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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미술관] 신들의 사랑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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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세상의 모든 여인을 소유한 남자
남자라면 한 번쯤 할렘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전세계 단위의 할렘을 만들어서 세상의 모든 여인을 소유하고 있는 왕, 세상의 모든 여인을 지배하는 성적인 권력자가 되는 상상 말이다. 일전에 접선특위의 한 남자 당원과 성적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이런 내용의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세상에 남자라고는 나 하나뿐인 거지. 모든 여자들이 나와 섹스하고 싶어 하겠지. 그럴 수밖에 없잖아? 그러면 나는 일할 필요도 없고 그 여자들이 제공하는 것을 누리면서, 그 중에 잠자리를 함께 할 미녀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거지.' 나는 이와 비슷한 남성의 할렘 판타지에 대해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남성들은 대개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사실 입 밖에 내기에 충분히 창피할 만한 유치한 상상인 만큼 나는 그들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점에 감사한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나 역시 비슷한 상상을 해 본적이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 갇혀있는 상황, 모든 여성들은 절대자의 간택을 갈구하고 있는데 그 중에 내가 간택되는(나름대로 로맨틱한) 상상 말이다. 물론 나는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추호도 바라지 않는다. 나에게 할렘 판타지를 고백했던 모든 남성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병원에서가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여인을 소유하려는 계획을 진지하게 가지고 있는 남성은 아마 없을 것이다. Jan Gerritsz van Bronchorst 1645-50
화면 왼쪽의 목동은 어둠 속에서 잠이 든 님프의 알몸을 훔쳐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은 이 정도의 관음일 것이다. 그가 만약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황은 매우 달라지겠지만.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여기서 잠시, '모든 여인에 대한 소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자. '세상의 모든 여인을 정말로 소유하고 있는 상태'와 '모든 여인에 대한 잠재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는 상태'는 다르다.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우리들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적어도 '폭탄'에 대한 기준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은가? 치마만 둘렀다면 (또는 치마를 두르지 않았을지라도) 무조건 발기하는 일은 극단적인 성적 억압의 상황에서나 일어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의 남성에게는 성적인 취향이나 가치관이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보통의 남성이라면 '자신의 성적 취향에 부합되지 않은 여성이 대다수 포함된' 세상의 모든 여인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인 중 누구라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남성이라도 그의 성적 취향이나 가치관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해질 것이다. 굉장한 권력을 소유한 상태에서, 세상이 자신의 사냥터와 다름없다면 언제라도 원할 때 먹음직스런 사냥감 - 매력적인 여성을 '골라먹을' 수 있다. 이때 세상은 벽이 없는 할렘이 되며, 모든 연애는 승리가 보장된 즐거운 게임이 된다. 어떤 남자라도 부러워할 만한 절대권력 절대자유의 바람둥이 -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런 녀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신들의 제왕이자 세상의 지배자인 제우스였다. 신화가 우리의 원초적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면 제우스의 엽색행각은 남성들이 품고 있는 잠재적인 희망사항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신들의 사랑법-성애를 포함한 관계맺음-을 통해서 현재의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ㅣ작업의 왕 제우스 제우스는 여러 여신들과 님프들 그리고 인간들과 무수히 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 상대가 소녀이든 처녀이든 유부녀이든 제우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제우스는 원하는 여성을 취하기 위해 반인반수 사티로스나 황소, 백조, 뻐꾸기, 독수리 등의 금수로 변신하기도 했고 심지어 빗물이나 번개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Corregio 1531-32
