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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포르노 12 작업도 단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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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작업도 단타처럼.

“거기가 서용하씨 댁 맞습니까?”

쇠를 긁는 듯한 남자 목소리였다.

“네. 맞는데요.”
“여기는 천안경찰서 형사곕니다.”
“경찰서요?”

한가희는 경찰서라는 말에 죄지은 것도 없이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졌다.

“경찰서에서 무슨 일로...”
“절도 용의자 휴대폰에서 귀댁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집 전화번호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혐의 여부는 조사가 끝나면 밝혀질 겁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일단 참고인자격으로 직접 출두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참고인이라면...? 누가 가야 하나요? 저희 남편인가요? 아니면 제가 가도 되는 건가요?”
“실례지만 호주분과는 어떤 관계시죠?”
“아내예요.”
“그럼 직접 나오셔도 상관없습니다.”
“언제 가야 하죠?”
“빠를수록 좋습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그녀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지금 당장은 좀 곤란하고요. 오후에 가도 될까요?”
“오후 몇 시쯤으로 할까요?”
“한 시나 두 시 정도면 가능하겠는데요.”
“그럼. 한 시 반으로 하죠.”

한가희는 통화가 끝나고도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절도 사건과 연루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서용하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남편까지 나서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일이 꼬이면 그때 개입해도 늦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였다. 약속한 시간까지는 3시간 반이 남았다. 여유가 있었지만 서울에서 천안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녀는 이른 점심을 먹고 서둘러 출발했다.
 
***

“서용하씨요?”
“네. 두 시 반까지 오라고 하셔서...”
“저희는 전화한 적 없는데요.”

형사계 출입문 바로 앞에 앉은 남자형사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형사가 사무실 안 쪽을 향해 큰소리를 쳤다.

“오늘 오전에 서용하씨 조사하기로 하신 분?”

대답이 없었다. 약속은 고사하고 수사 중인 절도 사건도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혐의가 없는데도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찜찜한 걸음으로 경찰서 현관을 나오는데.

“저...혹시? 남편 분이 반도실업 근무하지 않나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키가 크고 호남형의 30대 남자가 서 있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지만 기억이 흐렸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제가 사람을 잘 못 본 건 아니네요. 전 반도실업 부사장 반기철입니다. 작년 연말에 한번 뵈었었죠?”

한가희는 그제서야 반기철을 알아봤다.그녀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셨어요.”

반기철이 흐믓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실례지만 남편 분 성함이 어떻게 되죠? 제가 기억력이 별로라서 듣고서도 잊어버렸네요.”

그녀가 명랑하게 대꾸했다.

“서용하 대리예요.”
“아 맞다. 서용하 대리!”

반기철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능청을 떨었다. 부사장과 대리라는 신분격차를 에게 각인해 줄 요량이었다.

“근데. 경찰서에는 무슨 일로?”
“그게...”

한가희는 반기철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했다. 반기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별일이네요. 장난전화치고는 좀 심한 감이 있네요.”
“그렇죠? 누군가 작정을 하고 골탕 먹이려고 하지 않는 이상...”
“가만?”
“...?”
“댁에 누가 있나요?”
“아니요. 집은 비어있어요.”
“뭐 좀 불길한 추측이지만, 부인을 일부러 천안까지 유인한 걸 보면, 누군가 빈 집을 노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도둑이 작정하고 저를 외출시켰다는 건가요?”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제 뇌피셜일 뿐이니까요.”
“아니예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쩌지...”

한가희가 안절부절했다. 반기철이 다급한 어조로.

“차 가지고 오셨나요?”
“아니요. 전철로 왔어요.”
“그럼. 제 차로 집까지 이동하시죠. 한 시가 급하니까.”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도 건넬 경황이 없었다. 반기철을 따라 주차장으로 냅다 달렸다.

두 사람을 태운 승용차가 도속도로를 질주했다. 한가희는 생각보다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그녀는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다.

“부사장님은 어떤 일로 경찰서엘 오셨어요? 그것도 천안까지.”
“교통사고 때문에요. 뺑소니.”
“뺑소니요? 부사장님 차가 뺑소니를 당하신 거에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요. 전 목격자 진술 때문에 온 거예요.”

한가희는 자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조금만 일찍 갔더라면 제가 당할 뻔한 사고였거든요.”
“운전은 정말 안전이 제일인 것 같아요.”
“맞습니다. 빠른 게 빠른 게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빨리 달리지 마세요. 위험해요.”
“충분히 천천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걱정은 안전벨트에 붙들어 매 두세요.”

