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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이어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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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놈]

생각할수록 사람의 감정은 신기했다.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으면서도, 나는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평소라면 절대 용기를 낼 수 없는 그 행동이 나왔다. 깍지를 낀 내 손등을 리즈가 엄지로 살살 문지르듯 쓰다듬었다. 
 
따지고 보면 일방 통행이었던 사랑이 이제 양방통행이 되었다는 것 밖에 변한 것은 없었다. 아 물론,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짝사랑이상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내 연애사가 리즈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혼자 뛰어 왔니?”
 
엘리베이터에 타서 객실 버튼을 눌렀을 때, 리즈가 내 왼쪽 가슴위에 손을 올리더니 웃으며 물었다. 그녀의 손바닥을 튕겨낼 기세로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부끄럽고 감추고 싶다기 보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 일까. 
 
우리의 객실은 5층이었고, 나는 둘만의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뒤에서 끌어 안았다. 그녀는 끌어 안은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짝 올려 나를 매만졌다. 나도 그녀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었다. 언제나 손 끝에 찌릿함을 선사하는 그 몰캉 거리는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리즈가 고개를 들어서 내 입에 입을 맞췄다. 그래 바로 그런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한 거야 라면서, 눈빛으로 무언의 칭찬을 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리즈는 그런 여자였다. 져 줄 때는 확실이 질 줄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그 부분을 고쳐서 쓸 줄 아는 사람. 
 
어라? 어떻게 여는 거더라? 입구에서 헤매는 나를 보더니 리즈가 카드를 쥔 내 손을 잡고 문고리 윗 부분에 가져다 대었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객실 문이 열렸고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즈는 가방을 놓고, 화장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켓을 벗었다. 벗은 자켓은 옷걸이에 걸어 비치되어 있던 작은 행거에 걸었다. 나는 마치 엄마따라 시장에 온 아이처럼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왜 이렇게 따라다녀?”
“내가 그랬나?”
“응. 이 방 들어온 순간부터 내 꽁무니에 붙어 있잖아.”
 
리즈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웃옷도 벗지 않고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키 차이가 조금 나는 우리가, 화장대 거울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비춰졌다. 미녀와 야수 혹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그런 단어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같이 씻으면 안돼?”
“좋아.”
 
내 말에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다닥 옷을 벗고 그녀의 탈의를 도왔다. 그녀의 브라 후크를 풀어 주거나, 그녀의 다리에 신겨진 스타킹을 내려주거나. 
 
“얘는 벌써 왜 이래?”
 
자신의 옆구리며 등을 쿡쿡 찌르는 존재감을 느꼈는지 그녀가 내 것을 움켜 쥐며 말했다. 동시에 벌겋게 달아오른 내 몸을 보더니 웃었다. 
 
샤워기로 나오는 따뜻한 물을 그녀의 몸에 뿌렸다. 하얀 피부위로 튕겨나오는 물방울과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수증기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보였지만, 그 틈으로 너무나 선명한 리즈의 알몸이 보인다. 바디샴푸를 그녀의 몸 곡선을 따라 거품을 내며 발라주었다. 리즈는 마치 그것을 애무로 느끼는 것처럼 눈을 감고 내 허리를 끌어 안았다. 보들보들, 미끌미끌 거리는 그녀의 몸이 내 몸을 미묘하게 비볐다. 나는 그녀를 부숴져라 끌어 안았다. 
 
“사랑해.”
 
좋아한다는 말 이상을, 나는 처음 그녀에게 했다. 리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등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아? 처음 말한 건데.”
“세상 모든 것이 꼭 말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미끌거리는 두 몸이 계속해서 밀착하고, 비벼지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들 정도의 흥분이었다. 그녀는 왜 나를 받아 주었을까? 따위의 의문이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들 겨를 조차 없었다. 다시 우리 몸 위로 샤워기 물이 뿌려졌고, 바디 워시가 씻겨 내려간 내 가슴에 리즈가 입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손을 뻗어 수건을 꺼내 그녀의 몸 위로 덮으며, 매우 서두르는 모션으로 그녀를 밖으로 이끌었다. 물기가 마르면서 오는 서늘함도 오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몸이 뜨거워져 있었고, 뜨거운 내 몸 덕분에 몸 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금새 증발해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서둘러 그녀를 침대로 이끌었다. 리즈는 오늘만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리드를 따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욱 더 용기가 솟아 올랐다. 
 
