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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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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단 3분. 그 3분동안 보았던 그녀의 얼굴과, 지쳐 보이던 표정과, 하얀 손가락 사이로 쏟아지던 머리카락과, 조금 느린 반응 속도로 나를 천천히 올려다 보았던 눈빛, 그녀의 옷차림. 그리고 그녀의 한 마디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는 최고의 영감을 선사했다. 나는 몇 달 동안 막혀서 끙끙 대었던, 풀리지 않던 내 음악의 마지막 시퀀스를 작업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을 때는 이미 새벽 5시였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잠이 들지 못했다. 내가 번호를 저장해 버리는 바람에 내 카톡 목록에 뜬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에. 
 
예쁘다. 
 
나는 홀린 것처럼 그렇게 중얼 거렸다. 여성을 수식하는 모든 좋고 예쁜 단어들을 전부 나열하면 그녀에게 수렴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기본 프로필은 명함에 있는 그 이름 그대로 Liz Kim 이었고, 나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 히스토리를 정말 시험을 앞둔 대학생이 전공서를 정독 하듯이 살펴 보았다. 
 
“머리를 잘랐을 때도 예쁘구나.”
 
그녀는 한 때 단발로 머리를 잘랐었다. 단발 머리를 하니 하얀색의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목선이 훤히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목선을 보니까 갑자기 술을 마신 것처럼 목이 타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일방적인 만남은 동이 트고 낮이 될 때 까지 이어졌다. 아마도 그녀의 뉴런에는 나에 관한 정보가 단 하나도 저장되어 있지 않겠지만, 난 이미 그녀에 대해 제법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단 3분 치고는. 
 
나는 그녀가 프로필에 올린 프로필 뮤직의 히스토리도 훑어 보았는데, 음악을 듣는 스펙트럼도 생각보다 넓은 편이었다. 그러니까 요즘 차트에 있는 곡들부터, 90년대 초반의 가요, 재즈와 힙합, R&B와 블루스, 일본 음악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내가 빠져 있던 곡들도 등장하니까, 왠지 그녀와 나의 공통점을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프로필 음악이 업로도 되는 빈도를 보니, 아마도 한 음악에 꽂히면 계속 듣는 타입일 거야, 나처럼. 
 
이쯤 되니, 나도 내 자신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잠재적인 스토킹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문득 침대 위에 놓인 그녀의 다이어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스케쥴러 안에 빽빽하게 쓰여져 있던 미팅 혹은 회의라는 단어들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무게감일 수도 있다는 것에도 생각이 미쳤다. 나는 하도 붙잡고 있어서 뜨겁기까지 한 휴대폰 속의 그녀에게 말을 걸어, 다이어리를 돌려 주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프로필을 누르고 1:1 채팅하기 버튼까지 눌렀지만, 나는 이번엔 뭐라고 보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라고 해야 하나? 근데 그녀는 내가 누군지 모르잖아. 허락 없이 연락 드려 죄송해요~라고 보내볼까? 아냐. 이건 마치 안전한 도박장 사이트 광고의 서두 같았다. 나는 한참이나 끙끙 거리다가, 실수로 화면을 눌러 그녀에게 모음 ㄴ자를 전송하고 나서야 허둥지둥 메시지를 입력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다이어리를 주워서요. 중요한 물건 같으신데 제가 돌려드릴 방법이 있을까요?-
 
그렇게 보내 놓고, 나는 또 ‘같으 신데’ 라고 보낸 나의 병신스러움에 한탄했다. 왜 물건에 존댓말을 쓰고 지랄이야. 고객님 미사용 포인트가 있으세요 이런 것도 아니고. 
 
별 것 아닌 것에 발을 구르고 있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좀처럼 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녀인데, 내가 더 애가타는 요상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1분도 잠을 자지 않았는데, 허기도 수면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를 연거푸 마신 것처럼 정신이 너무 또렷해서, 평소보다 더 세포가 민감 해져 있는 기분이었다. 
 