한가희를 태운 반기철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그녀는 차가 서자마자 황급히 조수석에서 튀어 나왔다.

“부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가희는 목례만 하고 잽싸게 아파트 현관을 향해 달렸다. 반기철은 운전석에서 그녀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기를 쓰고 달리던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다시 반기철 차로 뛰어왔다.

“저...부사장님. 죄송하지만 같이 올라가 주실 수 있겠어요?”
“...!”
“진짜. 집에 누가 있으면 어떡해요.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 하시죠.”

반기철은 기다렸다는 듯 안전벨트를 풀었다.

집안엔 바퀴벌레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았다. 한가희는 배수구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녀는 거실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기철은 형사처럼 코를 매만졌다.

“다행히 외부침입 흔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다 부사장님 덕분이에요.”
“제 덕은요 뭘...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아니예요. 부사장님이 데려다 주지 않았으면 저 혼자 발발 동동 굴렀을 거 아니예요. 정말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반기철 때문에 고생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를 경찰서에서 마주친 게 행운이라고 까지 여겼다. 반기철이 슬그머니 한가희 옆에 앉았다.

“이제 좀 진정이 되세요?”
“왠걸요.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이 집에 혼자 있어도 되나 싶고.”

그녀는 실제로 두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반기철은 때는 이때가 싶었다.

“제가 손 좀 빌려드려도 될까요?”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책에서 읽었는데, 마음이 불안할 때는 다른 사람 손을 잡는 것 만으로도 많이 진정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한가희는 바닥으로 시선을 깔았다. 그녀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못한 채 눈동자로 바닥을 쓸고 있었다.  반기철 손이 활강하듯 그녀에게 접근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여있는 그녀 손등을 반기철이 푸근하게 덮었다. 애써 달래놨던 그녀 심장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엄마.”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 승우가 현관문을 벌컥 열어 제쳤다.급하게 들어오느라 문단속을 제대로 안 한 탓이다. 거실로 들어 오던 승우가 놀란 눈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어?”

반기철은 한 손을 들어 승우에게 흔들었다.

“안녕.”

승우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 이 아저씨는 누구야?”
“응. 그게...”

한가희가 머뭇대자 반기철이 끼어들었다.

“아빠. 회사 동료.”
“근데? 왜 우리 집에 엄마하고 같이 있어요?”
“아빠. 심부름으로 뭐 좀 가지러 왔어.”

승우는 그제야 의심을 풀었다.

“그럼. 아빠. 부하예요?”

한가희는 화들짝 놀라서.

“승우. 못 써.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부하가 뭐야?”
“아빠가 심부름 시키고 그러면 부하 아닌가?”

승우가 콧구멍을 후볐다.

“또. 그런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니까.”

반기철이 웃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말을 잘 못 했나 보다. 심부름이 아니라 아빠가 뭘좀 부탁해서 가지러 온 거야.”

말은 맞는 말이었다. 반기철은 한가희 마음을 가지러 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도둑은 반기철 자신이었다. 승우가 크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반기철은 승우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사과도 잘하고, 승우는 착한 아이구나.”

한가희는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반기철을 배웅했다.반기철이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연락주세요. 바로 달려 올 테니까.”

집으로 돌아 온 한가희는 반기철이 건넨 명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신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다고 쳐도, 먼저 도움을 청할 대상은 남편이었다. 남편보다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가.

반기철은 곧장 회사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대형 계약이라도 체결한 것처럼 가슴이 뿌듯했다. 여자 후리는 작업은 시작이 반이다. 기초는 제법 야무지게 다져놓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 전화를 기다려야 하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느닷없이 등장한 아들녀석 때문에 그녀 핸드폰번호를 따지 못한 게 옥에 티였다.

반기철 고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다음날. 한가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에는 너무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반기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작업을 개시했다. 

“밥 한번 사십시요.”

반기철은 그녀와 점심약속을 잡았다. 장소는 시내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반기철이었다. 휴대폰으로 주식 단타를 치는 사이에 한가희가 다가왔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반기철은 그녀를 보자마자 입이 벌어졌다. 그제와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사실 그때도 나쁘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도 수수하고 단정했다.

오늘은 그녀가 먼저 아는 체 하지 않았다면,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고 지나칠 정도로 화사하고 세련미가 넘쳤다. 그는 엉뚱한 종목을 매수 한지도 모르고 증권매매 창을 닫아버렸다.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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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2-07-04 17: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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