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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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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보디가드]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공연을 본 이후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리즈가 전보다 더 나를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내 상념속에 존재했고, 내 상상속에서는 아낌없이 내게 미소를 보여줬다. 당구에 처음 빠지면 천장도 당구 다이로 보인다던데, 지금 내 상황이 그랬다. 어디를 봐도 그녀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그녀를 깊이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냥 여자를 만나지 않아 설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설렘이라고 정의하기엔 그녀를 생각하는 내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또 중증이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리즈의 하루를 혼자서 상상하며, 그녀는 지금 아마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거야 라며 흐뭇해 했다. 하지만 그런 많은 상상속에서도, 내 옆에 바짝 붙어선 그녀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떠나서, 나에게 너무 과분했기 때문에. 나는 상상 속 에서조차 그녀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는 내 모습을 탓하면서도,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더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은, 아주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왔다. 그 날은 리즈가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나 역시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남아 음악 작업을 했다. 
 
-아후~오늘은 사실 좀 회식하고 싶지 않은데.-
 
-그럼 안한다고 하면 되지 않아?-
 
-난 그런 거 싫어해. 그리고 나 입사 후 첫 회식인데 빠질 순 없지.-
 
-아……근데 빠지는 건 왜 싫은데?-
 
-나도 회사 구성원이잖아. 회사의 이벤트인 건데, 게다가 처음이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도 좋았다. 뭔가 보통의 여자들과는 다른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이, 내가 그녀를 짝사랑하는 것을 절대 후회하게 만들지 않았다. 비록 짝사랑이지만 나는 올바른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매번 상기시킨다. 
 
그런 그녀의 톡이 잠시 끊겼다. 아무래도 회식에 집중하는 모양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반 회사에도 DJ나 음향기사를 필수로 뽑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그녀를 위해서 매일 곡을 써서 틀어줄 수 있을텐데. 
 
나는 다시 헤드폰을 쓰고 작업에 열중했다. 나는 나와 같은 레이블에 있는 그 작곡가 형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한마디 한마디 꼼꼼하게 녹음을 하고 치밀하게 소리배치를 하는 편이었다. 창작 활동이지만 몸까지 녹초가 되어 버리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었다. 
 
“어?”
 
-이제 끝나가. 너무 어지럽다.-
 
잠시 잊고 있던 휴대폰이 깜박거리는 게 느껴져 확인해보니 그녀가 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갑자기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이 떠오른다. 또 어디서 뭘 흘리거나 하는게 아닐까? 그 때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넘어지면 어쩌지?
 
-지금 어딘데? 괜찮아?-
 
-회사 근처……넌?-
 
-나는 아직 작업실이야.-
 
-글쿠나……더 마시면 취할 거 같아. 오늘따라 심하게 어지럽네.-
 
나는 힐끗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거의 작업이 끝나 파일을 저장한 상황이었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그녀의 톡을 본 이상 걱정이 되어서 아마 집중을 못하겠지.
 
-괜찮아? 내가 그리로 갈까?-
 
-ㅎㅎㅎㅎ여기?-
 
-응. 어지럽다면서.-
 
-괜찮아. 여기서 멀지 않아?-
 
-아냐! 가까워! 20분만 기다려줘.-
 
-^^-
 
왠지, 내가 가는 것이 그녀도 싫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싫었다면 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니까. 이럴줄 알았으면 옷을 좀더 깔끔한 거 입고 올 걸. 아니야. 옷부터 사 둬야겠다. 
 
나는 작업실을 빠져나가, 평소에 타지 않는 택시를 탔다. 그녀가 술기운에 비틀 거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했다. 아니 그보다, 그녀를 흠모하는 회사 직원이 그녀를 건드리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회사 생활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모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초조해했다. 분명 택시는 막힘이 없이 잘 달리고 있었는데 마음이 급했다. 오죽하면 미터기를 보며 미리 돈을 꺼내 준비해 놓을 정도였다. 잔돈을 거슬러 받을 필요 없이 동전까지 딱 맞춰서. 
 
