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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recently-1: fallin’ slow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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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비가 내린다. 올 가을 들어 두 번째로 춥다고 느낀 날이었다. 반바지 차림. 그 위에 후드집업. 벌어진 지퍼 안으로 낙엽이 쏟아져 들어온다. 덜 마른 차가운 낙엽에는 제법 촉촉하고 말랑한 기운이 있다. 그런 기운을 맨 살갗으로 고스란히 느끼면서 담배를 피운다. 작년 가을의 낙엽비도 이렇게나 세찼던가. 올해는 정말이지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지 못 한 것이 분명하다. 바닥에 바싹 익은 낙엽을 밟느라 평소보다 훨씬 오래도록 걷는 일이 올 가을에는 아직이었다. 어떤 게 눅눅한 낙엽인지, 어떤 낙엽을 밟아야 귀가 즐거워질지 가늠하는 일이 전혀 없던 것이 바로 이번의 가을이었다. 계절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 한 것이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나는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겠지.


어느 날의 아침은 제법 더웠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얇은 울코트를 벗어다 팔에 걸쳤다. 역시 나만. 어느 새 기온은 패딩을 입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고, 반팔티 차림으로 코트를 팔에 걸치고 걷는 나에게 종종 대단하다는 평을 할 정도로 낮아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는 당연하게 붙는 접두사였다.
전 날의 펠라치오 때문이었는지 목이 제법 칼칼했다. 나는 깊숙한 펠라치오를 한 다음날의 칼칼함을 즐긴다. 마치 잔상처럼 남아 있어서 내가 그 때에 거기에 있었음을, 그 때에 그곳에 당신과 함께였음을 실감하게 하는 일종의 수단으로써의 상흔을 즐긴다. 몸 곳곳에 남는 멍을 오래 바라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겠지.
종종 멍 든 엉덩이나 가슴이나 무릎의 사진을 찍어 보내거나, ‘목구멍 아파 ㅋㅋ’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으레 되돌아오는 답장은
‘괜찮아?’ 였다.
‘멍든 거 보니까 존나 꼴려’라거나, ‘자지 빨 때 얼굴 너무 야해’와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당연히 ‘어제 생각했더니 또 섰어’와 같은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응 괜찮아 ㅋㅋ 좋아 다음에 또 해줘’하고 아쉬운 답장을 보내고 나면 어느 새 회사에 가까워 있었다.

그 날은 유독 칼칼한 목구멍이 좀체 가라앉을 생각을 않았다. 마침 독감과 감기가 동시에 유행하는 환절기이기도 했다. ‘설마?’는 왜 언제고 빗나가는 법이 없을까. 시침이 6, 분침이 12에서 많이 멀어지지 않았을 때에 나는 누군가에게 징징거렸다. 나의 요즘을 보고받고, 관리하고,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목구멍을 혹사시켜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감기인 것 같아요’
‘오늘은 그럼 쉬어요 쉬는 것도 운동이지’
‘그 아시죠,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어지는 거’
‘어 그쵸 근데 가라고 하면 또 가기 귀찮다고 할 거잖아’
‘오 나를 너무 잘 아시는구만’

너무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다. 단순 감기에 걸린 게 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COVID-19가 유행하기 전만 해도 매 환절기마다 감기를 피해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병약했다. 물론 나는, ‘병약하다’는 표현의 가냘픔을 편취하기에는 제법 덩치가 있고, 또 잔병치레만 좀 있다뿐이지 크게 아파 입원한 적은 꼬마였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없었다. 다행인 건가.
되짚다 보니까 거의 한 3년만일까.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면서부터는 분기에 한 번씩 꼭 걸리고야 말았던 그 감기로부터 벗어난지가 벌써 3년이 지나 있었다는 사실이 자못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시작한 운동도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안 되진 않았겠지만, 위생 관리의 중요성을 나는 이 시기만큼 피부로 느꼈던 적도 많지 않았다.

코치님은 ‘목구멍을 어떻게 혹사시켰어요?’ 또는 ‘어제 뭘 했길래!’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나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스트레칭을 포스팅한 블로그의 url 또는 본인이 담긴 영상 몇 편을 보내 왔다. 그리고 가끔의 잔소리. 경추와 경추 사이의 틈이 많이 벌어져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휴대폰을 볼 때에 고개를 푹 꺾고 만다. 낙엽은 여전하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항상 바빴다. 그 때에도 여지없이 바빴다. 그게 날 살게 했다. 그렇게나 빽빽해서 가을이 온 줄도 모르게 땀나는 일정들이 그래서 좋았다.
내 기억에, 모처럼 휴식을 얻은 그 날, 퇴근 직후의 시간에 나는 어떤 섹스를 했던 것 같다. 또다시 목이 칼칼한 섹스를.


