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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역사 속 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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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자전> 조선 중기 때 이조판서와 대사간을 지낸 송언신은 여자를 무척 좋아했다. 젊어서부터 “나는 반드시 1000명의 여자를 데리고 자겠다”고 장담했던 그는 장안의 기방을 주름잡은 한량이었다. 그가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어느 날, 민심을 살피기 위해 시골에 내려갔다가 아전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아전의 부인에게 마음이 동한 그는 밤이 이슥해지자 여인네의 방으로 들어가 수작을 부렸다. 인기척에 놀란 아전의 아내가 도둑이 든 줄 알고 소리를 치려 하자, 그는 아낙의 입을 막고 “나는 관찰사라네”라고 말했다. 아전의 아낙은 상대가 관찰사인지라 쉽게 몸을 열고 말았다. 해서 관찰사의 위세에 눌려 쉽게 곁을 준 아낙과 정조를 버린 아내를 데리고 사는 아전은 마을 사람들의 놀림을 당했다. 그러나 아전은 자신을 놀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마누라는 예뻐서 관찰사의 은혜를 입었지만, 네 계집처럼 못생긴 여인은 아마 관찰사가 침을 뱉었을 것이다”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이처럼 권세를 이용한 간통은 오래된 악습인데, 송언신이 활약하던 조선시대에는 “종년 간통은 누운 소 타기보다 쉽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권세를 이용해 간통을 일삼은 색한으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장수들의 아내들을 호출해 얼굴이 반반하면 강압적으로라도 취했다. 해서 그의 호출을 받은 지조 있는 여성들은 일부러 늙거나 추녀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을 엉망으로 하거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성으로 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의 절세가인이었던 호소가와 가라샤는 뛰어난 기지로 히데요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니, 열녀로도 칭송이 자자하다. 그녀가 접견실에서 히데요시에게 절을 올렸는데, 순간 품속에서 예리한 단도 하나가 ‘툭’ 하고 다다미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깜짝 놀란 듯 단도를 집어들어 품에 넣고는 히데요시에게 결례를 용서 빌었고, 그의 굳은 지조를 확인한 히데요시는 자칫 강제로 범했을 경우 큰일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그냥 돌아가도록 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수청 명령을 받은 대다수의 여인들은 권세 앞에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다고 한다. 한편 서양에서는 군주의 힘에 눌려 아내를 헌상하는 남편을 ‘왕의 뻐꾸기 둥지’라고 놀렸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속성에서 연유한 별칭이다. 뻐꾸기 기질이 농후한 왕에게 아내를 바친 남편들은 “나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오직 국가의 안녕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변명을 했는데,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정부’로 제공(?)한 수비즈 공작은 아내가 왕과 동침하는 동안 코를 골며 자는 척했다고 한다. 권력으로 처녀나 유부녀를 농락하던 악습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바로 금권(金權)을 이용한 매매춘이다. 더구나 소녀 매춘을 일삼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회춘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소녀 매춘의 희생자는 성에 대한 폭력성을 느끼고 가혹한 정신적 상처를 받게 된다.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일생 정상적인 성행위를 하지 못하는데, 성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으로 인한 불감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녀 매춘은 한 여성의 일생을 망치는 잔혹한 범죄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삼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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