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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의 그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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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화유기]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그 며칠동안, 이상하게 나는 집에 갈 때마다 Jazz를 기웃거렸다. 역시 한국에서 오픈빨은 무시할 수가 없다. 단 Jazz만 빼고. 
 
그 자리에 지박령이라도 있는지, 정말 더럽게 장사가 안되는 집이었다.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많아야 한 팀이거나 알바생 그녀가 텅 빈 홀에서 핸드폰을 보거나하는 광경들만 목격될 뿐이었다. 지나갈 때마다 힐끔 거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나는 결국 두번째로 Jazz를 방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역시나 손님이 없었으며 응대하는 알바생도 없었다. 마치 데자뷰인가 아니면 컨셉인가. 지금까지 이런 호프집은 없었다 뭐 이런 건 지. 첫 번째 방문과 똑같이 사장님은 내가 들어온 지 한 참 지나고 나서야 고무장갑을 낀 채로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나를 맞이했다. 
 
“혼자 오셨어요?”
“네.”
“뭐 드릴까?”
 
지난 번에 오돌뼈를 먹었으니 다른 것을 먹고 싶었다. 역시나 억소리나게 많은 메뉴를 보며 이번에는 “알탕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 소름 끼치도록 첫 번째 방문과 똑같이, 내가 혼자 자작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들어왔다. 그 때와 옷차림만 다를 뿐 역시나 손목에 있는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나를 힐끔 보고, 주방 쪽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너 왜 이제와?”
“버스가 늦게 와서요.”
 
역시나 지난번과 소름 끼치도록 같은 핀잔과 핑계에 이거 설마 내 몰카인가?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이런 영화처럼 같은 하루가 지속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잠시 핸드폰 날짜를 확인했다. 
 
그녀, 하진은 점퍼를 벗고 앞치마를 허리에 메었다. 팔을 들면서 티셔츠가 살짝 올라가며, 햐얗고 잘록한 허리라인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 맨날 와야지. 
 
주문한 알탕은 저번의 오돌뼈보다는 빨리 나왔다. 한 숟갈 떠먹어 보니, 이것은 이런 호프집에 있어야 할 맛이 아니었다. 한식대첩 나가서 심사위원 절대미각 할머니에게 따봉 받을 맛이었다. 
 
‘도대체 저 사장님의 정체는 뭘까.’
 
이런 요리 실력으로 왜 호프집을 하실까 하는 궁금증보다 사실 저 쪽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저 여자가 더 궁금하긴 하다. 오늘은 그 때와는 달리, 내가 한 창 마시고 있을 때 남자 둘이 와서 다른 테이블을 채웠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았고, 또 술과 안주를 서빙했다.

딱 봐도 그 남자들도 힐끔거리며 그녀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아 그래도 내가 쟤들보다는 낫지 이러면서 핸드폰 액정에 나를 비춰봤는데 눈곱 큰 게 하나 있다. 젠장. 결국 난 그 날도 그녀에게 말을 못 붙이고 그냥 액정만 보는 그녀를 힐끔힐끔 보다가 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첫째날은 그냥 이런 예쁜 알바생이 있구나. 정도 였는데, 둘째날도 가서 술을 마시면서 그녀를 보고 온 뒤로는 뭔가 모를 도전 정신이 생겨 버렸다. 
 
나는 결국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집-회사-Jazz에서 혼술-집의 루틴을 지키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나는 갈 때마다 매번 다른 안주를 주문했고, 몇 번 다니다 보니 그녀, 하진은 매일 밤 8시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랜덤으로 쉬는 듯했다. 자주 가다 보니 그녀는 이제 살짝 웃으며 눈인사를 해주었고 나는 여기 있는 안주 다 먹어보려구요 라고 하면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매일 오는 이유를 해명했다. 
 
