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의 그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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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갑순이]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해외 출장 때문에 한동안 Jazz에 가지는 못했던 나는 이제 다시 술을 마셔도 간이 충분히 쉬었으니 괜찮겠지라며 나름의 합리화를 하고 나서 퇴근을 했다. 물론, 하진의 출근 시간에 맞추어서. 그날은 날도 추운데 비가 내렸다. 우산을 썼지만 바람 때문에 얼굴로 비바람이 쳤고 앞머리가 골룸마냥 이마에 달라 붙어 찝찝했다. 나는 오랜만이라서 쭈뼛거리는 무브먼트로 Jazz에 들어섰다. 옷자락에서 뚝뚝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TV앞에 앉아 있던 하진이 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아주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 너의 일을 늘려주고 말았구나. “어서오세요.” 그래도 처음처럼 시크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하기사 내가 혼술하며 쓴 돈이 얼만데. 저 수십가지 안주를 거의 먹어봤을 정도니까. 덜덜 떨리는 몸 때문에, 늘 앉던 문 앞의 자리가 아닌, TV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하진이 늘 서 있는 위치와 가까운 것도 이유였지만. “오늘이 뭐였지? 두부김치였나요?” “오. 기억하고 있네요?” “당연하죠.” 오늘 그녀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티셔츠의 가슴부분이 조금 파여 있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이끌려가는 것을 참아내야했다. 내가 전에 상호랑 와서 나가면서 말했던 메뉴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니 뭔가 뿌듯하다. 당시에 유행하던 어느 성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는 말처럼 이것은 그린라이트인가 라는 시덥잖은 상상을 하는데, 그녀가 앞치마를 맨 채로 주방에 들어갔다. “오늘은 사장님이 안 계신가 봐요?” “네. 급한 일 있다고. 오늘은 저 혼자네요.” “와 그런 나이스……아니, 혼자 힘들겠네요.” “괜찮아요. 잠시만요.” 나는 뭐 그녀에게 부탁할 필요도 없이,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알아서 소주를 꺼냈다. 주방에서 쿵쾅쿵쾅. 요리가 아니라 목공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뭐 솔직히 아주 약간은 불안했지만 나는 맛집탐방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니까. 나는 또 기본으로 주는 과자 안주도 스스로 가져와, 빈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체온을 높였다. 주방에서는 하진이 안주를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귀엽고 몸매 좋은 알바에, 엄청난 음식솜씨를 가진 사장님에. 흥행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췄는데 손님이 없는 이 곳은 정말 오면 올수록 신기한 곳이다. 그러니까, 영화로 따지자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드웨인 존슨이랑 게이커플이고 그들의 사이를 질투하는 스칼렛 요한슨과 그런 스칼렛 요한슨을 좋아하는 레즈비언 제니퍼 로렌스가 나오는 영화인데 관객수는 100명 뭐 이런 느낌이다. 말하다 보니 개소리같다. 아무튼, 오늘만큼은 꼭 그녀랑 더 친해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고, 이상하게도 소주를 몇 잔 마셔도 두근거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휴. 겨우 다 됐네요.” “오늘은 혼자 요리까지 하는 거에요?” “네. 어차피 손님도 잘 없으니까.” “아 그렇구나. 혼자 힙드시겠……” 말이 끝나기 전에 내 앞에 내려놓은 두부김치. 그리고 그 비주얼은 내 할말을 잊게 했다. 가운데에 김치+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있고 주변을 익힌 두부로 두르는 플레이팅 같은데. 일단 두부 모양부터 삐뚤빼뚤했고, 김치 두루치기는 마치… 누가 김치로 축구하다가 거기다 올려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표정관리를 하며 잔을 채웠고, 자기가 한 맛의 음식 맛이 궁금한지 하진은 내가 안주를 먹을 때 까지 빤히 쳐다봤다. 그냥 과자만 먹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비쥬얼은 이래도 맛있을 수도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나는 결국 큰 맘먹고 두부와 김치를 한번에 집에 입에 넣었다. 헛……이……이 맛은… 나는 천천히 그녀의 두부김치를 음미했다. 