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권력을 가진 자가 섹스를 독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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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권력을 가진 자가 섹스를 독점한다.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이상형에 대한 설문이 뜬다. 얼굴, 성격, 몸매, 재력 중에 고르라는데… 요즘들어 결혼정보업체에서 연락이 좀 오긴 왔었다. 이제는 알고리즘이 통화목록까지 점령한건가? 유튜브든 종편이든 지상파든 알고리즘에 의해 희생 당하는 것 같다. 지상파는 어떻게든 막장의 구조를 못벗어나고 종편은 유튜브 따라하기 바쁘고 유튜브는 OTT와 맞짱중이고 <환승연애> , <나는 SOLO>, <하트시그널> 연예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거의 대부분이 능력자를 가장한 권력자들이다.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을 때마다 그들의 재력, 직업, 과거사 등등이 온라인에 오른다. 이미 유튜브는 순수성을 잃었고 가짜뉴스와 자기자랑 꼰대 숏츠로 사람들을 일관성있게 가스라이팅 하는데 일단 대세는 대세이기에 먹고 살라믄 알고리즘에 속는척 해야 할 것 같다. 요즘시대에 결혼은 힘들다. 하지만 이혼은 쉽다. 정말이지 엉뚱한 의문이 아닐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아니 종종) 생각하곤 한다. 도대체 왜 결혼 제도는 조금 더 자극적일 수 없는가? 스와핑을 서로 간의 합위된 상태 하에서 추구하는 사람들은 정말 저주받아 마땅한 상스러운 부류일까? 정말 그럴까? 법을 만들고 예절을 만들어 세상을 묶어 놓은 후, 자신들은 법과 예절 위에서 섹스의 자유를 만끽한다. 폐쇄적이고 은밀하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섹스의 독점을 위해 힘의 원천인 돈과 권력에 더 집착하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가장 큰 쾌락과 달콤함은 섹스에 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섹스를 위해 목숨을 건다. 식물은 모든 에너지를 모아 꽃을 만들고, 동물 또한 발정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붇는다. 반드시 결실을 목적하지 않아도 꽃을 피우는 그 순간, 정을 표출하는 그 순간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섹스의 순간은 동식물을 막론하고 가장 짜릿하고 집중적이고 달콤하고 흥분된 순간이다. 삶의 절정, 삶의 클라이막스, 삶의 오르가즘인 것이다. 따라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섹스욕을 상실한 존재는 볼행하다. 물론,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삶의 의미를 채워나갈 수도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이며 감각적이고 본질적인 쾌감과 행복감은 상실한 것이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나무는 꽃나무가 아니다. 청년이 노년보다 아름답고 가치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섹스 만큼의 삶의 의미, 즉 쾌감과 감동을 주는 어떤 것을 누리지 못하는 한, 섹스욕을 상실한 존재는 새로움을 만들어 낼 의지도 현재의 즐거움을 향유할 욕망도 잃어버린 존재다. 자신을 드러낼 의지를 상실한 존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목숨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섹스가 끝나면 모든 동물은 슬프다'라는 말을 했던 그리스의 의학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한때 그 말을 우연히 접했을 때 무릎을 '탁' 하고 쳤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영장류 포유류는 통상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에 따라 교미 후 일정 부분의 우울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침대' 위에서 짧게 혹은 길게(?) 주고받았던 몸의 교감 이후에 느끼는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공허감 혹은 허탈감은 그저 내 탓이 아니라 단지 유전학적(?)으로 그리 생겨 먹었기에 그런 걸지 모른다고, 애써 '인지부조화'를 하곤 했었다고, 감히 고백을 해 본다. 내가 느끼는 결혼은… 섹스는 가장 대중적으로 변모되고 복잡해지는 것은 사랑이다. 한 평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이랑 섹스 해야 한하는 것인데 인간이 번식하고 가족을 꾸리는 수단으로 차세대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 기반으로만 쓰인가는 것이다. 아마도 어떤 '자유'의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기혼 제도 속에서 법적으로 '한 사람'에게 온몸과 마음(?)과 일상의 시간들을 모두 함께 한다는 나름의 법률적으로 정해 놓은 '결혼'으로 묶인 건강한 속박... 과도 같은 것이랄까. 섹스와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며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 빠질 수 있다. 사랑에 반드시 성적인 욕구가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남녀 간의 사랑에서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판도라의 상자와 같이 금지된 것을 풀어 헤쳐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을 표현하느냐 숨겨 놓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라면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더욱더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 욕망을 소리 없이 감추고 산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 중에 성적인 욕망은 쉽게 참을 수 없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 중에 섹스만 한 것도 없다. 그래서 권력은 섹스를 이용한다.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의 섹스는 상대보다 나의 쾌감을 높이려는 반면, 사랑하는 상대와의 섹스는 자신보다 상대의 쾌감을 증진해주려는 노력이 가능하다. 당연히 사랑하는 상대도 나의 쾌감을 높이려 노력하게 되어 두 사람이 극한 쾌감을 체험하게 된다. 나와 상대를 구별할 수 없는 느낌, 무아의 상태에 도달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걸 보고 싶고 맛난 걸 먹고 싶고, 근사한 남자와 몸을 섞고 싶고, 근사한 여자와 섹스를 나누고 싶어한다. 우리는 관능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때론 성적 만족을 위해 아주 큰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은 죄를 짓기 좋게 되어 있으며, 심지어 정신은 그렇지 않을 때조차 몸은 쾌락을 추구한다. 권력은 죄도 용서해주니 섹스를 마다할 필요는 없다. 문득 유튜브도 여캠에 별풍 남기는 것과 다음 없다 생각하니. 결국엔 권력이 가깝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여기까지 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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