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생겼다.
20
|
|||||||||||
|
|||||||||||
이 글은 픽션 입니다. “사람들은 왜 바람을 피울까?” 내가 지난 몇년 동안 웨딩 일을 하며 끊임없이 지금도 듣는 질문이다. 내가 하면 낭만적인 사랑, 상대가 하면 ‘배신'이라는 치료가 필요한 증상. 수많은 관계가 결핍을 보상하기 위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또는 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불안정 애착이나 갈등과 회피, 오래 이어진 섹스 없는 생활, 외로움, 아니면 그저 몇 년이나 같은 다툼을 반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갈증을 느껴 바람을 피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결혼 생활의 문제 때문에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안다. 분명 몇년 전 나의 서포트로 무사히 결혼을 마쳤던 커플들이 각각 다른 문제로 다시 웨딩플레너를 찾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들이 바람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상상되고 이해가 된다. • 오랜 친한 친구가 크리스마스에 먖쳐 결혼을 앞두고, 내가 그 결혼을 기획하게 되었다. 웨딩플래너로 일하면서 가장 안좋은 상황을 내가 겪게 된다. 모든 결혼에는 친한 친구들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사진을 잘 찍는 친구는 사진을… 직업이 피디인 친구는 영상을… 노래 좀 한다는 친구는 축가룰… 이 모든게 친구로써 당연한거라 생각하지만 여기서 부터 친구사이는 틀어진다. 댓가없는 호의는 또 다른 댓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지만 난 친구로써 결혼식을 기획하는게 아니다. 웨딩플래너로써 기획하고 친구로써 약간의 호의만 배풀 뿐이다. 하지만 친구는 내게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11월 이지만 벌써부터 심란한 마음을 꾹꾹 가다듬고 그 사람을 만났다. “잘 지냈어요? 나는 오늘 할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많이 없나? 섹스 먼저 할까요?” “밥은 먹었어요? 무슨 이야기 인데요? 이야기해봐요. 무슨 문제있어요?”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유진이에게 프러포즈를 했어요. 멋진 호텔에서 프러포즈를 하고, 와인도 찐하게 마시고, 내가 보는 앞에서 성대하게 프로포즈를 했죠. 유진이에게는 자신의 아이디어라 말했겠지만… 그 호텔, 그 와인 전부 제가 알려준거에요. 그 친구 연애에는 센스가 젼혀 없거든요. 제가 그 친구가 프로포즈 할 때 핸드폰을 촬영을 해주고 있었는데… 이상한 카톡이 왔었어요.” “무슨 카톡이 왔는데요?” “아마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한 거 같아요.” “뭐?!!!, 프러포즈 전날? 하…” “어떤 여자인지 모르겠지만… 여자 속옷사진이 뜨더군요. 결국엔 여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다 본 거예요… 나중에 유진이와 문제가 있으면 이 결혼하지 말려야 하는거 아닌가? 근데 심각한건… 유진이가 그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거에요. 둘은 아무 문제 없는 척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요 , 정말 아무 문제가 없진 않을 거에요. 지금으론 남자가 잠자리에 불만이 있어보이는데?…” “유진이와 섹스이야기를 해본적은 없어서 모르겠어요. 내가 보기엔 섹스도 전혀 문제가 없어보였는데… 왜 그랬을 까요.” • 결국 내 친구는 바람피우는 것을 들켜, 파혼까지 이르게 됐다. 사귄 지 6년, 사귀는 동안에도 다른 여자와 만났다고 했다. 그것도 채팅에서 만난 여자들, 사내에서 만난 여자들, 여사친들과의 잠자리 등등.. 너무 이상했던건 여자 친구와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음…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커플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없는데도 외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서로의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이건 개인문제일까? • 그 일이 있은 후 다시 그를 만났다. 기뻐 보이는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반가운건가?” 오늘따라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떳다. 나를 만날 때면 늘 상기된 얼굴, 나의 모든 걸 열어보고 남김없이 빨아들일 듯이 내게 관심을 기울이던 그 사람. “우리 저번에 못했으니 지금 바로 갈까요?” 그는 무척 흥분해 있었음에도 벌써 하는 게 괜찮겠냐고 내게 물었고 최근들어 섹스를 한 적이 별로 없어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섹스할려고 나왔으면서… 옷을 벗어보니 그가 저번보다 좀 더 살집이 있어 살짝 당황했지만, 우리는 오랜 배고픔을 채워가며 맛있는 섹스를 느껴갔다. “살이 쪘네요? 무슨일 있었어요?” “연말이 잖아요.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약속도 많고.” 생각해보니 연말에 아무 약속도… 그저 일상 처럼 지나가는 현생이 내가 얼마나 우울한 사람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섹스 후 치맥을 하면서 그와 지나온 과거는 어떤 굴곡을 가졌는지 꽤 길게 떠들었다. 그는 이야기가 잘 통했고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느 날인가는 섹스를 하고 그의 폭신폭신한 품에 안겨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의 가슴에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연도가 적힌 타투가 있었는데, 그 타투를 부적처럼 만지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도대체 어떻게 그가 도망가지 않은 건지 싶을 정도로 무섭게 내 모든 날것의 감정들을 그에게 던졌다. 