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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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ingsman] 시간은 익숙하게 흘러갔다. 나와 마리의 시간은,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화살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보다 서로에게 더 많은 무게감을 두며 만났다. 물론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농담하고 장난치거나 서로를 놀리거나 했지만, 그만큼 더 진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연애에 무게감을 더해 나갔다. 혹자는 연애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와 같다고 했다. 처음 몇 달은 재미있고 신선하고, 그게 익숙해질 때쯤 다른 게스트를 불러서 색다름을 억지로 만들어내려 한다. 나중에는 그냥 의리로 보게 된다. 근데 우리의 연애는 그렇지 않았다. 바쁜 하루 속에 특별한 것이 없는 데이트를 해도, 우리는 한번도 무료함이나 익숙함을 느끼지 않았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어 갔다. 숨이 턱 막히는 습도 높은 여름이 가고, 나와 마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가을이 잠깐 들렀다가, 다시 동북지방의 시그니쳐와 같은 설국의 겨울이 찾아왔다. 우리의 계절도 같이 변했다. 여름에는 마츠시마 해변에서 같이 입을 맞췄고, 가을이 되면 그녀의 파스텔 톤 니트 속에 손을 넣어 사과 같은 가슴을 만졌다. 마리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빨간색 털모자에 잔뜩 쌓인 눈을 털어 주다가 장난스럽게 차가워진 입술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사귄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마리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 “오빠. 우리가 사귀고 1년이 지나고도 이렇게 서로 좋아 죽는다면, 그때는 꼭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자.” “왜 하필 1년이야?” “나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보통 1년이라고 생각하거든.” “어째서? 1년이 지나면 식는 거야?” “아니. 식지는 않겠지만 처음과 같은 온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1년이 지나고도 우리의 온도는 변함없이 뜨거웠고, 오히려 더 상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다음주 데이트에 뭐 할까?’ 가 아니라 ‘5년 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한국에서 키워야 할까?’ 로 바뀌었다. 우리 둘 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 혹시 내가 외국인 여친을 사귄다면 어때?” “일본 여자랑 연애하니?” “응.” “연애는 좋은데 결혼은 생각해 보자.” “에이. 결혼한다고 한 건 아니잖아.. 근데 왜 생각해 보는데?” “한국 사람끼리 만나도 극복되지 못하는 게 있는데, 국적이 다르면 살면서 힘든 일이 엄청 많을 거야.” 나는 그 때 까지만 해도, 부모님들의 우려는 그냥 설득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성격상 지금 굳이 행복한 데 골치 아픈 생각을 뭐하러 만들어 하나 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충실하며 또 동시에 서로에게 충실한 연애를 이어나갔다. 나도 마리도 단 한번도 다른 이성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 크게 소원해 지거나 싸우지도 않는, 너무 이상적이라 되려 한편으로는 불안한 연애가 잔잔하게 흘러갔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의 중반을 넘어갈 때쯤, 나는 학생인 동시에 본격적으로 돈을 벌었다. 내가 했던 사업은 일본인과 재혼한 한국 여성분들, 혹은 일본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일본인과 재혼하기 위해 오는 한국 여성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 분들은 대부분 일본어를 할 줄 몰랐다. 그러니까, 그냥 몇 번 선을 보고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둘을 연결해주는 중매인-일본어로는 나코우토라고 한다.- 가 존재했고, 결혼이 성사되면 그들은 소정의 비용을 신랑에게 받았다. 그리고 그 중매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인들과, 그런 한국인들과 자주 교류하는 밟 넒은 일본인들이다. 한마디로, 국제 결혼 사업 시장이 일본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시작한 일은, 결혼을 한 한-일 커플의 여성분이 결혼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출입국 관리소에 신청을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여자분이 일본어를 못하니 누군가가 서류를 대행해 주어야 한다. 남편이 일본인인데 뭐가 문제야? 하겠지만, 둘이 서로 입을 맞춰서 작성해야 하는 란도 많고, 여자가 직접 번역 및 공증을 받아 제출해야 하는 한국서류도 많아서 일본인 남편이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이상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일을 하는 사람, 혹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서류대행 및 비자를 받게 해주는 그 일의 보수는 10만엔(당시 약 한화 100만원 이내)으로 시장가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나는 알바 하는 식당 사장님의 압도적인 인맥으로 그 의뢰들을 전부 독차지 했다. 많게는 한 달에 10건 가까이 했던 적도 있었고, 기타 부수적인 통번역 의뢰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도 많았으니 나는 센다이에 있던 대부분의 유학생들보다 훨씬 수입이 높았다. 예전 스티븐 시갈 형님의 예언대로, 나는 유학생이라는 신분에 맞지 않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아껴 쓰던 예전과는 달리 돈을 모으고 모아도 풍족했기 때문에, 마리와의 데이트도 이제 같이 한국 여행을 가거나, 도쿄의 유명한 라멘집을 탐방하러 가거나 하는 식으로 럭셔리하게 바뀌었다. 일본 생활에서 가장 바쁘고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평생 하면서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마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느 일본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취업 준비를 했다. 