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와 놀부 이야기 8▶ http://goo.gl/OnUE8B

영화 <가루지기>

 
'아항! 서방니임...'
 
그녀는 흥부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밖에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는 문득 현실로 돌아와 아이들이 깰 것 같은 느낌에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장난감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장난감을 사용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그녀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무를 해오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서방님께 무리한 요구를 하기는 싫었다. 신호만 보내도 서방님은 착한 성격 때문에 무리할 수도 있고 다음 날 나무를 해오는 데에 큰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 사랑을 나누게 되면 지칠 줄 모르는 서방님의 저돌적인 모습에 항상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만, 몸보신도 못해드리는데 몸이 축나는 것을 보기가 싫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아이들 장난감에서 서방님의 모습을 보았다. 남들에게, 특히 서방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며 엉뚱한 핑계를 댔다. 그리고 서방님이 생각 날 때마다 서방님의 손길이 담긴 장난감을 애용했다.
 
며칠이 더 지났을까, 서방님의 얼굴에 생기가 돋아있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보여요' 라고 말했더니 '당신에게 줄 선물을 만들었거든' 이라며 내게 조각 하나를 건넸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 인가를 생각해 봤지만 평범한 날 들 중 하나였다. 아무날이 아닌데도 나를 위해 준비했다며 서방님이 건넨 물건을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 확인해봤다.
 
서방님은 '버섯돌이'라며 그 조각을 소개했다. 조각은 귀여운 눈과 입이 달린 버섯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귀여운 모습에 누가 봐도 장난감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 조각의 용도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서방님은 중국인 여자가 알려준 장난감이라며 부인에게 판매를 맡긴다면 금세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들었다며 변명했지만, 얼굴을 붉히며 말을 조금 더듬는 서방님을 보니 그 장난감이 무슨 용도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장난감은 분명 과부들과 남편의 사랑에 목마른 아낙네들에게는 다른 용도로 사용이 될 조각이었다. 서방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을 바꿨다.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왔다.
 
왠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 조각은 충분히 부자가 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서방님은 '그동안 무심해서 미안해요'라며 오랜만에 나의 저고리를 풀어헤쳤고 뜨거운 사랑과 체온을 나누며 밤을 보냈다.
 
다음 날부터 분주하게 똑같은 조각을 만드는 서방님을 보며 깨달았다. 이 조각을 만들면서 무슨 용도인지를 알고 그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죄책감을 느껴 기운이 없었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그 죄책감을 해소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서방님은 언제나 그랬듯 빛이 났다. 서방님을 보면 하루하루 사랑에 빠진 소녀가 되는 것 같았다.
 
나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빨래터로 향했다. 여기저기 목표로 삼을 만한 과부가 보였다. 그들이 빨래하랴 수다를 떨으랴 정신없는 틈에 슬쩍 자리에 끼어 접근했다.
 
그녀들 또한 조각을 보자마자 어떤 용도인지를 알아채고는 다들 얼굴을 붉히며 귀여운 조각이라고만 했다. 나는 조건 없이 하루씩 빌려드릴 테니 흥부네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빨래를 후다닥 마치고 돌아가는 첫 번째 주인공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 날 밤 서방님에게 조각을 비싸고 많이 판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서방님은 하루 만에 좋은 소식을 들고왔다며 기뻐하면서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마침 대감님 댁 조각도 완성이 되어서 엽전 주머니가 두둑이 채워졌다. 재료 살 돈은 충분히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몇 년 만인지도 모를 고기를 요리하면서 부자가 되는 미래를 위해 아침부터 축배를 들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 부잣집 아낙네들까지도 관심을 보이며 구매 의사를 전해왔다. 버섯돌이는 소문을 타고 빠르게 팔려나가고 서방님과 나는 집에 쌓이는 엽전들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 10▶ http://goo.gl/qZCm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