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지만 뭔가 익숙한 전화번호 뒷자리. 혹시 몰라 전화를 받자

"대리님. 저 OO에요. 잘 지내고 계시나 궁금해서 연락했어요"

십년 넘게 들어보지 못한 대리님 소리.


ㅣ13년 전

제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에서 막 대리로 승진한 해 1월, 조직개편으로 다른 본부에 있던 계약직 직원이 우리 팀으로 발령와서 본 게 정확히 13년 전이네요.

생각해보니 그녀는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매사 적극적이며 회식 때는 항상 끝까지 자리에 있어 딱 어르신들이 좋아라할 사원이었네요.

13년 간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물에 빠뜨리기도 해서 전화번호 또한 없어진 건 당연했을 지도. 

그녀와 한 팀이 될 때, 저는 당시 결혼 준비중이었고 술자리 좋아하니 같이 술도 많이 먹고  집도 같은 방향이라 3차, 4차 끝나면 같이 택시탈 정도로 자주 보는 사이였는데 어느날 회식자리에서  "내가  대리님 팬클럽 회장이에요" 그러더니 취해서는 "결혼할 분만 없었다면 대쉬했을거에요" 라며..
(은근슬쩍 자랑인데 실제임 ㅋㅋ 미혼 여직원 인기투표 일등 이었음 ㅜㅜ 아 옛날이여 ㅜㅜ) 

문제는 이런 멘트를 자주했고 술먹다가 같이 택시 타게되면 약간 위험한 상황도 생기게 되서 그래도 신기한 게 항상 둘 중 하나는 덜 취해서  선은 지키는 아슬아슬한.. 

결국 그녀에게 나는 결혼 할 사람도 있고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은 하지말자고(그녀도 애인 있었음) 거리를 좀 두었습니다. 이후 저는 결혼하고 그는 계약이 만료되서 고향 근처 계열사로 재취업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안되었죠. 

삼년 후인가 같은 팀이었던 다른 직원이 청첩장 돌린다고 하는 자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이것도 약 10년전인데  전 그 사이 이혼해서 돌싱이 되고(그때까진 이혼한 건  아무한테도 말 안해서 그냥 유부남인줄 알았다네요) 하여간 그날 둘이 또 마지막까지 남아서 같이 얘기하다가 서로 머뭇머뭇하다가 집에 오고 연락을 안했습니다.


ㅣ현재

아무튼 13년이 지나서 뜬금없이 연락오더니 이런저런 얘기하고 결혼해서 아들도 있다고 사진도 보여주고 통화도 하고 카톡도 했는데 이번주 초에 서울에 온다고 같이 밥먹자고 하더라고요. 진짜 십년만에 봐서 그리고 이것저것 좋아하는 거나 성격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잘 맞았던 친구라 술판이 벌어지고 얘기를 하는데, 

"나도 이혼했어. 대리님 이혼했단 얘긴 몇 년 전에 들었어. 그냥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하면서 옛날 생각하니까 어렸을 때 회사생각이 났고 갑자기 보고 싶어서  연락처 수소문해서 연락한거야"

뭐 서로 신세 한 탄 하다가 

"근데 나 오늘 서울에서  잘 곳 예약 안했다. 혼자 산다면서? 나 재워줘"

그렇게 3차까지 가고 집에 가서 섹스를 했습니다. 여러번. 아침에도 몇 번. 

그녀는  '우리 그때 그냥 만났으면 사는 게 오빠도 나도 좀 달라졌을까?' 이러더라고요. 첨으로 대리님이라 안하고 오빠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한번은 자야된다 싶어서 왔어'라고. 한 번은 자야될 것 같단 얘기는 도대체 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다음 약속도 없었으니 언제 답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십년 후에  돌씽이 되서 같이 누워있을지는 아무도 몰랐고  뭐 대충 이런 결론으로 오늘 점심쯤  내려갔네요.

쓰다보니 섹스 얘기를 빙자한 사는 얘기였군요. 뭔가 모르겠는 것 투성이. 

내인생도  어젯밤도 근데 서로 연락은 할지 안 할지 모르겠습니다. 행복했음 좋겠네요.

PS  참고로 13년 만이라 하지만 아직 30대입니다.


글쓴이 Soul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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