시간은 열한시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그녀가 톡으로 이야기해 준 장소에 가자, 그녀는 회사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회식 장소는 인적이 드문 골목이었고, 그녀는 문을 닫은 카페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내 상상속에 있던 위험한 회사 동료는 그녀의 근처에 없었다. 리즈는 나를 보며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진짜 와 줬네?”
“응. 당연하지.”
“미안하게.”
 
그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를 보며 싱긋 하고 웃어주었다. 오늘은 약간 긴 느낌의 스커트, 라인에 살짝 붙는 얇은 코트를 입고 있는 리즈의 양 볼이 조금 빨갛다. 손을 뻗어서 잡아보고 싶었다.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리즈는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글거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심장병이 걸릴 것 같다. 
 
“나 솔직히 온다고 해서 좀 놀랐어.”
“그랬어?”
“응. 그냥 어지럽다고 했을 뿐인데.”
“걱정이 돼서.”
“뭐가?”
 
그러고보니, 그녀는 내가 다이어리를 줍기 전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날 그녀를 처음 본 버스 정류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맞다! 나 이제 기억났어! 그 때 나 넘어질 뻔하지 않았어?”
“응. 맞아. 기억 나?”
“와……그 때 나 잡아준 게 너였어?”
“응. 그리고 나서 다이어리를 주웠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기해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그 때 모습이 기억이 나서 걱정이 되었다고 말을 했다. 내 말을 듣더니 그녀가 웃었다. 
 
“그랬구나. 나 이제서야 기억이 났어. 늦었지만 고마워.”
“고맙긴……집에 바래다 줄게.”
“근데 왜 걱정이 되었는데?”
 
나는 그녀의 말에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리즈는 장난기 어린 듯한 눈으로, 하지만 굉장히 진지한 말투로 내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말 해야 할까. 나는 또 고양이 앞에 쥐 처럼 버벅 거리다가, 정말 짜 내듯이 말했다. 
 
“좋아하니까.”
 
때마침 가을바람이 휭 하고 불었다. 내 후드가 등 뒤에서 팔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기어가는 듯한 소리로 한 내 고백이 빨리 공기중에서 사라지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워.”
“아, 뭐, 모르고 있었어?”
“아니. 알고 있었어.”
 
그녀가 아주 약간은 마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알고 있었다니. 하긴 생각해보면 내 반응을 보고 모르는 게 이상한 것이겠지만, 알면서도 물어보는 그녀의 모습이 괜히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쿵쾅거리는 내 가슴도 원망스럽고. 
 
“있잖아.”
 
그녀의 반짝이는 입술이 열렸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내 볼도 그녀만큼 빨개져 있겠지. 술도 마시지 않았으면서. 
 
“요즘에 참 외롭다는 생각을 했어. 이상하더라고. 성공적으로 이직도 했고, 정말 재미있게 일을 하면서 사는 데도 참 외롭다는 느낌이 드는 게.”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당장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한 그 톡을 보니까, 뭔가 감동적이고 고마웠어.”
“데리러 오라고 하면, 올 사람 굉장히 많을 줄 알았는데.”
“응 많아. 선택지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리즈의 저 말은 절대 허세나 잘난 체로 들리지 않았다. 맞아. 그녀의 말 한 마디면 올 남자들 수두룩할거야. 
 
“근데 이상하게 좋았어. 진심이야. 나 좋아해줘서 고마워.”
 
고맙다라는 말을 들으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뭔가 어색한 표정과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넌 좋은 친구야.’ 라는 말을 듣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그녀에게 손을 건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벤치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섰다. 손에 닿는 그녀의 차가운 손의 감촉에 몸이 찌릿했다. 
 
“여자랑 한 번도 사귀어 본적 없다고 했지?”
 
