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를 하기 위한 그 구질구질한 것들
37
|
||||||||||
|
||||||||||
평생 일부일처제의 관습이 인간에게서 보편적인 특성은 평생 한 사람과 섹스 할 수 있을까 이다. 이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예전에는 어떤 무엇이었더라도 서서히 부식되고 부서져가고 있으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허물어질 출산률을 보자면 인간은 결혼 보다 섹스를 위해 그 구질구질한 제도에 맞춰준게 아닌가 높은 이혼율과, 주거 등 필요에 의해 서로 함께 살다가 불필요하면 쉽게 헤어지는 동거족, 그리고 아예 혼자 사는 싱글족들의 급부상은 앞으로의 사회가 전통적 결혼을 기반으로 가족단위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을 이미 말하고 있지만 평소 다양한 형태의 계약결혼을 대안으로 여러 상상력을 펼치던 중 결국엔 섹스를 하기 위한 계약이자 장치가 아닌가 싶은거다. 엄밀히 말하면 그 모든 것이 섹스를 위한 서비스 같다. 섹스를 하기 위한 틈새 시장의 수요를 찾아 A 부터 Z까지 만들어 낸 훌륭한 기획이자 인간의 가장 모험적인 전략이다. 모든 목표가 유전자 전달, 즉 섹스의 목적에서 시작된 만큼 육체적 신뢰를 위해 정서적 부분과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사사로운 것들까지 챙겨가며 섹스를 포함한 모든 생활을 같이, 항상, 늘 함께하는 수고를 들이지만 허무하게도 섹스는 되고 사랑만큼은 금지된 것. 잔인한 것은, 감정적인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결국에는 물질적인 보상과 실현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노력에 따라 섹스의 유무가 정해진다. 사랑 없는 섹스가 있고 섹스 없는 사랑도 있다. 둘 중 하나의 정답을 정할 수는 없으나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이여도 사랑 없이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항상 사랑과 섹스가 함께 이루어진 섹스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생각보다 아이러니 하고도 이해가 아주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우리는 사랑과 섹스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윤리적인 자의식과 개인에 의해 사랑과 섹스를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틀에 갇혀 있는 것일 수도…. 왜 사랑과 섹스를 이야기할 때는 섹스를 할 수 있는 관계와 대상이 일반화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랑과 섹스를 분리하기 위해서 애매한 것은 결국 섹스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다. 사랑을 종류별로 나눠서 아무리 정리해 봐도 윤리적인 토대로 사랑의 종류가 나눠졌을 뿐이지 사랑자체의 본질을 말해주지 않는다. 반면에 섹스는 단어 안에 뜻이 나눠지는 것일 뿐 나눠진 뜻은 명확히 구분이 가능하다. 사람이 섹스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는 원하지 않으니 내가 원할 때까지 윤리적으로 참으라고 한다면 섹스를 원하는 사람은 잠이 부족한 사람에게 자지 말라고 하는 것, 굶주린 사람에게 먹지 말라고 하는 것, 배변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큼 섹스를 불가항력으로 여길수가 있다. 그나마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욕구적으로 봤을 때 그 만큼이라는 것이지 실제로는 섹스를 원하고 있을 때 하지 않는다고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니 참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욕구적으로 그 만큼 힘들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신기하게도 섹스와 사랑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의 섹스는 상대보다 나의 쾌감을 높이려는 반면, 사랑하는 상대와의 섹스는 자신보다 상대의 쾌감을 증진해주려는 노력이 가능하다. 당연히 사랑하는 상대도 나의 쾌감을 높이려 노력하게 되어 두 사람이 극한 쾌감을 체험하게 된다. 나와 상대를 구별할 수 없는 느낌, 무아의 상태에 도달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걸 보고 싶고 맛난 걸 먹고 싶고, 근사한 남자와 몸을 섞고 싶고, 근사한 여자와 섹스를 나누고 싶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감각적 쾌감을 주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당연하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남녀 모두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섹스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구질구질한 것보다 너와 내가 섹스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을 생각하자. 사랑하는 짝을 만날 때 행복하고, 활기 넘치고, 자신만만하고, 원기가 샘솟고, 온몸이 생명의 의지로 충만한것 처럼. 사랑하는 짝과 함께한다는 것은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키기고 살아 있음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섹스를 통해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종족 번식을 위한 강력한 유인 장치인지도 모르지만, 본능적 행복 추구의 근원이다. 원래 행복이나 쾌락이 무한이 지속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섹스가 주는 쾌감과 행복감은 너무나 강렬하여 다른 길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인터넷에 떠도는 ‘4B 현상’이 있다. 비연애, 비섹스, 비결혼, 비출산이 그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고 어려우면 본능적인 욕구를 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 서글프다. 현재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사라질 나라로 대한민국을 지목하고 있고 왜 그 좋다는 사랑도 섹스도 포기하는가. 어느 책에 나오는 정열적인 사랑의 효과다. 사랑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음을 떼어놓고, 사랑과 관련되지 않는 관계들을 해체하고, 낮을 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섹스하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비밀의 성(城)안에서~!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