알몸의 우리는 침대에서 뒤엉켰다. 그녀는 내 허벅지 한 쪽을 자신의 다리사이에 넣고 살짝 조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목에 팔베개를 해 주었고 리즈는 내 볼을 매만지며 키스를 시작했다. 처음 하는 키스가 아닌데, 예전보다 더 그녀의 혀가 부드럽게 느껴졌다. 지난 번 과는 비교도 안되는 정열적인 키스였다. 
 
내 손은 자연스레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어떻게 이런 감촉이 나올 수 있을까 늘 감탄하던, 만지는 와중에도 만지고 싶다는 느낌을 받은 그녀의 가슴이 내 손에 의해 뭉그려지니 내 입술에 키스하던 그녀의 입가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우리의 섹스는 늘 그녀가 공격수였고 나는 그 공격에 쉽게 무너지는 수비수의 역할이었다. 물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이 나라고 할 지라도, 그건 그녀의 리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마음껏 공격해주기를 원했고, 절대 리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다리사이에 들어가 있던 내 허벅지가 조금씩 젖어드는 게 느껴졌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용기와 자신감이 생길 수가 있을까? 나를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리즈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정말이지 리즈는 온 몸이 성감대였다. 내 입술이 목에만 닿아도 그녀는 파르르 떨 듯이 몸을 꼬았다. 내 입안 가득 가슴을 물었을 때는 내 머리를 포옹하듯 끌어 안았다. 내 머리는 점점 밑으로 내려갔고 젖을 대로 젖어 있는 그녀의 다리사이에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누구에게도 애무를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남성 잡지의 섹스칼럼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그리고 리즈가 자신의 몸을 살살 틀어 이끄는 대로 갈 뿐이었다. 
 
리즈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몸짓과 반응으로 나를 가이드했다. 내 혀가 뜨거운 그 틈 사이를 훑고 지나갈 때, 그녀는 짧고 나즈막하게 신음했다. 내 머리칼을 움켜쥔 그녀의 손가락과, 내 머리를 조인 그녀의 허벅지에 힘이 더 심하게 들어갈 때쯤, 나는 그녀의 위로 올라와 이미 극도로 흥분해 있는 내 몸을 밀어 넣었다. 
 
하아……신기했다. 
 
짝사랑이던, 서로 좋아하는 사랑이던 사랑하는 것은 똑같은데,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하는 섹스는 1000배 더 흥분이 되고 좋았다. 예전과는 다른 그녀의 리액션과, 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예전 그녀의 리액션은 내 팔을 잡고 쓰다듬어 주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내 몸을 쉴 새 없이 만지며, 또 고개를 들어 내 젖꼭지를 핥아주기도 했다. 
 
우리는 섹스를 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단순히 손을 잡는 그 동작이, 예전과는 정말 다른 의미로 마음속에 들어왔다. 딱히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가 배를 붙이고 누웠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 위에 포개듯 엎드려, 이제 흥건하기 까지 한 그녀의 다리 사이로 내 것을 집어 넣었다. 정상적인 후배위와는 다른 이 자세를, 그녀와 나는 너무나 좋아했다. 침대보를 움켜쥔 그녀의 주먹 쥔 손을 감싸듯 잡고, 귓가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나는 그녀의 몸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하얗고 보드라운 그녀의 등 위로 내 입술이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 하얀 피부가 키스 마크로 여기 저기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등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흥분어린 신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신기해.”
 
