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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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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1▶ http://goo.gl/57Ycp6
영화 <레드카펫> ㅣ내 첫 작품, 출시되다 내게 연락해오신 분은 바로 '에로계의 강우석'이라고 불리우던 클릭 엔터테인먼트의 이필립 감독이었다. (봉만대 감독은 에로계의 홍상수 혹은 김기덕이었다. 비교 대상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이필립 감독이 장르와 이야기에 충실한 정통 상업 영화를 만들었던 반면에 봉만대 감독은 자의식이 묻어 나는 작가주의 성향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제가 <신사동 이야기>를 너무 인상적으로 봤거든요. 언젠가 만들어야지 하고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연락드리게 됐네요. 혹시 지금 다른 일 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다른 일 없구요. 영화과 학생입니다." "그래요? 여기도 조감독 중에 D대 연영과 학생 한 명 있는데... 그럼 일단 사무실로 한번 오실래요?" "네?"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 "저야 뭐 아무 때나 좋습니다." "그럼 내일 모레 어떠세요?" "네.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사무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조금 쫄았다. 누군가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에로비디오는 제대로 못 만들면 제작자한테 맞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맞은 적은 없다. 아마 그 얘기가 헛소문이거나 내가 글을 잘 썼기 때문이겠지.) 초조함과 설레임 속에서 며칠을 보낸 뒤 클릭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찾아갔다. 사무실은 청담동 신선 설농탕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는데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커다란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건물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씩씩하게 사무실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이필립 감독과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필립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필립 감독의 첫인상은 아주 다이나믹한 야전 체질 그 자체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본만 있으면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뛰어 나가 영화를 찍어올 준비가 돼 있는 느낌이었다. "시나리오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운 것 같애. 패러디도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대중상업영화 패러디가 대세였던 에로비디오 세계에서, <중경삼림>이라는 예술영화를 한국적 에로비디오로 풀어낸, 스스로를 혜성처럼 나타난 대단한 시나리오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역 최고의 에로 감독에게 이런저런 지적을 당하고 보니 서서히 착각에서 깨어났다.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분간 에로 업계의 제작 여건, 그리고 최종 수정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베드씬 몇 개만 더 넣어주시고요. 너무 노골적인 패러디는 수정해주시고 좀 밝은 느낌으로 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런 건 심의에서 걸리거든요? 일단..." 한 마디로 등장인물들이 섹스하면서 너무 괴로워하기만 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왜 섹스를 하면서 괴로워했던 걸까? 아마도 내가 작가주의의 헛바람이 들어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 데 한국 에로비디오가 일본 성인물보다 재미가 없는 이유는 감독들의 재능이나 제작 노하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영등위의 심의 때문이었다. 에로비디오 심의 기준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닌가! 만약 김기덕 감독이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니라 에로비디오를 만들었다면 작품은 출시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등위의 강력한 심의 기준 때문에 일본 본토의 우수한 성인 영상물들이 합법적으로는 수입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한국 에로비디오 시장이 치열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보호 육성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다운 받는 행위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었다.) 현역 최고의 에로비디오 감독에게 시나리오 작법과 영상물등급심의 위원회의 심의 기준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방에 틀어박혀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부기 나이트>에서 주인공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자신의 재능을 유명한 포르노 감독에게 인정받은 후 집을 뛰쳐나와 업계로 투신하는 장면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때가 2002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할 무렵 나는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만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었다. 