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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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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번가의 기적]
 
“넌 어떤 여자가 좋아?”
 
“예쁜 여자. 남자들은 다 예쁜 여자 좋아해.”
 
외지에 홀로 나와 외로운 동갑 남녀만큼 친해지기 쉬운 게 또 있을까요? 얼마 전 해외에서 일하던 중 알게 된 P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P를 바로 만나게 된 건 아니고 동호회에서 친해진 동생이 술자리에 데리고 나온 것이 계기였습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다 보니 매주 주말마다 술자리가 벌어지다시피 했지요. P는 그중에서도 가장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술로 꿀려본 적 없다는 저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뱃속을 게워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174cm의 큰 키에 글래머를 살짝 넘어선 육덕진 몸매. 시원시원한 여장부 같은 성격의 P는 순식간에 모임 내에서 걸크러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서 꽤 인기가 많았지요.
 
어느 주말 저녁, 야근을 좀 하는 바람에 모임에 늦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뭐 다들 술이 고만고만한 친구들이라 두어 시간 지난 지금 가 봐야 별 볼일 없을 것 같았지만 메신저에서 시끄럽게 재촉하는 바람에 결국 택시를 탔지요.
 
“야 왜 이제 와!”
 
“날아온 거거든? 야 이럴 거면서 날 굳이 왜 부르냐?”
 
이미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녀석들부터 저 멀리 길가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계속 통화 중인 녀석까지. 전형적인 파장 직전의 술자리였습니다. 어쨌거나 목을 축이려 맥주 한 잔을 시키자 저 멀리에서 신나게 애들을 학살하던 P가 제 앞으로 와서 앉았습니다.
 
“늦었네? 근데 애들 다 이 모양이라 어쩌냐?”
 
“sp가 이렇게 만들어놓고서 찔리지도 않는구나 이젠.”
 
“짜식. 걱정 마라. 너도 누나가 곧 이렇게 만들어줄게.”
 
“얼씨구? 소주랑 맥주로만 달리면 내가 너 이기거든?”
 
맥주가 몇 잔 더 돌아가며 한 주 동안 어찌 살았는지 수다를 떨던 저희는 점점 늘어나는 만취자들의 수에 결국 자리를 파하기로 했습니다. 늦게 와서 멀쩡한 죄로 택시에 시체들을 집어넣다 보니 결국 P와 저만 남게 되더군요. 저 멀리 보이는 택시 불빛에 손을 들자 뒤에서 P가 팔을 잡아 끕니다.
 
“한잔 더 안 할래?”
 
“음? 둘이?”
 
“너 얼마 마시지도 않았잖아. 그걸로 되겠어?”
 
한 주의 피로가 겨우 맥주 두 캔으로 가실 리가 있을까요? 마침 가까운 데 낙지소면 잘 하는 집이 있다고 하기에 P와 저는 택시를 보내고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술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굵은 빗줄기를 흩뿌립니다. 술 한잔하기는 딱 좋은 날씨죠. 매콤한 낙지볶음에 소면을 비비며 P와 소주잔을 부딪혔습니다. 술이 약간 오르긴 했는지 P의 볼은 살짝 붉어져 있었습니다. 몇 잔을 더 비운 뒤 그녀가 물었습니다.
 
“넌 어떤 여자가 좋아?”
 
“예쁜 여자. 남자들은 다 예쁜 여자 좋아해.”
 
별생각 없이 대답한 말이었는데 P는 그렇지 않은 듯하더군요. 언제나 시원시원하던 그녀 답지 않게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럼 난 별로겠네? 솔직히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
 
“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사실 P는 제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외모를 떠나서 전 약간 슬렌더형을 좋아합니다. 그래도 막상 대놓고 어떠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머뭇거리는 새 P는 소주 한 잔을 더 털어 넣습니다.
 
“나랑 연애할래?”
 
참 그녀다웠습니다. 이 시원시원한 고백과 박력이라니. 조용히 떨리는 그녀의 손끝을 살짝 잡자 P는 시선을 돌립니다. 여자의 느낌은 예리해서일까요? 아니면 제 표정이 너무 그대로 드러나서였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아마 ‘넌 좋은 친구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저와 P의 대화를 묻어 주는 게 너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 씩씩하던 P의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저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쏟아지려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하지 마! 화장 다 지워져.”
 
“얼굴 못생겨질라. 뚝.”
 
“울리기 싫었으면 받아 주던가. 나쁜 새끼. 하~ 차이고 비 오고 술맛 죽이네.”
 
제 손을 뿌리친 P는 연거푸 술잔을 비우더군요. 뭐라 더 해줄 말이 없던 저는 그저 박자나 맞춰 가며 그녀와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테이블 위에 소주 세 병을 세워 놓자 저도 P도 술이 훅 올라왔습니다. 맛있게 비벼졌던 소면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술을 더 마시기도 애매한 상황. 술값을 계산하는 동안 P는 가게 밖 차양 아래에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작정을 하고 나왔던 듯 까만 롱 드레스를 입는 P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더군요. 딸랑거리는 문에 달린 종 소리에도 P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뒤에서 어깨를 감싸 주자 P가 훅 안겨옵니다.
 
“야.”
 
“응?”
 
“너 내가 여자로 보이기는 하냐?”
 
“뭔 소리야. 그럼 네가 여자지 남자냐?”
 
“그럼 오늘 나랑 자자.”
 
평소였다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들었겠지만 그날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휘말린 빗방울 덕에 옷이 천천히 젖어 들고 있었습니다.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요. 대답 대신 P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P의 집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겨우 두어 블록이었지만 흠뻑 젖어버린 덕에 그녀나 저나 서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요. 현관 앞에서 푸핫 하고 서로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 저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화장실을 향해 종종 걸음쳤습니다.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려는 순간 P가 절 화장실 밖으로 밀어내더군요.
 