레다는 스파르타의 왕비로 당대 최고의 미녀였다고 한다. 제우스는 레다에게 접근하기 위해 백조의 모습으로 날아갔고, 둘은 결국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레다는 백조의 알을 낳게 된다. 자연계의 모든 것-여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신들의 왕 제우스는, 신화에서 가장 많은 자식을 얻은 아버지이기도 하다. 물론 제우스는 유혹하고 구슬리는 식의 신사적인 방법만으로 여성들에게 접근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제우스는 너무 막강했다. 그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권력을 동원해 납치와 겁탈을 일삼기도 했다. 제우스의 색정에 관해서는 구구절절 끝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터인데 대충 기억나는 이름만 열거해보면, 첫번째 부인으로 바다의 여신 메티스, 두번째로 법과 질서의 여신 테미스(그녀를 취한 제우스는 법 위의 존재였던 것이다),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곡물과 성장의 여신 데메테르 등의 여신들이 있으며, 인간으로는 앞의 그림에 등장한 레다와 다나에, 칼리스토, 이오, 에우로페 등 절세의 미녀들이 있었다. Rembrandt 1636
다나에의 아버지 아크리시오스는 '딸의 아들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자신의 딸이 남자를 만나 수태하지 못하도록 지하의 청동 방에 가두어버렸다. 그러나 제우스는 황금 빗물로 변신하여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제우스에게 사랑과 생식은 질서의 재편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발견이며 소유이고 이름붙이기의 과정 즉, 그의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는 인간과 문명, 자연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주는 연결고리로 (남성중심적인) 인간문명을 상징한다. 제우스가 자신의 아버지이자 거인족인 크로노스를 죽이고 최고신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뿌리인 자연을 제압하고 세상을 인간의 시선에서 규정하기 시작한 사건에 대한 우화(寓話)이다. 제우스의 사랑과 생식을 통해 신화 속에 등장하고 이름 지어진 신들이 상징하는 것들을 열거해 보자. - 삶과 죽음, 음악, 쇠를 다루는 기술(헤파이스토스), 그 외의 세상과 인간사회의 운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 이러한 개념부여를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상’이다. 즉 원시상태의, 불안한 삶의 주변을 채우는 알 수 없는 환경이 아니라 해석과 조작이 가능한, 확연히 정리된 세상 말이다. 제우스가 단순한 바람둥이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신화는 복잡다단한 인간사 - 人間事와 人間史 모두 -의 상징적인 복사본이다. 단일한 신화라 할지라도, 그에 투영된 인간의 관념은 단일하지 않은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사실 제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유는 제우스의 아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는 제우스의 연애술사로서의 성격에만 포커스를 맞췄으나 그의 창조적인 섹스행각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다른 이들처럼, 제우스 역시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제우스였기 때문에 더더욱 미친 짓이었다.) 헤라와 결혼하게 되면서 제우스의 연애사는 복잡하게 얽히고 만다. 헤라와 제우스의 달콤한 한때
ㅣ 바람둥이의 아내로서 헤라 이제 이 칼럼의 진짜 주인공인 헤라를 등장시켜 보자. 제우스와 헤라의 사랑은 나름대로 로맨틱하게 시작되었다. 제우스는 헤라의 동생으로 태어났으나 헤라보다 먼저 자랐는데 그들의 복잡한 가계도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자지를 낫으로 잘라버렸다) 자식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자마자 먹어버렸다. 레아는 거듭해서 남편에게 자식을 빼앗기다가 아들 제우스가 태어나자 이 녀석을 빼돌려 남편 몰래 키웠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성장한 제우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그 뱃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구출해냈다. 따라서 헤라는 원래 제우스의 누나다. 먼저 태어나 크로노스에게 먹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2의 탄생은 이미 장성한 제우스에 의해서였으니, 어떤 면에서는 그의 누이동생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태어나게 된 헤라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자라났고 제우스는 헤라를 탐내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황소로 변신해서 접근한 뒤 (역시 누이였던) 데메테르를 강간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컨셉을 바꿔서 한 마리 뻐꾸기로 변신했다. 어느 비 오는 날 새 한마리가 애처롭게 날아들자 이를 불쌍하게 여긴 헤라는 그 새를 가슴에 품었다. 그러자 새는 제우스 본래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그녀를 겁탈하려 들었다. 그러나 헤라는 제우스를 거부하며 결혼약속을 하지 않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다며 저항했고 결국 제우스는 헤라와 결혼하고 말았다. 헤라는 현명했던 걸까? 이때부터 바람둥이 남편의 외도행각 때문에 지겨운 가슴앓이가 시작되지만, 어쨌든 신들의 왕과 결혼한 그녀는 신들의 여왕이라는 빛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 결혼으로 그리스 최고 작업남 제우스의 연애행각은 대 국면을 맞게 되었다 - 질펀한 총각시절이 끝난 뒤 끈적한 불륜기가 시작된 것이다. 제우스 특유의 '들이대는' 작업방식은 결혼 전이나 후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여기에 다른 여자, 다름 아닌 아내가 개입되면서 이전에는 소소했을 연애사건이 보다 심각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럼 여느 일일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고 그보다는 스케일이 큰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Nicolaes Berchem [Jupiter Notices Callisto] 1656
