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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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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그 날의 기억을 감각화 시켜 되뇌어보면, ‘소주 냄새’ 와 ‘차가운 감촉’ 으로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은 창 밖으로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시간은 초저녁을 넘어서 버렸지만, 내리는 눈 때문에 창 밖은 푸르스름한 빛무리가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에 취한 남녀가 서로 손을 꽤 오랜 시간 잡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꽤 위험하고 효과적인 일이었다. 내 방에 있던 작은 스토브의 열기는 방 안 전체의 공기를 뜨겁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차가운 상태로 남아 있던 내 손으로 지수의 양 볼을 감쌌다.
 
왜 얼굴이 그렇게 빨갛게 변했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그것이 그녀가 주는 일종의 ‘신호’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지수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별 뜻 없이 한 질문이라고 했다.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던 고타츠는 한 쪽으로 치워졌다는 점이었고, 그녀의 등은 침대 쪽으로 바짝 기대어졌다. 무릎을 꿇은 내 다리 사이로 그녀의 다리를 쫙 편 다리가 들어가 있었고, 나는 한 쪽 팔로 그녀의 목을 끌어 안았다. 지수는 내 팔을 베게 삼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부드러운 입술과 그 틈새로 세어 나왔던 알코올 냄새와 함께 우리는 둘다 눈을 감았다.
 
그녀는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쭈뼛 거리거나 애매한 방어를 하지는 않았다. 집요하게 아랫입술을 빨고 공격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했다. 자신의 볼을 만지며 키스하는 내 손등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은 것 이외에는, 지수는 그냥 내게 맡기는 듯한 분위기 였다.
 
술 냄새가 조금 섞인, 실내의 차가운 공기와 대조되는 뜨거운 숨결을 서로 공유하며 우리는 한참이나 그렇게 키스를 했다. 나는 그녀의 니트 안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부드러운 등을 어루만졌다. 잔잔한 반응만 보여줬던 그녀도, 내 손 끝이 브라의 후크 부분을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몸을 움찔했다. 차가운 손 끝에 닿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등의 감촉이 좋아서 나는 한동안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고, 이윽고 천천히 그녀의 허리를 잡아 위로 올렸다. 내 의도를 알아챈 듯, 지수는 내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나를 따라 침대로 올라왔다.
 
나는 되도록이면 동작을 멈추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까, 숨이 막힐 정도로 키스를 하다가 입술을 떼면, 다시 그녀의 목덜미를 빨거나 이마에 입을 맞추거나 했다. 동작이 멈춰 버렸을 때 우리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생겨 버리는 게 싫었고 또 그녀를 끌어안고 만지는 행동을 멈추는 것도 싫었다.
 
지수는 자신을 마음껏 만지고 빠는 내 행동에 그 어떤 제제도 가하지 않았다. 다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나를 유혹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도 내 다음 애무에는 그녀가 어떻게 반응 할까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서 흥분이 되었다.
 
침대보와 우리의 옷자락이 뒤엉켜 스윽스윽 하는 소리를 냈다. 내 손이 그녀의 스타킹의 종아리, 그리고 도톰한 허벅지를 어루만지자, 내 입술을 빨고 있던 그녀의 입술에 아주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치마 속으로 손을 더듬거리며, 그녀의 스타킹 밴드 부분을 찾아 밑으로 당겼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준 그녀 덕분에 스타킹은 금새 발목까지 말려 내려갔다. 나는 시각보다는 촉각과 청각에 모든 것을 의지하겠다는 것처럼 눈에 담기 보다 감촉을 느끼려 애를 썼다. 중간 중간 눈이 마주칠 때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맞췄다. 싸구려 스토브가 방 안의 공기 전체를 따뜻하게 해 주진 못했지만 조금의 오차 없이 밀착한 몸 때문인지 조금의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크가 풀려 헐렁해진 브라 사이로 손을 넣었다. 내 손이 차가운지 움찔하는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은, 비교적 큰 편인 내 손에 꽉 차고 조금 남는 듯했다. 말랑말랑한 지수의 몸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키와 덩치 탓에 (플러스 일본가구의 작은 사이즈 탓에) 늘 좁은 침대가 불만이었던 나는, 좁은 침대 덕에 더욱 더 지수와 밀착할 수 있었다. 그 좁은 침대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나는 단 한 시도 그녀의 몸에서 손과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내 옷을 벗어 던졌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고, 나는 먼 길을 돌아가듯이 그녀의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젖어 있는 그녀의 꽃잎을 확인했다.
 
“흣…”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 순간이었고, 아마도 나는 그 순간 이성을 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수의 옷가지들도 하나 둘 씩 침대 밑으로 흘러 떨어졌고, 우리는 이불 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이불 소리를 들으며 입 맞추고, 애무하고, 만지며 서로를 탐했다. 조금 상투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는데, 지수의 몸은 쫀득쫀득 하다는 표현이 너무나 적합했다.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갔을 때도, 그녀의 가슴과 등, 허벅지를 만질 때도, 입술과 목덜미를 핥을 때도 내 촉각은 너무나 예민하게 그녀의 몸에 반응했다.
 