기다림은 계속되고, 시간은 점심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결국 큰 결심을 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는 정말 소중한 물건일 거야 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나는 또 한참이나 발신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나서야 전화를 걸었다. 
 
뚜~하는 신호음이, 마치 중환자 심장 박동기의 시그널 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서 그 신호음이 멈추면, 내 심장도 뚝 하고 멈출 것만 같……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덜미가 찌릿한 느낌이 들며,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누구세요?-
 
“저……혹시 다이어리 잃어 버리지 않으셨나요?”
 
수화기 너머로 아주 잠시 말이 없었다. 누가 들어도 수상한 내 말투에 그녀가 조선족 보이스 피싱인 줄 알고 끊어 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맞아요! 혹시 다이어리 주우셨나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안도감이 느껴지자, 등 뒤에서 나오던 식은땀이 조금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네! 이거 돌려 드리고 싶은데……제가 어디로 가져다 드리면 될까요?”
 
-네? 아니에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 –
 
“아! 아닙니다. 바쁘신 데 제가 가는 게……”
 
뭐가 바쁘시다는 건지,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피식 하고 웃는 듯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디에 계신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허둥지둥 다이어리에서 명함을 꺼내어, 회사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지는 강남이었고, 다행히도 내가 있는 곳과 그렇게 멀지 않았다. 
 
“제가 사실 이따가 강남에 갈 일이 있어서요. 가는 길에 전달 드리면 될 거 같아요.”
 
-아 그래요? 몇 시 쯤에 오시는데요?-
 
애초에 강남에는 갈 일이 없는데, 급조된 거짓말을 파고드는 듯한 그녀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아무때나요’ 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러니까……한 열 두 시 반부터 쭉~있을 거 같아요. 편하신 시간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와……고맙습니다. 그럼 열 두 시 반에 근처에 계시면 연락 주시겠어요?-
 
“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상냥한 목소리에, 긴장했던 몸이 녹아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치 친절한 고객센터 직원처럼, 그녀가 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귀에서 핸드폰을 떼었다. 
 
나는 그제서야 분주해졌다. 급하게 던져버린 열 두 시 반은 생각보다 그렇게 여유롭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급히 옷장을 뒤져 보았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그녀에게 멋있어 보일 법한 옷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봐도 후드, 청바지, 티셔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나마 덜 거적대기 같은 옷을 걸쳐 입고, 그녀의 다이어리를 역시나 그나마 깨끗한 쇼핑백을 찾아 넣고 박차듯 집을 나섰다. 
 
습관처럼 귀에 꽂은 이어폰에는 플레이 리스트가 셔플로 재생되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들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아, 밤을 센 바람에 더 눈부시고 시리게  햇살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나는 지하철 보다 버스를 더 선호했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는 때와 장소에 따라 버스 보다는 지하철이 훨씬 빠르고 또 편했지만, 지하철 특유의 그 공기와 분위기가 싫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버스에서 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음이 내키는 곳에서 내려서 구경하거나, 또 혼자 걷거나 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날처럼 버스에서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처음이었다. 품 안에 든 다이어리를 마치 가보처럼 끌어안고는, 긴장 때문에 차가워진 손을 몇 번이나 비비고 나서야 그녀의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의 건물은 높은 빌딩숲 사이에 당당히 위치한 깔끔한 건물이었다. 포멀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분주하게 오갔다. 왠지 나는 두 세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입사를 못할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장들 속 사이에 후드를 쓴 나는 물에 섞이지 못한 기름처럼 그 앞에 둥둥 떠다니다가, 또 덜덜 떠는 손가락을 놀려 그녀에게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내려 가겠습니다!-
 
아침과는 달리 바로 답장이 왔다. 나는 라마즈 호흡을 하듯이 훅훅 하고 심호흡을 했고,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나를 힐끔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서 이 초가을에 땀이 송글하게 맺힐 정도가 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여성분이 나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단숨에 그녀임을 알아보았다. 오늘 새벽은 그녀와 사진과 함께 했다고 과언이 아니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녀는 검정색 니트에 골반을 딱 조이는 검정색 스커트를 입고, 베이지 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사진에서만 보았던 그 동그란 눈망울이, HD급 화질로 내 앞에 와서 섰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 재생되었던 그 음성이 내 귓가에 들려올 때쯤, 나는 황급히 이어폰을 뺐다. 
 
