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recently-3: the fall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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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보기에도 내가 여지를 주는 것처럼 보여?”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바보 같은, 그것은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예컨대 a와 b와 c가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셋에게 모두 동일한 태도를 취할 수 없음을 간과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S의 눈 속에 내가 설령 정말로 여지를 주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H에게, T에게, J에게, C에게까지 여지를 주지 않는 사람으로 존재할지는 미지수였던 것이다. 그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을 던진 이유는 아마 돌려말하기 위함이었을까. 푸념이나 넋두리의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왜?” 누가 그래! 둥가둥가.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을 공식적으로 싫다고 말하곤 하지만, 내 태도만 본다면 글쎄. 과연 싫어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아닐 걸. 언행불일치. “응, 그러니까~” 예외의 경우도 물론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이나 나이, 직업, 거주지, 목소리 따위를 잘 기억하지 못 한다. 대신에 기억하는 것으로는 걸음걸이, 표정, 제스처, 냄새, 억양 같은 것들. 그리고 또 있다. 그 때에 느꼈던 온도나 습도, 먹었던 음식, 들었던 노래를 우연히 마주하면 함께였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떠오르곤 한다. 달력의 ‘월’ 앞에 적힌 숫자가 두 자리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나는 작년 9월의 날씨와 함께 순서 없이 어떤 기억들이 떠올라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에 마주했던 ㅡ이름이 기억나지 않는ㅡ어떤 이의 말속도는 그것을 잊게 하기에 딱이었다. “혹시 말하는 걸 업으로 삼고 계신가요?” 누군가에게 직업을 묻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 할 거, 부질없지 않은가. “비슷해요.” 혼을 쏙 빼두는 언변에 연신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흥미는 아주 나중에야 촉발되었다. 연속해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의지하기가 어려워지더라고.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다는 이기심을 앞세워서 나는 몇 가지 궁여지책을 마련했는데, 1. 나를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신세를 한탄하는 것: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마저도 미안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그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버거웠다. 2. 한탄하는 대신에 개소리: 현실 도피성이 짙기는 하더라도 끌어안고 있는 문제를 내려둔 채 전혀 무관한 헛소리를 지껄이다 보면 호탕하게 웃고 있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3. 역시나 사람 사귀기: 그런데 목적이 분명한. 최근에는 어떤 동호회 비스무리한 것에 소속되는 것을 즐긴다. 어느 날에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를 열심히 응원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 가열찬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는 양립되기 어려운 두 가지의 공존을 약속한 장소에서 다함께 울었다. 이건 후술. 아무튼 열거한 방법 2에 따라 나는 개소리를 위해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만들었고, 서술하려는 사람은 개중에서도 내 개소리에 가장 촘촘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렇게도 발생한다. 만날 생각이 없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사람 둘의 대화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 애초에 나는 만남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제안 앞에 혼란스러웠다. 그가 이끌어낸 유쾌함과 딱 그만큼의 거부감이 혼재해 있는 상황이었다.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승자는 없었다. 줄이 이미 끊어진 채였는데 승부를 가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마치고 나서 나는 집 근처 지하철역 앞에서 그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작년 9월이 떠오르기 딱 좋은 날씨였다. 올해 여름은 작년보다 한 달 정도 더 길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생각했던 것 같기도. 구레나룻이 조금 촉촉해 보였다. “뛰어왔어?” “응, 좀,” “안 그래도 돼.” 어둡고 칙칙한 동네 주변을 걷다가, 동전노래방엘 갔고(누군가는 기대했을지 모를 섹스는 없었다.) 또 걷다가 헤어졌다. 대화 중간에 그가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한 80% 정도는 나쁜 사람들 같아. 근데 나머지 20%는 또 아니네? 20% 모두가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 중에 좋은 사람들도 있어. 근데 너희 어머니는 그 안에 속한다. 내가 보장해.” “만나본 적도 없는 우리 엄마에 대해 뭘 안다고!” 라고 내가 던진다면 높은 확률로 농담이겠지만, 그가 내 농담을 잘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으므로 또 그 말은 삼키고 말았다. 대신에, “고마워. 나도 우리 엄마 좋아해.” 헤어지고서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퇴근길, 그가 저녁을 제안했다. 마침 역 근처의 베트남음식점에서 파는 반미와 쌀국수가 생각나던 참이었다. 쌀국수와 반미를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다던 그는 앞으로 쌀국수를 마주하면 반사적으로 내가 떠오를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내 눈을 잘 쳐다보지 못 했고, 나는 그의 더 빨라진 말속도와 대화 주제가 조금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길게 늘어뜨리며 말한 것 같기도 하다. 왜 항상 앉은 자리에서는 배가 부른 줄을 자각하지 못 하는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의 동시에, 그제야 포만감은 찾아온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이. 