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떠오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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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저울>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개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함민복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중에서
편리한 전자 저울이나 스프링 저울을 사용하면 될텐데 학교 물리학 실험에서나 볼 수 있는 양팔 저울이라니! 이 저울은 한 쪽 접시에 물체를 올려 두고 다른 쪽 저울에 추를 올려 평형을 이루면 추의 무게를 읽어 물체의 중량을 잰다. 사용이 번거롭다. 그냥 올려두기만 하면 눈금이 무게를 나타내는 저울이 편하다. 그런데 시인은 이 번거로움을 다르게 본다. 무게를 잰다는 건 대상의 속성 중 하나를 아는 행위다. 원래 대상을 안다는 의미는 상대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팔저울 측정은 나를 상대에게 맞춤으로써 너와 나 평형을 이루어 서로를 아는 쪽이다. 대상(당신)을 알기 위해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한다. 일방적, 착취적 앎이 아니다.
그런 앎은 쉽게 이룰 수 없다. 상대적으로 먼 길이고 파란만장한 과정일 거다. 앎에 이르기 전에 내가 먼저 부서질 때도 있을 것이다. 지난한 시간을 거쳐 평형을 이루는 앎에 도달한다면 그 깊이는 얕을 수가 없다. 그 깊이는 역설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수평의 깊이다.
언젠가 이 시집을 읽고 좋아서 감상문을 썼었어요. 오늘 밤 이 시가 떠오르네요. 휴일 밤 모두들 편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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