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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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상스럽지 않은 날이 없긴 하지. 게다가 성급하지 않다거나 비열하지 않은 날도 없을걸. 매일이 모른다고 말하기 쪽팔리고 가식적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금도 이것들 중에 하나, 아니면 몇몇, 것도 아닌 전부를 포함하는 것일지 모르겠네. 근데 모른척 하기엔 언젠가의 누군가 앞에서 똑바로 서있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또 덜어내고자 휘적거리는거 일지도? 사람이 압도적인 공포를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난 체념일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 체념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점에서 선택하는 그 순응이 얼마나 괴로울지 나는 쉽사리 짐작이 안된다. 그래서 애써 초연함을 찾으려는 태도에 조롱이나 하고 여흥으로 소비하려는게 어이없음을 넘어 어질어질하더라. 뭐가 그렇게 당연할까. 대체로 귀동냥 눈동냥으로 지나가듯이 마치 순리인 것 처럼 받아들인 상투적 귀결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감의 실체가 맞나? 그런 통상적 공감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천대해도 되는게 정말 맞나? 대체 뭐가 그리 당연한건데. 이런 생각을 이틀 내내 했지. 마침 읽고 있던게 고통 구경하는 사회였는데 내내 걸려서 또 책 들고 왔음. 보통은 고통을 보는게 괴로우니까 외면하거나 주목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호응하며 더듬는 반응이 사실은 겉만 핥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책이랄까. 나머지 두권은 같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줄여서 요즘 이슈되는 문해력과 연관이 있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작가 개인이 슬픔에 호응하기 위해서 공부하며 쓴 글이라는데, 읽고 공부가 됐다면 그건 거만하니까 안간힘을 쓰면서 읽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고파서 읽는데 아직은 근거도 못찾았네. 안그래도 좁은 판에 서로 조금은 따뜻하면 안되나. 몰라. 꿀물이나 타먹고 잘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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