비디오만 출시되면 세상이 한 번 뒤집어진 후 엄청난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망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몇 번인가 수정 작업을 거친 후 마침내 최종 수정본이 통과되었다.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 中 1. 원룸 앞 (실외/밤) 신사동 원룸 거리. 성훈, 으슥한 골목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원룸 출입구를 노려 보고 있다. (나레이션) 성훈: 매일 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때때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성훈, 손목 시계를 본다. (나레이션) 성훈: 2002년 6월 2일 9시. 신사동. 그녀의 원룸 앞.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난 반드시 그녀를 갖고 말 것이다. 으슥한 골목에서 원룸 출입구를 노려보며 다 피운 담배 꽁초를 던진다. 꽁초, 육감적인 몸매를 흰색 투 피스 정장 스커트로 감싼 혜연의 발 아래로 굴러간다. 혜연, 걸어가다가 발 아래로 굴러 온 꽁초를 하이힐로 지긋이 밟아 준 후 미소를 지으며 계속 걸어간다. (나레이션) 성훈: 우리는 무척 가까이 있었다. 5시간 후 나는 이 여자와 섹스를 한다. 13. 편의점 앞 (실외/밤)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 가지고 나오는 성훈. 민희, 콘돔에 바코드 기계를 대며 살짝 얼굴을 찌푸린다. (나레이션) 성훈: 드디어 100개째 콘돔을 샀다. 그리고 6월 3일 0시 1분. 지금 알았다. 민정에게 나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라는 것을...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는 노래가 있다. 내 심정이 그렇다. 어떻게 잊지? 그래. 100명의 여자와 자는 거야. 18. 신사동 거리 (실외/새벽) 성훈, 쌀쌀한 새벽 공기가 추운 듯 팔짱을 꽉 낀 채 천천히 걷는다. (나레이션) 성훈: 이번엔 오래 했다. 난 조루가 아니다. 하지만 몸 안의 정액이 아직 덜 빠졌다. 기분이 그리 썩 좋진 않다. 역시 이 남은 정액을 빼 줄 수 있는 여자는 민정이밖에 없다. 39. 편의점 (실내/밤) 승완, 다시 구석으로 와서 맥주를 마시며 민정이 승완에게 남긴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나레이션) 승완: 그녀는 편지와 함께 섹스 티켓을 한 장 주었다. 시간은 1년 후, 장소는 안 보인다. 45. 편의점 (실내/저녁) 승완, 혼자 편의점 물품을 나르고 정리하고 분류하며 바쁘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 온다. 약간 촌스러웠던 민희, 세련된 숙녀로 변해 있다. 승완: 니가 올 줄 알고 있었어. 민희: 빚 갚으러 왔어요. 승완: 괜찮아. 너만 있으면 돼. 민희: 지난 번엔 고마웠어요. 승완: 물어 볼 게 있는데... 승완, 주머니에서 민희가 승완에게 남긴 편지를 꺼내 보여준다. 승완: 이런 티켓으로도 섹스를 할 수 있니? 시간은 오늘이고 장소는 알 수 없는데... 민희, 승완의 티켓을 자세히 본다. 민희: 이런 티켓으론 섹스를 할 수 없어요. 유효기간이 지났거든요... 민희, 승완의 티켓을 받아 찢어 버린 후 핸드백에서 비디오 테잎 하나와 수표 몇 장을 꺼내 카운터 위에 놓는다. 민희: 또 놀러올께요. 민희, 가게에서 나간다 - "아 참 이름 따로 생각해 두신 거 있으세요?" "이름요?" 대부분의 에로비디오 감독들과 스텝, 배우들은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렇게 한다기에 나도 별 생각없이 대충 아무거나 불러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 없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정말 별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이라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최종 수정본을 넘긴 후 당연히 촬영 현장에 구경 오라는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기대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는데 며칠 뒤 촬영 끝났으니 원고료 입금할 계좌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촬영은 2박 3일만에 끝냈다고 했다. 조금 놀랐다. 1년 전에 연출부로 참여했던 작품은 영화사 출근한 날부터 촬영 끝날 때까지 7개월 정도가 걸렸고 촬영 끝난 지 반 년이 지난 그때까지 아직 개봉 날짜조차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2년 뒤 개봉했다.) 반면에 에로비디오는 몇 시간만에 쓴 시나리오가 일주일 만에 촬영을 마치고 출시까지 하다니...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 스피드와 기동성에 완전히 매혹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나의 상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영상화 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어영부영 계좌번호를 불러준 후 내 이름을 걸고 출시된 비디오가 전시되어 있는 장면을 보기 위해 동네 비디오 대여점으로 달려갔다. ㅣ다시, 시작 '지중해'의 섹스는 그다지 즐겁지 않으며 언제나 그 안엔 결핍이 존재한다. 이건 에로영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분명히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중경삼림’을 인용하고 있는 이 영화는 수많은 내레이션이 흐르고, 영화 중간에 화자가 바뀌며(금성무에서 양조위로 넘어가듯), 편의점의 민희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지중해’라는 단란주점으로 떠난다. 