“저 혹시 다이어리……”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의 동그란 이마를 보며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려 할 때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네! 맞습니다. 여기…….”
 
나는 떨리는 손을 애써 숨기며 그녀에게 하도 끌어 안고 와서 꼬깃해진 쇼핑백을 내밀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업무 때 쓰는 다이어리라서 되게 곤란해 하고 있었거든요.”
 
버스 정류장에서의 피곤해 보였던 음색과는 달리, 그녀의 톤은 생기가 넘쳤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 네. 아니에요. 딱 봐도 중요한 다이어리 같아서……”
“네. 근데 어디서 주우셨어요? 사실 아침부터 한참 찾았거든요. 회사 제 자리를 다 뒤지고 집에 다시 가봐야 하나 생각도 했는데.”
“아……그……버스 정류장에서 주웠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녀를 만났던 그 정류장의 위치에 대해 설명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아~하는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어제 그 근처에서 회식하고 버스를 탔거든요. 그때 흘린 모양이에요.”
“아……네……”
 
나는 말끝을 흐리며 쭈뼛거리는 자세로 서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다이어리를 들고, 멀뚱히 서있는 나를 잠시 어색한 미소로 응시했다. 아차. 나는 그제서야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음을 인지했다. 그녀에게 다이어리를 건내는 순간, 나와 그녀 사이의 용무는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유실물을 건내고 나서, 그러니까 그 매개체가 내 수중에서 사라지고 나서 어떻게 하면 그녀와 대화를 이어나갈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온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가지고 있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가 살짝 손목에 있는 시계를 힐끔 바라볼 그 때 쯤에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 그러니까…… 안에 있는 내용은 보지 않았습니다. 표지에 있는 명함만……”
“네?”
“아니……다이어리니까 개인적인 내용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땀 까지 흘리며 말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이 근처에 계시나요?”
“네?”
“오늘 쭉 이 근처에 계신다고 했잖아요.”
 
나는 그녀의 대답에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한……저녁 7시 정도까지는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하루는 아예 스케쥴이 없었다. 나는 그녀와 달리 직장인이 아니었고, 마음만 먹으면 1년 내내 휴일을 즐길 수 있는 작곡가니까. 다만 그렇게 하지 못할 뿐이지. 
 
“잘됐네요. 제가 딱 그 때쯤 끝나는데……지금은 점심시간이 끝나가니까 힘들고 이따가 제가 저녁이라도 대접할게요.”
“네?”
 
나는 그녀의 말에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만진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여기까지 와 주셨잖아요. 그냥 받고 인사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혹시 시간이 안되시나요?”
“아, 아뇨! 아뇨……정말 시간 많습니다. “
 
내 멍청한 대답에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미소에 심장을 직격탄으로 맞은 것만 같아서 나는 또 병신같이 괜히 로비에 있는 조형물을 바라보다가, 베이지색 그녀의 구두를 바라보다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따가 뵐게요. 드시고 싶은 것 있으시면 미리 생각해 두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저야 말로.”
 
그녀는 내게 꾸벅 목례를 하더니,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에 보이는 그녀의 하얀 얼굴이, 또 한 번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내 뇌에 강렬하게 저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느껴졌다. 후드 안에 입은 티셔츠가 땀으로 젖어 있는 것이. 그리고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고, 로비에서 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이따가 뵐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몇 번이나 메아리 치 듯이 뇌 벽에 몇 번 부딪히고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로비에 놓인 의자에 앉아 떨리는 다리를 부여 잡을 수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기 약 6시간 30분 전. 나는 그 시간동안 뭘 하고 그녀를 기다릴까 하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 덜 긴장하는 법을 연습해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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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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