“야 나가서 벗어 넌. 물 흘리면 죽는다?”
 
“그 뭔 말도 안 되는... 잉?”
 
어쩔 수 없이 비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옷들을 홀랑 벗고 나니 뻘줌하더군요. 처음 와 본 여자 집에서 알몸으로 기다린다는 건.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기다리자니 곧 화장실 안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의 힘은 강했는지 다리 사이에선 본능적인 반응이 고개를 쳐듭니다. 잠시 후 수건 한 장으로 앞을 가리고 빼꼼 고개를 내민 P가 후다닥 침실로 달려갑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며 흘끔 쳐다보니 이불 속에서 얼굴만 쏙 나와있더군요. 빗물과 섞인 땀을 씻어내고 입안에 감도는 진한 낙지의 향을 지우려 치약으로 입안을 헹구고 나와보니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진 상태. 침대 위에서 빛나던 P의 휴대폰 불빛마저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탁. 화장실 불이 꺼지자 집 안에 남은 것은 빗소리, 그리고 저와 P의 숨소리뿐이었습니다. P에게 다가갈수록 바스락거리는 침대 소리가 잦아듭니다. 창 밖에서 넘어온 어슴푸레한 도시의 빛에 살며시 드러나는 P의 윤곽. 침대 모서리에 살짝 앉은 채 얇은 이불에 덮인 P의 다리를 살짝 쓰다듬었습니다.
 
“뭐 해?”
 
“식전 감사 기도.”
 
“맞을래? 빨리 들어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같은 베개를 베고 눕자 P의 심장 소리가 느껴집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P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짜 할 거야?”
 
“왜? 나랑 하기 싫어?”
 
대답 대신 P의 손을 옮겨다 이미 힘 가득 들어간 제 물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잠깐 움찔하더니 더듬거리며 제 자지를 가늠해보는 P. 살짝 차가운 그녀의 손끝이 움직이는 것을 따라 저 역시 P의 몸으로 손을 옮겼습니다. 육감적인 가슴과 안 어울리는 작은 젖꼭지가 단단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윤곽을 따라 선을 그리다 아래로 내려가려니 P가 제지합니다.
 
“왜?”
 
“나 뱃살 좀 있는데.”
 
“괜찮아. 가만히 있어.”
 
P의 손을 뿌리치고 배를 건성으로 지나 골반에서 잠시 머물던 손은 천천히 그녀의 둔덕으로 향했습니다. 털 한 올 남기지 않고 깨끗하더군요.
 
“밀었어?”
 
“나쁜 놈아. 네가 전에 술 먹다 얘기했잖아. 털 없는 여자가 좋다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소음순 근처를 지분거리려던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불을 걷어치웠습니다. 깜짝 놀란 P가 몸을 웅크렸지만 아래로 내려간 저는 천천히 그녀의 다리를 벌렸습니다. 어둠에 익은 눈에 깔끔하게 정리된 그녀의 계곡 윤곽이 보입니다. 사랑을 담아 입술에 키스를 남겨 주지는 못했지만 애정과 우정 사이 무언가, 그리고 거기에 미안함 한 줌을 더 담아 그녀의 보지에 진하게 입을 맞췄습니다. 구석구석 샅샅이 한 곳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혀끝으로 애무하자 살짝 솟아오른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빨아들입니다. 움찔움찔하던 그녀의 발가락이 결국 곱아들고 허벅지를 조여오며 얼른 넣어달라고 P가 얘기했지만 저는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던 것처럼 그녀의 부탁 역시 거절했습니다.
 
P의 몸이 바들거리며 떨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저는 그녀 위로 올라가 몸을 포갰습니다. 어느샌가 손으로 혼자 쓰다듬고 있던 가슴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어 빨아들인 뒤에야 저는 귀두 끝을 그녀의 보지 입구에 걸쳤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질 주름 한 가닥 한 가닥을 모두 기억해주겠다는 듯 말이죠. 이미 한 번 느낀 P는 삽입이 시작되면서부터 제 몸을 세게 안고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촉촉하게 땀에 젖은 가슴이 기분 좋았습니다. 키가 꽤 있어서인지 그녀의 질 안은 쫀쫀하게 조여온다는 느낌보다 부드럽게 저를 받아 주는 느낌이더군요. 치골이 맞닿고 귀두 끝에 그녀의 안쪽 입구가 톡 하고 건드려지는 그 순간. 저는 살짝 헝클어진 P의 머리를 쓸어 올렸습니다. 이마에 한 번, 볼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에 한 번. 입을 맞추고 눈빛을 맞춥니다.
 
“고마워. 좋아해 줘서.”
 
“나쁜 새끼야...”
 
더 이상 대화는 없었습니다. 친구 사이도, 오늘 고백했다 헤어진 사이도 아닌 그저 남자와 여자로 몸을 섞고 또 섞었습니다. 두 번의 섹스가 끝나고 마지막 섹스가 정상으로 치달을 때. P가 말했습니다.
 
“이번엔 입에다 해줘. 무슨 맛인지 궁금해.”
 
사정 직전에 꺼낸 자지를 입으로 가져간 P의 인상이 찡그려집니다.
 
“으으... 맛 이상해.”
 
그러면서도 뱉어내지는 않는 P. 결국 제 정액을 꿀꺽 삼킨 P는 피곤하다는 듯 침대 위로 길게 누웠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곁에 누워 오후 늦도록 늦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저희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옷을 찾아 입었습니다. 아무 말없이. 문 밖을 나서려는 제게 P가 말했습니다.
 
“고마워.”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우린 아직 친구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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