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말려 죽이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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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네가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에게 무자비한 폭력이라도 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를 향해 마구 힐난하기를, 나를 배려하지 않기를, 나를 존중하지 말기를. 나를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기를.
나를 꽤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가 퍽 행복한 줄로 알았고, 가까운 사람들이더라도 복에 겨운 넋두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의 온정은 나에게 미지근하기만 했다. 매일 습관처럼 내게 전화를 했고 너의 일상을 보고했다. 그러나 나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그저 습관처럼, 습관처럼. 퍽 행복한 때도 있었으며 복에 겨운 넋두리를 한 적도 물론 있었다. 그런 때도 분명히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에게 선인장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잊을 만하면 너는 그제서야 목을 겨우 축일 만큼의 물을 내게 주었다. 너는 나를 선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코 선인장이 아니어서 꽃을 피울 수가 없었다. 나는 선인장도 아니면서 선인장인 척을 했다. 몸 곳곳에서 가시가 피어올랐다. 나의 가시는 계속해서 널 찔렀다. 그러나 너는 그런 나를 나무라기는 커녕, 그래왔던 것처럼 잊을 만하면 내게 물을 줬다. 목을 겨우 축일 만큼의 양이었다. 그 물은 너무 달았고 또 너무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너라는 물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뿌리를 너무 단단하게 내리기도 했다. 물은 너무도 빠르게 말랐다. 목이 말랐고 몸이 말랐다. 물이 고팠다. 나는 네가 고팠다. 네가 주었던 관심어린 궁금증이 고팠고 네가 주었던 애정어린 손길이 고팠다. 언젠가의 너처럼 나를 고파하는 네 모습이 나는 고팠다. 그러나 너는 습관처럼. 그래 습관처럼. 차라리 못된 짓을 하지 그랬니. 너를 원망이라도 할 수 있게. 지금의 나는 원망은 커녕 자책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널 그렇게 만든 것이 나라는 생각에 매일을 허우적댄다. 나는 네가 잊을 만하면 주는 그 적은 양의 물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선인장 한 그루. 돋친 가시 때문에 네가 날 만지려거든 꼭 찔리고 마는 그런 선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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