라니까. 알바가 이 근처에 있고 집에 가는 길에 마리네 동네를 지나가는 걸 뭐. “
 
사실 그 근처에서 과외 학생과 수업을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 집은 마리의 집과 차로 이동했을 때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녀의 집과 나의 집은 둘다 국도 4번선 동선이었는데, 굳이 따지자면 마리의 집은 4번선 상행이고 나는 하행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가는 길이라기 보다는 나는 더 돌아서 가는 셈이었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녀는 가끔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나와 함께 차에서 마시다가 들어갈 때도 있었다. 그때는 15분이 아니라 30분, 운이 좋으면 40분도 같이 있을 수 있어 행복했다.
 
“아 맞다 오빠. 나 다다음주에 호주에 갈 거 같아.”
“응? 왜?”
“유학시절에 만났던 친구들은 아직 호주에 있는 애들도 있어서. 큰 맘 먹고 휴가 써서 다녀오기로 했어. “
“얼마나?”
“15일 정도?”
“그렇구나.”
 
15일이나 못 본다고 생각하니 조금 섭섭했지만 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웃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다다음주가 며칠이지? 라며 마음속으로 계산을 했다.
 
“올 때 뭐 사다 줄까?”
“원하는 건 다 사다 줄 수 있어?”
“음……너무 비싼 게 아니라면? 왜? 뭘 원하는데?”
 
싱글 거리며 웃는 마리의 얼굴에다 대고, 그냥 아무것도 안 줘도 되니까 한 번만 더 안아줘 라고 마음속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글쎄. 호주가 뭐가 유명한지 나는 몰라서.
“꼭 호주 물건이 아니더라도, 뭐……공항에서 살 수 있는 것들도 있잖아.”
“됐어. 그냥 몸 건강히 돌아오기나 해. “
“나 아마존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건강히 와.”
 
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가로등 빛에 비춰진, 그것보다 더 밝은 환한 미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같이 따라 웃었다. 마음이 들킬 것만 같아서 괜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르바이트는 어때? 학교 다니면서 하면 힘들지 않아?”
“조금 익숙해 진 것 같아. 남을 가르친다는 게 조금 힘들긴 하지만.”
“선생님이네?”
“에이 선생님은 무슨.”
“카오리도 오빠한테 한국어 배운다고 했지?”
 
그녀와의 마지막 우연에서 나와 그녀를 본의 아니게 연결해 준 과외 학생의 이름이었다.
 
“응 맞아. 왜?”
“나도 한국어 배워보고 싶어서. “
“정말? 왜?”
“한국에 관심이 있으니까 그렇지. 나는 그 말이 좋더라. 알아써~~”
“알아써?”
“응. 그 말이 좋아. “
 
그냥 알았다 라는 말이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여자들이 연인과 대화를 할 때, 끝에 알았어 오빠~라며 애교를 떠는 그 톤이 너무 귀엽고 좋다고 했다. 내가 본토(?)발음으로 알았어~를 시전해 주자 그녀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아무튼, 가르쳐 줄 거야?”
“나 수업료 좀 비싼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가 배운다고만 한다면, 아니 배워만 주신다면 평생 무료로 가르쳐 주고만 싶었다. 같은 공간에서 나와 대화만 해 준다면, 수업료 따위는 필요 없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되길래 그래?”
 
“일단 매번 수업마다 커피를 사줘야 돼.”
“음……그리고?”
“그게 다야.”
“뭐야.”
 
마리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똑같이 븅신같은 미소를 지을 거 같아서 또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고마워 오빠. 매번 바래다 줘서. 그리고 매일 재미 하나도 없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마워.”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그냥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웃어준 후 손을 흔들며 내 차에서 내렸다
 
그 뒤로 나는 주말보다 화 수 목요일 만을 기다리며 한 주를 보냈다. 무려 일주일에 3일이나 만나는 것인데도, 나머지 4일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공부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자려고 누웠을 때 계속 떠오르는 마리의 웃는 모습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평상시와 다름 없던 어느 목요일에, 나는 모처럼의 사장님의 호출에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퇴근 준비를 하며 그녀의 스포츠 센터로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짧게 진동을 했고, 외부 표시창에 신규 메일 – 마리 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폴더를 열었다.
 
