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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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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다녀오니 하루가 다 가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탁이 끝나 있는 빨랫감들을 널면서 다음날의 가방을 미리 싸기로 했다. 이 가방을 마지막으로 멘 게 언제더라, 끈으로 둘둘 말려 있는 코르셋을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게. 쉬이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헤집었다. 뜨거운 물을 받고 있는 세면대 안에 코르셋을 집어던지고 나서 신고 있던 스타킹을 과장된 행동으로 벗었다. 내전근이 뻐근했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다른 스타킹 두 켤레를 더 집어들고서 그 뭉치들을 변기 커버 위에 다시 던졌다. 세면대에서 피어오른 김으로 이미 화장실 안은 뽀얗게 자욱해져 있었다.
요즘의 결혼식에서는 매번 운다. 신랑측으로 참석하든 신부측으로 참석하든, 주체와 그동안 얼마나의 라뽀를 쌓아 왔든 관계 없이 운다. 특히, 아빠와 신부가 손을 잡고 행진할 때에 한 번,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릴 때에 또 한 번. 그 날의 결혼식에서는 총 세 번을 크게 훌쩍거렸다. 앞에 서술한 두 번에 더해서 축가를 듣는 신랑신부가 깍지를 끼고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그간의 고됨을 모르지 않았다. 둘의 앞날이 그 날처럼 마냥 빛나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잘 싸우고 잘 화해하리라는 믿음이 그 순간에는 있었다.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챙겨온 티슈로 눈물을 찍어닦았다.
대체 땟국물은 얼마나 헹궈야 빠지는 건지. 코르셋이야 세탁을 한 이후에 여러 번 착용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한 번씩밖에 신지 않은 스타킹에서 계속 뿌연 물이 나오는 건 의아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때를 민 것이 3년은 더 된 것 같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20번은 헹구고 나니 마음까지 조금은 맑아진 듯했다.

‘다음주 금요일에 뭐해?’
H였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H라면, ‘오늘 퇴근하고 어디 가?’, ‘내일 올래?’였지. 내가 약속이 있다고 하면, ‘그럼 모레에 오면 되겠네~’.
일주일을 더 남기고도 먼저 묻는 게 의외였다.
‘나 엄마랑 이모랑 때 밀러 가
때 밀구 뽀송하게 갈게’
‘엽’

H가 의외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S에게 H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서운함과 서러움에 대한 얘기였다. 한참이나 늦는 H의 답장이 서운했고 나만 섹스를 갈구하는 듯한 상황은 조금이지만 분명 서러웠다. 거기에 나는 살을 붙여서, 토막으로 끊기는, 이어짐 없는 대화도 함께 꼰질렀다.
“너랑은 한 가지 주제로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대화하게 되는데, 걔랑은 대화가 전부 토막이 나. 뉴스 헤드라인만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날씨 좀 선선해졌지?’ ‘운동 요즘도 해?’ ‘이직한 데는 좀 어때?’ ‘나 코 뚫었어.’ ‘이거 먹어 봤어?’ ‘캔들 워머 샀네.’ ‘저녁 뭐 먹을래?’ ‘고양이 죽었어.’ ‘나 바디스프레이 샀어.’ 대답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질문에 대답하고 나면 그게 전부야.” 하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내 투정에 S는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고민했다. 필요하다면 욕ㅡH에 대한 건 아니었고ㅡ을 해줄 때도 있었다. S는 그러니까, 친구였다. 언제 만나도 편한 섹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화가 즐거운, 친구였다.
“너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음-”
“신경쓰인다는 거니까. 너 마음은 너가 더 잘 알 테니까 한 번 들여다 봐 봐.”
“응, 고마워.”

