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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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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aytime shootingstar]
 
"저~기 다이소 보이지? 다이소 창업주가 굉장히 독특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부도를 몇 번이나 해서 사업을 말아먹고……그냥 행상으로 생필품을 팔기 시작 했다나? 근데 귀찮아서 가격을 다 똑같이 받았나 봐. 그게 100엔샵의 시초가 된 거지. 그래도 밑에 사람들이 꽤 유능했나 봐. 그런 귀찮은 성격을 가지고도 성공한 거 보면 말이야.”
 
마리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구나! 몰랐던 사실을 알았네.”
“응응. 그 노점상이 오늘의 다이소 그룹이 된 것이지.”
“근데 내가 한 질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아아……질문이 뭐 였지?”
“아까 그 여자랑 잔 적이 있습니까?”
 
마리는 마치 인터뷰하는 기자처럼, 손에 마이크를 쥔 시늉을 하며 내 입에 주먹을 가져다 대었다. 내 인중과 등에 온천이 터진 듯이 땀이 나오다 못해 물총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젠장. 화제 돌리기 실패. 
 
“아 하하하하하하! 마리도 참 농담을 잘하는 성격이구나? 하하하하하”
“잤구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면 내 눈을 보고 말해 보세요 오빠님.”
“안돼. 운전 중에는 전방 주시.”
“지금 신호가 걸렸는데요.”
 
나는 마지못해 마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마리는 그 큰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인중에서 흐르기 시작한 땀이 폭포가 되어갔고, 내 시선은 아주 미묘하게 마리의 눈이 아닌 마리의 이마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 나를 보더니, 마리가 히죽 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했네 했어. “
“잠깐만 마리. 내 이야기를 들어 보지 않으련?”
“아니 별로.”
 
나는 흘러내리는 인중땀을 닦으며 힐끔힐끔 마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마리. 그게 말이야. 사실은……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어.”
“아련한 추억일세?”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어쨌든 간에!”
“했긴 했네.”
“아니 그거슨!”
 
내가 쩔쩔 매기 시작하자, 입가를 씰룩 거리던 마리가 갑자기 웃음이 빵 터지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어이 없어 하며 그녀를 바라보자, 마리는 운전을 하고 있는 내 어깨를 토닥 거리며 말했다. 
 
“괜찮아. 예전에 있었던 일인데 뭐.”
“……정말이야?”
“나는 뭐 예전에 안 했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물어본 것 뿐이야.”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제 아예 대놓고 했다고 인정하는 구만?”
“……예전이라 괜찮다고 니가 그랬잖아……요.”
 
마리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 주고 받은 눈빛, 만나자 마자 나를 바라봤던 그 여자분 눈빛, 처음에 인사를 하기 전에 잠깐 흘러간 어색함.”
 
나는 입을 쩍 벌리며 마리를 바라보았다. 단연컨데 나는 마리랑 10년 사귄 남자가 눈 앞에있다고 해도 절대 모를 것 같은데. 
 
“그런 걸로 알아 챈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만큼 더 주의 깊게 관찰하는 법이지. “
 
나는 마리를 보며 그냥 웃어버렸다. 어쩌면 저리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게 만드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자~이런 말 하지 않았어?”
“응? 어떻게 알았어? 한국어도 할 줄 알아?”
“아니. 한국사람들 그런 말 자주 하길래. 드라마 보면.”
“그냥 인사치레 같은 거야.”
“괜찮아. 같이 저녁 먹어두 돼.”
“둘다 바쁜데 뭐. 괜찮아.”
“만약 먹게 되면 나 한테 이야기하고 먹고 와. “
“같이 먹는 건 어때?”
“아냐. 둘이 먹고 와.”
“왜 굳이?”
“그런 게 있어. 나 만의 자신감 같은 거야. 설마 날 두고 옛 여자와 다시 무슨 일이 있겠어?”
 
나는 그녀의 말에 웃어 버렸다. 마리는 웃는 나를 보더니 같이 따라서 싱긋 웃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신호에 걸리자 마자 입을 맞췄다. 
 
“근데 있잖아.”
“응?”
“내가 만약에 아까 마리가 질문했을 때,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
 
마리는 내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그럼 내 직감이 틀렸나 보다 하고 말았겠지. 내 직감보다 오빠를 더 믿으니까.”
 
조금 해가 길어 지기는 했지만, 서서히 저녁 어스름이 하늘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센다이역 앞에 있는 큰 사거리의 신호를 기다리다가, 나는 문득 마리를 보고 말했다. 
 
“집에 가면 뭐해?”
“글쎄? 책 읽을까 생각 중인데……왜?”
“우리 데이트하자.”
 
내 말에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에서?”
“뭐가 하고 싶은데?”
 
마리는 갑작스러운 내 제안이 싫지 않은 듯 생각에 잠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굉장히 신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별을 보는 걸 좋아해.”
“별?”
“응. 기분이 좋아.”
 
뭘 먹지도 못하는 걸 봐서 뭐해……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으나, 마리와 같이 더 오래 있는 다면 별이 아니라 지나가는 개미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보러 가자 그럼.”
“지금?”
“응 지금.”
 