-오빠 미안한데 오늘은 오지 않아도 돼.-
 
맥이 탁 하고 풀리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되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야. 아무일 없어요. 오늘은 오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 이후로 10분간 마리의 메일이 오지 않았고, 내가 식당 앞을 서성거리며 담배를 두 개 정도 피웠을 때 그녀의 답장이 왔다.
 
-너무 아파서 오늘 쉬었어. 나 집에 있어.-
 
-어디가 아픈데? 감기야? 괜찮아?-
 
-그냥 목이 많이 부었어. 괜찮아요. 푹 자면 나을 거야.-
 
푹 자면 낫는 다니. 우리 외할머니도 안 쓰는 말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계속해서 서성 거렸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응 그래 푹 쉬어! 아프지마! 이럴 수도 없는 거고.
 
“아오 덩치도 무슨 인도양 범고래 만한 놈이 정신 사납게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어.”
 
사장님이 가게를 정리하며 내게 버럭했다. 평상시라면 투덜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나였지만, 그 때 당시에는 사장님의 일갈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차에 약이 있는데, 내가 가져 갈게. 잠깐만 나와서 받아갈 수 있어?-
 
이미 약국은 닫아 있는 상태지만, 사실 나도 환절기에 편도선이 잘 붓는 편이라 한국에서 가져온 상비약이 있기는 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성격상 오지 말라고 할 것만 같아서 답장이 안 오길 내심 바랐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설렁설렁 청소를 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말했다
 
“사장님.”
“왜.”
“저 죽 좀 끓여 주세요.”
“죽 같은 소리하네 죽고 싶냐?”
“이상한 곳에 라임 맞추지 마시고 좀 해 주시면 안될까요?”
“왜? 잘 되가는 여자가 아프다디?”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귀신 같은 통찰력에 감탄할 틈도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트레이드 마크인 진한 화장의 개량 한복 차림을 하고, 입가에는 타 들어가는 담배를 물고,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그걸로 한 대 치실 것 같아서 조금 움찔한 것은 비밀.
 
“아오 저거 빨리 자르던지 해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사장님은 냄비를 꺼내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느껴지는 사장님의 요리를 바라보았다.
 
“고기 꺼내. 뭐해.”
“네? 넵!”
 
나는 신속하게 다진 고기를 냉동실에서 꺼냈고,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끌끌 하고 혀를 찼다.
 
“잘 되가는 여자라며? 좀 좋은 고기 써라 이 곰탱이 새끼야.”
 
사장님은 나를 쥐어 박으려는 시늉을 하더니, 냉장실에서 가장 고급 소고기를 꺼내어 직접 칼로 다지셨다. 아 저 츤데레 같은 매력. 역시 사장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머니 상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 다 만들어진 죽을 내게 넘기면서 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죽 값은 니 시급에서 깐다. 내일 모레 일곱시까지 출근해. 단체 손님 있다.”
 
나는 사장님에게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고는, 재빨리 차에 타서 지금 막 끓여 뜨거운 죽을 조수석에 올려 두었다. 차를 뒤져 목이 부었을 때 먹는 염증약과 몸살약 하나를 꺼내어 죽이 담긴 쇼핑백에 동봉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하여 휴대폰을 열어보았지만, 내가 간다고 했던 메일에 대한 그녀의 답은 없었다. 나는 고민할 틈 없이 차를 밟아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그날은 유독 신호에 자주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 않았는데 나는 참 차에서 초조해했다. 따뜻할 때 그녀에게 먹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왠지 그녀에게 오지 말라는 거절 문자를 보기 전에 도착하고 싶다는 이상한 강박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나는 다급한 마음에 그녀가 살고 있는 멘션 앞에 아무렇게나 차를 대고는, 비상 깜박이도 켜지 않고 쇼핑백을 들고 내렸다.
 
그때까지도 마리의 답장은 오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아파서 못 보내는 것일 수도 있었고, 내가 보낸 메일에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그녀가 살고 있는 멘션은 중앙 현관에 카드를 대야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운 좋게도 그때 마침 나오는 입주민이 있어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중앙 현관에 대한 대책도 없이 달려 왔는데 운이 좋았다. 그녀를 자주 데려다 주었기 때문에, 몇 호에 사는 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관 앞에 서니 벨을 누를 수가 없었다.
 
