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검열위] 영등위, 검열 사실 자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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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2002년 8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앞으로도 노골적인 오럴섹스나 성기 노출 장면이 있을 경우에는 일반인의 보편적 정서를 기준으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영화등급분류위원 조문진 감독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등급분류에 있어 창작의 자유와 감독의 독창성을 보장하되, 상식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한 공익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유수열 위원의 말이다. 이처럼 상식/정서/공익을 매우 좋아하시는 우리 우원님들의 덕분에 <죽어도 좋아>는 그들의 말대로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 영화로 판정되었다. 개봉을 안 했으니 알 턱이 있나.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이 영화가 우리 정서에 안 맞고, 공익성도 없나보지 뭐. 그래서 제한상영가라는 사실상 상영금지조치를 내린 거겠지. 이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죽어도 좋아>에 대한 영등위의 심의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다. 왜냐면 울나라 등급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처럼 나이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서와 상식을 중히 여기는 이들의 심의가 합당한 것이라면 울나라 등급은 보편적 정서보유자 관람가, 비상식적인 자 관람불가 따위로 구별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다시 말하자면 이 등급이란 것은 사회적 자아가 길러지지 않은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는데 적당한 법적 나이를 따지는 일이라는 거다. 따라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란 곳은 그 영화를 관람하는데 필요한 법적 나이만 따지는 곳이지 그 영화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와 상식과 공익성 따위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걔네들한테는 그런 권리가 없다. 일반 성인의 정서에 나쁜 영화라면 나쁜 대로, 비상식적인 영화라면 비상식적인대로 성인에게 공개되어져야 한다. 그 영화가 나쁘다거나 좋다는 판단은 성인이 한다. 그게 바로 성인이며, 그런 판단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등급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네가 대체 뭐길래 일반 성인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려 한단 말인가. 어떻게 근대화된 시민사회에서 표현된 창작물을 정서나 상식, 공익성 따위로 미리 재단하려 든단 말인가. 영화진흥법 어딜 보아도 영등위가 성인의 판단을 대신하여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구절은 없다. 또한 그런 일반인의 정서와 상식이라는 기준이 과연 정확하게 일반인의 정서와 상식일 수 있을까? 웃기는 소리다. 그 정서와 상식은 대개 심의위원들의 정서와 상식이며, 국가권력의 정서와 상식일 따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정서와 상식과 공익성 때문에 그간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수입이 불허되거나 개봉을 할 수 없었다. 늙으막한 영등위 양반들 잘 아는 예를 들어보자. 1965년 검찰은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7인의 여포로>의 감독 이만희를 구속했다. 죄목은 반공법 위반이었다. 그런데 반공법 역시 명목상은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반국가 활동을 제재키 위한 법률이었다. 명목은 공익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 공익이 누구를 위한 공익이었을까? 반공법이 폐지된 지금에 와서는 당시의 그 공익이 누구를 위한 공익이었는지 다 뽀록났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물어보자. 영등위에서 그토록 주장하는 정서와 상식과 공익은 누구를 위한, 누구의 정서와 상식과 공익인가?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헌법은 국민의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예술의 자유는 헌법 뽀대나라구 구색으로 낑궈넣은 게 아니다. 모든 창작물은 맘껏 표현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했을 때 그것은 예술에 대한 탄압을 넘어 인권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어떤 창작물에 대한 정서와 상식상의 판단은 그걸 누리고 사는 국민이 하는 일이다. 물론 사법 기관도 가끔 지조뙈로 판단하기도 한다. 형법상에 음란죄가 명시돼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창작물이 유통된 후의 문제다. 그런데 창작물이 유통되기도 전에 미리 국가권력이 정서나 상식의 잣대로 창작물을 재단한다면 그걸 바로 '검열'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어떤 창작물을 못 보게 하는 것만이 검열이 아니라, 어떤 창작물에 대해 정서나 상식 따위의 잣대를 미리 들이밀어 이건 정서에 맞고, 저건 상식에 안 맞고를 따지는 그 자체가 곧 검열인 거다. 그런데 이 포부도 용감하게 무식해 버리신 영등위 양반들이 <죽어도 좋아>를 바로 그런 정서와 상식과 공익성이라는 기준을 들이밀어 심의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영등위가 이 영화에 대해 검열을 했다고 자백해 버리신 거다. 그렇다면 이게 제대로 된 심의인가? 씨바!!! 게다가 이 양반들 자기네가 검열하는 것도 귀찮은 모양이다. 그래서 조문진 위원은 이렇게 떠든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무모한 자유,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는 자유, 남에게 위해를 주는 자유가 아니다. 