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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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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village]

살다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에 발목이 잡힐 때가 있는데, 나는 일본에 살면서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애초에 신경 조차 쓰지 않았던, 뭐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별 일 없겠거니 했던 변수가 내 생활을 뒤틀어 놓는 경우들이 왕왕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문화 보다는 각자의 생각이나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는 듯 하다. 나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혹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큰일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반대를 하신다면 맘에 들게 하면 되지 뭐 헤헤 라고, 내 성격처럼 단순하게 풀어나가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여전히 정해진 날에 시간을 맞추어 만났고, 내가 그녀를 바래다 주었으며, 만나는 날에는 항상 그녀의 집에 들어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집에 가거나, 혹은 다음날 아침에 같이 일어나거나 했다. 아주 안일한 생각이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화는 정말 아주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인지, 내가 마리를 데리러 가는 날이 되었을 때 마리는 다급하게 오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뭐 다른 일이 있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그냥 아쉬워하고 말았는데, 그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하니 이상해도 뭔가 이상했다.
 
“근데 왜 그러는 지 이유는 알 수 없어?”
 
처음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우리는 여전히 메일이나 전화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보고 싶다와 사랑한다는 말을 했었으니까, 나에게 뭔가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서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그게……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
 
마리는 다그치며 집요하게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큰 오해가 아닌 이상 답변을 하지 않았고, 상대방도 그것을 기다려 주기를 원했다. 그것을 잘 아는 나는 여태까지 궁금해도 그녀가 이야기해줄 때까지 참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아빠가 차를 몰고 데리러 와.”
 
나는 그녀의 말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재가 들어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완고한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고, 또 어정쩡한 것 보다 무엇이든 확실히 맺고 끊는 사람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와 마리의 만나는 시간을 끊어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가 나와 그녀가 일 끝나고 만나는 요일에 대해서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마리가 일이 저녁에 끝날 때는 무조건 퇴근 후에 마리의 스포츠 센터로 오신다고 했고, 마리를 바로 집으로 바래다 주시고는 한참이나 밖에 있다가 간다고 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사실 나는 1학년 때보다 훨씬 효율적인 시간표를 짜서 최대한 많은 학점을 정말 수집하듯이 따 나가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낮에 일이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마리가 시프트를 아버지 몰래 옮겨서 낮에 만나기 시작했다. 내 경우에는 예전처럼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아닌, 비자서류 관련 프리랜서를 했기 때문에 꽤 프리한 편이었다.
 
마리는 거의 대부분의 날에 저녁 근무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낮에 하는 데이트도 신선해서 좋았다. 우리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마리 아버지가 우리를 반대하시는 일에 대하여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룰 같은 것이 성립되어 있었다. 얼마 안되는 데이트 시간에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낮에 데이트를 하다가, 마리의 아버지가 알고 있는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춰 마리는 다시 스포츠 센터로 돌아가 막 퇴근한 척을 했다. 그리고 마리 아버지의 승용차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나는 멀리서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오빠 나 집에 잘 들어 왔어. 오빠는?-
 
그녀의 메일을 보고, 나는 바로 답장을 하지 못했다. 내 자취방에 누워,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 마치 매직아이처럼 보이는 방의 벽지를 의미 없이 바라보았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야 할까?’
 
시간은 저녁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답이 없자, 마리는 또 한 번 메일을 보냈다.
 
-오빠 자나봐요? 나도 씻고 잘게.-
 
나는 그녀의 메일에 답장 버튼을 눌렀지만, 한 동안 휴대폰을 잡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덮었다가, 다시 꺼내 답장 버튼을 눌렀다가, 괜히 예전에 보낸 깨가 쏟아지는 메일을 다시 한 번 순서대로 읽다가, 또 다시 벽지를 보다가…
 
-나 지금 마리 집으로 갈게-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하고는 외투를 꺼내 입고, 테이블위에 있던 차 키를 챙겨 나갔다. 마리에게 어떻게 답장이 오던, 나는 그녀의 집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 주머니에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고, 폴더를 열어보니 마리의 메일이 와 있었다.
 
-알았어요.-
 
아마도 그 날은, 술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술 마신 사람과 같은 상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밤 공기는 차고 어지러웠고, 달빛은 쓸데 없이 밝아서 눈이 부셨으며,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홀리듯 마리의 집으로 갔다.
 
