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recently-2: fallen leaves uns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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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어느 월요일, 팀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신규입사자 환영회인 줄로 알고 있었던 회식은 송별회였고, 다른 팀원을 통해 전해 들은 사수의 부서 이동에 대해서 고별과 동시에 안녕을 비는 자리였다. 사무실에서 회식자리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은 부쩍 내려간 기온에 가을이 떠나감을 아쉬워 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해가 갈수록 봄과 가을이 짧아짐을 탄식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는 추위를 잘 안 타요.’ 그 말은 반드시 삼켜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끄덕이기만. 그러면서 계절 변화에 대해 다시 갸웃하고 있었다.
혼자도 외롭지 않고 함께더라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내 기질이었을까 팀원들의 배려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자기최면인가. 뭐가 됐든 아무렴, 조금 떨어져 혼자 횡단보도를 건넜다. 채색되지 않은 젖은 낙엽들이 아직 아스팔트에 딱 달라붙은 채였다. 세찬 가을비였다. 항간에 의하면 가을 태풍 소식도 있었다는데, 그도 그럴 만한 게 정말 태풍이 가까워 올 적의 강풍이었다. 회식자리로 이동하기 직전, 업무를 일찍이 마치는 바람에 시간이 잠시 떴다. 담배에 불 붙이는 것조차 어려워서 욕지거리를 읊조렸던 것이 떠올랐다. 구입하자마자 고장난 채로 오래도록 방치해둔 꽤 비싼 돈을 지불한 다회용 라이터의 행방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내 귀찮음까지 함께 떠올랐다. 언제 고치지. 10초 먼저 도착한 건물의 승강기 앞에 서서 모든 팀원을 태우고 비로소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뺨과 입술과 턱끝, 그리고 코끝에 닿는 마스크의 감촉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가래끓는 기침은 떨어지지 않고 여전했다. 팀장은 “업무 어때요?”, “사람들이 잘해 줘요?” 하는 말 대신에 연신 내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가십을 소비함으로써 유희를 얻고 있었고, “저는 그 분들을 잘 몰라서요.” 하는 말로 나는 권유받은 동조를 뿌리쳤다. 실제로 모르기도 했다. 여하지간 우월감인지 뭔지 모를 찐득한 것들을 좀체 떨쳐내기가 어렵다.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 나는 특별해. 너희들처럼 저급한 일들로 웃지는 않을 거야.’ 이것이 사회성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피로하다는 생각을 이제는 그만둘 수 없을 지경이 될 무렵, 때마침 적막이 공간을 잠시 채웠고 또 마침 누군가가 제법 큰 목소리로, “이제 일어날까요?” 회식도 업무 아니던가. 업무로 인해 23시 무렵 귀가하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왜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훨씬 오랜만의 일이었다. 각고의 노력을 한 적은 결코 없지만, 제법 큰 그릇 하나가 마침내 채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의 끝에 도달할 즈음, 도어락 키패드의 한 구석이 작동되지 않아 잠시 짜증이 났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한껏 어지럽혀진 집을 보면서 하루도 한숨을 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7월 16일을 기점으로 집안일을 점점 멀리하고 있었다. 열흘에 한 번 세탁기를 돌렸고, 설거지거리는 2주가 넘도록 미뤄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잦은 질염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한 손빨래, 내 팬티가 정확히 몇 장인지는 세어본 적은 없지만 세면대에 켜켜이 쌓아둔 팬티가 10장을 넘겨야지만이 겨우 물을 적시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가끔은 개키지 않은 빨랫더미를 이불과 함께 끌어안고 새벽을 지새우기도, 화장을 지우지 않은 채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잠에 들 수 없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혼자서는 숙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 무렵에 알게 됐던 것 같다. 앞에 서술했던 혼자도 외롭지 않다던 내 말은 그럼 거짓말일까. 거짓말이라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더이상 없었다. 빤히 당연스러운 핑계였다.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1. 주말이 다 저물기 전 집에 돌아와 2.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3. 샤워를 하고 4. 손빨래를 할 것. 5-1. 먹고 난 즉시 설거지를 하고 5-2. 요리한 가스레인지를 닦을 것. 6. 가끔 스팀청소기로 바닥을 닦을 것. 7. 열흘에 한 번은 화분에 물을 주고 8. 날씨 좋은 휴일에는 볕을 쬐게 할 것. 9. 너무 많이 자랐다면 더 큰 화분으로 이사시킬 것. 10. 한 달에 한 번 화장실의 타일을 문질러 닦을 것. 11. 글을 쓰는 빈도보다 읽는 빈도를 늘릴 것. 12. 세탁소 사장님과 친해질 것. 13. 낮에 깨어 있을 것. 14. 밤에 잘 것.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처럼 해내고 있는 것들을 나는 귀찮음을 볼모로 삼고는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 이런 꼴을 보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S가 있었다. S가 하루는 그랬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저 치킨 무, 내가 너네집에 처음 온 날에도 있었거든? 근데 지금도 있어!”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신 “하하하!”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그 치킨 무는 그로부터 2주가 지나서야 버려질 수 있었다. S는 그러니까, 요즘의 내가 가장 안도할 수 있는, 말하자면 집과 같은 친구였다. 나는 S에게 ‘이용해 주어서 고맙다’고 언젠가 그랬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때 S의 대답은 “이용당해 줘서 고마워.”였다. 물론 내 기억은 정확할 리 만무하다. “이용하게 해 줘서 고마워.”였을지도 모르겠다.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S의 연락처와 나이를 모르고, 이름조차도 알게 된 일이 비교적 최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물리적인 거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심리적으로 그러했다. ‘나’에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우리’를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자만이나 착각이 아니리라.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던 S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 한다. 그 날 나눈 대화의 대부분을 나는 기억할 수 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을 아쉬워 하는 일도, 내가 어떤 일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도. 비교적 정확한 기억들. “전에, 너가 찍어준 사진들 올렸던 사이트 기억나? 응, 나 거기에 글도 가끔 올린다고 그랬잖아. 응, 전에 물어봤었지. 오늘 일도 또 올려도 돼? 근데 지금 말고. 좀 오래 쓰고 싶어.” 새벽 2시 무렵, 헤어짐이 아쉬워 집 앞에서 한참을, 모기에게 얼마나 뜯기는 줄도 모르고, 금연했다던 담배를 4개비나 태우는 동안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의 아쉬움을 재잘거렸는지 모르겠다. “가입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게 되네. 로그인 안 하면 접근이 안 된대.” S에게 직접적으로 ‘나 가입했어!’라는 말을 듣지는 않았으니 S가 했던 말이 단순하게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표현인지, 아니면 다짐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설령 가입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S의 닉네임을 물은 적도, S가 일러준 적도 없으므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 지 않았다. 미안함을 고하고 나서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나는 어떤 쪽지를 받았다. 처음 보는 닉네임의 유저였는데 쪽지를 펼치기 전에부터 나는 그것이 S일 것이라고 겁도 없이 100% 확신했다. 쪽지를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S에게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지금도 여전하게 S의 방문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7월 16일 이전에도 S가 우리 집에 온 일이 있기 때문도 분명 있을 것이다. 미주알고주알은 아니지만 S는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해했고, 우리집이 어떻게 어지럽혀져 가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나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오랜만이었는데, 항상 어제 본 것 같은 친구였다. 언젠가 S와 “너라면 어떨 것 같아?”와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내가 건넨 질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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