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지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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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다 봐.”
이 말은 내가 할 수도 있고 네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의미겠지. 전자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보니까 하지 말아달라’는 (들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가 훨씬 다분한)부탁인 동시에 앙탈이겠고 후자의 것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와 같은 뉘앙스. 수치심이나 두려움을 야기함으로써 성적 흥분을 증폭시키기 위한. 사람들 많은 공간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두렵지 않음’과 ‘버겁지 않음’은 동치에 두고 생각하기 어렵다. 여전히 버거웠다. 너의 겨드랑이 사이에 집어넣은 손을 자꾸만 꿈지락거렸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내 목 뒤를 주물러 주는 간혹의 손길이 고마웠다. 그러나 그 손길만으로는 튀어 오른 맥박을 다스리기에는 부족했나.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사람들 눈길을 피해서 하는 찰나와도 같은 장난들조차도 안정감을 가져다 주지는 못 했다. 어느 졸업식에 후리지아를 받았다. 후리지아 냄새가 좋다는 한 마디에, 아빠는 매년 졸업 시즌이 되면 후리지아를 안겨 온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다섯 배나 많은 다발이었다. 작년에 사용했던 화병에 딱 한 묶음만 꽂히는 걸 보면 말이지. 꽃다발용 포장지를 어느 구석에 뒀던 것 같은데 막상 찾으면 안 보이더라. 쇼핑백 안의 후리지아 네 묶음은 인파 속에서 점점 시들어 가는 중이었다. “갈까? 배 고프지?” 그 말은 내가 먼저 했던 것 같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네가 말하기를, 주물럭거리는 손의 악력이 점점 세지기도 했고 보폭이 종종걸음으로 바뀌었다고. 그래서 ㅡ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 했지만ㅡ자꾸 출구 주변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네가 말하기를 배부른 상태에서는 섹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에 나는 답했다. 시도때도 없다고. 포만감과 성욕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종종 접한다. 남성의 경우 위기 상황에서 종족을 보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더 널리 퍼지도록 하는 본능이 보다 강하게 발동하기 때문에 포만감보다 공복감을 느낄 때에, 여성은 안전한 공간에서 양육하고자 하는 본능으로 인해 공복감보다는 포만감을 느낄 때에 더 성욕이 커진다고 했다. 논외지만 이것이 성역할의 근간일까 싶다. 이제는 대부분의 것을 분담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너는 이거, 나는 저거’보다는 그냥 ‘나부터’. 그렇게 하다 보면 누군가는 알아 주지 않을까.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기근이나 전시 상황처럼 극단적인 경우에 이를 관찰하기가 수월하겠으나 ㅡ누구라도 그러하듯이ㅡ그걸 바라는 것은 아니고, 어쨌거나 경향성. 나와 같이 시도때도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어느 누군가는 ‘아무 때도’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 더불어서 상황에 따라서도 또 다를 테고 말이다. 라멘과 돈부리. 평소라면 곱배기에다 교자와 가라아게까지 깨끗이 먹었을 텐데, 그 날은 유독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았고, 씹고 삼키는 것이 버거웠다. 이제 와 생각하면 인파 탓이려나. 넌 내가 남긴 것들까지 싹싹 비워냈다. 자주 느끼지만 먹을 때 특히 야했다. 음- 사무실에 잠시 들러야 했다. 쇼핑백 속 후리지아를 더 방치했다가는 생기 있는 모습을 다시는 못 보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꽃망울이 채 다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아쉽지 않을까. 사람 없는 곳을 애타게 기다렸던 걸까. 아, 대상은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에서 너는 등 뒤로 철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를 낚아채서는 등 뒤에서 양 가슴을 움키고 목덜미를 삼켰다. “안 돼, 사람 와.” “언제?” 기상천외한 말들에 종종 얼빠진 적이 있기도 했지만, 내 말이 과연 씨가 된 건지 곧장 비상문이 열리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렸다. 너는 입맛을 다시고 나는 음, 나는 침을 흘렸다. 