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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여, 욕망의 주체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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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떤 이가 섹스는 철저히 '생식'을 위한 행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천연기념물'에 봉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유분방한 성행위가 부도덕하다는 것을 설파하기 위해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효과적인 피임법'을 이야기해줄 것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성'을 즐거운 쾌락의 영역으로 사고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쾌락으로써의 성을 여성동지들 역시도 당당히 누리고 있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피임기록은 무엇일까? 

아마도 구약성서의 창세기 제 38장 8절에서 10절에 등장하는 오난의 질외사정일 것이다. 

질외사정이란 성교중 사정하기 직전에 페니스를 질에서 빼내어 질 밖에다 사정함으로써 임신을 피하는 피임방법이다. (물론 지금이야 질외사정법의 실패율과 그 비과학성 때문에 이것을 피임의 한 방법이라 사고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때는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였었던 만큼, 당시에는 분명 나름의 훌륭한 피임법이었을 게다.) 
 
이런 게 있었을 리가 없잖어?

어째뜬, 오난은 형이 죽은 후 형수와 함께 살면서 바로 이 질외사정법을 사용해 형의 후계를 없도록 하였다. 이를 본 하느님은 그의 행위에 분노했고 그 때문에 그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고 한다. 오난은 피임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최초의 피임 순교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오난이 죽은 진짜 이유는 피임이 아닌 유태의 결혼 관습, 즉 죽은 형의 후세를 이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같은 질외사정법이라는 피임의 시도 조차도 중세에 접어들면서 적극적으로 금지되었다.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있었던 중세 유럽은 피임에 관한한 절대적인 암흑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유럽이 피임에 대한 암흑기를 벗어나게 된 것은 자유분방한 프랑스인들에 의해서 였다. 
 
프랑스인 프란도음(1540-1614)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질 안에 사정하지 않는다면, 상대 남성과 즐길 수 있다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울러, 1655년에는 레고르 데 휘니의 [처녀학교]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 스잔나는 사정하기 직전에 페니스를 빼는 조건으로 남자와의 성행위를 즐기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듯,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질외사정법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으며, 이는 프랑스 국민들이 섹스의 목적을 '생식'뿐만 아니라 '쾌락'에도 있음을 인정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프랑스인들의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이 늘 순탄하기만 했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1968년도 당시의 학생운동

후세에 '68운동'이라 부르는 근대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이 68운동의 시작은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68운동의 시위 모습
 
파리대학 낭테르의 여학생 회관은 전통적으로 남자출입금지구역이었다. 그게 시대착오적이라면서 약 60명의 남자 학생들이 여학생 회관에 두 번이나 진입하였고, 여학생들은 이를 지지하였다. 물론 이들은 경찰에 포위되었다. 
 
신문은 '어리광 부리는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 '철없는' 학생들은 낡은 성의식에 분노하며, 파리 구석구석을,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한다!' '낡은 세계는 너희들의 등뒤로 사라진다!' 라는 슬로건들로 거리를 도배했다. 그리고 이에 지식인들, 노동자들도 합세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68년 5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당시 철학자 글뤽스만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이른바 좌익 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에의 이의신청이었다.' 라고.

학생들은 소르본느 대학을 점거했고, 노동자들이 동조하는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 '내가 곧 프랑스' 라고 했던 고압적인 드골 대통령은 자신의 신임을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한 결과, 권좌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렇듯, 68운동은 경제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래된 사회적 규율과 관습에 얽매어 있었던 당시 드골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고, 그리고, 그 시작은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사소한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였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이들이 프랑스의 68운동이 가지는 의의나 당시 68운동의 동력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68운동 이후, 프랑스의 잔존해있던 고압적인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억압적인 성 인식, 그리고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후에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했는가? 
 
60년 4.19 혁명, 80년 5.18 광주혁명, 87년 6월 항쟁까지 정권의 부도덕성과 낡은 사회구조에 대해 당시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의 68 운동처럼 낡은 사회통념이나 성의식, 그리고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통과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좀더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우선되었고, 기형적인 독재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먼저였을테니 당시로서는 현명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이었고 투쟁적이었던 학생운동은 도덕적 경직성을 내부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부터 정당성을 담보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 그 치열했던 운동의 결과로, 우리는 합리적인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으며, 더 이상 힘이나 총칼에 의해 권력을 찬탈하거나 표면적으로 국민을 억압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성의 영역은 단 한번의 이의 제기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사회,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은 임신으로부터 우리를 상당부분 자유롭게 했으며, 외국의 성문화 유입은 '성'에 대한 자유를 가속시키는데 상당부분 일조했다. 

이제, 사람들은 서서히 '성'을 '결혼'과 '생식'이라는 등호에서 떼어내어, 즐거운 쾌락의 영역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으며, 무릇 표면적으로는 우리 사회도 이제 '쾌락'으로써의 성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자유일 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성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성에 대한 과거 가치관의 잔재는 유독 여성에게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스티스에 대한 보건 검사까지 실시하면서 호스트바를 풍기문란이라며 규제하는 것이 그 중 하나며, 응급피임약이 여성들의 성적 문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기성세대들의 히스테리적인 거부 반응이 그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조까!!

 
옛날 오양이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에, 오히려 상대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책을 쓰고 성인방송의 진행자가 될 수 있었던 해괴한 현실, 백양은 가수생활에 엄청난 타격을 입어야했던 반면 그녀와의 성행위를 비디오로 찍은 당사자 매니저와 소속사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던 기이한 상황, 황수정 마약 복용 사건에서 보여지듯 '최음제'로 대변되는 여성의 욕망에 대한 거센 돌팔매질이 또한 그 예 중의 하나이다.
 
이렇듯, 여전히 한국사회는 여성을 주타겟으로 하여, 우리의 성적 욕망과 성행위에 관한 공포와 수치심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으며,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단죄하는 '관리'를 통해 기존의 낡은 가치관과 성윤리, 가부장적 권위를 유지해나가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정말 수치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성행위' 자체가 아니라, 가장 개인적인 '성’에 있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인 스스로 포기하는 일, 그것이다.
 
나의 몸과 나의 욕망과 나의 가치관이 집약되어있는 ‘성’에 있어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요구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정해놓은 사회통념과 그에 따른 타인의 시선에 의해 행동해야 함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강간이나 성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언급되는 결정권이 아니라, 전반적인 성에 대한 순수한 자기결정권, 사회통념도 아닌, 타인의 시선도 아닌, 순수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섹스하고픈가, 아닌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지 열혈 페미니스트들의 구호가 아니더라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에 본 우원은 적극 동의한다. 길거리에 플랭카드를 들고나와 구호를 외치는 것 만이 '정치'는 아니다. 

나 개인의 욕망과 욕구에 충실했을 때 부딪히는 불협화음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일 조차도 사실은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액션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동지들은 더더욱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그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아울러 당당히 자신이 성적 존재이자 주체임을 즐겨야 한다.

아울러, 프랑스의 68운동이 증명해주었듯이,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나설 때, 불합리하고 부당한 사회구조는 그제서야 변하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자신의 저서, '성의 역사'를 통해, '신체가 권력의 시발점인 동시에 저항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명시한 바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젊은이들이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물론, 여성동지들의 사회적인 열세를 '성'만으로 전복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성'은 엿 같은 세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그리고 가장 즐거운 전복의 수단일 수 있다. 

성과 관련된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규범 자체를 거부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나설 때, 비로소 여성 스스로의 진정한 자유가 모색되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진정한 오르가즘을 맛볼 수 있는 축복받은 존재, 여성으로서의 행복한 삶의 길이라 믿는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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