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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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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뷰티인사이드] “어우…어우…으어…으음…” 손님이 갑자기 빠지고 뒷정리까지 끝났을 때쯤, 테이블 구석에서 경제학 책을 꺼내고 끙끙대던 나는 무언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고, 역시나 예상대로 사장님이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똥 마려우면 가서 싸 인마. 참고 낑낑 대지 말고.”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뭐를 보길래 그래?” “아 사장님은 봐도 몰라요.” “경제학이구만? 내가 알면 어떡할래?” 사장님은 힐끔 내 책을 보시더니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일문으로 되어 있는 경제학 원론 책을 바라보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장님.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요. 제 비상한 두뇌로도 이해하기가 힘든……” “내쉬 균형이네. 일본 경제학에서는 낫슈 균등이라고 하는 구만?” 내가 깜짝 놀라서 사장님을 올려다보자, 그 분은 시크한 표정으로 쓱 하고 책을 읽더니 말했다. “뭘 이런 걸로 끙끙대고 앉아 있어. 보수행렬 만들고, 선 그어서 우월 전략을 찾는 게 핵심인데……할 줄 몰라?” “……저 선생님 혹시 정체가 어떻게 되시는지.” “나 경제학과 출신이여.” 아. 이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평상시의 사장님의 모습은 고등학교 때 폭력사건을 크게 일으켜서 자퇴하셨을 것 같은 이미지인데……사장님 죄송해요. “사장님이 경제학과 출신이라구요? 어디 여상 짱 출신이라면 믿겠는데.” “닥쳐. 그것도 못 풀면서 니가 대학생이냐? 쯧쯧.” “원래 저도 이 정도는 알아요. 머리가 복잡해서 그래.” “니가 복잡할 머리가 어딨냐?” “……누구나 다 고민은 있잖아요.” “뭐가 고민인데? 여자친구가 못 생겼다고 헤어지쟤?” “아니거든요. 걔 저 완전 좋아하거든요.” “그게 사실이면 내가 보기엔 걔도 제정신은 아닌 거 같다.” “말을 말아야지 내가.” 나는 다시 끙끙 거리며 책을 응시하다가, 이내 집중이 되지 않아 책을 치우고는 테이블 위에 머리를 대고 기댔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 “사장님. 만약에요. 사장님이 딸이 있는데……” “나 딸 없어.” “있다고 치고요. “ “싫은데?” “아.. 쫌. 일단 있다고 치고!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 왔어요. 그 남자친구가 어떻게 행동해야 마음에 쏙 드실까요?” “우선 내 딸이 너를 데려왔다면 호적에서 팔 거야.” 사장님은 내가 노려보던 말던, 설거지를 끝낸 젓가락을 면포로 닦고 계셨다. 답변 듣기를 포기한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생각에 잠기자, 사장님은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여자친구 어머니가 보자고 하시냐?” “...네.” “싹싹하게 잘 웃고, 잘 대답하고, 나중에 네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지 어필하고 그래 야지. 일단 넌 외모가 안되니까 싹싹함으로 어필해.” “제 외모가 어때서요. 이 정도면 호감형이지.” “호감 같은 소리하네 수감형이다. “ “그게 뭔데요?” “교도소 수감.” “아 진짜...” 사장님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가게 주방 안쪽에 있는 작은 쪽방 – 가끔 사장님이 선잠 주무실 겸 창고 겸용으로 쓰는 방-에 들어가 쇼핑백에 담겨있는 무언가를 가져왔다. “이거라도 가져가라. 첫 만남인데.” “이게 뭔데요?” “무슨 영양크림 같은 걸 꺼야 아마.” “이거 사장님 꺼 아니에요?” “어떤 한국 아줌마가 선물이라고 가져온 건데, 나는 그런 거 안 발라. 눈치 없이 빈손으로 부랄 두 쪽만 들고 가지 말고 그런 거라도 드리면서 싹싹하게 웃어라.” “아... 사장님. 어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응 그거 5천엔이야.” “선물 받으신 거라면서요.” “원가가 어쨌건 파는 사람 마음이지. 시장 경제가 그런 거 아니겠냐?” “2천엔만 깎아줘요.” “도로 가져오던지.” “천 엔만 깎아줘요.” “생각해 볼게.” 나와 사장님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다음주 단체 손님이 올 때 ‘무급 야근’을 하는 것으로 극적 타결했고, 나는 그것을 차 조수석에 두고, 마리의 어머니와 만나는 날을 긴장속에서 기다렸다. 사실, 내 생활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똑같이 수업을 듣고, 중간중간 마리와 만나 스타벅스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시고, 같이 집에 가고, 마리가 피곤해 하지 않는 날에는 마리의 집에서 끌어 안고 놀고……다만, 그녀의 어머니와 만난다는 사실이 상기되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드는 것일 뿐. 그리고 항상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가서, 금방 그 날이 다가와 버린다. -오빠! 센다이 아케이드에 있는 장어집 예약했으니까 그리로 와!- 나는 마리의 메일을 보고, 긴장된 마음에 쇼윈도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얌전히 옷을 입기는 했는데, 뭔가 표정 자체가 어색해 보인다. 그녀의 어머니와 처음 만나는 자리는 센다이 시내의 장어 요리 집이었다. 음? 왜 장어를 먹이시지? 힘내서 내 딸을 즐겁게 해주게……이런 건가? 하는 병신 같은 생각으로 긴장을 풀어 보려고 애쓰다가, 나는 사장님이 주신 영양크림(Feat. 