일본의 경우 2학년 말 때부터 슬슬 취업 준비를 시작하여 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3학년이 끝날 때 쯤에는 회사의 내정을 받아 졸업 후 거의 바로 입사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일본의 기본적인 취업절차는 대부분 비슷하다. 먼저 각 취업 포털 사이트에 가입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잡 코리아나 사람인과 다른 점은 예비 졸업생들을 위한 포털 사이트가 매 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내가 2018년 졸업이라면 2018년 졸업생을 위한 포털에 가입하면 되는 것이다. 포털에 가입하여 회사 정보와 회사 설명회 요강을 숙지하고, 각 회사에서 요구하는 이력서 및 엔트리 시트(자소서와 비슷)를 작성한다. 서류에 통과하면 SPI(취업용 필기 시험)를 응시하고, 그 점수 결과가 좋으면 2~3회의 면접을 본다. 아 물론, SPI를 응시하지 않고 적성검사만 하는 회사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SPI문제중 그나마 쉬운 것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소개하자면 Q: 한 방에서 컴퓨터를 쓰고 있다. 1대를 4명씩 쓰면 3명이 쓰지를 못하며, 1대를 5명씩 쓰면 1대의 컴퓨터는 3명이서 쓰게 되며, 1대의 컴퓨터가 남는다. 방에 있는 인원은 몇 명인가? A 27명 B 31명 C 43명 D 54명 뭐 이런 식의 간단한 문제부터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일본어 문제까지 다양하다. 아무튼, 그 때는 뭘 해도 되는 시기였는지 나는 서류통과, SPI를 통과하여 꽤 많은 회사로부터 면접제의를 받았다. 대부분 최종 면접까지는 손쉽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를 다녀온 한국인의 메리트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면접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에 하나가 ‘당신이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 였으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라는 질문인데, 이제 막 성인이 된 귀염둥이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네. 제가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다른 부원과 트러블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잘 설득하여 회장으로서 팀웍을 이끌어 내어……블라블라블라- 하지만 응시자들 중에 거의 유일한 군필자인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부대는 휴전선 근처에 위치해 있었으며 어느 날 새벽 휴전선 철망이 찢어져 남침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비상령이 내려지게 되죠. 그때 저는 부대원을 이끌고……” 여튼 대답의 스케일마저 다르니, 면접관들은 물론 같이 면접보는 애들까지 ‘빨리 그 다음 이야기 이어서 해줭!’ 이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었다. 처음으로 대한민국 징병 제도와 분단 국가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렇게 뭘 해도 잘 풀리던 시기에 있던 내가, 옷 까지 멀끔하게 차려 입고 마리의 본가 앞에 선 것은, 겨울의 추위가 한풀 꺾이고 있을 시기였다. “어우. 왜 이렇게 땀을 흘려?” “긴장 돼서 죽을 거 같아.” 아무리 추위가 조금 죽은 시기라고 해도, 아직 까지는 입김이 나오는 날씨에 내 등은 다 젖어 버렸다. 왠만한 자리에서 긴장을 잘 안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손에 들고 있는 고급 한과 세트의 손잡이에 땀이 베어 나왔다. “그냥 우리 아빠 만나는 건데 왜 그래.” 마리는 웃으며 손으로 내 얼굴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긴장하는 거지.” “우리 엄마 만날 땐 말 잘 했잖아.” “어머님은 괜찮은데 아버님은.. 아 모르겠어.” 그 날은 약속의 날이었다. 그녀의 어머님을 만나 뵙고 나서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그녀의 아버지 차례였다. 이번에는 고급 음식점이 아닌 그녀의 본가가 약속 장소였고, 나는 마리의 파이팅에 긴장을 한 풀 늦추고 나서야, 나는 그녀의 집이 보통 집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마리 근데 이거 집이야 궁전이야?” “뭐야 갑자기.” 나는 일본의 집이 그렇게 큰 것은 그 때 처음 보았다. 센다이의 외곽에 있는 그녀의 본가는, 최고급 별장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무슨 UN건물의 입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잔디가 깔린 정원의 한 쪽에는 딱 봐도 고가인 차 몇 대가 주차된 주차장이 있었고, 한참이나 걸어가야 현관문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현관 앞까지 가서 또 땀을 닦고, 몇 번이나 마리에게 ‘나 그냥 집에 갈까?’ 라고 말하고, 마리에게 엉덩이를 걷어 차이고 나서야 현관의 벨을 눌렀다. “어서 와요. 너무 멀어서 고생했죠?” 여전히 단아하고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는 그녀의 어머님의 모습에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문이 열리고 엄청나게 넓은 거실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다시 또 심장이 뛰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땅바닥과 키스할 정도의 각도로 하는 내 인사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살짝 목례로 대신했다. 마리나 그녀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뭔가 딱딱한 국회의원 같은 느낌의 인상. 그리고 마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빠! 인사하는데 앉아서 받으면 어떡해?” 그제서야 그녀의 아버지는 마지못해 일어나 내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내 등을 살짝 밀었고, 나는 마지못해 그녀의 아버지와 마주본 위치에 어정쩡하게 앉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차와, 내가 사온 한과를 내 주셨지만, 아무도 그것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정적이 이어졌다. “한국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한참이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나서, 그녀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시선은 나를 보지 않고 내 옆에 있는 마리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대답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치 못한 딱딱한 분위기에 나도 조금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굉장히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고, 또 우익성향이 강한 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한 감정이 있는 분이었고, 일본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도 강했다. 