서로 그렇게 하자고 협의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이불 속에서의 한정된 산소 속에서 서로를 끊임 없이 탐했다. 자세와 체위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늘 이불 안에서의 밀도 높은 그 공기는 추위를 잘 타는 그녀의 이마에도 생글생글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그때 흐느끼듯 내 귓가에 신음하던 그녀의 목소리와, 그것에 화답하듯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던 내 손 끝의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나는 그 때 만큼은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지수를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냥 잡는 것이 아니라, 깍지를 낀 채로 손가락으로 살살 내 손을 간지럽히 듯 쓰다듬었다. 우리는 섹스 이후에도 아무런 말없이, 좁은 내 침대 위에서 마치 서로를 위로하듯 만지고 빨았다. 숨막히는 이불 속 공기가 왠지 싫지 않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불 밖에 나왔을 때 스토브에서 나는 등유냄새가 확 하고 코를 찌르는 게 느껴졌다.
 
사실, 그 날 이후로도 어학원에서의 지수와 나의 관계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로 경쟁하 듯 공부하고, 서로 한 마디라도 선생님과 더 일본어를 나누려고 애를 쓰고, 자신이 공부한 것을 써먹을 방법을 궁리하며, 누구보다 우수하고 성실한 유학생 생활을 했다. 다만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하교길에 그녀의 자취방으로 직행했다는 점이었다. 같이 사는 그녀의 언니는 알바 때문에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늦게 왔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성실한 유학생 생활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우리는 더욱 진하게 섹스에 열중했다. 밖에서 훤히 보이는 그녀의 방 창문에서 뒤로 하기도 하고, 일본 야동에 나오는 체위를 따라하기도 하고, 일본어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어로 상황극을 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당시 일본에 있던 그 어떤 유학생 커플보다 더 많은 대화를 했고 더 많이 서로의 섹스 판타지를 탐독했다.
 
우리가 다니던 어학원은 약 3개월마다 월반(더 높은 레벨의 반으로 가는 것)이 이루어졌는데, 지수가 1등, 내가 2등으로, 딱 우리 둘만 상위 레벨의 반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나 처럼 장기가 아닌 단기 유학으로 왔었던 지수는 계속 일본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신이 원하던 네일 아트 전문학교를 가려면 잠시 한국에 돌아 갔다가 다시 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조금 짜증나긴 하지만, 비자 문제와 돈 문제는 일본 유학생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섹스 파트너를 Friend with benefit. 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존재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는 연인도 그렇다고 섹스 파트너도 아니었지만 서로의 유학생활에 큰 의지가 되었던 존재였다. 서로 이득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부에 대한 영감과 열정을 끊임 없이 서로에게 주입시켰던, 지루하고 삭막한 내 유학생활에 처음 느낀 위안이 바로 지수였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마지막 섹스를 나누고 난 그 날 지수는 꼭 반드시 다시 보자고 내게 말했다. 애교 섞인 표현이 인색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정말 많이 표현한 것이리라. 그리고 정말 약속대로 그녀를 훗날 일본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처음 술을 마신 그날 뜨겁게 서로를 탐닉했고, 그 이후로도 틈만 나면 서로를 만지고 또 먹었다. 그녀가 비자와 자금 문제로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나는 정말 미친놈처럼 공부에 열중했고 다른 어학원 입학 동기들과 무려 두 단계 이상 차이나는 반까지 승급했다.
 
내가 있었던 그 지역에는 세 개의 어학원이 있었다. 먼저 전통을 자랑하는 T어학원이 있었는데 유학생들의 전문학교 및 대학교 진학율이 매우 높았고, 그에 걸맞게 비자도 잘 나오는 편이었다. 출석율이나 성적이 안 좋으면 가차 없이 유급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고, 또 어학원 주제에 입학 시기 이외에는 학생을 아예 받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곳은 K 랭귀지 스쿨이었다. 이 지역에 있는 세 개 중 가장 얕은 역사와 주먹구구식 운영, 낙후된 시설로 유명했으며, 그에 걸 맞게 출석율이 안 좋아도, 입학시기가 아닌 도중에 입학을 해도 돈 만 내면 학생으로 받아주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나도 전통의 명문인 T어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입학 원서 접수 시기가 지났다는 이유로 까여서 차선책으로 간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게다가, 내가 다니던 K 랭귀지 스쿨의 실직적인 운영자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특히 학생들 중에 한국인들 비율이 높았다.
 
이 어학원은 두 가지 부류의 학생이 있다. 장기 비자로 장기간 공부할 학생과, 단기 비자(1~3개월)코스로 온 학생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장기로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단기 코스 학생들이 왔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하는 것을 주기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지수가 돌아가고 나서, 1년안에 대학 입학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공부에 정진하던 나는 어느 날 등교해서 반에 들어갔을 때 못 보던 아이들이 꽤 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단기 애들이 들어왔구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교과서를 꺼내던 나는, 내 앞에 있는 처음보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겨울이 가고 벚꽃 몽우리가 올라올 때, 그것이 그녀와의 첫 대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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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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