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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남기고 간,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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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스 온 탑>
 
어릴 적부터 나와 유난히 친했던 녀석이 있다. 그 친구는 나를 '제일 친한 친구' 라고 말한다. 아무튼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아이를 좋아했었다. 동네에서는 '잘 주는 애', '까진 애'라고 소문이 나 있던 아이였다. 성적 호기심에서 그 아이를 좋아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목소리도 너무 예뻐서였다. 일 년 정도 그 애를 따라다녔었다.
 
"오빠는 그냥 지금처럼 재미있고 편한 오빠였으면 좋겠어."
 
라는 말로 거절을 했다. 단념은 쉬웠다. 나의 친한 친구가 내가 그녀를 잊을 수 있게 큰 도움을 줬다.
 
"야 돼지야. 나 어제 걔랑 떡 쳤다."
 
숫총각이었던 나에 비해 나의 친구는 걸레라고 소문이 난 놈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누구? 하고 물었다.
 
"xx. 신음이 기똥차더라. 맛도 쫄깃쫄깃하고. 나 완전 오래 해서 땀 뻘뻘 흘렸잖아."
 
내가 좋아하는 아이였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인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내가 걔 좋아하는 거 알면서 걔랑 섹스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걔가 나 꼬신 거고 너 어차피 걔랑 될 확률 제로잖아?"
 
친구 말을 들으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나쁜년. 그렇게 다 주고 다닐 거면 나도 좀 한번 주지. 그렇게 쉽게 그녀를 단념할 수 있었다. 친구가 밉다는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고3 때 만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순진한 외모에 조용조용한 말투, 수줍은 웃음소리를 가진 아이였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살던 곳에서 전학을 온 놈이 내가 그 애와 만난다는 것을 알고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걔 예전에 선배들한테 돌림빵 당했다는 얘기 있던데... 너 알고 만나냐?"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침착하게 되물었다.
 
"네가 본건 아니잖아 그치?"
 
"나도 들은 얘기인데... 술 먹여서 돌렸다던데..."
 
라고 말하는 그놈을 보고 '참 한심한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놈의 말이 사실이든 진실이든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나를 미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6개월 정도? 지나서 그 애와 나는 별다른 계기도 없이 멀어지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아이는 나에게 이별을 말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별 후에 많이 힘들어 했다. 그 애도 나를 많이 좋아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밤새 생각도 해보고 밤새 생각하다 울기도 했다. 나의 친한 친구는 새벽에 우리 집에 와 울고 있는 나를 달래주기도 하며 매일같이 나를 위로했다. 나의 절친도 그 아이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에 나와 그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서 잘 알아서였는지 나의 아픈 속을 잘 긁어줬다.
 
4년의 시간이 흘렀고 내 절친은 군대에 다녀왔다.
 
"야 돼지야. 나 얼마 전에 oo이랑 연락됐다."
 
그 아이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래."
 
별 관심이 없었다.
 
"와?? 뭔 반응이 그래? 안 보고 싶냐?"
 
"별로."
 
건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론 엄청나게 그 아이의 근황이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다.
 
"진짜지?? 나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안 갈 거지?"
 
"아니. 갈래."
 
"왜?? 시바 아까는 별 반응 없다가. 맘이 바뀌었냐?"
 
"아니. 아가리 한방 갈기게.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사실 그랬다. 너와 내가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 똑바로 말해보라고 추궁하며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음 주에 나는 절친과 함께 그 아이를 만났다. 아주 예뻐져 있었다. 나는 예뻐진 그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고 몇 마디 말도 건네지 못했다. 셋이 같이 노래방에 갔다.
 
"돼지야, 네가 예전에 나한테 불러준 노래 기억해? 김장훈 노래?"
 
"뭐? 나와 같다면?"
 
"응. 그 노래 불러줘."
 
나는 노래방에서 딱 그 노래 한 곡을 불렀다. 그 아이는 다리를 꼬고 앉아 허리를 숙여 무릎 위에 팔을 세워 턱을 괴고는 내 노래를 들었다. 부끄러워서 뒈질뻔 했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그 아이가 박수와 환호를 했다.
 
'이거 시발 오늘밤 한번 하겠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내 마음속에선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래방을 나와서 나는 절친과 함께 집에 왔다. 그 후로 나는 그 아이와 연락을 하진 않았다.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 아이도 나에게 연락처를 주지 않았으니까. 내 절친에게 그 아이의 휴대폰 번호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다시 2년이 흘렀다. 절친과 나는 진탕 술을 마셨다. 절친이 말했다.
 
"야 이거 내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들어볼래? 말래?"
 
"뭔데?"
 
"나 걔랑 잤다."
 
"그래."
 
별다른 반응 없이 대답했지만, 순간 내 몸에서 알코올이 빠져나가면서 술이 깼다.
 
"잤다고!"
 
"알았다고!"
 
"괜찮냐?"
 
병 주고 약 주려는 절친에게 약이 올라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맛있든? 쫄깃쫄깃하든?"
 
하고 내가 물었다.
 
친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아니 그냥 잠만 잤어. 전에 같이 술 마시다가 둘 다 서로 완전히 취해서 모텔에 가서 그냥 잠만 잤어. 내가 미쳤냐. 아무리 내가 쓰레기라고 해도 친구의 옛 애인이랑 어떻게 그래."
 
"상관없어 그런 거."
 
나도 여자랑 잠만이라도 자고 싶은데. 그 아이와 잠이라도 자고 싶었는데.
 
절친이 부러웠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뭐가 웃긴데?"
 
뭔가 다른 에피소드가 있나?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몇 일 지나서 전화가 왔는데 걔가 그러더라. 솔직히 아무일 없어서 자존심 상했다고. 자기도 여자인데 어떻게 그냥 잠만 잘 수 있는지되게 자존심 상했다고. 크크크크크."
 
나쁜년. 재수 없어. 그렇게 그 아이에 대한 감정도 전부 정리가 되었다. 제목을 배신감이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 친구에게 느끼는 배신감이라기보단 여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배신감인 것 같다.
 
 
글쓴이ㅣ 프로이트
원문보기 http://goo.gl/F4lk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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