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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화장실에서 만난 뽀르노그라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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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식적으로’ 미술 평론가이고 현재 활동 중이다. 헌데 달포 전, 내 전공과는 상식적으로 일정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남로당으로부터 원고 제의가 왔다. 화장실 아트에 관해서. ‘화장실 아트’라는 조합어는 내가 얼마 전 내 개인 홈피(dogstylist.com) 게시판에 장난삼아 올린 글의 타이틀이었다. 남로당의 편집 방향에 익숙한 애독자들이라면 화장실 아트가 대관절 뭘 지칭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하리라 생각된다. 배설을 목적으로 변소 갔다가, 평소 잠재되어 또아리 튼, 타오르는 창작욕을 변소 벽면에 재현하는 행위와 결과물 일반을 말한다. 좀 더 쉽게? 화장실 낙서 말이다. 진작 쉽게 말하지 그랬냐고 따지려든다면, 이 또한 남로당의 또 다른 편집방향 (독자를 좀 헷갈리게 만드는)임과 동시에, 낙서나 아트나 존재론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평소 소신이 담긴 조어(造語)였음을 밝혀둔다. 이것은 조크가 아니라 조어이다. 잊지 말자. 분명한 ‘아트’라는 사실. 뭐다? 아트다.
 

 
좌변에 앉으면 구조상 화장실 문짝이 코앞에 놓인다. 어떤 간 큰 인간이 문짝 하나를 통째로 캔버스로 만들었다. 졸지에 아트가 된 문짝 위에는 창작자가 평소 '꿈꾸어온'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물론 오로지 문짝 위 묘사 속에서나 실현될 법한 광경일테지만...


 
도무지 지워도 지워도 소용이 없다. 이 지겨운 인간들에겐 삭제된 화면 위가 더욱 맨질맨질해서, 덮어쓰기에는 오히려 편할 따름. 아이 신나는 창작놀이!

 
화장실 + 아트

우리가 평소 본의 아니게, 그리고 익숙하게 공공장소에서 관람하는 화장실 아트에 관해 굳이 장광설로 풀이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래도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분석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이겠다. 그럼 화장실 아트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선 아트를 사실상 수식하는 화장실의 용도부터 이해하는 것이 바른 이해법이겠다.

화장실은 ‘배설’과 ‘세척’이라는 용도를 위해 고안된 장소다. 물론 이 글에서 논하는 화장실은 전자, 즉 배설을 돕는 변기를 둘러싼 1평 남짓한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화장실이라고 전부 아트 행위를 촉발하는 것이 아니다. 배설은 사적인 생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출하고 싶지 않은 ‘사적인 생리’의 일부를 매우 공적인 공간을 통해 공론화한다. 그것이 바로 공중화장실에서의 예술행위, 즉 화장실 아트이다. 미술 창작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화장실 아트가 ‘아트’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화장실 아트가 개인 화장실에서는 행해지는 경우는 없다. 설사 있다 할지라도 아주 희귀한 경우가 아닐까? - 지 집 화장실 벽면에 낙서를 하는 인간 있으면 그 얼굴 좀 보자! - 즉 화장실 아트라고 우리가 얘기했을 때 그것은 공공 화장실 문짝이나 좌우측 벽면에 남겨지게 마련인 어떤 유형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말한다. 즉 관객의 존재 여부가 화장실 아트 존폐의 관건이다. 한가지 요건이 충족되었다. 화장실 아트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노출된 ‘공공 화장실’에 창작의 끈을 두고 있다는 사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화장실 (특히 배설을 위한 사면의 공간)의 용도가 사사로운 배설 욕구 해소를 위해 고안되었다는 점까지 얘기하다가 말았다. 그렇다면 배설을 위한 공간과 아트가 어떻게 결합하는가를 얘기할 차례이다.

우선 화장실의 구조가 ‘특정 주제’의 아트 제작을 독려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좁디좁은 변기에 아랫도리를 전부 까고( 생식기를 발랑 까발렸다 ) 변기에 앉거나(좌변식), 변기바닥에 쭈그렸을 경우( 쭈그려식 )의 포즈와 정황을 머리에 그려보자. 배변자는 기묘한 창작 공간에 내던져진 꼴이 된다. 쭈구려식은 그렇다 치고, 좌변기는 참 편한 자세를 제공한다. 그리고 배변자이자 창작자이기도 한 이들은 정면과 좌우 측면 벽이라는 3면의 텅빈 캔버스을 목전에 두게 되는 절묘한 구조를 취한다.

하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그림 솜씨나 표현력의 저속함을 질책할 감시관이 같은 공간 내에 있지 아니하다. Tabula rasa (완전한 백지상태)!!! 분탕질을 기다리는, 텅 비어진 거대한 그림판이 그들 앞에 놓인 것이다! 하물며 열씨미 싸질러 대는 쪽은 아랫도리 기관들이다. 당연히 무료하게 무릎 위에 올려진 두 손은 뭔가 다른 '싸지름' 에 목말라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제 중추신경은 무료하게 쉬고 있는 손에게 명령을 내린다. “아무도 안 보는데, 숨겨놨던 걸 싸질러 보지 그래?” 라고.
 

문짝 하나를 캔버스로 활용한 또 다른 예. 간략한 선묘(線描)로 창작자가 바라는 여성의 기가 막힌 포즈와 그녀의 얼굴에 풀칠을 해대는 과장되게 부풀려진 고추가 보인다. 왼쪽으로 벽면에 걸려있는 화장지와 휴지통이 보이는데, 이 1평 남짓한 공간은 용변이라는 물리적 배설물과 욕망이라는 관념적 배설물을 한꺼번에 감당해야하는 부담과 의무를 갖고 있다.


 
이 그림은 2가지 점에서 두고두고 볼 만하다. 첫째는 소아기호증 - 남자화장실은 물론 성인 사이트가 집중 공략하는 주력 상품은 pedophilia(페도파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소아기호증'이다. 쉽게 얘기해서 어린 것들이 좋다는 거다. 이 그림을 통해, 창작자가 얼마나 '쫄깃쫄깃 보지'로 대변되는 '소녀'에 대해 병적 집착을 해왔는지 쉽게 읽힌다. 그림과 텍스트가 말해주는 창작자의 고백의 진위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듯한 공상에 기대어 작업되기 마련인 화장실 아트는 신빙성이 늘 의심된다. 
 
두 번째 관건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그림이 담고있는 부도덕(청소년 매춘)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우리 청교도 남학생들의 분노 표출이다. 그림 속에서 '쫄깃쫄깃한 보지'를 먹었다는 창작자로 짐작되는 인물상 의 모가지가 날아가고 있다. 이 청교도 학생은 창작자의 부도덕이 저주스러운 걸까, 아니면 '쟤네들만 쫄깃쫄깃 보지 먹는 건 배아파'인걸까? 아니면 그 둘 다인가?


글쓴이ㅣ미술평론가 반이정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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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사랑미야 2017-08-31 12:18:15
화장실에서 자주 보았던 그림들이네요~~~
pink2257 2015-04-29 01:12:05
반이정씨의 글을 레홀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쿠쟈 2014-09-22 11:07:34
ㅋㅋㅋㅋ 재밌네요 근데 요새 전보다 화장실 아트가 많이 안보이는 것 같아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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