남자2는 그녀의 기억을 간직하려는 듯 편의점에 취직하고, 민희는 잠깐이지만 편의점으로 돌아온다. 영화의 인물들은 인터넷과 캠코더를 통해 건조한 관계를 맺고, 예기치 못한 공간에서 스친다. 그리고 금방 잊어진다. '지중해'는 에로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육체관계의 허무함을 전한다. '40명의 여자'를 계획했던 남자1의 야망은 엄마 뻘되는 아줌마와의 옥상 섹스로 귀결된다. 유부녀 혜연은 여전히 채팅에 열중하는 듯한데, 여기에 첫 장면이 겹치면서 영화는 한 번 더 뒤틀린다. 레즈비언 섹스의 도입부와 서로 엉킨 혜연과 지현의 육체. 그러면서 그녀들은 각자 또 다른 섹스 파트너를 찾아 나섰던 셈이다. 그리고 남자2는 캠코더에 담긴 그녀들과의 섹스장면을 보며 자위한다(이 장면은 비누와 대화하던 양조위를 연상시킨다). 만약 당신 또한 이 영화를 보며 에로티시즘에 빠진다면, 당신은 그들만큼이나 외로운 게 틀림없다. 어쩌면 당신은, 에로비디오라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셈이다. - 김형석 에로비디오 애널리스트 고독은 섹스만큼이나 퇴폐적이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은 등장인물들의 외로움을 감각적인 화면 속에 가두면서 퇴폐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는데,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는 왕자웨이 감독의 스타일을 뒤따르며 그 퇴폐적인 분위기를 에로비디오 버전으로 탈바꿈시켰다. 감독('이필립 투'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이필립'이라는 감독도 있는데 둘이 어떤 관계인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은 캠코더와 인터넷, 현대를 대표하는 두 문명의 이기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의 섹스는 건조하다. 고독이 자아내는 건조함은 에로비디오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덧붙이자면 놀랍게도 유부녀 혜연과 민희는 레즈비언 연인 사이이며, 제목에서 말했듯 민희는 지중해로 떠난다. 단란주점 '지중해'로. - 김유준 영화 칼럼니스트 신작 진열대에 최신 헐리웃 여름용 블록버스터 작품들 옆에 당당하게 꽂혀 있던 <그녀는 떠났다. 지중해로...>의 이미지와 어느 일간지에 올라왔던 비디오 리뷰 기사를 처음 읽었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에로비디오 데뷔작 자켓 모델은 에로계의 검은별 은빛이었다. 그 전까지는 하소연 팬이었는데 그 날 이후 은빛을 더 좋아하고 있다. 두어 시간 투자해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들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판매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다음 작품으로는 워킹 타이틀의 <노팅힐> 패러디를 시도했다. 제목은 <내 애인은 에로 스타>. 에로 스타와 비디오 알바생의 사랑 이야기. 이걸 쓰면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신나게 시나리오를 써서 보냈더니 아이디어는 좋은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바로 봉만대 감독의 디지털 비디오의 내용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컨셉이 똑같았다.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한 후 이번에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다음 작품인 <타락천사> 패러디를 시도했다. <중경삼림>으로 재미를 봤으니 <타락천사> 패러디도 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 좋은데 제작비가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 힘들겠다고 했다. 연이은 헛스윙으로 잠깐 좌절하다가 다시 몇 편의 시나리오를 써서 보냈는데 역시나 계속해서 거절을 당했다. 역시 남의 돈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로비디오 작가로 데뷔하긴 했다만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또 다시 막막해졌다. 에로비디오 작가로 데뷔하기만 하면 바로 감독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되는 거절에 지쳐 포기하니까 '잠 자는 개에게 햇빛은 비추지 않는다'는 말처럼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오질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예전처럼 고시 준비하듯 공모전을 준비하고 단편소설을 끄적이며 허무하게 시간을 소비하던 중 친하게 지내던 독립영화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1년 전 <정액의 힘>이란 단편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 데 그 작품을 계기로 친해진 감독님이었다. "나야. 신 감독." "아, 안녕하세요?" "요즘 뭐해?" "그냥 학교 다니고 놀아요." "에로 조감독 한번 해 볼래?" "네? 하하! 그게 좀..." "그냥 해봐. 뭐 어때? 재밌잖아." 그랬다. 재밌을 것 같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생활이 지겨웠고 무엇보다 현장의 열기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물론 여배우 나체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감사합니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나의 에로비디오 조감독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어떻게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나 3▶ http://goo.gl/406yzU 글쓴이ㅣ에로영진공 위원 최경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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