그로부터 한 두어 달이나 지났을까, 어떤 토요일에 온 메시지는 S였다.
‘오늘 운동 가???’
‘오 이미 와 있어! ㅋㅋ
(사진)’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고 싶다구 생각했는데
나이스타이밍~’
‘예측력 ㅋㅋ
언제쯤 끝나?’
‘음 한 한 시간 정도 뒤에 집 도착할 것 같아’
‘그 때쯤 갈까’
‘웅 근데 나 약속이 좀 일찍이라
16:30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괜찮아?’
‘그 때 같이 나가면 되겠다 그럼’
‘그러자 이따 바’

S가 현관에 서 있을 때마다 현관이 꽉 차 보인다. 볼 때마다 층고가 더 낮아진 것 같기도 하고. 겨울 외투여서 그 날은 유독 가로로도 꽉 차 보였다. 습관처럼, S의 배 위에 누워 그의 발기되지 않은 자지를 건들거리고 있었다.
“만지고 싶은데 내 손 지금 차가워.”
“한 번 만져 봐.”
“엄청 차갑지.”
“좋은데?”
“좋아?”
S의 말을 대신해서 순식간에 커지는 자지가 기특했다. 기특하다고 쓰다듬고, 핥다가 이윽고는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입 안으로 넣어버렸다. 넣고서 오물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맞아, 나 어제 섹스를 주제로 하는 모임에 다녀왔거든? 근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묻더라고, 오르가즘 연기에 대해서. 동조를 구하는 눈치길래 나도 해본 적은 충분히 많았다고, 근데 훨씬 옛날이라 잘 기억나진 않고 그냥 느꼈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는 정도라고 그랬어. 그랬는데 그냥 이제는 오르가즘에 대한…”
“집착?”
“응, 근데 어감이 좀 부정적이니까 곧이곧대로 말하진 못 했고, ‘강박을 내려두기로 결심한지가 좀 됐다’ 뭐 이런 식으로 말했어. 근데 한 가지 되게 신기했던 게, 본인들은 펠라치오든 뭐든 남자에게 애무를 해주는 게 take를 위한 give라고 하더라. 근데, 나는,” S를 올려다 보면서 키득거렸다.
“응, 너는 자지 빨면서도 존나 젖어 있잖아.”
“꼴리는 걸 어떡해.”
S의 표정이 어땠는지 제대로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으이구, 못 살아.’ 정도였으려나. 내 말이 마쳐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S는 곧장 나를 침대 구석으로 몰아붙이고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도록 했다. 곧이어 자지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랜만의 혀였다. 펠라치오를 하는 데에 반해서 커닐링구스를 받는 것에는 큰 감흥이 없는 터라, 하면 하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두는 편이다. S의 마지막 커닐링구스는 아마 기억이 맞다면 6개월쯤 전. 더 됐거나 덜 됐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7월 16일 이전이라는 것. 당시의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날의 나는 졌고. 아마 이겼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있었을까. S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 쌀 거 같아.”
“어디에 싸줄 거야?”
“보지에.”
“응, 보지에 존나 싸줘.”
숨이 다 죽기 전에 흔적을 닦아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일까, 아니면 이불빨래가 영영 귀찮을 나를 위한 배려일까. S는 항상 내 안 가장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채로 어기적, 협탁 위에 놓인 두루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 나도 아래에 깔린 채로 엉덩이를 들썩, S의 움직임을 도왔다. 키보다도 암리치가 더 긴가 싶을 때도 종종 있었다.

“네 시 반까지 도착해야 된다고 했었나?”
“아니 네 시 반에 나가려구.”
충전 중인 스마트워치의 패널에 떠오른 연두색 숫자는 15:37쯤이었던 것 같다.
“먼저 나가 있는 게 편해? 아니면…”
“같이 나가자.”
“그래.”
항상 의중을 묻는 사람이었다. 답을 정해둔 채로 물은 적 없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그리고 또 내 짐작이 닿지 않는 곳까지 S는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언젠가, S가 어떤 심리를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불법 촬영하는 사람들은 왜 하는 걸까. 그게 꼴리나?”
“음…”
나는 아주 조금만 고민하다가,
“불안해서 그러는 거 아닐까? 선녀와 나무꾼.”
“불안해서?”
“아마도.”
“나 휴대폰 일부러 보이는 곳에 두는 거 알아?”
“어!”
“그냥 너 혹시라도 불안할 수도 있잖아.”
“너 화장실에 안 가져가는 건 알아.”
“그건 의도한 건 아닌데.”
“그래?”
“집에서도 샤워할 때는 안 챙겨 가.”
“나는 항상 챙겨. 항상.”
누군가의 심리를 단 하나의 행동만으로 짐작하는 것은 편견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날은 그런 생각을 했다. 불법 촬영자의 심리에 대해서. 본인의 어떤 결함이나 결핍 또는 결여로 인해 원치 않는 이별을 겪을 것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두고서, 상대방의 가장 야들한 살점을 빌미로 삼아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근데 웬 일로, 주말인데.”
“그러게, 왠지 너 약속 있을 것 같아서 연락을 할까말까 했는데 시간이 딱 맞았네.”
“응, 나 약속 있어. 아쉽다.”
“아냐, 나도 강아지 혼자 있어서 금방 가 봐야 돼. 오늘은 어디 가?”
“전 직장 동료들이랑 송년회. 근데 내일 네 시 반에 일어나야 돼.”
“출근?”
“아니, 내일 일요일이야. 어.”
“어?”
“일요일 맞지? 내일?”
“아- 응, 내가 착각했어. 일요일인데 어디 가?”
“친구 결혼해.”
“요즘 결혼식 많이 하더라. 나도 이 주 전엔가 이 근처로 결혼식 다녀왔어.”
“허얼, 왜 연락 안 했어!”
“너 약속 있을까 봐.”
“나 지지난주에 뭐 했더라.”