나는 그보다 성욕이 강했다. 그건 내가 그보다 젊고 운동을 많이 해서도 그랬지만 훨씬 더 깊은 구덩이가 내 속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나의 안을 메워주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아마도 나는 웨팅플래너를 하면서 남의 결혼식에 투영될 나의 결혼식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던 것 같다. 내 남편이 될 사람이 바람이나 피지 않을까? 친구들은 내 결혼식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할까? 프로포즈는 내가 예상 할 수 없게… 그렇게 나를 아껴줄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나를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요.” 섹스를 나누다가 그렇게 얘기했다. 그가 어떻게 받아 들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타인에게 욕망 되고 있다는 것에 행복했고 그가 나의 소중한 증거였다. 내 인생에서 그나마 위한이 되는 섹스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 나는 그를 자주 만나고 싶었다. 토요일에 만나면 당연하게 같이 밤을 보내고 일요일까지 어느 정도 같이 어울리다 헤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버거워 했다. 직장인으로서 여유 시간이라곤 주말이 다인데 나를 만나는 일 외에 다른 것들을 해내기가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이주일에 한 번 정도만 더 보자고 했고, 나는 사실은 모자란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의 톡을 오매불망 기다리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람은 이혼 소송 중이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조금의 좋은 부분도 없이 처참히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상처받은 마음으로 매섭게 울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또는 누군가에게 품을 온전히 내어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그의 상황이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무척 힘들었다. 그의 인생에 아직 남아있는 와이프의 흔적들을 느낄 때… 속이 쓰렸다. 그와 몸을 섞는 사이가 되고 주말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가끔은 기분이 더러웠다. •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나는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명절인데, 나는 아직도 가족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느낌 때문에 불행한 느낌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그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 그가 먼저 연락해주면 좋을 텐데. 지금 곁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 기분이었다. 내 안에 사랑은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여느 때와 같이 지난 사랑에 우울감에 빠질 때 쯤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 관계를 끝내야 겠다는 결심이었다. “여보세요?”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톡외에 한번도 전화를 한적이 없었다. 반가우면서도 무서웠다. “잘지내요? 일부러 전화했어요.” “무슨일이에요? 전화가 와서 당황 했어요.” “알고 있겠지만 나 이혼소송 중이에요. 소송중에 당신에게 피해가 갈까봐 연락을 잘 못한거에요.” “………. 네..…..” “이혼은 나 때문이라기 보다. 와이프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에요. 내가 외롭게 만든 이유도 있겠지만… 처음엔 이혼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는 내가 많이 달라졌어요. 당신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마음이 무겁고 당신의 나를 경멸할까 그 감정이 괴롭히고 있었어요. 내가 이혼 소송중이란 걸 말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이야기에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 까진 이야기 하는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죠?” 나는 그가 횡설수설하게 떠드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어….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냐면요… 우리 이제 섹스말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여행도 가고… 어때요?” 나의 모든 것을 이 한 사람이 떠안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했다. 방금전 까지 혼자 잘 지내보고 싶었고, 다행히도 어찌어찌 잘 가다듬었으나. 이런 호감스런 고자극은 두근 거리는 긴장이 풀리지 않아 오롯이 그 사람에게 맡겨주고 싶다. 이렇게 건강하고 얄미운 이 남자에게 자유를 빼앗고 구속을 듬뿍 누려 줄 테다.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생겼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