그녀의 하얀 얼굴과, 흑진주 처럼 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했고, 나는 그녀의 두부김치를 입에 넣는 순간 아득한 기분이 들며 옛 회상에 빠져들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우리 동네에는 용식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철물점집 아들 박용식. 용식이는 2살, 3살 터울로 형이 있었다. 그래서 녀석은 식탐이 많았다. 먹을 것만 생기면 형들에게 뺏기곤 했으니까. 그래서 용식이는 친구들이 무언가를 먹으면 저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와 애들이 먹던 음식을 다급히 입에 집어 넣었다. 심지어 누가 과자를 떨어뜨리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후후 불어 주워 먹었고 다들 맛없다고 하는 식당에 가도 용식이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진이가 해준 두부김치는……용식이도 안 먹을 맛이었다. “맛있는데요? 서빙 말고 주방에서 일해야겠네.” 내 말에 하진이의 표정은 밝아졌고 나는 차마 다시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소주로 입을 행궜다. 그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뭐……오늘도 콜라 한 잔 드실래요?” “사 주시는 거에요?” “네. 대신 혼자 심심하니까 말동무나 좀 해주세요.” 두부김치가 맛있다고 뻥을 쳐서 그런지, 아니면 손님이 없어서 그런건지, 혼자 마시는 내가 불쌍해서 인지, 하진은 콜라 한 캔을 꺼내어 내 앞에 앉았다. 나이스. 나는 최대한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티셔츠를 봉긋하게 만드는 그녀의 가슴쪽을 보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며 물었다. “하진씨는 몇 살이에요?” 여자의 나이를 묻는 건 실례인가? 뒤늦게 아차 했는데 하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스물 넷 이에요.” “아 그렇구나.” “아저씨는요?” “아저씨라니요?” 내 정색하는 표정에 그녀가 웃었다. “서른 하나 입니다.” “우와 서른 하나.” “우와 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잖아요.”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두부김치에 젓가락을 가져갔다가, 용식이도 외면할 그 맛이 생각나 멈칫했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 내게 물었다. “무슨 회사 다니세요?” “상사 다녀요.” “상사가 뭔데요?” “음……쉽게 말해 무역회사 같은?” “아아 그렇구나!” “하진씨는 취준생이랬죠?” “네. 정확하게는 휴학중인 취준생이죠. 반학기 남았어요.” “전공이 뭔데요?” “현대무용이요.” “와아. 멋있다. 예술인.” 잠시 그녀가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했다. 저 몸매와 저 라인으로 춤이라니! “근데 왜 맨날 혼자 드세요?” “그냥 집에 가면 혼자니까, 가면 할 것도 없고 해서 마시지요.” 조용한 술집과 빗소리. 내 귀를 녹이는 듯한 하진이의 목소리. 그리고 잔에 채워진 시원한 소주 한 잔.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마 비가 오니 오늘은 더 손님이 없을 것이다. 주인 아줌마도 없겠다, 오늘이 기회였다. “아 참. 초콜릿 좋아해요?” “없어서 못 먹지요.”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서 이번 출장 때 공항 면세점에서 산 초콜릿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큰 눈동자가 더 동그랗게 변했다. “우와. 저 주시는 거에요?” “이번에 베트남 출장 다녀왔거든요. 그래서 사왔어요.” “저 주려구요?” “아뇨. 그럴리가요. 사실 맞아요.” 내 말에 하진이 베시시 웃었다. 기분 탓일까? 슬쩍 가슴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자꾸 이러시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오빠.” “초콜릿 때문인지 아저씨가 오빠가 됐네요.” “다시 아저씨 할래요?” “아뇨. 그럼 다음에 뭐 사다주면 이름 불러주는 거에요?” 내 시덥잖은 농담에도 하진은 웃었다. “그러다가 선물이 더 커지면 제가 오빠한테 욕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런 취향이신 거에요?” “뭐야.” 내 말에 하진이 웃었다. 저 미소 때문에 내가 이리로 퇴근하지 암암. 이제는 그녀가 내 잔이 비면 술을 채워줬다. 비 오는 평일 밤. 행인 조차 없는 이 골목에, 나는 그녀와 단둘이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난 처음에 하진씨 되게 쌀쌀맞은 줄 알았는데.” “제가요? 왜요?” 왜긴 왜야 불친절 하잖아 솔직히……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냥. 표정이 조금 차가웠던 것 같아서.” 내 말에 하진은 콜라를 홀짝이며 말했다. “아아. 호프집 알바 하다보면……취한 사람을 워낙 많이 보니까요.” “그래요?” “네. 그래서 더 손님들한테 살갑게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나한테는 요즘 친절하시던데……” “오빠는 자주 오는 데다가 만취해서 진상 부리지 않으니까.” 캬……역시 한 병만 마시고 가길 잘했다. 그녀와는 계속 대화하고 싶은데, 술이 테이블 위에 쌓이면 또 안될 것 같아서 나는 일부러 아주 천천히 마시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남자친구가 왜 없어요?” “왜 없냐구요?” “아니 되게 예쁘시고……예쁘신데.” 