마리의 집 공동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그녀의 현관 앞으로 뛰어가 벨을 눌렀다. 내가 문을 열자 마자 마리는 내게 매달리 듯 안겼고, 내 기분을 알고 있는 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리는 문을 연 그 시점부터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꼼꼼하게 섹스를 했다. 그러니까, 정말 정성을 다했다는 표현 외에는 대체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마리의 전화가 테이블위에서 진동을 울려 대고 있었지만 우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옷은 여기 저기 벗겨져 나뒹굴렀다. 자켓은 현관에, 니트는 그녀의 욕실 앞에, 바지는 소파에, 속옷은 침대 바로 앞에.
 
우리는 정말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잘하는, 정말 사이 좋은 연인이었다. 심지어 사랑을 나눌 때에도 장난 섞인 애정표현을 했으며, 내가 너무 흥분을 해 있으면 마리는 뜨거워진 내 양 볼을 손으로 잡고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해서 나를 조금 진정하게 만들었다. 마리는 항상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상 나를 어르고 달래서 컨트롤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는 마리가 우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으며, 마리 역시 왜 갑자기 자신의 집에 온다고 했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아버지가 밤새도록 지키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지금 가면 만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 것이 다였을 뿐이다.
 
마리는 섹스가 끝나고 나서, 땀에 젖은 내 등을 토닥이며 흐느꼈다. 나는 왜 울어? 라고 묻지 않고 그냥 그녀를 꽉 하고 안기만 했다. 한참이나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그런 상대방을 꽉 끌어 안고 아무런 말없이 토닥이기만 하는 모습이 계속되었다.
 
“알고 온 거야?”
 
한참후에 정적을 깨고 그녀가 한 말이었다.
 
“뭘?”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거.”
“그건 늘 그런 것 아니었어?”
“맞지만 오늘 특히.”
“낮에 데이트도 했는데 뭐.”
“우리가 오늘 낮에 만났던가?”
“그랬지. 바로 아까 전에.”
“근데 몇 달 전 일인 거 같아.”
 
마리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명랑 만화였던 우리의 연애가 언제부터 이렇게 신파극이 되었는지 알 수 가 없다. 나는 문득 궁금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니, 그것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던 나도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마리. 아버지는 어떤 분이셔?”
“그게 무슨 질문이야?”
“그러니까……그냥 알고 싶어서.”
“우리 아빠는……음……근데 오빠 담배 있어?”
“어? 마리 담배 안 피우잖아.”
“응. 한 번도 안 피워봤어.”
“근데 왜?”
“뭐 어때. 나도 한 번 피워 보지 뭐.”
“마리 집에서? 담배 냄새가 날 텐데.”
“괜찮아. 환기 시키면 되지 뭐.”
 
사실 마리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비흡연자니까 담배 냄새를 싫어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 앞에서 피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리는 하얀 이불로 가슴을 둘렀고, 나는 찬장을 뒤져서 종이컵에 물과 휴지를 넣고 가져와, 그녀의 방 창문을 열었다. 알몸인 우리에게 확 하고 찬 공기가 닿았다.
 
마리는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녀는 담배 한 개피를 뽑았다가 다시 담배갑에 넣었다.
 
“그냥 그거 나눠서 피우자.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그렇게 하는 게 멋있어 보였어.”
 
그녀의 말에 나는 웃으며 불 붙은 담배를 내밀었고, 그녀는 세상 어색한 자세로 그것을 받아 들여 한 모금 빨았다.
 
“아악!”
 
그녀는 갑자기 콜록 거리며 연기를 뿜었고,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하고 웃었다. 처음부터 속담배를 피우다니 재능이 있는데?
 
“멋은 있는데 맛은 없구나. 이걸 왜 피워?”
“잘 알았으니 넌 시작하지마.”
 
내 말에 마리는 웃더니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처음 보니까. 내 바로 앞에서 피우는 건.”
 
마리가 물끄러미 보니까 뭔가 부끄러웠다. 나는 괜히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아버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봤잖아.”
“아아. 그랬지.”
 
마리는 또 한 번 담배 피우기를 시도했다가, 또 한 번 콜록 거리며 연기를 뿜고는, 이내 내게 담배를 다 줘 버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게이오 대학 출신이셨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대학원도 나왔다고 했다. 마리의 친할아버지가 원래부터 재력이 있는 분이긴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에게 지원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리의 아버지는 자력으로 학교를 다니고 돈을 벌었으며, 특유의 끈기 있고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한 이야기지만, 마리가 호주에 유학을 갔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호주를 왔다갔다 하면서 금지옥엽 외동딸을 키웠다고 했다.
 
마리의 아버지는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어서, 가족에 대한 애착이 엄청나게 강했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 없이 냉정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딱 한가지. 그 특유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하필이면 정치 성향도 극우 성향이라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굉장히 안 좋다고 말했다.
 