나는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가까운 그녀와의 거리. 리즈의 몸에서 그때 버스 정류장에서 느꼈던, 향긋한 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 오히려 기분 좋은 그 향기가 났다. 
 
“여자랑 잔 적도 그럼 없는 거야?”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에서 저런 질문이 나오다니. 가슴이 뛰다 못해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그 다음말에, 나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럼 오늘 나 먹어.”
 
그 순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주변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어버버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 것에만 몇 초의 시간을 썼다. 
 
“싫어?”
“아니 그게 아니고.”
“너 지금 내가 한 말이 얼마나 많은 자존심을 덜고 얼마나 많은 용기를 더했는지 알고 있어?”
 
이건 연애 바보인 나도 잘 안다. 여기서 또 병신 같이 머뭇거리면 나는 아마 평생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술에 취해 하는 말이 아니다. 똑바로 서서, 너무나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좋아.”
 
나는 가까스로 그렇게 말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심장이 빨리 뛰면 목소리도 떨리더라. 정확히 그 심장 박동 수의 BPM으로 목소리도 떨린다. 
 
“따라와.”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꿈일까? 그랬다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내 손에 잡혀 있는 그녀의 손 감촉만으로도 나는 미칠 것 같았다. 평상시와 다른 듯한 그녀의 모습. 나는 처음 알았다. 리즈는 청순한 외모를 하고 있지만, 절대 보수적이지 않은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나는 그런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가는 그 동안에도, ‘그럼 나 먹어.’ 라고 했던 그녀의 자극적인 한마디가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나마 연애 경험이 더 많은 내가 데려가는게 맞겠지만, 뭔가 남녀가 바뀐 거 같네.”
 
멀리 보이는 모텔 간판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의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그리고 너무 좋아서. 
 
그녀는 당당하게 들어가 자신의 카드로 계산을 했다. 프런트의 종업원이 그녀와 나를 살짝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와 저 자식……저런 미인이랑 오는데 모텔비도 안내다니….’ 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내가 낸다고 하자 리즈가 웃으며 말했다. 
 
“오자고 하는 사람이 내는 거야.”
 
그녀의 말에 종업원이 살짝 입을 벌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끈거렸다. 처음 느끼는 것이지만, 이것이 모텔 특유의 냄새인가보다 싶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그 냄새 때문에 더 떨렸다. 그녀는 나를 보며 살짝 웃더니, 핸드백을 내려놓고 내게 말했다. 
 
“나 씻을게.”
“으……응.”
“옷 벗게 저 쪽 좀 볼래?”
 
나는 그녀의 말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뒤를 돌았다. 툭!하고 단추 같은 것이 풀리는 소리, 헝겊이 살결에 스치는 소리, 무언가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들이, 마치 각각 손을 가진 생명체처럼 내 몸을 간지럽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욕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다리가 풀린 사람처럼 침대에 주저 앉았다.
 
이게 정말 꿈은 아니겠지?

나는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와 손을 잡는 것도 상상하기 버거울 정도의 행복이었는데, 그녀의 요청으로 나는 지금 같이 모텔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고백을 한 날에. 
 
나는 한참이나 벽을 더듬어 찾아서, 방 안의 조명을 껐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가 나왔을 때 너무 밝으면 싫을 것 같아서. 그리고 너무 긴장해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목이 바싹하고 탔다. 냉장고가 있길래 열었더니 물이 있었다. 이건 호텔 미니바 처럼 먹으면 청구 되는 거 아니겠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목에 물을 털어 넣었다. 잠시 후 욕실문이 열렸다. 바디샴푸 냄새를 머금은 수증기가 방안으로 확 하고 들어왔다. 나는 그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안절부절했고,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씻고 올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고 그녀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게 처럼 옆으로 걸었다. 정말 누가봐도 찐따 같은 그 상황에, 리즈의 쿡쿡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차가운 물로 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야 확 하고 열이 오른 내 몸을 식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긴장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몇 번이나 세수를 했다. 손 끝이 파들파들 떨렸다. 
 