검은 구름을 몰고 지나가던 제우스가 칼리스토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어느 사냥터에서 제우스는 칼리스토를 발견했다. 미인을 보았을 때 언제나 그랬듯 그녀를 범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칼리스토는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수하로서 순결을 맹세한 몸이었다. 그러나 제우스에게 그런 상황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당연히 자신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도 문제되지 않았다.) 제우스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칼리스토를 유혹했고 이들 사이에서는 아들 아르카스가 태어났다. 사실을 알게 된 아내 헤라는 분노했다.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곰으로 변한 칼리스토는 아들의 활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다. 아들 아르카스는 그 곰이 자신의 어머니인줄 몰랐던 것이다. 제우스는 가여운 칼리스토와 그의 아들을 하늘로 올려보내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Peter Paul Rubens
제우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으로 변해서 칼리스토를 범했다. 이 장면은 레즈비언 씬을 표현하고, 또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소재였다. 아르테미스(사실은 제우스)는 꽤나 남성적인 자세로 칼리스토를 제압하고 있으나, 칼리스토는 불안한 표정으로 상대를 보며 몸을 움츠리고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칼리스토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에서 헤라는 분노의 화살을 그 모든 사건을 일으킨 자신의 남편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제우스에게 어떤 짓도 하지 못했고 (실제로 그의 권능을 이길 수도 없었고) 대신 칼리스토를 저주했다. 자신에게만 충실할 수 있(을 가능성이 낙타가 선교사체위로 오르가즘을 얻을 가능성 만큼은 있을지도 모르)는 남편을 유혹한 여자(라고 쓰고 '나쁜년'이라고 읽는다)를 단죄하는 것이 가정의 수호신 헤라의 역할이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무수하게 많이 알고 있는데, 대부분의 불륜 이야기는 현모양처와 남편의 젊은 애인 사이의 대 격돌로 절정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다만 칼리스토 이야기에서 가슴이 아픈 점은 헤라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아내라는 점, 어떤 젊은 애인도 이 현모양처(사실은 소유욕이 강한 아내)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헤라의 방식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사랑법인 일부일처제(monogamy)의 수호신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 관계를 수호하는 방법이 불행의 원인인 남성이 아닌 여성의 희생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는 바로 이 이야기, 여신 헤라의 성격을 통해 본 모노가미와 여성의 관계를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읽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생소할 수 있는 용어를 정리해본다. 아래의 용어들은 굳이 숙지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한번쯤 읽어본다면 다음 칼럼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연애관계를 지칭하는 용어 1. 모노가미(monogamy) : 결혼제도로는 단혼單婚, 일부일처제를 의미하며, 관계로는 배타적 독점적 일대일 연애관계를 지칭한다. 헤라 여신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 시리얼 모노가미(serial monogamy) : 배우자가 바뀌는 단혼으로 이혼이나 사별 후 재혼 등의 경우를 지칭한다. 2. 폴리가미(polygamy) : 결혼제도로 복혼複婚, 중혼重婚, 특히 일부다처제를 지칭한다. 제우스의 경우를 (제도 밖에 있었으나) 이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 폴리안드리(polyandry) : 폴리가미와 대조적인 경우로 일처다부제를 의미한다. 여성중심적이나 대체로 여성우월적인 형태는 아니다. 3. 폴리아모리(polyamory) : 비독점적 다자 연애관계. 트라이어즈(Triads : 세 명의 파트너가 느슨한 관계), 비(Vee : 한 명을 중심으로 두 명이 얽혀있는 관계), 트라이앵글(Triangle : 세 명의 파트너가 서로 얽힌 관계), 폴리피델리티(polyfidelity : 세 명 이상의 집단이 결합)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남로당 예술진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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