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지아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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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줘.”
“해 줘?” “응.” “‘해 주세요.’해야지.” “…” “얼른 ‘해 주세요.’.” “해 주세요.” “뭘?” 매번 같은 레퍼토리에 질릴 때도 된 것 같은데. 나는 그 날도 여지없이 정액받이 육변기 안에 주인님의 자지를 깊게 찔러넣어달라고 칭얼거렸다. 칭얼거리기만 했을까, 등 뒤로 천천히 네가 들어올 때, 너와 거의 동시에 그리고 거의 비슷한 높낮이의 목소리로 나는 탄식했다. 장난감이 들어 차 있던 자리를 빼곡하게 대신하는 통에 하체가 자꾸 움찔거렸다. 너와 내가 한꺼번에 앉아 있어도 한 번을 삐걱거리지 않는 사무실 의자가 새삼 기특했다. 그러나 불편했다. 언제 누가 올지 알 수 없는 공간이 나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무릎을 꿇고 앉을, 너와 마주앉을 푹신한 침대가 없다는 점은 몸을 불편하게 했다. 감정은 확실하게 동요/동화되는 것 같다. 과연 생각까지도 그럴까. 이러한 생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곧 옷 매무새를 정돈해 줬다. 섹스도 단연 빼둘 수 없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과 같은 섹스 후의 시간도 나는 좋아한다. 다 큰 성인이 갑자기 애새끼로 돌아가는 것 같잖아. 그런데 이제는 바지조차 없었다. (추위를 워낙 둔하게 느끼는 나로서)추운 날씨는 아니라지만 들키기에는 딱 좋은 차림이었다. 너는 “바로 이 앞이잖아, 괜찮아.”하며 나를 얼렀다. 아까는 추우니까 바지는 입어도 된댔잖아. 종전보다 더 많이 시든 후리지아를 회생 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 사무실에 온 거였으니까. 네가 건네 준 투명한 화병에 얼음과 생수를 차례로 담았다. 그리고 줄기끝을 사선으로 자른 후리지아를 네 묶음을 가지런하게 꽂아두었다. 풀죽은 후리지아가 가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숙박업소를 향해 종종거리며 걷는 길, 무거운 유리문을 미는 동안, 인포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신경이 온통 젖꼭지로 향해 있었다. 자칫 딸랑이는 소리가 들릴까 봐, 그 소리의 근원이 어딘지 의심을 받을까 봐, 거기에 흥분해 버릴까 봐. 그런 내 걱정이 표정에 고스란했다고 했다. 체크인 수속을 마치고 마음을 한 시름 덜어두었을 때, 그래서 너는 몸통박치기를 한 거겠지. 느슨해진 끈을 다시 조이기 위해서. 평소라면 응당 했을, 보복성 몸통박치기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한 5년쯤 전, 친구와 함께 사는 강아지와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산책을 한 일이 있었다. “우와, 목줄 엄청 신기하다. 그렇게 해도 안 풀려?” 오히려 더 안전하고 더 견고하다고 했다. 메탈 소재로 된 개목줄이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한 목줄은, 목 둘레에 맞는 위치에 버클을 채우는 거였지 목줄이 조이는 정도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목줄이 종종 생각났던 이유는 안전성뿐만은 아닐 걸. 쿨하지 못 해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누가 사용했을지 모를 것으로 너의 개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훨씬 우세했다. 개가 되어야만 한다면 공용이 아닌 개인의 소유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쓸 데 없는 의미 부여라고 했다. 언젠가 받고야 마는 상처를 스스로 만드는 일이라고. “이리 와, 산책해야지.” 뻔하다. 싫다고는 해도 결국 굴종하고야 말 뻔한 상황들이 나는 한 번을 거르지 않고 꼴렸다. 산발이 된지 오래인 머리카락이 목줄에 함께 휘감겼다. “개 된 기분은 어때?”라거나, “개새끼가 사람 말을 하네?”하는 말들로 네가 나를 희롱하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곤 했다. 눈이 가려져서 네가 이끄는 곳으로 어기적, 갈 수밖에 없었다. 갈 수밖에는 없었다. “안 돼, 싫어, 안 갈 거야, 가기 싫어, 싫어!” 양손목을 등 뒤로, 네 한 손 안에 붙들린 채였다. 넌 앉아 있었고 나는 다리 하나로 선 채. 벌어진 다리 사이에 네 손이 우악스럽게 분주하면 나는 네가 이끄는 곳으로 콸콸콸, 갈 수밖에 없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개구지게, 또 흡족스럽게 웃었다. “응, 우리 강아지 예쁘다. 옳지, 착하다.”하면서 엉덩이를 토닥토닥하면 나는 눈을 흘기면서 가쁜 숨을 내쉰다. 이제는 제법 당연해진 네 팔을 베고 누워서 네 목덜미가 콩콩 뛰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면, 너는 슬그머니 내 오르락내리락하는 젖꼭지를 다시 손끝으로 스친다. 참고 참다가 못내 “으응,”하고 몸을 비틀면 너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소리내어 웋으며 손을 빼고서는 등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가 다시 토닥토닥. 토닥. 토닥. 토닥. 토닥. “지아 상태 어때?” “잘 크고 있어. 귀엽다.” 보내 온 사진 속 후리지아는 그제보다 괜찮은 상태로 보였지만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사람들 많은 데에 오래 데리고 다녀서 그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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