연출자의 마음 속에 각자 양심적 자율심의위원을 하나씩 두는 셈이다.' 양심적 자율심의위원? 다른 말로 고치면 작품을 만들면서 스스로 자기검열까지 하라는 소리다. '이 정도 노출은 영등위에서 통과못할 거야', '이 정도 폭력은 괜찮을 거야'하면서 창작자 스스로 검열하란다. 돈받고 하는 검열도 귀찮은지 이젠 아예 검열을 해갖구 오라는 거다. 한국 영화진흥을 위해 자유롭게 창작하는 풍토를 만들어주기는커녕 눈치보며 창작하는 풍토를 만들고 자빠졌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김수용 위원장은 한 술 더 뜬다. '성기가 나오니 포르노그라피다. 이 영화 전체를 완전 포르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기가 나오고 구강성교가 나오니 포르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어마어마한 무식이다. 이 영화가 포르노다, 아니다를 떠나 영화가 상영되기도 전에 강제적인 심의기관의 짱이 그 영화를 포르노라고 규정해 놓고서는 그걸 당연하다는 듯 떠들어대는 이 착각 자체가 곧 무식이다. 어느 누구도, 어떤 법조항도 영등위한테 포르노인 영화와 포르노가 아닌 영화를 구별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럴 권리도 없다. 모든 창작물에 이같은 논리가 적용되는 세상을 떠올려보자. 소설, 음악, 그림, 만화 등이 출판/전시되기 전에 특정 국가기관에서 그 창작물에 대해 미리 딱지를 붙인다. 이건 포르노 사진이고, 저건 빨갱이 영화고, 고건 반체제 소설이고... 그래서 이 포로노 사진은 저 귀퉁이에서만 전시하고, 저 빨갱이 영화는 경찰입회하에서만 개봉하며, 반체제 소설은 출판하면 안된다고 미리 결정되어진다. 이게 과연 자유로운 세상이며,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어지는 사회이며, 국민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영등위 위원장이라는 양반이 개봉도 하기 전 영화에 대해 자기가 미리 '포르노'라고 딱지를 붙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뻔뻔함과 무식함을 쪽팔려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떠들어대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하건대 영등위는 이게 포르노고, 저게 정서에 맞고, 그게 상식적이며, 고게 공익성이 있는지를 따지는 곳이 아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탄압이다. 국민이 시를 써서 출간하려고 하는데 그게 국민 정서에 맞고, 상식적이며, 공익성이 있는지를 국가가 먼저 보고 따지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이냐 말이다. 그런데도 심의위원 양반들은 지금껏 그 짓을 하고 있었다고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관람가능한 법적 나이만 따지는 줄 알았던 영등위가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을 쥐고서 지금껏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좋다. 백만번 이백만번 양보한다 치자. 그렇다면 이 영등위 양반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와 같은 정서나 상식의 문제를 어떻게 재단하겠다는 것일까? 조문진 위원의 그 답이 또 걸작이시다. '심의 규정의 '기계적 적용'이라고 비판하지만,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적용해야지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그렇다. 기계적으로 적용하시겠단다. <친구>가 사시미 40번 찌르고 18세이상 관람가를 받았으니 울나라 성인의 사시미 정서는 40방이란 거다. 앞으로 45번 찌르는 영화가 나온다면 제한상영가 등급일 테고, 35번 찌르는 영화가 나온다면 15세이상 관람가되겠다. 예전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은 따발총 40방 맞고 15세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고로 영화제작자들은 외워 두시라. 울나라 15세이상의 따발총 정서는 40방이다. 이 계획이 성사된다면 앞으로 심의위원은 영화계 인사들이 할 필요도 없이 측량학자들이 하면 된다. 초시계, 줄자 들고 심의실에 들어가 빠굴씬 지속시간, 자지 대 화면 비율 따위를 측량해서 심의하면 오케이다. 이처럼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심의가 어딨겠는가. 슬프지만 이게 바로 우리 심의위원 양반들의 의식수준이다. '조명을 어둡게 해서 암시만 한다든가 하는 여과 장치는 애초부터 안보인다. 이를테면 정면승부요, 이보다 더 노골적일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제한관람가 등급 의견을 낸 것은 이불 속에서 한다든지 어떻게든 상징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는데 굳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문제의 장면은 간접표현을 하거나 삭제를 해도 이야기의 줄거리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문제의 장면을 좀 더 어둡고 아름답게 찍었다면 난 분명 18세 이상가로 통과시켰을 것이다.' 이 역시 김수용 위원장을 포함한 심의위원들의 말이다. 70년대 빠굴영화들처럼 모닥불, 파도, 폭포 따위로 은유적으로 표현해서 여과할 수 있었던 것들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돌려 말하자면 감독 꼴리는대로 자유롭게 표현하지 말라는 썰이다. 그런데 이왕 여과할 거면 화면만 여과해서 되겠나. 영화 속 대사도 여과해야지. 이 영화 <죽어도 좋아>의 빠굴씬 중에는 흥분한 나머지 새어나오는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나 죽네', '젖 빨아줘'와 같은 대사가 있다. 이거 천박하고 상스러워서 어디 되겠냐? '소인 사망하겠습니다, 소인 사망하겠습니다' 또는 '유방을 흡입해주십시요'로 여과해야지. 그런데 이처럼 여과된 대사와 화면으로 영화 만들어 놓으면.... 그 영화 꼬라지 참도 재밌겠다. 씨바!!! 덧붙여 영화 <죽어도 좋아>는 재심의에 들어갔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고픈 독자들 또는 우끼고 자빠라지는 영등위의 심의 논리에 화딱지나는 독자들이라면 여기(영상물등급위원회)로 가서 졸라 아픈 똥침 한 방씩 놔주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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