마리는 신이 난 듯 웃었다. 별 것 아닌 것에 좋아하는 그녀가 귀여웠다. 
 
“그런데 어디로?”
“내가 아는 곳이 있어.”
 
내가 있었던 센다이는 꽤 대도시에 속하는 편이지만, 좋은 점은 조금만 시내 밖으로 나가도 쉽게 시골 풍경과 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논과 밭은 기본이고, 산이나 강, 섬마을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가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큰 메리트였다. 
 
과외 혹은 통번역일을 하다 보면,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예전에 지나가면서 보았던, 산 입구에 있는 넓은 공터를 생각해냈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주차를 하는 공간인데, 꽤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고 무료여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사실 예전에 마리와 사귀기 전에, 통역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 돌아다니다가 찾은 곳이었다. 도심 외곽의 시골 답게 별이 엄청나게 잘 보였던 기억이 불현듯 들어, 나는 주저 없이 차를 돌렸다. 
 
“설마 지금 가는 이 곳도 아까 그녀와……”
“아니거든.”
 
내가 발끈하자 마리는 또 꺄르르 웃었다. 나를 놀리는 게 뭐가 재미있는지, 그녀는 종종 그렇게 말로 살살 간지럽히듯 약 올리곤 했었다. 내가 격한 반응을 보이면, 결국 이마나 볼에 뽀뽀를 해주며 베시시 웃었다. 나는 매번 거기에 녹아서 그녀를 보며 피식 웃기 일쑤였다. 
 
“근데 오빠.”
“응.”
“한국 커플들은 데이트 할 때 주로 뭐해?”
“흠……글쎄? 특별한 건 없지. 영화보고 밥 먹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드라이브 하거나 같이 쇼핑할 수도 있고……가끔 모텔도 가고.”
“모텔? 라브호?(러브호텔)”
“응. 맞아.”
“아하! 근데 왜 굳이 집을 놔 두고?”
“한국은 일본처럼 독립해서 자취하는 사람 비율이 그렇게 많지 않아. 부모님 이랑 같이 사는 경우도 많아서.”
“그렇구나. 한국 러브호텔도 가보고 싶다.”
“일본은 어떤데?”
“글쎄? 난 잘 모르겠는 걸?”
 
마리가 싱글거리면서 웃었지만 나는 그녀를 째려보듯 보며 말했다 
 
“방금 한국 러브호텔 ‘도’ 라고 했잖아. 조사 선택이 수상한데.”
“아냐. 내가 사실 0개 국어라서.”
“웃기시네.”
 
우리는 늘 그렇듯 또 서로 장난치면서 웃고, 간지럽히고, 입을 맞추다가 신호에 출발하지 못해서 몇 번이고 신호에 걸리고 나서야 별을 볼 수 있는 그 주차장에 도착했고, 각자 입구에서 산 커피를 들고, 우리는 주차장 구석에 차를 세웠다. 꽤 거리가 있던 탓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까만 밤하늘 위로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주차장 입구 쪽에 차 한 대가 대어져 있을 뿐 다른 차들도, 사람도 없었다. 
 
“와 여기 정말 좋다!”
 
마리는 진심으로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녀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멍하니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차가 오픈카였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리는 차에 기대서 별을 보는 것도 너무 좋은 지, 양손에 커피를 들고 한참이나 별을 바라보았다. 
 
“근데 별을 보는 건 원래 좋아했어?”
“호주에 있을 때부터.”
“그랬구나.”
“응. 사실 매일 매일 너무 힘들었거든. 항상 경쟁하고, 시기와 질투와 싸우고, 인간 관계도 힘들고. 내가 살던 곳 옥상에서 힘들 때마다 자주 이렇게 멍~하게 서 있었어.”
 
나는 별 보다 훨씬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밝은 모습의 내면에는 나름의 힘든 일이 참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았고, 그녀는 내 팔을 살짝 쓰다듬으며 고개를 뒤로 눕혀 내게 기대듯 섰다. 
 
그 때 우리는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서서, 서울의 밤과는 너무나 다른, 별이 선명하다 못해 쏟아질 것 같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서로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 
 
“오빠도 힘들었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잠시 후 정적을 깨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살면서 참 운 적이 별로 없는데, 마리의 그 말에 다정함이 잔뜩 담겨져 있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녀의 그 말이 갑자기 나를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였다. 
 
“이럴 때 별똥별 이런 거 하나쯤 떨어져 주면 좋을 텐데.”
“왜?”
“로맨틱하잖아. 타이밍적으로 말이야.”
“마리 너도 별똥별 보고 소원 빌거나 해?”
“돌덩이를 향해 소원을 비는 게 우습긴 하지만, 나는 가끔 빌어.”
“별똥별 없으면 어때. 서로 소원 들어 주기 하자.”
 
아무 말 대잔치 느낌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마리는 내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서로 소원을 들어주자고?”
“응.”
“음……나쁘지 않네. 좋아.”
“마리부터 말해봐.”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옷 벗고 춤 춰 줘 이런 소원을 말하면 어떡하지? 라며 긴장을 하고 있는데, 마리는 별을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나에게 말했다. 
 
