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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AT AWKWARD MOMENT]

- 아.. 귀찮아
 
아직은 갈 수 있다.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면 물 건너간 일이겠지만 아직 고민하고 있으니 눈에 보이는 옷만 주섬주섬 걸치고 집을 나서면 된다. 늦은 밤이지만 내일은 쉬는 날이기도 하고, 끝나면 몸은 개운하니까. 그렇게 오늘도 힘겹게 운동을 하러 간다.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다. 들어설 때 상쾌하기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밀도 있는 공기도, 여러 땀 냄새와 뒤섞인 냄새도 싫다. 운동복을 픽업하며 피트니스 짐을 쭈욱 스캔 해보니 사람이 별로 없다.
 
자전거에 발을 올려놓은 체 귀에 꽂은 이어폰의 볼륨을 50까지 올린다. 앞에 있는 트레드밀을 달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보다가 눈길을 돌린다. 창문으로 반사되는 나의 모습을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핸들을 보다가, 눈을 감기를 반복하며 10분 동안 달린다. 땀이 닦고 일립티컬로 옮겨 5분을 또 내디딘다.
 
땀이 어느 정도 옷을 적시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계획했던 무산소 루틴을 진행한다. 어깨 운동을 하려는데 앞에서 운동하는 분의 흰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괜스레 동작은 커진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반바지 허리춤도 더 올려본다.
 
나를 향한 상대의 눈길이 느껴진다. 원래 주목 받는 걸 좋아하고, 관종 기질이 다분하기에 혼자 오해를 많이 한다. 언제나, 지금도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바로 옆에 있는 기구로 이동하자 상대와 나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하얀 운동화. 하얀 양말. 발목부터 허벅지까지의 흰 피부. 짧은 반바지. 적당한 골반. 그리고 볼록한.. 빨리 다음 운동을 시작하자. 등 운동을 할 때는 먼저 안장 높이를 잘 조절해야 한다. 손을 내려 뻑뻑한 노란색 바를 당겨 조절한다. 허리를 곧게 세운 상태에서 추의 무게가 늘어갈 때마다 생기는 뭉치는 느낌에 저절로 미간이 찌 뿌려진다. 그사이에 상대의 모습을 힐끗 본다.
 
내 눈길은 안 들키리라 믿는다. 아마도 상대방도 그리 생각하고 나를 쳐다보겠지.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허리 운동 기구로 자리를 옮기자 상대방은 내가 있던 기구로 옮겼다. 이제 앞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옆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안장의 높이가 조절이 안 되어 허둥대는 모습에 고개가 돌아갔다.
 
- 그거.. 땡겨야 해요.
 
나를 쳐다보았다.
 
- 아 그 노란색. 네 그거 땡겨야 해요.
- 힘을 줘봐도 꿈쩍도 안 하나 보다.
- 뻑뻑하죠???? 죄송해요 제가 너무 높이..
 
다가서서 시크하게 바를 당겨 주고 돌아섰다.
 
- thank..you
 
다시 고개를 돌리자 상대는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 아.. 네 유아웰컴.
 
한 10초가 지났을까. 고민도 없이 말을 걸었다.
 
- 학생이세요??
- 네..저는 학생이에요.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교환 학생이었다. 얼굴을 보니 멀리서 본 모습보다 앳되어 보였다. 언제 한국에 왔고, 어떤 공부를 하며, 방학 기간이라 이러 저러하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한다. 주절주절 말하다 보니 운동은 뒷전이 되었다. 눈인사를 하고 마지막 운동으로 이어갔다.
 
자리를 뜰 때 뭐라 말할까…바이 바이? 씨 유 어게인? 해브 어 굿나잇?? 마음속으론 번호라도 받아서 동네 친구가 되고 싶은데 좀 오바란 생각이 들었다. 종종 운동하며 볼 수 있길 바라는 수밖에.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근래 들어 처음 보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나였지만 딱히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이 꽤나 괜찮았다. 피트니스 짐을 가로질러 나가면서 우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는데 그 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주스를 사고 시원해진 밤바람을 맞으며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태웠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학생이었다. 나도 모르게 너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주스를 권유하니 목이 말랐는데 고맙다며 한껏 들이킨다. 담뱃불을 끄고 함께 길을 나섰다.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꽤나 오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근처에서 맥주를 한잔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주중 밤이라 대부분의 술집이 닫혀 있었는데 다행히도 전에 봐 둔 꼬치구이 이자카야는 불을 밝히고 있었다. 허기진 배를 꼬치와 하이볼로 순식간에 채우니 운동 후라 그런지,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취기가 빨리 올라왔다. 취기의 틈새를 직설로 채웠다.
 
- 근데.. 나 아까 쳐다봤어요?
- 아니요??
- 에이~~ 쳐다 본 것 같은데~~~~ 나는 쳐다봤는데..
- 쳐다 봤다기 보다..의도치 않게 그냥 보게 됐어요..
- 아아 그랬구나아아아~~~~ 쳐다봤구나아아
 
말끝을 길게 늘어놓는 거 보니 내가 취했나 보다. 난 원래 사람 쳐다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냥 눈길이 갔었고, 당신이 궁금했다고 고백했다. 우린 이제 동네 친구이기에 솔직해져도 된다고 하니 그 친구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제는 연애를 지나, 섹스에 다다랐고, 서로의 취향을 나누면서 나온 나의 마사지 경험을 매우 궁금해했다. 나의 원칙은, 만일 마사지에 중점을 두면 어찌 됐든 섹스를 안 할 각오로 마사지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친구 또한 마사지를 해 준 적은 없지만, 마사지 받는 것을 즐겨 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마사지에 대한 지식은 적지만 마사지를 할 때 대화를 하며 진행하다 보면 가볍게 근육을 풀어주되 간지러움과 부드러움의 사이 정도의 압을 유지한 체 하는 터치 마사지가 마냥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말해줬다.
 
- 가볍게 받아 볼래요
- 받기만 해도 돼요..?
- 편하신 대로.
- 뭐가 필요해요..?
- 오일 있으면 제일 좋고. 로션도 가능하고.
 
혹시 모르니 편의점에 들렀다. 베이비오일이 있길래 구매도 하고. 난 이미 샤워를 했으니 따듯한 물로 샤워를 시키고 서로 뭉친 몸을 풀어주었다. 아니 뭉친 곳을 풀어주었다. 보드라웠다. 땀이 났다. 첫 번째 운동보다 더.
 
난 운동을 하루에 한 번도 간신히 가는데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두 번을 가는 사람은 대단하다. 마음이 중요하지 횟수가 중요하랴. 이제 나도 두 번의 운동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운동에 몸은 무거웠지만 두 번째 운동에 몸이 가벼워졌으니.


글쓴이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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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블루 2019-12-12 10:07:20
19금 황순원의 소나기를 보는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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