그런 사람 앞에 외동딸이 한국 남자를 데려왔으니, 그 못마땅함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학생이라고 했나?” “둘은 언제부터 만났지?” “졸업 후에는 어떤 진로를 생각하는 거지?” 그 이후로 이어진 그녀의 아버지의 질문들은, 전부 내가 아닌 마리를 향해 쏟아졌다. 마리는 화가 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나는 당황하며 더듬거리듯 입을 열어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할 때 그녀의 아버지는 나를 절대 쳐다보지 않았으며, 그 날 따라 일본어는 또 왜 그렇게 잘 안 나오는지, 누가 보면 일본에 불법체류한 외국인 노동자가 더듬더듬 말을 하는 것 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실례잖아.” “내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라 마리 네가 마음대로 데려온 거 아니야? 난 이미 만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사전 약속 없이 불쑥 온 것은 실례 아닌가?” 그제서야, 나는 마리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겨우 만든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싶어 하셔서가 아니라, 마리가 우겨서 만든 자리였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는 교제할 때부터 굉장히 반대하셨다고 했다. “저 죄송하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내가 입을 열자 마리도, 그녀의 어머니도, 심지어 나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던 아버지까지 나를 바라보았다. 목이 타서 눈 앞에 있는, 이미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허락을 확실히 구하지 않고 찾아 와서 죄송합니다. 마음에 드시지 않겠지만, 마리와 저는 1년 넘게 사귀면서 신중하게 만났습니다. 그 동안 인사를 못 드린 것은 죄송하고, 이제서야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죄송하지만 진지하게 사귀는 것을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의 아버지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어버버버 하던 놈이 갑자기 침착하게 말을 하니까 조금 놀란 것인가 했는데, 사실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는 듯한 눈이었다. “그럼 나도 무례하게 군 것은 미안하다고 할게요. “ 차분해서 더 무서운 어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사귀는 것은 허락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아빠!” 마리가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말렸다. 하하. 참 드라마 같은 상황을 살면서 겪게 되는 구나 싶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내 말에 그녀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본에 와서 공부하는 모습은 고맙게 생각하고, 우리 마리노를 좋아해 주는 것도 고맙지만,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단순하고 어이 없는 이유에, 나는 되려 긴장이 탁 하고 풀려 버렸다. 하하하하하. 차라리 너는 못생겼어 임마. 내 딸이 아까워 라고 했으면 납득이 되었을 거 같 은데, 한국인이라서 싫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내가 시간이 없어서 먼저 실례 할게요.” 불 같이 화를 내는 마리의 모습과, 그녀를 말리며 나를 다독이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Fade out되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렸고, 희미한 시선 사이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아버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맥이 탁 하고 풀렸다. 나도 분명 우리 어머니가 귀하게 키운 자식인데, 단순히 국적 때문에 이렇게 결혼도 아닌 교제를 거부당한 것을 알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속상할 까 하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 저 사람이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내가 잘 말해 보겠다라며 말해 주시는 그녀의 어머님께 되려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나는 그 거대한 저택에서 초라한 내 몸을 빼내어 터덜터덜 걸어갔다. “오빠!” 마리가 와서 내 허리를 끌어 안았다. 하하하. 니가 울 상황은 아닌데 왜 울고 있니. “정말 미안해. 아빠가 완고하긴 하지만 저럴 줄은 나도 몰랐어.” “괜찮아. 마리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애써 웃으며 그녀를 쓰다듬었다. 땀이 마르면서, 그 자리에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몸이 떨렸다. “같이 가자. 금방 나올게 가방만 챙겨서.” “아니야. 괜찮아.” “뭐가 괜찮아!” “오랜만에 본가에 온 거니까, 이렇게 바로 나 따라 와 버리면 아버님이 더 싫어하실 거야. 그러니까 오랜만에 엄마 밥도 먹고. 응?” 내 말에 마리의 얼굴이 확 하고 젖어 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마리의 우는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하얀 눈보다 더 하얀 피부가 눈이 부시게 예뻤다. “난 정말 괜찮아. 겨우 오늘 처음 만난 거잖아. 다음에 또 와서 잘 말씀드려 볼게.” 한참이나 내가 달래고 나서야,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그녀는 집 앞에 서서 내 차의 후미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따라 더 건조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던, 늦겨울의 어느 저녁이었다. > 23화 보기(클릭) 글쓴이 186넓은어깨 원문보기(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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