무급 야근)을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한국처럼 막 숯불에 굽고 연기나는 그런 집은 아니었다. 인테리어부터 목조로 일본의 고택을 재현한 굉장히 고급진 분위기였고, 정갈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와서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냥 김대리 오늘 점심은 장어 어때? 아 좋죠! 하면서 갈 법한 그런 집이 아니라, 뭔가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을 듯한 그런 분위기. 게다가 모든 자리는 개별실로 되어 있었다. 내가 사이토 마리노 라는 예약자 이름을 말하자, 종업원이 어느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노크를 하고는 미닫이 문을 열어 주었다. “아……안녕하세요.” 문이 열리자 마자, 바로 마리의 얼굴이 보였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쭈뼛쭈뼛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고풍, 교양 이런 단어들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계셨다. “네. 앉아요. 반가워요.” “아 그리고 이거... 저기.. 별 거는 아닙니다만...” 나는 마치 처음보는 거래처 부장에게 선물을 건내는 사람처럼 뻘쭘한 자세로 들고 있던 선물을 드렸고, 그녀의 어머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받았다. “고마워요. 이런 거 안 가져와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래도 처음 뵙는 데 작은 거라도 가져와야 할 것 같아서..” 사장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싹싹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마리가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웃기지 마. 나까지 터지면 곤란해. “갑자기 보자고 해서 미안해요. 바쁠 텐데.” “괜찮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절대 바쁘지 않습니다! 하하하!” 내가 그 국어책 같은 대사를 했을 때, 마리의 얼굴은 하도 웃음을 참아서 거의 당근 수준으로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걸 보니까 긴장한 와중에 같이 웃음이 나와 입꼬리가 씰룩 거렸다. 나는 일본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리의 어머니처럼 귀티나는 고급짐을 소유한 분은 처음이었다. 옷이나 패션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분명 입고 계신 옷은 다 비싼 옷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여기 잘 하는 메뉴가 정해져 있는데... 내가 시켜도 돼요?” “아! 그럼요! 그냥 맨밥 주셔도 잘 먹습니다! 하하하하!” 이미 마리는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마리를 툭 하고 치며 주의를 주셨지만, 마리의 입모양은 ‘오 마이 갓’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오……너 이따가 두고 보자 진짜. 지금이야 장어가 나오면 숨도 안 쉬고 흡입을 할 텐데, 그 때 당시에는 정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 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쨌든 외관에 걸맞게 굉장히 고급스런 많은 음식이 나오기는 했었다. “키가 굉장히 크네요?” “아 네.. 넵!” “어후. 너무 긴장 안 해도 돼요. 부른 내가 미안해지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일본어에는 우리나라말과 같이 반말과 존댓말이 있는데, 일본의 존댓말은 몇가지의 단계가 있을 정도로 복잡했다. 일본에서는 ‘경어’라고 하는데, 자신을 낮춰 말하거나 상대를 높여 말해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우를 표현한다. 아무래도 마리의 어머님이니까,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어로 대답하다 보니 대답 자체가 조금 딱딱해졌다. 물론, 자신과 둘이 있을 때는 엉덩이 춤 추면서 방정을 떨어 주던 내가 경어를 쓰고 앉아 있으니 마리는 웃겨 죽을 맛일 것이 분명했다. 이해한다. 나도 내가 웃긴데. 마리의 어머니는 굉장히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나는 우아하다!’ 라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정말 네츄럴본으로 타고난 듯한 우아함이 베어 있었다. 마리보다 천 배는 더 발레리나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 분은 이것저것 나를 향해 질문했다. 학교는 어디인지, 전공은 무엇인지, 한국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 등등. 나는 말하다 보니 긴장도 풀렸고 또 하늘이 도왔는지 그날 따라 일본어가 술술 나와서 막힘없이 그 분의 질문에 대답했다. “근데, 마리노의 어떤 점이 좋아요?” 글쎄요. 평소에는 귀여운데 침대에서는 반전매력? 따위의 말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마리는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장어만 먹고 있었다. 웃긴 것은 보지 않겠다 뭐 이런 건 가 보다. “사려 깊음? 배려심? 뭐 그런 씀씀이에 제가 반했..” “푸흡!!!!!!!” 급기야 마리는 먹던 음식을 뿜을 기세로 고개까지 푹 숙이고 끅끅 거렸고, 마리의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게 다시 물었다. “얘 되게 말괄량이인데. 밖 에서야 밝고 명랑하게 보이겠지만 얘가 은근히 좀 특이해서..” “아닙니다. 귀엽고 밝게 보이던데요? 