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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게를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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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생긴남자 조회수 : 3932 좋아요 : 0 클리핑 : 0
지난주 금요일 모 처럼 술을 진득하게 먹었었습니다.
저는 술을 즐겨먹진 않습니다. 술을 먹어야 하는 일에는 먹어야하지만 즐기진 못하죠 하지만 오랜친구, 좋은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술을 먹는 건 무척 좋아합니다.

신년이 되고 오랜간만에 몇 안되는 싱글인 친구와 술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친구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사사로운거 소소한거에 기분을 낼 수 있는? 친한 친구일 수록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서로의 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어 그 단점을 매꿔주려고 하죠. 예를 들면 저는 방향치라 지도어플을 보고도 잘 햇갈리는 편인데 그 친구는 제가 햇갈릴까봐 지도어플에 부연 설명까지 넣어 제가 혼동하지 않게 배려 합니다.

만나면 아무이야기를 해도 즐겁게 이야기 하고 자주봐도 지겹지 않고 다른 표현은 인색하지만 즐겁다라는 표현을 잘하는 친구. 약간의 법칙같은게 있다면 항상 제가 먼저 연락하지 않습니다.
아까도 이야기 드렸지만 저는 술을 즐겨먹진 않기 때문이죠~ 근데 그 친구는 술을 한잔 하고 싶으면 항상 저를 부릅니다. 저는 그 친구가 연락하면 거의 무조건 나가는 편입니다.

오랜간만에 만나서 1차는 고기를 먹고 2차는 잘가는 이자카야를 가려고 했는데 그날 따라 그 고기집이 만석이더라구요. 그래서 돌고돌아 처음간 고기집에 갔는데 생각보다 고기가 맛있었습니다. 저는 고기가 좋거든요~ 고기맛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참고로 고기 잘굽습니다~ㅎㅎ

암튼~ 고기에 와인 한잔하면서~ 일주일동안 케케묶은 스트레스를 풀면서~ 아무 주제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1차는 내가 낼께~ 먹고 싶은거 있음 더 먹자~"

저는 오늘 이 친구가 저를 부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한동안 속앓이를 했단 걸 알고 있었죠. 오늘 이 친구에게 술을 얻어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야 너무 많이 나올거 같은데... 나는 배불러~ 너가 더 먹고 싶으면 더 시켜~"

"배부르긴? 이 정도로 배부르지 않는거 알아~ 더 시켜 먹자~"

"아니야~ 시킬거면 1인분만 더 시켜~ 진짜 배불러~"

"집게 내놔~ 고기 내가 더 구울께~"

"아니야~ 고기는 내가 굽는게 맘 편해~"

이 친구는 돌싱입니다. 매사 신중하고 진지한 녀석인데~ 쓸쓸함이 많은 친구였죠. 하지만 쉽게 연애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 친구가 여자친구를 소개해준 경우는 딱 한번 있었고 그때 '아... 결혼하려는 구나...' 라고 알았죠.
결혼을 하고 1년도 안되어 이혼을 한다고 했었을 때 그 친구의 표정은 세상 모든걸 잃어버린 병든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몇년은 그 친구가 이야기 할 때 까지 이혼은 금기어 였습니다.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먼저 이야기 하지 전까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 이야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친구도 일부러 아무말 안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기를 먹고 원래 가던 이자카야를 가려고 했는데... 거기도 만석이더군요. 웨이팅이 있었습니다.

"치킨이나 먹을까?"

"내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자고?"

"엉~ 너 치킨에 환장하자나~"

"나야 좋지~"

친구는 저를 배려하기 위해 일부러 제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자고 합니다.
아무 치킨집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자리도 불편하고 치킨도 별로 였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치킨을 더 잘 먹더군요. 아무래도 고기먹고 배부르다는 것은 허세였던 것 같습니다. 아님 적당히 배부른건가?

"다시는 연애를 못 할 줄 알았어..."

친구가 주저리 주저리 속마음을 이야기 하고 저는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친구는 허심탄회하게 마음것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인생이 녹록치 않음을... 원망스러움이 가득한데 터놓는게 쉽지 않음을... 노력하는데도 변하지 않는거 같아 허무감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한 30분은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F라 해도... 어리석은 공감은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는 여친의 어떤면이 좋았던거야?"