나는 습기가 찬 거울을 닦아 내고, 그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나와 마주했다. 밖에서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니까, 몸을 다 닦고도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 경험이 많겠지? 야동에서 보던 대로 따라하면 되는 걸까? 생각해보니, 이것은 정말 이상적인 첫 섹스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좋아서 죽는 사람이, 그것도 그녀가 먼저 내게 요청을 해 준 것이니까. 아마 나는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과 존재도.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나갔다. 엄청 큰 타올이 있어 그것을 허리에 둘렀다. 욕실의 조명 만이 비추는 방은 어두웠고, 그녀는 이불로 가슴 쪽을 가린 채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나온 것을 보더니, 그녀는 TV를 끄고 내게 말했다. 
 
“서있지 말고 이리와.”
 
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심호흡을 하고, 그녀의 옆에 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 허리춤에 있던 수건이 스르륵 하고 침대 밑에 떨어졌다. 조금 어두웠지만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두 팔을 나를 향해 벌렸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그녀와의 첫 포옹은 알몸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되게 저돌적으로 이야기해서 뭔가 날라리 같아?”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손을 대더니 깜짝 놀랐다. 
 
“이 안에 뭐 들었어? 그냥 심장 박동 맞아?”
“나도 신기해.”
 
그녀는 내 목을 잡아 당겼다. 너무나 부드러운 감촉이 내 입술을 덮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어설픈 내 키스를 어르고 달래듯, 그녀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나를 감싸 주었다. 왜일까. 오히려 심장마비에 걸릴 것만 같았던 그 긴장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냥 본능에 따라서 그녀를 느끼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잘은 모르지만. 
 
리즈는 나를 리드했다. 리드라기 보다는,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나를 독려하듯 이끌었다. 그제서야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 위에 올라가, 키스를 하며 이불 속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흐음……”
 
그녀가 키스를 하며 살짝 신음을 흘렸다. 내 한 손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볼륨감과, 늘 눈으로만 얼핏얼핏 볼 수 있었던 그녀의 가슴이 손에 닿으니 온 몸의 세포가 격하게 반응했다. 야동에서 보았던 배우들의 ‘플레이’를 어떻게든 흉내내려 했던 나는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본능적으로 그녀의 목을 빨듯이 키스했다. 리즈가 움찔 하며 내 목을 끌어 안았다. 
 
그녀와 내 몸이 완전히 밀착했다. 리즈의 몸 위에 올라탄, 내 잔뜩 발기된 그 녀석이 리즈의 허벅지 사이를 쿡 하고 찔렀다. 나도 리즈도 움찔했다가, 다시 서로를 애무하는 데 열중했다. 
 
리즈는 가슴을 입으로 빨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할 때 가장 격하게 몸을 움직였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끼는 듯한 신음을 했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애무하던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다리 사이를 어루 만졌다. 왁싱을 했는지 까슬까슬한 느낌은 손가락에 없었고, 대신에 아주 부드러운 감촉과, 그리고 내 손을 촉촉하게 적시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너 처음 맞는 거지?”
 
그녀가 내 볼을 잡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그런데 나 벌써 이렇게 젖었는데?”
 
청순한 아나운서 같은 그녀가 그런 야한 말을 하니까, 번개에 맞은 것처럼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나는 그냥 이성을 잃어 버렸고, 그것은 나도 그날 처음 발견한 내 모습이었다. 나는 섹스를 할 때 극도로 흥분하면 이성을 잃는구나. 마치 주량 이상의 술을 마신 것처럼 무아지경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잔뜩 발기된 자지를 입구에 돌진시켰다. 미끄덩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언가에 막힌 듯 나아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하지? 시선을 밑으로 돌렸더니, 입구에서 미끄러지길 반복하는 그것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귀두를 살짝 잡더니, 이윽고 자신의 입구 쪽으로 인도했다. 
 