지하철역을 향해 S와 함께 걷는 동안에 어떤 의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주 어릴 적, ‘당연하게’ 결혼을 할 것이라고 믿었던 때에, 나는 독창적인 척, 어디서 흘긋 본 결혼식에 대해 꿈꿨다. 푸른 잔디밭에 가득 풍기는 생화 냄새를 그렸고, 얼굴 없는 남자가 껌벅 죽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마냥 웃어주는 것을 그렸다. 그 안에 내 친구들은 있었는데 엄마나 아빠, 다른 친척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날 S는 “그거 꼭 해야되는 건가.” 했다. “응, 그러게. 대신에-” 현실성 없는 막연함을 그리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날만큼은 욕심을 부려도 된다면,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면 넓은 공간이 있어야 하고 동선의 효율성을 최대치로 제고하기 위해서 더 많이 궁리해야 할 것이라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로 뱉은 말이었다. S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편지 낭독도 하고 싶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먹먹했다. 함께 산 날보다 어쩌면 함께 살 날이 더 짧을지도 모르는,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우리 엄마아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또 만나.”
“응.”

그 날 만난 사람들에게 용기내어 말했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무수한 원인들을 단 하나로 관통하게 하는 문장을 찾고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대답했다.
“왜 꼭 그래야 해요?”
나는 함구했는데, 내 주장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 않던가. 그 문장을 손에 쥐고 있으면 아무도 사랑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껏 사랑하고 나서도 아무런 미련 없이 잘 놓아줄 수 있으리라고 오만하게도 착각했다. 큐피드가 가진 납화살과 황금화살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일요일의 이른 오전에 깨어 있던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심하지 않은 교통 체증 덕분에 결혼식이 시작하기 10분 전, 와글와글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어깨를 끼울 수 있었다.
예상과 같이 나는 울었다. 너무 말라버린 친구의 빗장뼈와 그 아래의 새가슴이 가냘팠다. 그녀와 똑 닮은, 한복과 정장을 갖춰 입은, 어느 새 우리 엄마아빠만큼이나 작아져버린 사람들의 표정이, 격식을 갖추기 위한 미소였다가, 내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커다랗게 변했다. 여느 때와 같은 커다란 미소였다. 마찬가지로 똑 닮은 여자들이 십수 년 전과 같은 목소리로 반겨주었다.
다 울고 나니 그제야 화려한 장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빛을 몇 번이나 반사시키고 굴절시키는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사고를 막기 위한 LED 초, 흰 꽃무더기들, 새틴과 벨벳과 레이스. 티슈로 몇 번을 찍어닦았어도 눈가는 여전히 짭조름했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추웠다. 그리고 훨씬 더 막혔다. 다행이었다. 몇 번이고 가득 안겼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http://redhol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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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3-12-07 00:15:13
왜 슬프죠 겨울이라 그런거겠죠.
익명 / 의도는 꼴림인데 실패했네요 ㅠㅎㅎ 길지 않기를
익명 2023-12-06 22:46:06
언니 저 방 또 다시 더러워졌어요
익명 / ㅋㅋ 저두 항상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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