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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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정의하기 나름이라던데. 문득 반가움을 느끼는 이유는 하고많은 제각기의 정의 중에서 동감했기 때문이려나. 마음의 움직임. 이따금의 반가움을 오래 지속 시키고 싶어서 내 것 아니었던 것들도 꾸역꾸역 씹어 삼켜 보려고 그랬다. 이걸 좋게 포장하면 이해로의 시도인가. 토해내는 것들이야 버려졌다지만 그럼 삼켜진 것들은 과연 내 것이 되었나.
아무튼 가장 마지막 내 사랑의 정의는 단연 기꺼움이었다. 얼마든지 귀찮고 싫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운 거. 그런 사람을 만났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한 번도 귀찮거나 싫어진 적이 없으니까 오류. 대상은 늘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도 또 분산되기도 하더라. 이건 내 마음의 오류인가. 그런데 한 번도 소멸된 적이 없다는 것은 전술한 ‘마지막’에 대한 오류겠다. 뭐가 참이고 뭐가 거짓일까, 애초에 참이었던 적은 있었나 자문하면 또 답을 내리는 게 지지부진해져서 아- 그만하고 싶다. 아무튼 대상이 사라진 적 없다는 것은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당사자를 귀찮게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방증이지도 않나. 싫어지게 만들 수도. 소멸된 적 없으므로 현재도 어딘가에 실재할 텐데 직면하기 두려운 건지 더 부서질 게 없다고 자기연민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말은 어쩌면, 나의 부족함을 너로 채우고 싶다는 의미일까. 더 나아가 당신의 부족함이 나로 하여금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일까. 둘 다 욕심일 텐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두고 싶었는데, 부족은 어떤 충만으로 인해 채워지기 싫어도 채워진다. 가령, 기압차나 온도차. 어떤 때에는 섭리가 지독하게 싫다. 싫어서 더 부족하고 싶다. 종종은 꺼이꺼이 부서지고 싶다. 아! 사랑은 욕심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나? 날씨의 덕도 탓도, 그닥 큰 영향을 잘 안 받는 편이라서인지 비 오는 날에도 잘만 걷고 해 쨍쨍하고 미세먼지 없는 날에도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기도. 아무튼 봄은 봄이다. 존나 퇴근하고 싶다. 다음주 닷새 내리 쉬니까 그거만 보고 힘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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