저 한테는.” “그럼 다행이고.” 마리의 말 대로, 그녀의 어머니는 좋은 분 같았다. 말투도 친절했고, 차분했으며, 내가 말을 할 때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이 나 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금방 긴장이 풀려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이게 사장님이 말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플랜’ 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 앞에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준비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아주 이력이 날 정도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길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모국어도 아니었다. 나는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떤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일본에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예전에 내가 일하는 가게에 왔었던 시갈 형님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접고 일본에서 정착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만큼은, 마리도 웃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고보니, 마리에게도 이런 진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구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할 것이며 내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최대한 겸손하게 나는 길고 긴 이야기를 마쳤고, 그녀의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어 주셨다. “음.. 그렇구나. 알겠어요. 보기 좋네요.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마리노도 드디어 좀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요.”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딸이 외국인 남친을 데려온 것이니까 나름 신경이 쓰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겠지. 하지만 가식적인 친절이 아닌, 뭔가 진심 어린 격려를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식사는 다행히도 무사히 끝났다. 계속 옆에서 끽끽 거리면서 웃던 마리도 식사가 끝날 때쯤 에는 조신한 모습으로 자신의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근데 결혼 전제로 만나는 건가요?” 그녀의 어머님의 질문에, 이번에는 내가 차를 뿜을 뻔 한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이런 질문은 사전 시뮬레이션에서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마리도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네! 라고 하기에는 ‘누가 시켜준대?’ 이럴 것 같고, 아니오 라고 하기엔 ‘그럼 내 딸은 그냥 연애용이라 이거야?’ 라고 생각하실 거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했다. “아직 마리도 어리고 저도 학생이라 진지하게 그걸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내 적당한 대답에 마리의 어머니는 적당히 만족하신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 속에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고, 그녀의 어머니는 가게 밖으로 나와서, 마지막 까지 품격있는 몸동작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이야기 잘 들었어요. 우리 마리노 잘 부탁 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잘 부탁 드립니다!” “그럼 이만 갈 테니까 둘이 데이트 해요.” 나는 마치 형님을 대하는 조폭처럼 90도로 그녀의 어머님께 인사를 했고,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주차장으로 걸어가셨다. 마리는 내 팔짱을 끼고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와. 어머님 차 되게 좋은 거 타신다.” “응? 저게 비싼 차야?” “응. 내 차 한 네 대 값은 나올 건데..” “그래?” 마리는 관심 없다는 듯 내 허리를 끌어 안았다. 마리는 참 일본인 같지 않은 것이, 주변의 시선을 잘 신경 쓰지 않고 표현했다. “어우.. 등에 땀 봐. “ “긴장해서 그래.” “우리 엄마는 긴장할 필요 없어. 아빠면 모를까.” “아, 아버님은 어떠신대?” “흠.. 아무튼 아빠는 좀.. 힘들 거야.” 나는 아직 아버님과의 약속도 잡아 본 적 없는데, 두배로 긴장이 되어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리는 그런 나를 보며 미소짓더니 말했다. “우리집 가자. 가서 좀 씻고..” “씻고?” 내 되물음에 마리는 귀를 대보라는 모션을 취했다. 나랑 30센치 이상 차이나는 그녀의 머리 쪽으로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씻고 나 막 덮쳐줘.” > 22화 보기(클릭) 글쓴이 186넓은어깨 원문보기(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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