“한국에 돌아 가지 말아 줘.”
 
그녀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 단 한 번도, 일본에서 평생 먹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빨리 공부를 마치고 한국 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며 버텼다. 그런데 또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녀를 만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럴게.”
“약속한 거지?”
“응. 소원 접수. 푸슝~푸쉬이~”
“푸슝 푸쉬이~는 뭐야?”
“드래곤 볼에서 용신이 소원 들어주고 나면 저렇게 사라짐.”
“……에휴.”
 
마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내 허리를 끌어 안았다. 
 
“오빠 소원은?”
 
마리가 사랑스러운 소원을 비는 바람에, 여기서 찐하게 한 번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의 소리는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전부터 마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발레 보여줘.”
“여기서?”
“응 롸잇 나우.”
 
마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의 근엄하고 엄격한 궁서체 표정을 보고 내 말이 진심임을 알았는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음악도 없는데.”
“나 차에 CD있는 거 틀어볼게.”
“와……진짜 진짜 진심이구나?”
“응 보고 싶었거든 한 번 쯤은.”
 
사실 발레의 발자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마리가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리가 소원 승낙도 안 해 주었는데, 나는 차문을 열어 시동을 걸고 CD한 장을 넣어 플레이 시켰다. 물론 발레에 어울리는 클래식은 없었고, 나는 적당히 느린 템포의 노래를 골라 틀었다. 내가 튼 곡은 발레와는 어울리지 않는 Brian McKnight의 ‘6, 8, 12’ 라는 R&B 곡이였다. 
 
음악이 조용히 우리가 서 있던 공간을 메우고, 맥나잇 형의 소울풀한 음후~예에 하는 추임새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마리는 커피를 내려 놓고 곧 진지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서서, 문외한인 나도 알고 있는 발레의 기본 자세를 취해 보였다. 
 
“오와.”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냥 살짝 자세만 잡았을 뿐인데. 그녀 주변의 분위기가 확 하고 달라졌다. 뭐랄까, 평소에는 그냥 장난끼 많은 검의 고수가 갑자기 칼을 쥐었을 때 느껴지는 포스랄까? 어쨌든 그녀는 팔과 다리를 길게 뻗었고, 그 몸짓이 예쁜 선을 만들어 내면서, 얼토당토 않은 그 R&B에 맞춰서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 다리가 저렇게 뒤로 쭉 올라와서 머리에 닿을 정도가 될 수가 있지? 그녀는 발레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도 사뿐 사뿐 점프를 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숨 죽이고 마리의 ‘연기’를 보았다. 
 
“에이 뭐. 이 정도면 됐지?”
“우와아……대단하다!”
“흠……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은데.”
“아니야. 정말로 감탄했어.”
“이 정도면 소원은 이루어진 것 맞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건 어때? 국립 발레단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말도 안되는 소리야. 하지만 기분은 좋네.”
 
싱긋 웃는 그녀를 보니까,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에도 불구하고 확 하고 더워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내 시선을 보더니, 마리는 내 눈빛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낸 듯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차 한대 와 우리 뿐인 이 공간에,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려왔다. 
 
나는 마리의 팔을 잡아 당겼고, 이미 내 의도가 뭔지 알아차린 눈치 빠른 그녀는 살짝 끌려오듯 내 손길에 따라 왔다.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이 아닌 뒷자리에 탑승한 우리는 서로를 뜨겁게 끌어 안았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녀는 참 사랑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내 사람이다 싶으면 아낌없이 배려하고 후회없이 사랑했다. 지금 상대가 원하는 것이 섹스를 통한 사랑의 확인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주저 없이 최선을 다해 그것에 능동적으로 임했다. 내 기분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행복한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사랑관 이었고, 자신과 사귀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프라이드 어린 신념도 있었다. 
 
나에게는 턱없이 좁은 차안에 엉거주춤 앉아 있는 내 위로 그녀는 올라탔다. 그리고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더니, 밤 공기에 차가워진 손으로 내 몸을 매만졌다. 서늘한 감촉에 몸을 살짝 움찔 했더니, 마리는 곧 내 목에 진하게 입술 자국을 찍었다. 
 
밤 공기에 차가워졌던 두 몸은 정말 순식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뜨거워졌다. 나는 마리를 끌어안고, 그녀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옷에 손을 넣어 그녀의 부드러운 등과, 날개뼈를 쓰다듬었다. 마치 비 맞은 고양이처럼 숨죽여 끙끙대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닫혀진 문 때문에 공기는 더욱 밀도 있고 무거워졌다. 서로를 한참이나 쓰다듬던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경계할 여유 따윈 없이, 좁은 공간에 이러 저리 부딪혀 가며 엉거주춤 서로의 옷을 벗기고, 조금이라도 떨어질 생각 없이 밀착했다. 
 
차 앞유리에 쏟아지던 별빛도, 유리에 가득 서려버린 습기 때문에 점차 뿌옇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원했던 소원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되뇌면서, 내 진짜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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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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