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첨단 과학 분야들은 오랜 동안의 연구와 전문화한 용어·기법, 기술·지식 등에 의해, 심지어 가장 문명화한 사회의 공통적인 유산으로부터 격리돼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와 같은 첨단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가정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대해서도 그 모형이 되고 기원이 되는 현실적인 기법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전문화는 진보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에 가득 차 있고 잔인할 만큼 낭비적인 것으로 이는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기타 세계의 단절이 두드러질수록 더욱더 그러합니다.(중략)
현대에는 참으로 불가피하게 점차 더 개방적인 세계, 그리고 필연적이게도 더욱더 복합적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알기에는 너무나 벅찰 정도로 많은 지식을 알고 있으며 혼자 살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해석하는 바로 그 수단인 역사와 전통은 우리들 사이의 유대인 동시에 장벽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질서는 통합하는 만큼 해체시키며 우리의 예술은 한데 묶어 놓기도 하고 갈라 놓기도 합니다.(중략)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활짝 열고 깊이를 더하며 미술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하기 위해, 또 멀리 떨어져 있고 생소하며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 미를 찾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기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이것은 인간의 조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조건 속에서 우리는 도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핵 개발 계획을 ‘맨해튼 프로젝트’라 부르고 핵 과학자들을 뉴멕시코에 불러 모았다. 이 과학자들의 책임자가 바로 존 로버트 오펜하이머(사진)다.
1947년 7월16일 뉴멕시코 주의 로스앨러모스에서 첫 핵 실험을 한 후 엄청난 파괴력을 보고 그는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다’라는 힌두교 시구를 인용했다고 전해진다.
1949년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하자 미국은 1950년 수소 폭탄 개발을 명령했으나 오펜하이머는 그 계획에 반대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그는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과학연구소장으로 지내며 핵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했다.
이 연설은 1954년 컬럼비아 대학의 200주년 기념식에서 과학과 예술의 미래를 전망하며 과학적 지식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단절과 분열을 극복하고 인간성을 새롭게 회복하자는 내용이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의 전망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확실히 우리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는 과학자 본연의 의무는 “단순하게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동료에게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르치는 것,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장 정직하게, 가장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다.
오펜하이머는 “더 개방적인 세계, 더 복합적인 세상”을 전망하고 “지식은 우리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분열시키며 우리의 예술은 한데 묶어 놓기도 하고 갈라 놓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같이 혼돈이 만연된 시대에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 자신의 전통, 자신의 친구와 자기의 사랑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펜하이머는 현대의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공통분모로서 ‘통렬한 고독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또 “과학자와 예술가는 모두 창조의 수단으로서 언제나 새로운 것과 친숙한 것의 조화, 독창성과 종합성 사이의 균형, 전체적인 혼란 속에 부분적인 질서를 이루기 위한 투쟁 등에 관계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결코 안락한 생활이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하기 위해, 또 멀리 떨어져 있고 생소하며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 미를 찾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기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오펜하이머는 “이 조건 속에서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과학자와 예술가가 교감할 수 있는 동반자임을 강조하면서 연설을 끝맺는다.
└ russel/ 오펜하이머 [예술과 과학의 전망]이란 연설문인데 아주 인상적이어서 예전에 갈무리한 글이에요. 고도의 인류애를 품은 양반이 어쩌다 생이 그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