감기인 것을 깨달은 날의 퇴근길에는 약국에 들러 증상을 설명했고 그 이튿날부터는 팀원들에게 따로 점심을 먹겠다고 일러두었다. 섭섭하지도 않았고 해방감이 든 것도 아니었다. 3일을 연달아 연어아보카도포케를 먹었다. 열린 귓구멍을 이어폰에 맡긴 채로 고개나 발목을 까딱거리면서 먹었던 것 같다.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3일째 되는 날에 포케 판매점 직원은 “식권으로 결제하시죠?” 하며 아는 체를 했고 나는 그것이 퍽 반갑게 느껴졌다.

아, 감기. 너무 오랜만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H와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피어오르기가 무섭게 나는 그것을 다시 거둬들였다.
H에게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는 되게 점잖다. 그런 말 들어?”
H를 볼 때마다 가로막힌 표현이 하나 있었는데 마침내 그걸 찾아낸 기분이었다. H는, “그럼~” 했다. 큰 표정 변화는 없었다. H는 설명하자면, 상냥하고 센스 좋은 사수 같았다. 사적으로 처음 만났던 날, H는 본인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향수를 뿌렸다. H가 향수를 뿌렸다는 사실을 나는 한참이나 뒤ㅡ섹스를 나누면서 목덜미에 코를 박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을 때ㅡ에 알게 됐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울렸던 내 뱃고동을 모르는 체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글에 옮겨적기도 사소한 것들을 H는 기억하고 있었다. 질문이 조심스러웠고 대답을 듣는 눈에는 빛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 불편감을 해소하고자, 나는 되지도 않으면서 술잔을 연거푸 비워댔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음주에서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점은 바로 ‘탈억제화’라더라. 나는 그 날, 그 불편감을 음주로써 해소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또 기억에 없는 섹스를 해버리고 말았고, 또 울어 버렸다. 조각난 기억 속,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대성통곡을 하는 내 앞에는 H의 아무렇지 않음이 흐리게 남아 있었다, 잔상처럼.
다음 날, “혹시 나 어제 울지 않았어?” 하는 내 물음에 H는 “글쎄, 나도 어제 많이 마셨어.” 하고 답했다. 고맙지도 밉지도 않았다. 배려라고 생각되지도, 언급하거나 떠올리는 일이 귀찮아서 둘러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 그렇구나. 나는 곧장 “응.” 하고 대화를 마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달지 않아서 얄미운 수박으로 해장을 마친 뒤 우리는 누워서 어떤 대화를 했다.
“이렇게 술 마시고 기억 안 나는 섹스를 하고 나면-”
“응.”
“마치 죄 짓는 기분이야.”
“왜?”
“상대방한테.”
“음.”
“미안하다는 말 돌려서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앞으로는 죄 같이 짓자.”