그녀가 할딱 거리며 말했다. 나는 뭐가? 라고 묻지 않고,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깔아 뭉개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 덕분에 말 하기도 힘든 그녀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하는 섹스는……흑……더 예전보다 좋아……이상해.”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말에 더 흥분해 버린 내가 격하게 허리를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오자마자 하얀 궤적이 그녀의 붉게 물든 등 위로 흩뿌려졌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침대보쪽으로 거친 호흡을 하며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두 배나 더 많이 튀어 버린 내 흔적들을 닦아 주고는 그녀 옆에 나란히 누웠다. 예전의 리즈는 섹스가 끝나면 아주 잠시 누워 혼자만의 여운을 즐기곤 했었고, 그 때에는 손을 대지도 못하게 했었는데, 오늘은 나란히 누운 내 팔을 어루만져 주었다. 
 
‘예쁘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 거렸다. 조금 헝클어진 머릿결과, 늘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이 흥분으로 조금 흐릿하게 풀려 있는 그녀의 표정은 그냥 다른 형용사가 딱히 필요 없었다. 예쁘다는 말 이외에는 적당한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고, 그녀는 기꺼이 내 품에 안겨 주었다. 그녀의 입술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입을 맞췄다. 
 
“나도 사랑해.”
 
샤워실에서 했던 내 말에 대한 그 대답이, 절대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랑한다는 단어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까 몸에 찌릿하게 전율이 일었다. 마치 확인사살 당한 사람처럼.
 
나와 리즈는 연애를 시작했다. 
 
나 혼자 좋아할 때는 몰랐는데, 리즈는 정말 표현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은 완전 다른 모습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서로 바빠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사랑한다고 톡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작업을 하다가도 미친 놈처럼 피식피식 웃었다. 10초에 한 번씩 휴대폰을 보며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는, 휴대폰 속에 있는 리즈의 사진을 보며 마냥 웃기만 했다. 
 
언젠가 리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처럼 쭉 나를 좋아해줘. 나를 보면 긴장하는 그 모습도 너무 갑자기 편해지지 말아줘. 그리고 나 질투하게 하지 말아줘.”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말과 정반대로 좋아하는 마음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물론, 그녀가 질투를 할 법한 일은 내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귀엽게도 여자 뮤지션과 작업을 하면 그 여자 예쁘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고마워.”
“뭐가?”
“나랑 만나줘서.”
“그런 멍충이 같은 말 또 할 거에요?”
 
리즈는 나를 혼내듯이 말했지만,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리즈가 화를 내면 나는 또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다. 세상에 절대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을 잠시나마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말 헛점 단점 투성이였던 나는 리즈를 만나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갔다. 잃어 버린 자신감을 얻고, 음악이 아닌 다른 것에 내 열정과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내 편지 읽고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잖아.”
“응.”
“어떤 부분을 보고 흔들린 건데?”
 
그녀는 내 질문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너를 좋아하는 일 만큼은 자신 있어. 니가 좋은 이유는 하루 종일이라도 댈 수 있어. 라고 쓴 부분.”
 
물론 대답을 듣고 그 오글거리는 내용처럼 내 몸도 베베 꼬이며 후회를 하긴 했지만, 나는 정말 그 편지의 내용처럼 음악보다 더 자신 있는 일을 찾은 것만 같았다. 
 
창 밖을 보니 이제 곧 겨울이 올 것만 같았다. 창 틈새로 세어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 증거였다. 올해 겨울은 정말 추울 거라는 예보들이 종종 들려왔지만, 나는 여태까지 보냈던 그 어떤 겨울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이 들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살짝 가리고 있던 이불속으로 들어가, 뜨거운 내몸을 이불 대신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리즈는 화답하 듯 내 몸을 그 작은 몸으로 있는 힘껏 끌어 안았다. 
 
“고마워. 다이어리 흘려 줘서.”
 
리즈는 내 말에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안은 내 팔에도 입을 맞춰 주고는 말했다. 
 
“직접 가져다 줘서 고마워.”
 
나는 그녀의 머리결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손끝에서 부서지는 그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가져다 줄 때에는 절대 만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녀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너 때문에 나는 특별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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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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