나는 일찌감치 마리가 포기해 버린 담배를 꺼 버리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그 때 마리의 집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전화기야.”
“집에 전화 원래 있었어?”
“아니. 아빠가 최근에 달아놨어. “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전화의 용도는 뻔한 것이었다. 아마 그녀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겠지. 마리는 이불을 몸에 둘러 드레스 처럼 만들고, 화장대 옆에 있는 무선 전화기를 들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응. 아빠……응. 집에 있어. 자려고 했었어. 응.”
 
나는 괜히 숨소리까지 죽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리는 이따금씩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가끔 ‘그럴리가 없잖아. 의심되면 이리로 와 보던지 그럼.’ 등의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아버지는 또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냐며 꼬치꼬치 묻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왠지 그 모습을 보기 있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래, 잘 설득하고 좋은 모습 보여주면 될거야. 별 거 아니야. 라며 내 스스로를 다 잡고 있었지만,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이제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평소와 달리 그녀의 답장은 오질 않았다. 오늘 따라 늦잠을 자나? 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학교에 갔다. 하지만 1교시를 듣고, 토론 수업에 참여하고, 점심을 먹을 때 까지도 마리의 연락은 오지 않았고, 저녁 7시가 넘어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점심시간 까지만 해도 신호가 가던 마리의 휴대폰은 그 때 완전히 꺼져 있었고, 나는 다급히 그녀가 일하고 있는 스포츠 센터로 찾아갔다.
 
그 날 마리의 퇴근은 8시 30분이었고, 나는 그녀의 퇴근 시간 10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인데, 나는 황급히 안내 데스크로 가서 그녀에 대해 물었다. 이미 마리의 남자친구로 소문이 나 있는 뒤여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 직원은 마리가 방금 옷을 갈아 입고 나갔다고 말해 주었다.
 
“오빠!”
 
내가 복도로 다시 뛰어 나갔을 떄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내게 달려오더니 목을 끌어 안으며 안겼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해 오빠. 나 핸드폰 압수 당했어.”
“뭐?”
 
너무나 황당한 그녀의 말에, 마리는 한숨을 쉬더니 이윽고 울먹거렸다.
 
“나 낮에 시프트 바꾼 거 아빠한테 들켰어. 스포츠 센터에 전화해서 확인했나 봐.”
 
그녀의 말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창문 쪽을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오빠. 일단 빨리 가요. 저기 아빠차 들어오고 있어.”
 
창 밖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도망도 못 가게 하겠다는 듯, 그 차는 센터의 정문 앞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했다.
 
“내가 메일 보내 놓을게. 인터넷 메일 주소……나 호주 갔을 때 오빠가 보내줬잖아.”
“그냥 같이 내려가자.”
“응?”
“그냥 같이 내려가. “
“오빠.”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1층 버튼을 눌렀다. 마리는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오빠. 아빠가 알면 더 화내실 거야.”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 만나? 이제는 연락도 끊겨 버린 건데.”
“일단 기다리자. 응?”
“인사만 할게. 인사라도.”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신의 손목을 잡은 내 손을 풀어 손을 깍지까지 끼워 잡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정문을 나서자마자, 차 밖에 나와 마리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물론, 우리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급격하게 표정이 굳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그녀의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리가 내 손을 꽉 쥐고 있는 모습에, 그녀의 아버지는 마리를 노려 보았지만, 마리도 지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를 똑바로 응시했다.
 
“하나만 여쭤 보고 싶은데……이렇게 까지 반대하시는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말에 그녀의 아버지는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나 있는 듯한 눈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침착해 지더니, 내게 되물었다.
 
“나도 하나 물어볼게요. 이렇게 까지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뭐죠?”
 
그녀의 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정말 이 상황에 화가 났다. 무슨 삼류 신파극도 아니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그냥 국적만 다른 평범한 남녀가 만나는 것이 이렇게 큰일이 날 일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을 좋아하시지 않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꼭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만나는 것만 허락해 주세요.”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마리의 다른 쪽 팔을 끌어 당겼다. 마리는 저항하며 뿌리치려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잡아 끌었다.
 
“고정 관념이라는 단어 함부로 쓰지 말아요. 이렇게 몰래 만나려고 하는 것 자체가 그 고정관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나 다름 없어요.”
 
그리고나서 이어진 그녀의 아버지의 말에, 나는 결국 마리의 손을 놓고 말았다.
 
“마리는 다시 본가로 들어오게 할 거에요. 이제 둘이 만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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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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