너는 차에 시동을 걸 생각이 없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야무지게 안전벨트를 착용한 나와는 짐짓 대비되는 태도였다. 그건 그렇고 롱패딩을 입었는데도 젖꼭지 위치가 어디인지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눈에서 X선이 나오는 걸까. “기다려 봐.” 너는 뒷좌석의 더플백을 뒤적거리더니 이윽고 딸랑거리는 방울소리. 그리고는 내 옷을 차례로 벗겨낸다. 마지막의 브래지어를 들추고 움츠러든 적 없는 젖꼭지에 입술을 가져다 대면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장해제된다. 그러면 너는 장난기 잔뜩 서린 흡족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손에 든 니플클립으로 내 젖꼭지를 꼬집는다. “아파, 진짜 아파. 안 할래. 아파.” “아파? 안 아프게 해 줄게.” “응, 이제 안 아파.” “덥지?” “응.” “그럼 옷 다 벗고 가자.” “안 돼, 싫어, 밖에서 보여.” “안 보여.” “안 벗을래.” “바지는 입어도 돼. 밖에 춥잖아.” 추위를 이유로 바지만 허용한다니 실소가 터져서는 너를 노려 봤다. 선택권을 위탁했으므로 결과야 너무 뻔해서 재미 없는 실갱이. 기다란 지퍼가 주우욱 내려가고 바지와 니트와 브래지어가 순서대로 벗겨졌다. 정지 신호에 걸려 대기할 때마다 네 손은 분주했다. 니플클립을 매만지랴, 보지 속의 장난감을 작동시키랴. 운전 중 휴대폰 사용 시 사고 위험이 높아집니다. 먼 거리도 아닌데 그 날은 꼭 초행길을 가는 듯 멀게 느껴졌다. 하필인지 다행인지, 그 날따라 자주 정차했다. 오므라든 발가락이 좀체 펴질 생각을 안 했다. 다시 기다란 지퍼가 주우욱. 엉거주춤, 쭐레쭐레. 당연히 그 시간, 사무실에 누군가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 누군가도 상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시들해진 후리지아를 화병에 꽂기 위해서 그 시간에 사무실에 들를 것이라고는 말이지. 너는 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문이 잠긴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주우욱. 냉기가 피부를 쓸었다. 반사적으로 튀어오르는 자지는 항상 기특했다. 또 나는 다시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입이 살그머니 벌어지고. 네가 내 머리를 양 손으로 잡고 허리깨를 앞뒤로 움직거릴 때마다 내 젖꼭지에 매달린 방울들이 박자에 맞춰 딸랑거렸다. 아, 이젠 방울소리만 들어도 움찔할 것 같아. 목구멍으로부터 끈적한 타액이 점점 늘어질 무렵에 너는 어느 파티션 안으로 내 손을 이끌었다. 바지가 어디에 벗겨져 있는지는 이제 알 바 아니었다. 창문 바로 옆, 전원이 이미 켜져 있는 세 대의 모니터와 온풍기. 제법 편안해 보이는 의자에 등을 기대 앉은 너는 다리를 벌리고 마치 ‘이리 와’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 봤다. 눈에 너무 약한 건 내 흠인가 아니면 틈인가. 다리 사이, 반질거리는 자지가 왜인지 모르지만 마치 장승처럼 느껴졌다. “응!”하고 답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너의 요구대로 등을 돌려 그 위에 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블라인드 틈새로 맞은편의 불 켜진 건물이 보였다. “저기서 우리 보여.” “안 보여.” “보여.” “안 보여.” “보여!” “보면서 딸치면?” “…….” “못 참겠다고 여기로 오면?” 너의 희롱은 습관이었고 나는 그걸 한 번도 빠짐 없이 즐겼다. 언어로써 대답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또 존나 젖지, 발정나서.” “아니거든?” “너가 보고 싶은 걸로 골라 봐.” 그동안 내가 본 포르노라곤 품번도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 버디야홈. 그것도 한 20년은 됐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노골적인 제목들이 거북스러웠다. 영상의 썸네일도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자극적이라서 선뜻 무엇을 어떻게 살펴야 좋을지 감도 잘 안 잡혔다. 마우스 커서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중지손가락만 의미없이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너는 곧장 알아차린 건지 내 손등을 포개 잡고서는, “이런 거 좋아하잖아.”하며 골라준 것이 강압에 의한 다자간 섹스. 무아지경도 싫지는 않지만 음, “으응,” 내가 고른 건 일상이었다. 짧은 하의에 팬티 없이 애널플러그, 그리고 대형 쇼핑몰. 너는 이 때다 싶었는지 또 곧장 장난감을 작동시켰다. “아씨.” 이제 장난은 좀 그만 치고 좀 넣어 줬으면 좋겠는데, 난 내 요구사항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드물었다. 까다롭게 굴긴. 모니터의 영상 속에서 무엇이 흐르든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애가 끓었다. 이미 진작에 팔팔 끓어서 넘치는 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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