“흐응…….”
 
그녀의 신음소리에, 그리고 처음 느끼는 그 감촉에, 나는 혼절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즈의 몸 안에 깊숙히 들어간 나는, 내 허리에 감기는 그녀의 다리 감촉을 느끼며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앗! 으으응……”
 
그녀의 신음소리는, 마치 아기 목소리 같이 느껴져 더 자극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팔을 핥듯이 입을 맞추었다. 
 
나는 문득, 그녀가 요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게 아니라면, 남자를 이렇게 까지 미치게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섹스가 처음인 내가, 정말 이렇게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리즈가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조금씩 체위를 바꿀 용기를 냈다. 그녀의 다리 위치를 바꾸어도 보고, 그녀의 허리를 잡고 들어서 각도를 달리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리즈는 나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주는 촉감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며 허리를 계속 움직였다. 내 하반신과 침대보가 다 젖을 것만 같은 애액이 그녀에게서 나왔다. 
 
“자……잠깐만……잠깐마……흐응……”
 
그녀가 팔을 뻗어 내 몸을 살짝 밀었다. 나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이마를 닦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훗날 그녀가 이야기해주었는데, 마치 그때의 내 눈은 마약을 하는 사람처럼 풀려 있었다고 했다. 
 
“움직이지 말아줘……”
 
그녀는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어리둥절 하면서도, 동작을 멈추는 대신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또 한 번 몸을 꼬며 내 팔을 잡았다. 
 
“제발. 멈춰줘. 나 지금 엄청……예민해져 있어. 몸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오르가즘이 오고 나서 몸이 굉장히 예민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작은 터치에도 몸을 떨었다. 심지어, 머리카락을 만져도 그녀는 우는 소리를 내며 하아~하는 신음을 했다.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해?”
“그냥 둬야 해. 아니면……”
“아니면?”
“계속 박아 줘야해. 멀티 오르가즘이 오는 거니까.”
 
리즈의 입에서 나온 박는다라는 표현 때문인지, 나는 멀티 오르가즘의 뜻도 몰랐으면서 다시 맹수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굉장히 빨리 느끼는 편이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빨리 느끼고 가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상대와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르다고. 
 
신음소리는 방 전체를 울릴 정도로 커졌다. 그녀를 온몸으로 꽉 안으며 피스톤질을 하는 내 귓가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흐응! 나쁜놈! 너 처음 아니지?흑!”
 
그 말은 나를 더더욱 미치게 했다. 살짝 감은 그녀의 눈, 반짝이는 입술, 그리고 헝클어진 머릿결과, 하얀 피부위로 드러난 완벽한 그 몸의 곡선. 이런 여자와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쾌감을 동반했다. 결국 나는 자위를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에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눈치 챈 리즈는 나를 살짝 뒤로 밀었다. 그녀의 몸 안을 유린하던 자지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얀 정액이 그녀의 몸 위로 흩뿌려졌다. 맙소사. 거의 그녀의 가슴까지 튀고 있었다. 
 
“하아……하아……”
 
그녀는 내 팔을 잡은 채로, 몸을 파르르 떨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자극적이어서 인지, 내 사정은 참 길게도 계속되었다. 나는 얼른 손을 뻗어 티슈로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지만, 리즈는 한참이나 내 팔을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이리 와서 입 맞춰 줘.”
 
그녀의 말에 나는 홀리듯 그녀에게 키스했다. 땀이 있어서 찝찝할 법도 한데, 그녀는 내 목을 감싸 안아 주었다. 미안했다. 그녀의 몸에 내 땀을 묻히는 것이. 사정을 했는데도 여전히 짜릿하고 믿기지 않는 그 긴 키스 후에, 그녀가 입술을 떼고 내 볼을 부여 잡으며 내게 물었다. 
 
“너 정말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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