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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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누군가에겐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간이라 불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타인의 고통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 표면적으로는 그리 보이겠지만 그 자리를 감히 바꿔 앉아 볼 용기가 없다고 하는게 맞겠지.
아무튼 먼 고통을 지금 당장에 알 것 같다며 천리안을 넘어 심안으로 들여다 볼 득도가 나에게는 있을리가 없다. 가까운 슬픔에서도 할 말을 못찾아 목대만 크게 부풀어서는 울음이 토해질까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내가 무슨. 주변인과의 대화 소재로 삼기도 싫고 하물며 한달음의 공감을 빌미로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도, 카더라에 휘둘려 집단 속에서 안정을 찾고픈 마음도 없다. 보면 늘 그랬다. 조금이라도 무게가 모자란 공감을 건네면 어김없이 오해의 무게가 더해져 돌아오거나, 아니면 왜 해야하는지도 모를 변명을 늘어놓느라 진이 빠진다. 그래서 멈춘다. 그래도 고통이나 슬픔은 얼마나 날카로운지 속 어딘가에 남아 새겨지니까 그냥 그대로 둔다. 왜 라는 물음이 생기면 생각은 여러 길로 나뉘고 모르겠으면 또 멈출 수 밖에 없는 건 이해는 언제나 모자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두고 살다가 언젠가 내가 더 자랐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같잖은 답은 결국 명확해질 수 없음에 주저함 만을 남긴다. 이래 놓고 금세 가벼워져서는 또 손가락을 쳐들고 가리키고 있겠지. 우유부단이 도대체 얼마나 견디고 있는지를 생각할 때 도무지 싫지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동질감이려나. 나는 얼마나 있어야 따뜻해 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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