예쁘시고……다음에 몸매 이야기가 나올 뻔해서 나는 황급히 그렇게 말했다. “뭐에요. 그게.” “아무튼 들이대는 손님도 많을 거고 학교에서도 인기 있을 거 같은데.” “일단 학교는 여대 다니구요. 남자친구랑은 헤어진지 1년이 넘었네요.” 거기다 대놓고 ‘성격차이였나요?’라는 드립은 치지 못하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너무 안 먹으면 의심을 살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두부김치를 입에 넣고 황급히 씹었다. “하진씨는 어디 살아요?” “이 근처에요. 걸어서 15분?” “에? 정말요? 나는 XX오피스텔 사는데……” “와! 진짜요? 가깝네요.” “그러게. 동네 주민이었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아껴 마신 소주가 슬슬 바닥을 보였다. 술기운이 적절한 이 때에 나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그렇게 말했다. “하진씨 보려고 매일 왔어요 사실.” “갑자기?” 내 말에 하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뭐. 음식도 맛있고……근데 하진씨가 또 예뻐서.” 내 말에 하진이는 아무런 말도 않고 웃었다. 유독 반짝 거리는 그 입술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잠시 바라보았다. 늘 술을 마시면서 한 번쯤 안아보고 싶다고 느낀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완벽에 가까운 엉덩이……는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그 촉촉한 눈과 입술로도 충분했다. “설마 술집마다 다니면서 알바생들한테 다 그런 얘기 하시는 건 아니죠?” “에이 설마요. 최근에는 처음이에요.” “최근에는은 뭐야……하하하하.” 내 착각일지 모르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그동안 때려부은 혼술의 가격이 정말 맹세코 아깝지가 않았다. 그래. 상호의 말이 맞다. 다시 못 올 각오로 직진이라도 해보는 거지. “오늘은 몇시에 클로징해요?” “글쎄요. 사장님이 아마 전화할 거에요. 왜요?” “클로징 할 때까지 여기 있고 싶어서.” 그냥 느끼하게 던진 멘트도 아니었고, 조금 마신 술기운에 나온 내 진담이었는데, 내 그 마지막 말에 분위기가 살짝 묘해졌다. 마치 같이 피자를 먹던 남과 여가 피자 치즈가 서로의 입술에 연결되어 있는, 옛날 감성의 그런 장면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야릇하게 변한 것이 느껴졌다. “그럼 클로징할 때까지 나랑 놀아 줄래요?” “일박이일도 가능하죠.” 내 말에 하진이가 베시시 웃었다. 하마터면 벌떡 하고 일어날 뻔했다. 물론 테이블 밑에는 이미 일어나 있었지만. 우웅…우웅… 테이블 위에 있는 그녀의 전화가 진동했다. 액정에는 ‘사장님’이라고 쓰여져 있다. “여보세요? 네. 네. 아뇨? 손님 없어요.” 하진은 그 말을 하면서 나를 살짝 바라본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윙크했다. 풉! 하고 터지는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니에요. 아냐. 응? 진짜? 그래도 되요?” 하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전화를 끊으며 내게 말했다. “손님 없으면 퇴근하래요!” “나 여기 두고 퇴근하게요?”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하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빠 다 마시면 난 퇴근하면 된다는 거죠.”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일인지……구분은 되지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기왕 이리 된 거 좀 더 용기를 내야지. “나 다 마시면 뭐하게요?” “가게 정리해야죠.” “정리하면?” “퇴근해야죠.” “퇴근하면?” “글쎄요.” “나랑 커피 한 잔 할래요?” 내 말에 하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창 밖에 거세지는 빗소리. 그녀가 말했다. “나 우산 없는데.” “난 있는데.” 내 말에 그녀가 웃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럼 나 치우는 거 도와줄래요?” 하반신 때문에 바로 일어날 순 없었지만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손님이 안 오길 기도하면서……얼른 정리해요!” 그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린 그녀의 뒷모습 때문에 밑에는 더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무언의 데이트 승낙을 받은 것 같아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 술기운 때문일까. 하진이를 꽉 끌어안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정말 미치겠다. 5화에서 계속 글쓴이 늘가을 원문보기(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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