그 날 이후 H와 나는 특별한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섹스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한 손에 꼽았다. H의 집에는, 과하게 웅장한 스피커 소리와 또 한가득 퍼져 있지만 은은한 향초가 캔들워머 아래에 일렁이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대충 5만원 언더 정도의 배달음식을 시키고, 영화를 쳐다보면서 그것들을 입 안으로 넣었다. 러닝타임 중간중간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말들이 오갔다. 이를 테면,
“너도 저거 해봤어?”
“진짜 잘생겼다.”
“이 감독 다른 영화 어제 봤었어.”
“어제도 운동했어?”
대화가 대화로 이어지지를 못 했다. 파편뿐인 말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각자였다. 경험이 있느냐 물었던 그것이 뭐였는지, H의 대답은 어땠는지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 하고, H가 잘생겼다고 언급한 배우를 골몰히 쳐다보더라도 나는 결코ㅡ지금에도ㅡ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말했던 그 감독이 누구였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심지어는 그 때에 또 어떤 영화를 우리가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이제는 알 수 없으며, 내가 전 날 운동을 했는지 H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우리는 장면과 대사가 흐르는 TV 앞에서 각자의 휴대폰 화면을 엄지나 검지손가락으로 의미 없이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소파 아래 무릎을 세워 앉았고 H는 소파에 발 하나를 내밀고 누운 채였다. 그 관례와도 같은, 아니면 이미 의식이 되어버린 어떤 습관들은 공간과 시간과 그리고 우리를 지배하는 듯했다. 적막도 편안함도 아닌 무언가가 통째로 이곳을 집어삼킨 것만 같은 숨막히는 기분을 나는 H와 있으면서 항상 느껴야만 했다. 간혹 H가 내 늑간을 찔러 간지럼울 태우는 일, 누운 H의 몸 위로 내 몸뚱이를 포개는 일은 숨쉬고 싶은 발버둥이었을까.
발버둥을 멈추고 나면 우린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섹스를 나눴다. 소파 위에서 코를 맞대고 같이 빙그레 웃다가, 압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쓰다듬고, 옷을 들추고서는 속옷의 부재를 확인하고, 엉덩이를 치켜들어 바지를 벗기는 손을 돕고, 언제나처럼 뜨거운 H의 자지를 입에 물고서 위를 올려다보면 또 빙그레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H의 선량하기만 한 눈이 있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종전에 느낀 내 불편감은 모두 허상이라고 나를 달랠 수 있었다. 내 입과 H의 자지 사이에서 나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커지면 이내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뜨거워지던 다리 사이가 조금씩 젖어들면서 이제는 제법 미끄러워짐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때론 허락을 구했고 때론 지시를 받았다. 또 때로는 서로 아무런 말없이 눈만으로. 소파에 앉아 편히 다리를 벌린 H 위로 슬며시 걸터앉을 적에 우리는 거의 항상 동시에 탄식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으니 ‘동시에’가 맞겠다. H의 감각은 꽤 많이 예민한 터라 스스로가 조절을 해야 했다. 그건 여성상위에서도 적용되곤 했다.
H가 스스로를 조절하고, 나를 제어하다 보면 어느 새 나는 H의 어깨애 대롱 매달린 형상이 된다. 내 양쪽 허벅지를 H는 양쪽 팔로 감싸 들고서, 조립된 그것들의 결합이 절대 풀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러나 성큼성큼, 그리고 침대 위에 나는 나동그라진다. 이제는 내가 빙그레 웃고, 그 위로 H의 몸이 다시 포개어진다. 아주 찰나지만, 그 순간에만큼은 더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국어가 다르지 않았으나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 대체 어떻게 몸이 통할 수가 있을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H를 만나기 전에는 그랬지. 근데 기억을 아주 오래 전까지 되짚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I가 있었다.
여하지간 H는 근래에 만나는 남자들 중, 나를 가장 많이, 또 가장 빠르게 젖게 한다. 가장 애타게 한다. 가장 많이 신경쓰인다.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때리지도, 마구 다루지도. 오히려 과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태도에다가 앙탈이 가득 담겨 있는 “싫다”는 말에도 H는 곧장 수긍하고 중단하고 만다. H 앞에서, No means No가 된다. 이론상으로 H는 나에게, (외람된 표현이지만)별볼일없는 남자다.

우리는 그렇게 얼마나의 기간을 만났나. 몇 개의 계절을 지나 왔던가.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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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3-11-07 13:43:18
내용이 좀 수정됐네요 잘읽었습니다
익명 / 눈썰미 좋으시네요 제목도 같이 수정했어요 어제 좀 잠에 취한 상태로 휘갈긴 글이라 마음에 안 차더라구요 ㅋㅋ 고맙습니다!
익명 2023-11-07 12:18:43
이런 글 읽을수있는 나. 너무 행복해 진짜ㅠㅠㅠㅠㅠ 그래서 (2)도 있는거죠? 조용히 기다려야지ㅠㅠㅠ
익명 / 으하하 누군가가 저로 인해서 행복하다고 하면 너무 뿌듯한 거 있죠? 그럼요 다음 편도 가능한 빠르게 올려 볼게요 기다려 주시는 거 고마워요~
익명 2023-11-07 04:45:59
쓰니랑 H 진짜 섹시하다… H는 어떻게 생겼을까. 눈앞에서 상이 펼쳐지는 듯한 공감각적인 글이었어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익명 / 음 후술하겠습니다! 하면 애가 탈까요 ㅋㅋ 공감각적인 글이라니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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