그 날도 홀에는 나 혼자였고, 이번에도 왜 맛있는지 이해가 안되는 김치찌개를 안주삼아 평소 루틴대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조용한 홀에는 Jazz라는 가게 분위기와 전혀 안 어울리는 사장님이 튼 것으로 추정되는 최백호 형님의 낭만에 대하여가 흘러나왔고, 하진은 평소처럼 핸드폰을 만지며 알바중이었다. 그날따라 치마를 입어서 내 눈에 자꾸 아른거리는 그녀의 하얀 다리를 힐끔 거리며 보다가, 이대로 가면 그녀와 친해지기 전에 간경화가 올 것 같은 마음에 뭐 라도 말을 걸어서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밀려왔다. 
 
“오늘 날씨 좋네요.”
 
에라 모르겠다하고 내가 뱉은 말이었다. 하진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이윽고 밖에서 부는 강풍 때문에 흔들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이 날씨가요?”
 
순간 왜 하필 날씨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나는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술 마시기 좋은 날씨 잖아요.”
“매일 술 마시면 속 안 아파요?”
 
아프지 않아요. 당신의 눈망울을 안주 삼았으니까 라고 말하면 토하겠지?
 
“한 병 씩인데요 뭐.”
“내일은 무슨 안주 드실거에요?”
 
그래도 몇 번 봤다고, 그녀의 얼굴에 무뚝뚝함이 사라진 것 같다. 나는 슬쩍 메뉴판을 보고는 ‘홍합탕이요’ 라고 대답했고 그녀가 웃었다. 
 
“학생이에요?”
“아니요. 취준생.”
“그렇구나.”
“아저씨는 회사원이에요?”
 
아저씨라는 말에 욱했으나 왠지 욱하면 지는 것 같아서 침착하게 말했다. 
 
“아. 네. 회사 다녀요.”
 
근데 몇 살? 이라고 물어보면 진짜 아저씨 같을 듯해서 나는 어색한 침묵이 오기 전에 재빨리 물었다. 
 
“손님 많지 않아서 심심하겠어요.”
“네 좀 속상하네요.”
“알바생 입장에서 장사 안되면 편하지 않아요?”
“그래도 돈 받기가 미안하잖아요.”
 
오. 외모와는 달리 굉장히 속이 깊은 아가씨네. 그럼 좀 친절하게 대해라. 
 
나는 출입문 앞 쪽 자리에 앉고, 그녀는 주방 쪽 테이블에 기대어 서로 가벼운 대화를 하는 모습이 쭉 이어졌다. 그래! 잘했어. 역시 말을 걸어야 친해지는 거야.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매일 밤에 일하면 남자친구가 걱정하겠어요.”
“남자친구 없는데요?”
“굿.”
“네?”
“아닙니다.”
 
나는 또 히죽거리면서 술잔을 비웠고, 하진은 그런 나를 보더니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자신의 앞에 있는 물컵의 물을 마셨다. 
 
“맥주라도 하실래요? 제가 살게요.”
“아뇨. 저는 술을 안 좋아해서.”
“아아 그래요?”
 
술을 안 좋아하는데 호프집 알바라니. 아, 뭐 상관없나? 하긴 남자가 브레지어 팔 수 도 있는 거니까. 상관은 없지. 
 
“그럼 콜라?”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그냥 응대에서 느꼈던 것과는 달리 제법 상냥하고 싹싹한 면도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에서 도대체 뭘 하는 지 알 수 없는 사장님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덕분에, 나와 하진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내가 쏜 콜라를 홀짝이며, 나는 내 앞에 있는 소주를 홀짝이면서, 그렇게 단골손님과 알바생의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왠지 술을 더 마시면 근데 가슴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라고 물을 것 같아서 나는 오늘의 메뉴인 알탕과 소주 한 병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도 오시나요?”
“네. 아까 홍합탕 예약했잖아요. 하진 씨는 내일 출근해요?”
“응? 제 이름 어떻게 아세요?”
“단골이잖아요.”
 
내 말에 그녀는 베시시 하고 웃었다. 아 심쿵. 웰시코기의 버둥거림을 본 것 같은 심장폭격. 
 
“그럼 내일 또 오세요.”
“네. 내일 봐요.”
 
여태까지와는 달리 싹싹하게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손에 쥔 서류가방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싸다구를 날리는 강풍을 뚫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아 내일은 더 그녀랑 친해져야지. 
벌써부터 기대돼서 
 
정말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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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늘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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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홀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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