감당할 수 없는 후회는 밥상머리에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좀 걸을까?’ 하는 질문 없이도 당연스레 걷는 일이 싫지는 않았다. 편안한 동네 친구가 드디어 생긴 기분이었달까. 손이 조금 부었던 것 같다. 걸을 때마다 열에 아홉 정도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이제 기록을 더듬지 않고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이름과 나이와 목소리와 같이. 다만 이것은 기억한다. 지난번처럼 역 앞에서 헤어지려는데, 등 돌린 나를 그가 불러세웠다. “내일도 만날 수 있어?” 조금 큰 목소리였고, 제법 느린 속도였다. “음- 집에 도착해서 메신저로 알려줄게.” 거절을 면전에 대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거절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 기억에는 없는데. 내가 잊은 걸지도 모르지. 눈치는 느린데 감정의 전이는 또 빠른 법이라서. 그의 치부였을지 모르는 그것을 나는 들추고야 말았다. ‘너는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해?’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내 여자친구면 좋겠다’가 맞지 않을까’ ‘그렇네 우문현답’ ‘질문의 이유는 내 메시지에서 사랑이 느껴져서일까’ 대상 없이 던진 질문을 그는 용케도 해석해냈다. 눈치가 빨랐다. ‘흠 아니 사랑보다는 내가 어제 얘기했던 부담된다는 말이랑 같은 맥락이야 나한테 사랑은 많이 달라 내일은 나 그냥 집으로 갈게’ ‘집으로 간다는 말이 왤케 덜컹하지 먼가 막 불안해 어디야? 집이야?’ ‘응 집이야 그냥 내 자의식과잉이었으면 하는데 ㅋㅋ 혹시 너는 내가 일생일대의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기회 같니’ ‘훅 들어오네 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장에서는 그렇긴 해’ ‘내 눈에 그렇게 보이길래 맞는지 확인하려고 물어본 거야’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었구나? 솔직히 맞긴 하지’ ‘응 나 답정너야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고맙구 좋게 봐준 것도 고마워 나는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사람 있고 ㅋㅋ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거 아니고 딱히 지금의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연애가 아니고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연애가 어렵기도 해 나 바빠 ㅋㅋ 엄청’ ‘몰랐네 나는 너랑 만났을 때 뭔가 너랑 나랑 느낌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너가 오해하게 행동한 건지 내가 착각한 건지 ㅋㅋ 어렵네’ ‘그럼 그런 면에서는 내가 여지를 준 건가’ ‘그래도 너도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게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니지 싶네’ ‘글쎄 그냥 좋은 사람인 척하는 거야’ ‘그래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속까지 다 좋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겉으로만이라도 좋게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하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난 그 좋아하는 사람이랑 뭐 잘 됐음 좋겠고 그럼 가끔 연락하자 심심할때’ ‘그럴 일은 없는데 ㅋㅋ 고마워 진짜’ ‘사람 일 모르는 거지 뭐 너무 막 닫고 살진 마 내가 너 상황 정확히는 모르지만 또 모르는 거 아니겠어’ ‘ㅋㅋ 맞아 나 고집 엄청 세’ ‘좋게 말하면 뭐 자기 확신이 있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 오해할 행동은 좀 조심하고 그건 좀 고쳐야겠더라 너 아무한테나 그러는 거라면’ ‘예를 들면?’ ‘뭔지 모르지 않을텐데 ㅋㅋ 아까 인정도 했고 걍 오해할만한 행동 너도 한 거 모르지 않는 거 같길래 뭐 말로 설명하긴 복잡하다는 것도 너가 알 거라고 생각해 진짜 모른다면 뭐 어쩔 수 없고 여튼 뭐 무겁게 무게 잡고 하는 말은 아니고’ 추궁은 한 번으로 마치기로 했다. 표현하고 싶지 않(거나 표현할 수 없)는 곳에서 갈구해서 얻어낸 답을 쥐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디 만족스럽던가. 여전히 궁금하지만 내가 찾아야 할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ㅋㅋ 머 어쩌겄어 그래 건강히 잘 지내고’ ‘그래 너도 잘 지내’ 우리는 꽤 자주 입장차이에 대해 간과하곤 한다. 내가 너를 대하는 태도가 영영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을 제법 중요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동일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걸까. 같은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엄마를 대할 때와 학교 후배를 대함이 분명 다르고, 같은 인물과 대화하더라도 주제에 따라 분명히 우리는 달라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혼자 있을 때의 눈빛과 함께 사는 고양이와 있을 때의 눈빛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방법을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므로. “S야, 너가 보기에도 내가 여지를 주는 것처럼 보여?”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똑같이 묻는다면 나는 아마 “당사자인 너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난 제3자일 뿐이잖아.” 또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너는…” 하며 상대방을 바보 취급했을 것이다. 나는 바보 취급을 당하고 싶었던 걸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불쌍한 역할을 자처하곤 하는데, 그러면 종종 내 입이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통쾌하게 당사자에 대한 욕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신할 수가 있게 된다. 약아 빠져서는. 이런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상대방에게 느끼는 것은 고마움일까 미안함일까 그도 아니라면- “아니, 걔 좀…….” 바로 최근에도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남 욕이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비열한 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입을 빌려 그를 비난한 일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나 졸렬하고 파렴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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