‘허락없이 온 게 기분 나쁘지는 않을까?’
 
몸이 아픈데 더 방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애꿎은 손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가, 그녀의 현관문 문고리에 쇼핑백을 걸고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현관 앞에 약 이랑 죽 걸어 놨으니까, 꼭 먹구 자. 방해해서 미안해.-
 
나는 터벅터벅 차로 걸어와, 한참이나 그녀의 집 방향을 바라보다가 차를 타고 돌아갔다. 그리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신호에 걸렸을 때, 그녀의 답장이 도착했다.
 
-고마워요 오빠.-
 
다행히도, 내 걱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는 다음날 일어 나자 마자 내게 전화를 해서, 너무 너무 고맙다고 말을 해 주었다. 너무 아파서 답장을 못하고 있다가, 내 메일을 보고 현관에 나가서 죽을 가져와 먹었다고 했다. 물론 그 날도 마리의 목소리는 아프게 느껴졌지만, 며칠 후 다시 건강하고 활기찬 마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호주에 갈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15개월도 아니고 15일인데, 뭐 별 거 아니잖아?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도, 15일이나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지금 처럼 매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게다가 그날은 마리가 호주에 가기 전 마지막 근무일이었고, 그날은 그녀의 출국 전날 이기도 했다.
 
“오빠!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내가 차를 늘 세우는 편의점 주차장에 온 그녀가 문을 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정말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내 귓가에 들릴 지경이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었지만, 마리는 참 옷을 잘 입었다. 패션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늘 그녀를 보며 옷을 참 어울리게 잘 입는 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은 원피스에 가디건을 입었을 뿐이었는데, 원래 그 원피스에는 그 가디건을 입는 게 당연한 것처럼 너무나 어울렸다.
 
“이제 내일이네?”
“응! 너무 기대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애들이거든.”
 
호주에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밝게 웃었다. 나는 괜히 내일 몇 시 비행기인지, 호주까지는 몇 시간 걸리는 지 등을 물었다. 그녀는 집에 가자마자 짐을 싸서, 내일 아침 일찍 센다이 국제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잔뜩 설레여 있는 그녀의 표정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근데 오빠는 원래 그렇게 상냥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깜짝 놀랐어. 죽 이랑 약 가져다 준 것……사실 나는 그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어.”
“아니 뭐 그건……”
 
심장이 빨리 뛰면 숨 쉬기가 버거워 말을 잘 이을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걱정되니까.”
“뭐가 걱정돼.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죽을 병도 아닌데.”
“편도선 부으면 얼마나 아픈데. 열도 나잖아.”
 
내 말에 그녀는 아무말 없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야속한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고, 벌써 그녀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기가 아픈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신경 써주는 거 잖아. 마음이 상냥한 게 아니면 뭐 때문이겠어?”
“그거야.”
 
내 차는 천천히 그녀의 멘션 앞에서 멈춰 섰다. 이제 곧 그녀는 내릴 것이고, 보름 후에나, 아니 보름 후 돌아오는 화요일에나 그녀를 볼 수 있겠지.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삼키려고 했던 말을 뱉어 버렸다.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
 
이미 후회해도 늦은 ‘좋아하면’이라는 단어가, 마치 메아리가 되어서 그 차안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차 안에 정적이 흐르고, 마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거……혹시 고백이야?”
 
되묻는 마리의 표정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평온해서 더 두려웠다. 입방정을 떨어서, 이제 아예 이렇게 같이 집에 오는 시간들 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복잡한 생각들이 그 짧은 순간에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니 뭐……못 들었는 줄 알았어.”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선명하게 들렸는 걸.”
 
나는 괜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는 내 팔을 툭 하고 치고는, 차 문을 열었다. 이제 끝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이제와서 장난이지롱~하면 나를 미친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따라 내릴 뻔했지만, 그녀가 살짝 차에서 내리며 나에게 말했다.
 
“고백에 바로 답을 해주고 싶지만, 고백이 너무 갑작스럽게, 그리고 너무 충동적이어서 대답은 호주 다녀와서 할래.”
 
나는 벙 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금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로, 여전히 어버버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15일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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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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