"나를 좋아해 주잖아... 그거 하나라도 과분한 것 같았어. 일부러 먼저 연락을 하고 시덥지 않는 말에 잘 웃어주고 우연히 만났는데 나를 먼저 알아보더라고...
한두번 만났는데... 계속 웃어주는게 나도 같이 웃고 있더라고... 정말 오랜간만에 행복했다 랄까... 정말 어렵게 또 보고 싶다고 말을 했어..."

그 친구의 옆에는 어느새 새로운 연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연애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연인이 무척 궁금했지만 다시 이 친구가 말할 때 까지 기다려줘야 했습니다. 아마도 스스로가 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거라는 것...  돌싱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있어서 지우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려고 온 자리... 이 자리가 처음이 아니라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민망하면서 저에게 확인 시켜주는 자리...

" 이 친구가 왜 좋은거에요?"

"원래 대학선배인데 처음 봤을 때 부터 그대로인거에요. 사람은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자기에 맞게 변하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았더라구요. 
그때도 고지식하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 고지식함이 좋은 것 같아요. 변하지 않는 사람 같아서 좋은 사람 인거 같아서요."

"쓸때 없는거 물어보지마..."

"닥쳐~ 이제부턴 너는 가만히 있어~"
"이 친구가 쉽게 연애하는 애가 아닌대~ 어떻게 꼬신거에요?"

"제가 꼬신거 아니에요. 이 선배가 저를 꼬신거지... 배려하는게 느껴졌어요. 제가 사탕을 좋아한다고 사탕을 꼬박꼬박 챙겨줘요. 제 기분이 어떤지 무슨 생각하는지 제 감정을 읽으려고 엄청 노력해요. 밥을 먹으러 가면 제가 좋아하는 것만 시켜줘요. 적게 먹으면 왜 적게 먹는지 궁금해 하고 많이 먹으면 밥을 못 챙겨먹는지 궁금해 해요. 재채기를 하면 비타민C를 챙겨주고 하품을 하면 그날은 일부러 집에 일찍 들어가게 해줘요. 제가 구두를 신으면 오래 걷지 않으려고 하고 날씨가 좋으면 한강이나 공원에 데려가 줘요. 아마도 이런건 쉬운일이 아닌데 항상 머 하나라도 가볍지 않고 진중하고 깊게 생각하고... 
내가 마음만 준다면 나를 소중하게 대해 줄 것 같아서요. 선배가 나를 꼬신거나 마찬가지에요."

"너무 진중하고 깊게 생각해서 피곤하지 않겠어요?"

"아니에요. 진중하지만 배려심이 깊어요. 제가 보기엔 못난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어려워 하는지 모르겠어요. 친구분 이야기도 자주 했는데 제가 보고 싶다고 엄청 이야기 했거든요. 근데 너무 오랫동안 아무도 안보여주더라구요. 마음의 무게를 아는 거죠... 습관인거 같아요. 친구끼리 인데 아무말 안하는것은 서로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다정함인거 같아요. 서로 안심시키려고 하는거... 하루 이틀 친구 아니잖아요. 근데.. 저한테는 안그랬으면 좋겠어요."

"........... 두 사람... 잘 어울리네요."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대화이지만 친구의 여친에게서 이렇게 깊은 대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확실히 세상에 인연은 있다.
큰 상심속에 다시는 연애를 안할 것 같은 친구도 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세상에 짝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세상 굴곡같은 일이 있어도
언젠간 만나게 되는... 

그날 술은 정말 맛있었고. 저는 다음날 숙취 때문에 하루를 버렸습니다.


 
착하게생긴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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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미내꺼 2024-01-07 13:59:44
이제 좀 살만해졌습니까? 간을 버리고 우정을 얻으셨네요 :)
착하게생긴남자/ 숙취에 속쓰림을 얻었지만 우정은 빛났더랍니다!
최악의악 2024-01-07 09:21:54
멋진 7942네요 두 분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착하게생긴남자/ 7924라는 표현이 좀 올드하지만~ㅋㅋ 기분좋아 쓴글인데~ 댓글남겨주셔서 감사해요!!
spell 2024-01-07 09:14:12
친구분의 사랑도 두분의 우정도
착남님의 다가올 사랑도 모두 응원합니다!
착하게생긴남자/ 스펠님의 러브스토리 기대 하겠습니다!!
밤소녀 2024-01-07 08:58:39
아름다운 우정이네요 :)
착하게생긴남자/ 인생을 살면서 이런 친구 하나쯤 있는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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