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독점적 사랑, 폴리아모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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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홀 독서단 9월 주제가 ‘폴리아모리’이다 “폴리아모리 연애하는 분들은 이별이라 안하고 연애종료 라고 표현한다더군요” 독서단 단톡방에 누군가가 남긴 ‘연애종료’라는 말에 꼳혀 폴리아모리는 쿨함에서 느껴지는 센치함이 존재하는 줄 오해했다. 분명 나는 사랑은 반드시 연애라는 이름으로 정의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두고도... 육체적인 쾌락을 교감하는 일뿐만 아니라, 날 기쁘게 하는, 더 완성된 느낌으로 이끌어주는 정서로 정의한다면 그것에 반드시 일일이 이름이 필요하진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가하면서도… 이런 점에서 굳이 일대일 독점 관계가 아닌 폴리아모리 관계를 다자‘연애’로 소개하는 게 난 썩 석연찮았다. 폴리아모리가 크게 와닿았던 건 박현욱 작가의 소설과 원작을 영화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부터였다. “난 자기를 사랑하지만, 자기 건 아니다?” 자신을 품 안에 안고 ‘너는 내 것’이라 말하는 덕훈에게 인아가 건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린 애초에 사랑과 소유욕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자연애, 폴리아모리, 오픈 릴레이션십···. 여전히 정의하기 어려운 난해한 관계 속에 깃든 진심은 뭘까? 적절한 표현을 찾는다면, 비독점적 사랑이 더 정확하것이 아닐까? 다자연애는 비독점성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하다라는 것을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근데~ 글을 이래서 써야 하는구나 방금 깨달았는데… 다시 한번 글을 쓰면서 핵심이 그게 다가 아님을 알게 됐다. 폴리아모리는 상대방과의 충분한 감정 교류와 대화가 전제된다면… 내 욕구에 초점을 두고 본질에 빠르게 접근하면서 이야기하는 데 쉬워진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문어발식 연애와는 다르다는 것. 한 사람이 다수와 교제할 수 있다는 건 상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저 본인에게만 관대한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폴리아모리를 하면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다. 서로가 상대의 사랑을 존중하는 것이 폴리아모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나는 그렇게 배우는 것이 좋았다. 상대가 나를 두렵고 외롭게 했음에도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내 깊은 마음과 마주할 때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사랑을 배워나가는 일에는 슬픔을 마다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도 포함되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오히려 두려움 없이 마음껏 사랑하는것이 아닐까?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폴리아모리는 조건을 따지지 않는… 생각보다 그 자체로만 보는 감정인걸까? 서로에 대한 독점 상태가 진정한 사랑의 충분조건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내 것이어서’가 아니라 독점하지 않고도 사랑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관계에서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것처럼 모든 관계도 각기 다를 수 있다. 조건을 따져 사랑하는 게 아닌 사랑하면서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게 최선 아닐까? 아직은 모든게 물음표이고 독서단 토론에서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책을 다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는 예상이 되지는 않는다. 항상 느끼는건 어떤 취향? 성향? 이라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규범을 넘어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아마도 정체성을 찾는 건, 만남처럼 긴 여행과 같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나 조건을 찾아 떠나는 여행보다 진짜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여행… 독서단에서 모든 성향에 대해 존중으로 다가가는 것 처럼… 긴 여행에도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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